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대 상상마당 앞에서 출발, 놀이터 도착. 지난 23일 밤, 퍼커션 그룹 라퍼커션의 이동 경로다. 이 수십 명의 퍼커션 연주자들은 그들의 이름이 써진 현수막을 앞세우고 홍대 길거리를 휘저었다. 가뜩이나 좁고 사람 많은 홍대 거리는 그들로 인해 꽉 채워졌고, 자동차들은 좀처럼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하지만 누구도 그들에게 항의하지 않았다. 대신 많은 사람들은 피리 부는 사나이의 뒤를 따라가던 아이들처럼 그들의 뒤를 따랐다. 여기에 홍대 주차장 골목을 중심으로 열린 한국실험예술제가 더해지며 홍대 거리는 잠시나마 공연과 사람과 거리가 뒤섞이는 공간이 됐다.

홍대, 관광지가 되다

그러나, 라퍼커션이 행진하던 그 길에는 이미 수많은 프랜차이즈 카페와 음식점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생계를 위해 목 좋은 곳에 가게를 내는 것은 당연하다. 다만 상상마당과 놀이터라는 두 개의 공간과 그 사이를 채운 또 다른 공간이 만들어내는 풍경의 이질감은 홍대의 현재다. 상상마당에서는 멀티플렉스와 TV 오락 프로그램에는 없는 영화와 공연들을 볼 수 있다. 주말 밤의 놀이터에는 아마추어 뮤지션들의 공연이 열린다. 반면 그 사이의 건물들에는 공연장도, 그 외의 문화 공간도 찾기 어렵다. 그런 곳들은 상상마당 건너편의 상수동 쪽으로 밀려나거나, 사라지고 있다.

라퍼커션의 공연이나 예술제를 기회삼아 바디페인팅을 하는 행위 예술가의 모습은 ‘홍대니까’ 존재할 수 있다. 하지만 상상마당과 놀이터 사이에 문화적 공간이 거의 없는 지금의 홍대에서, 그들의 모습은 1회성 파격이기도 하다. 라퍼커션의 행진이 진행되는 동안 그들과 동참하며 논 사람도 있지만, 그 주변에는 더 많은 사람이 휴대폰을 들고 그들의 사진을 찍으며 ‘구경’했다. 그들이 뭔가 잘못한 게 아니다. 다만 그 ‘홍대적’인 광경이 많은 사람에게 동참보다는 구경의 대상이 됐을 뿐이다. 라퍼커션의 공연 같은 것들은 MBC 에서 하하의 말대로 “완전 후리한” 홍대의 이미지를 유지하도록 만든다. 하지만 홍대 거리는 그 이미지를 앞에 내세운 채 가장 상업적인 것들로 채워진다. 이것이 홍대의 딜레마다.

여유와 자유가 사라진 유토피아
[강명석의 100퍼센트] 홍대, 여전히 후리하다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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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 홍대 주변이 온전히 예술적, 문화적 공간이던 것은 아니다. 다만 조금 다른 방식의 소비는 가능했다. 15년 전, 에서 펑크 밴드들의 공연을 본 사람들은 다시 펑크와 그런지 음악들이 밤새 나오는 술집에서 놀았다. 은 돈 내고 춤추는 클럽이었지만 공연과 시낭송회도 했다. 소비적이지만 문화적이다. 또는 내 취향대로 소비할 수 있다. 지금도 홍대에 프랜차이즈 커피숍 대신 때론 넓은 책상을 혼자 다 쓸 수 있는 카페가 인기를 끌고, 가게에 따라 맛이 다른 빵집들이 존재할 수 있는 이유다. 그런 분위기가, 홍대라는 곳의 브랜드 이미지가 홍대를 불황 없는 거리로 만들었다. 홍대의 유동인구에 비해 비교적 늦게, 그것도 중심지역에서 다소 벗어난 곳에 멀티플렉스가 생겼고, 그 멀티플렉스가 있는 건물에 들어선 의류 매장들에 손님이 그다지 없는 이유다. 사람들이 홍대에 오는 목적에서 영화 관람이나 매장의 개성이 없는 옷을 사는 것은 후순위다.

지금 누군가 홍대를 위기라 말한다면, 그건 다만 홍대에 소비문화가 더 심해지고 자본이 들어와서만은 아닐 것이다. 2002년 월드컵 때 홍대 가게의 주인들은 이미 경기가 있을 때마다 가격을 높여 음식을 팔았다. 다만 그 때의 가게 주인들은 라이브 공연을 위한 공간을 만들어둔 경우도 꽤 있었다. 클럽의 주인들은 ‘클럽데이’를 통해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만 오천 원 정도만 있으면 금요일 밤의 홍대 전체를 놀이터로 삼게 해줬다. 누군가는 클럽에서 춤만 출 수도 있고, 다른 누군가는 ‘부비부비’를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누구든 클럽에서 놀다 지치면 거리에서 널부러지듯 앉았다가, 다시 다른 클럽에서 또 다른 사람들과 놀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하지만 지금 홍대는 그 최소한의 여유와 자유가 사라지고 있다. ‘클럽데이’는 수익 분배 문제로 갈등을 겪다 중단되기도 했다. 몇 년 전만 해도 홍대입구역 주변에 있던 프랜차이즈 커피숍은 홍익대학교 주변으로, 다시 주차장 골목 쪽으로 계속 올라오고 있다. 그 자체가 문제는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프랜차이즈 커피숍은 손님이 한가롭게 시간을 보낼 넓은 책상도, 공연을 위한 공간도 주지 않는다. 어느새 홍대는 상상마당과 그 앞의 횡단보도를 기준으로 대형화 된 가게들이 있는 상업지구와 아직 개성이 살아있는 가게들이 보다 많은 곳으로 나눠졌다. 홍대는 거리에서 문화가 사라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소비 방식 자체가 서울의 다른 지역과 같아지고 있다.

홍대를 홍대답게 만드는 투자
[강명석의 100퍼센트] 홍대, 여전히 후리하다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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획일화된 소비 공간은 소비자들의 성향도 변화시킨다. 몇 년 전 어느 날의 홍대 밤거리에 있던 사람들은 색소폰을 연주 하는 외국인에게 선뜻 몇 천원의 돈을 내놓았다. 홍대에서 무언가를 기꺼이 즐기고, 거기에 값을 지불하는 건 흔히 볼 수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지난 주말 라퍼커션의 공연을 신나게 즐겼던 이들 중 만원에 팔던 그들의 앨범을 사는 사람은 쉽게 찾아볼 수 없었다. 라퍼커션의 멤버 중 한 명이 CD를 계속 팔았지만, 그들에게 몰린 수많은 사람들에 비해 앨범을 구입하는 사람은 좀처럼 보이지 않았다.

디지털 음원으로 음악을 들으면 되기 때문일 수도 있다. 하지만 수십 명의 연주자들이 한 시간 동안 사람들을 즐겁게 해줬을 때, 그 때 그들이 파는 앨범은 단지 음악을 듣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들의 공연에 대한 최소한의 사례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 홍대는 이미 그런 여유, 또는 매너를 보기 매우 어려운 곳이 됐다. 돈을 내지 않은 사람들의 잘못이 아니다. 그럴 기회 자체가 많지도 않고, 기회가 많지 않은 만큼 자연스럽게 그런 행동을 하기도 어렵다. 손님들을 몰개성의 존재로 만들어 버리는 요즘의 홍대 가게들은 스스로 이런 거리 공연을 동참이 아닌 신기한 구경의 대상으로 만들고 있다. 상상마당과 놀이터 사이의 모든 가게가 술과 커피와 핸드폰 스킨만 팔기 바쁜 상황에서 손님들이 알아서 거리 공연에 돈까지 쓸 이유는 별로 없을 것이다. 지금 홍대 거리의 변화는 예술가를 몰아낸 자본의 승리가 아니다. 자본은 문화와 소비가 이상적으로 결합할 수도 있었던 거리를 서울의 다른 번화가와 다를 바 없는 곳으로 만들고 있다. 홍대에서 대중을 상대로 돈을 번다면, 그 사람은 라퍼커션 같은 거리 공연이 가끔 있는 신기한 구경거리가 아니라 홍대니까 늘 있을 수 있는 일로 만드는데 동참해야 한다. 그건 홍대라는 브랜드가 가진 프리미엄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투자다. 프랜차이즈 제과점에서 샌드위치를 먹고, 스타벅스에서 커피를 마시고, 특색 없는 클럽에서 춤을 추다 대형 포차에서 술을 마신다. 그리고 집에 돌아간다. 그런데도 사람들이 굳이 홍대를 찾을 이유란 게 있을까?

글. 강명석 기자 two@
편집. 장경진 thr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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