적어도 우리의 기억이 이름과 얼굴을 확실히 받아들일 무렵부터, 이민호는 언제나 완벽한 남자였다. 최고의 사학 명문 신화고의 F4 중에서도 최강의 남자 구준표(KBS <꽃보다 남자>)였으며, 남자로서도 설계사로서도 인정받는 차가운 도시남자(MBC <개인의 취향>)였고, 비싼 외제차를 끌고 다니고 몇 백만 원 정도는 쉽게 쓸 수 있는 청와대 소속 국가지도통신망팀 직원(SBS <시티헌터>)이었다. 모든 것을 다 가진 남자들, 그리고 <꽃보다 남자>로 한 순간에 스타덤에 오른 젊은 배우. 이민호라는 스타에 대해 가장 밝고 빛나는 부분에 대한 묘사만으로 채우는 건 쉽고도 쉬운 일이다.

하지만 정작 그가 정말 빛나던 순간은, 그 모든, 황금비율을 이룬 완벽함에 균열을 일으킬 때다. 구준표가 순식간에 여성 시청자들을 사로잡을 수 있었던 건 도도한 외모와 완벽한 배경에 어울리지 않는 ‘자뻑’의 제스처 때문이었고, <개인의 취향>의 전진호는 한옥 상고재의 비밀을 캐야 하는 건축설계사의 욕망과 개인(손예진)을 좋아하게 된 한 남자의 순정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며, 재력과 전투 능력을 모두 갖춘 시티헌터 이윤성은 하지만 악당을 처단하는 순간에도 더 나은 길이 있지 않을지 고심하는 영웅이다.

물론 이것은 캐릭터의 설정일 수 있다. 다만 그의 지금이 단순히 멋진 역을 맡아 얻게 된 행운이 아닌 그 모든 망설임의 순간을 담아내는 연기의 깊이를 통해 가능했단 것만큼은 부정하기 어려울 것이다. 스타 이민호를 말하기 위해, 영화 <울학교 이티>를 비롯한 여러 필모그래피 안에서 찬찬히 자신을 다져온 과거의 기억을 언급해야 하는 건 그래서다. 인상적인 순간을 자신과 함께 한 곡들을 고른 이번 이민호의 플레이리스트와 코멘트가 흥미롭다면, 밝고 빛나는 스타의 껍데기가 아닌 인간적인 고민과 깊이를 우리에게 조금은 드러내 주기 때문일 것이다.




1. 김연우의 <서바이벌 나는 가수다 경연 3-2 ‘네티즌 추천곡’>
‘요즘 가장 많이 듣는 노래’라며 그가 추천해준 첫 곡은 김연우가 MBC ‘나는 가수다’에서 김장훈의 원곡을 리메이크한 ‘나와 같다면’이다. “노래 한 곡이 좋으면 질릴 때까지 반복해서 듣는 습관이 있는데 지금 이 곡이 그래요. 사실 ‘나는 가수다’에서 김연우 씨가 이 노래를 부를 때, 저는 <시티헌터> 촬영 때문에 보진 못했어요. 그런데 차를 타고 이동하는데 노래 가사처럼 라디오에서 이 노래가 나오더라고요. 마치 라디오 사연을 듣는 것 같은 가사와 청량하고 편안한 목소리에 많은 감동을 받았던 것 같아요. 그리고 귀에는 편안하게 들리지만 따라 불러보면 절대 편안하지 않은, 굉장한 고음역 곡이라는 반전이 있죠.” 사실 ‘나는 가수다’에서 부른 ‘나와 같다면’은 김연우의 디스코그래피 중 가장 김연우답지 않은 스타일의 넘버일 것이다. 하지만 목에 핏대를 세우는 열창 역시 과거의 김연우에게서는 볼 수 없던 모습.



2. 인순이의 <거위의 꿈>
얼마 전, Mnet <윤도현의 MUST>에서는 ‘지친 당신에게 힘이 되는 음악’이라는 주제로 설문 조사를 했고 1위는 인순이의 ‘거위의 꿈’이 차지했다. 이민호에게도 이 곡의 의미는 마찬가지인 것 같다. “입시를 준비하면서 본격적으로 연기수업을 받았어요. 새로운 것을 준비한다는 것은 즐거움이기도 했지만, 남들보다 늦은 것은 아닌지 제대로 준비하고는 있는지 그 당시에는 보이지 않는 알 수 없는 스트레스가 있었던 것 같아요. 흔히 주변에서 ‘내가 너라면 다시 학교에 다니면 공부를 잘할 수 있을 텐데’라며 후회 섞인 소리를 할 때마다 나도 ‘왜 온전하게 그 시절을 즐길 수 없었을까’라는 생각에 빠지게 될 때도 있었어요. 어렴풋한 기억으로 그 당시에 이 노래로 많은 용기를 얻고 감명을 받았던 것 같아요. 지금 꿈을 키우는 친구들과 수험생들과 같이 듣고 싶은 노래예요.”



3. 2NE1의 <2NE1 1st Mini Album>
‘어디론가 걱정 없이 떠나고 싶을 때 듣고 싶은 노래’로 그가 꼽은 곡은 2NE1의 ‘I Don`t Care’다. “더운 여름에 여기저기서 들리는 피서 소식에 ‘여행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면 차 안에서 어김없이 이 노래를 틀었어요. 촬영을 하러 가는 길에서도, 정체된 도로에서도, 이 노래를 틀면 여행을 가는 기분이 들었거든요.” 2NE1의 첫인상은 터프함에 가까운 ‘Fire’였지만 그들을 스타덤에 올려놓은 곡은 역시 ‘I Don`t Care’다. 격렬하거나 아크로바틱적인 안무보다는 어깨를 들썩이며 흥겹게 흥얼거리는 게 어울리는 넘버. 이후 레게 믹스 버전이 나오기도 했지만, 기본적으로 이 곡의 정서 자체가 잘 부르는 것보다는 즐기며 부르는 레게 특유의 애티튜드에 방점이 찍혀 있다.



4. Glen Hansard, Marketa Irglova의 < Once OST >
“아름다운 영화와 음악으로, 강요받는 감정이 아닌 자연스럽고 잔잔한 감동을 받았어요. 제가 가진 느낌이 있듯, 개개인이 느끼는 영화와 음악의 감동도 다를 것 같아요.” 그가 추천한 네 번째 곡은 영화 <원스>(Once)에 삽입된 ‘Falling Slowly’다. 정말 한동안 어쿠스틱 기타를 친다는 사람들, 그리고 배우고 싶다는 사람들 거의 대부분이 이 곡을 연주하거나 연습했다. 영화의 성공이 노래의 인기로 이어졌다고 할 수 있지만, 영화를 보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이제 ‘Falling Slowly’의 어쿠스틱 인트로는 이제 너무나 낯익다. 덕분에 극 중 주인공을 연기한 글렌 핸사드와 마케타 잉글로바가 짝을 이룬 포크 듀오 ‘스웰 시즌’도 세계적 명성을 얻었는데, 최근 제천국제음악영화제에서 상영된 <스웰 시즌>을 보면 <원스>의 성공 이후 그들의 삶을 엿볼 수 있다.



5. 이민호의 < F4 Special Edition 2 >
마지막 곡은 이민호 본인이 부른 노래 ‘My Everything’이다. “‘My Everything’은 <꽃보다 남자> 스페셜 에디션 앨범에 있는 노래예요. 가수와는 비교할 수 없는 실력이지만 드라마로 큰 사랑을 받았던 터라 그 보답의 차원에서 불렀었어요. 그 당시에는 어떤 노래의 ‘부른 이’가 이민호일 수 있다는 건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었고, 그래서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불러줘야지’ 하는 생각으로 연습하고 준비해서 녹음한 노래예요. 제가 노래할 때 객석에서도 함께 불러주는 소리에 감격했던 기억이 있어요. 사실 자주 듣는 노래라고는 할 수 없지만 제 플레이리스트에는 항상 들어 있는 노래입니다.” 이민호의 낮지만 부드러운 저음역이 돋보이는 곡으로 노래도 노래지만 <꽃보다 남자> 5년 후의 애프터 스토리를 담은 뮤직비디오가 화제가 됐다.




“그 동안 ‘꽃남’이라는 수식어가 주로 붙고 반짝스타의 이미지가 강했다면 <시티헌터>로 배우로서의 가능성을 보여준 것 같아요. 배우라는 타이틀에 한 걸음 더 다가갔다고 해야 하나. <시티헌터> 이후로 유쾌한 것뿐 아니라 진지하고 고독한 분위기의 작품도 많이 제의가 들어와요. 그만큼 연기 폭이 조금 넓어진 기분이에요.” 때로 잭팟은 그 이전의 노력을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만들어버린다. <꽃보다 남자>로 그는 많은 것을 얻었지만 잃는 것도 있었다. 짧지만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 <강철중: 공공의 적 1-1>의 고등학생 역할을 비롯해 착실히 쌓아온 필모그래피는 구준표의 이미지에 가려지거나 지워졌고, 행운아라는 타이틀이 스타나 배우라는 이름보다 앞서 붙었다. 이 때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두 가지다. 인기에 취하든지, 초심으로 돌아가던지. 물론 온전히 처음 그 때로 돌아가는 건 불가능하다. 다만 “전에는 친화력도 강하고 사람을 넓게 알아가는 스타일이었는데 많은 사랑을 받은 후에 그런 점이 많이 없어졌어요. 조금이라도 불편한 사람을 만나면 파하고, 일 년 만에 만난 사람에게 어떤 말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는 나 자신을 보고 슬퍼”하는 이 남자가 인기에, 주위의 반응에 휩쓸려 자신을 잃지 않을 거라는 믿음을 가질 수 있다. 인기는 오고 가는 것이지만, 신뢰는 굳게 뿌리박는다. 반짝스타 이후 배우의 삶을 지배하는 것은 바로 그 신뢰다.

사진제공. 스타우스 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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