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있나, TEO│고상지 “반도네온은 발, 무릎, 허벅지도 써야 하는 악기”
보고 있나, TEO│고상지 “반도네온은 발, 무릎, 허벅지도 써야 하는 악기”
MBC 에서 정형돈은 고상지가 ‘형님’인 줄 알았고, 이적은 그녀를 ‘여자애’라고 말했으며,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녀를 반도네온이라는 악기로 기억한다. 그러나 실제로 만난 그녀는 탱고였다. 결심한 것은 반드시 하고야 마는 그녀는 “반도네온 연주를 하고 싶은데 기숙사에서 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이유로 다니던 학교를 그만두는 뜨거운 열정과 화끈한 결단을 가진 사람이다. “이미 학교 수업에는 흥미를 잃은 상황”이었다고는 하지만 이십대의 중간, 전혀 새로운 세상으로 발을 내딛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리고 그 걸음을 휘청거리거나 뒷걸음치지 않고 뚜벅뚜벅 보이지 않는 길을 개척하며 걸어가기란 더더욱 어려운 일이다. 공격적으로 보일 정도로 펄떡펄떡 뛰는 심장이 연주하는 음악, 탱고가 그녀 인생의 배경 음악인 것은 그래서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에 등장한 이후로 이제 당신을 형님으로 오해하는 사람은 없을 것 같다. (웃음)
고상지: “무한도전 나와?” 하고 주변에서 문자가 많이 왔다. 솔직히 예능 프로그램을 잘 안 봐서 출연하는 것 자체에 큰 의미를 두지는 않았는데, (정)재형 오빠와 편집팀에 고맙다. 블로그 방문자 자릿수가 바뀔 정도로 PR이 많이 된 것 같다.

“정재형과 하림은 은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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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화 당일은 어땠나?
고상지: 평소와 다를 것 없이 리허설 하고, 공연 했다. 무대에서 반도네온이 그리 큰 비중을 차지한 것도 아니었고.

정재형이 탱고를 하겠다고 하는 순간, 당신이 출연할 것을 예상한 사람들이 많다. 아무래도 정재형과는 각별할 것 같은데.
고상지: 각별하다기 보다는 재형 오빠는 내가 감사히 여기는 은인이다. 일을 받고, 돈을 받고, 먹고 살 수 있게 된 모든 일이 재형 오빠와 함께 하면서 시작 되었다. 음악을 늦게 시작해서 레스토랑에서 페이 3만원 받으면서 일하던 사람이었는데, 이제는 사람들에게 이만큼이나마 알려졌으니까.

잘 아는 사람으로서 방송에서 보여지는 정재형을 평가하자면? (웃음)
고상지: 평소와 똑같다. 원래 재형 오빠는 그렇게 행동한다. 방송이라고 더 오버하는 것도 없고. 그래서 재형 오빠의 캐릭터가 이렇게까지 사랑받는 게 신기하기도 하다. (웃음) 아무래도 제작진이 자막 같은 장치로 예쁘게 보이도록 잘 만져 준 것 같다.

정재형 못지않게 하림과도 가까운 것으로 안다.
고상지: 아! 하림 오빠도 은인이다. (웃음) 재형 오빠를 소개해 준 사람이니까. 6, 7년 쯤 전에 홍대에서 취미로 반도네온 연주를 하는 사람 셋이 번개로 만난 적이 있다. 그때 하림 오빠를 처음 만나서 커피 마시고 이야기 하면서 친해졌다.

반도네온으로 업계에 발을 들였지만, 당신이 먼저 반한 건 악기가 아니라 탱고 자체였다고 들었다.
고상지: 내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음악을 좋다고 느낀 건, 게임 음악이었다. 애기 때 닌텐도, 수퍼패미콤 롤플레잉 게임에 완전히 빠져 있었는데 동굴과 성을 탐험할 때의 배경 음악이 너무 좋은 거다. 그런데 탱고가 그런 전투음악, 던전 음악과 비슷한 점에서 와 닿았다.

탱고는 보통 여성적인 음악이라고 알려져 있지 않나?
고상지: 그런 오해가 많다. ‘치명적인 유혹’ 같은 형용사는 완전히 오해에서 비롯된 거고, 탱고는 훨씬 공격적이고 뜨겁고 활활 타오르는 음악이다. 한국에서는 그런 아르헨티나 탱고를 들을 기회가 정말 부족하다. 음반도 잘 팔지 않고.

악기를 구하는 것부터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지금은 아르헨티나 현지에도 반도네온을 만드는 사람이 없다고 들었다.
고상지: 생산되기는 하는데, 요즘 제작된 악기는 조악해서 연주를 하기에 부적합하다. 그리고 내가 처음 연주를 시작할 때만해도 악기가 그렇게 귀하지 않았다. 연주자 뿐 아니라 앤틱하다는 이유로 악기를 수집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희귀해 진 거지. 가격도 많이 올랐고.

“아르헨티나에서 탱고는 삶의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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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반도네온을 독학을 할 수 밖에 없었겠다.
고상지: 6개월 정도 독학을 했고, 이후에는 일본 연주가 고마츠 료타에게 배웠다. 그의 한국 팬이 내 사연을 알고 ‘혼자 애쓰는 여자애가 있으니 고마츠 상이 힘내라고 해주시면 그녀가 기뻐할 것 같다’고 메일을 보냈다. 그래서 그로부터 답장이 왔는데 알파벳으로 한국말을 써서 보냈더라. ‘안녕하세요. 고마츠 료타라고 합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힘내세요.’ 세계적인 연주자가 얼마나 겸손한가! 정말 기분이 장난 아니었다. 내가 답장으로 ‘어머! 제자로 받아 주세요’라고 했는데 고마츠 선생님은 프로가 되지 않을 거면 가르치지 않겠다고 하셨었다. 워낙 세계적으로 유명하고 바쁜 분이라 취미생을 가르칠 여유가 없기 때문이었는데, 당시에는 ‘좋으면 하는 거지 꼭 프로가 되어야 하나?’ 하는 생각도 있었다. (웃음)

그런데 당신은 결국 프로 연주자의 길을 걷고 있다.
고상지: 원래 나는 앞날에 대한 계획이 없는 편이다. 그냥 좋아하는 악기를 연주할 뿐이었다. 그런데 고마츠 선생님을 막상 만나니까 너무나 존경스럽고, 열심히 가르쳐 주시는 그 정성과 열정 때문에 프로가 되지 않는 길은 생각할 수가 없었다.

확실히 스승을 만나니 독학하던 시절과는 습득하는 속도가 달랐을 것 같다.
고상지: 그런 차원의 문제가 아니었다. 사실 내가 피아노, 가야금도 아주 조금씩 배워 봤고, 학교 밴드에서 어설프게나마 베이스 연주도 해 봤는데 그 모든 악기와 반도네온은 정말 다르다. 너무 너무 너무 아카데믹하고 과학적으로 접근해야 하는 악기라서 누군가 일깨워주지 않으면 아예 연습이 불가능할 정도다. 악기 소리에 영향을 미치는 변수가 너무나 많다. 손만 쓰는 게 아니라 발도 쓰고, 무릎, 허벅지도 써야 한다. 6개월 독학 기간은 그냥 음계 버튼을 외운 데 의의가 있을 뿐이고, 그 마저도 완벽하게 숙지하지 못했었다. 그냥 다시 처음부터 시작한 거나 다름없었다.

그래도 일본에서는 같이 연주하는 동료들이 있어서 좋은 점도 있었겠다.
고상지: 고마츠 료타의 일본인 제자들은 다들 악기에 미쳐있다. 정말 잘한다. 나중에 내가 부에노스아이레스로 유학을 갔을 때, 이미 일본에서 그 훌륭한 사람들을 경험했기 때문에 열등감에 면역이 되어 있는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할 정도였다. 반대로 아르헨티나에서 시작해서 일본으로 유학을 갔으면 정말 우울했을 거다. (웃음)

아르헨티나로 유학 갈 때, 에밀리오 발까르세 오케스트라 학교에 수석으로 입학했다고 들었는데.
고상지: 그게 일본에서 훈련 받은 덕분인 거다. 그렇다고 아르헨티나의 연주 실력을 무시해서는 절대로 안 된다. 다만 그 나라 사람들은 미친 듯이 연습을 하지 않을 뿐, 음악성은 정말 대단하다. 그들에게 탱고는 삶의 일부라서 연습하는 게 아니라 즐기는 대상인 거다. 그래서 4, 50대가 되면 연주자로서 잘하게 되고, 노인이 되면 거장이 된다. 입학 성적은 자랑스러울 게 전혀 없다.

그렇다면 아르헨티나의 음악 뿐 아니라 그 곳의 삶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했을 것 같다.
고상지: 그럴 필요가 없었다. 탱고 뮤지션들의 세계가 좁은데, 한국에서는 듣기만 하던 거장들이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응집해서 살고 있다. 일주일에 거장의 공연이 7번 있다. 2천원 내고도 엄청난 공연을 볼 수 있다. 그래서 매일 유명한 연주인들을 만나고 이야기하고 같이 커피 마시면서 배우기도 하고 그럴 수가 있었다.

그런 경험을 하고 오면, 역향수병이 생기지 않나?
고상지: 특히 합주 환경이 많이 그립다. 지금 한국에서 탱고를 하는데 가장 어려운 점은 반도네온만 너무 많다는 거다. 내가 레슨 하는 학생만 10명이 넘는다. 그런데 반도네온과 함께 연주할 탱고 피아노, 탱고 바이올린 연주자는 희귀하다. 콘트라베이스는 아예 없다고 봐도 된다. 탱고를 연주하는 경우에도, 대부분 클래식 연주자가 녹음한 탱고를 듣고 연습한 사람들이라서 아르헨티나 탱고를 이해시키기가 너무 힘이 든다. 나와 함께 공연하는 연주자들도 대부분 프랑스, 아이리쉬 집시 연주자들인데 내가 부탁해서 탱고를 하는 경우가 많다. 게다가 나는 다른 악기에 대해서는 오케스트라 수업 시간에 본 게 전부니까, 설명하는데 한계가 있다.

장르의 저변이 넓지 않으니 어쩔 수 없이 포기하는 부분이 생기는 건가.
고상지: 콘트라베이스의 핑거링과 활 주법은 클래식 연주와도 아예 다르다. 설명이 불가능 하니까 그냥 포기 하는 수밖에 없다. 그런데서 오는 외로움이 있긴 하다. 지금도 반도네온을 배우고 싶다고 연락이 많이 온다. 악기가 특이해서 꽂히는 건데 피아노, 기타 전공자들이 연락을 할 때는 안타깝다. 잘 하는 악기로 탱고를 배우면 함께 연주할 수 있을 텐데 말이다.

탱고가 아닌 장르를 연주하는 어려움은 없나.
고상지: 특별히 거부감이 있는 건 아닌데, 어려워서 문제다. 특히 재즈 연주자들과 합주를 할 때 즉흥연주가 아직 어렵다. 공부를 많이 하고 있다. 하지만 세션만 하기에는 분명 답답하고 힘든 게 있다. 하고 싶은 건 결국 탱고고, 제일 잘 할 수 있는 것도 탱고 음악이니까. 그래서 힘들지만 계속 탱고 공연을 하려고 한다.

공연 뿐 아니라 작곡이나 개인 음반 계획은 없나?
고상지: 작곡은 이미 작업한 것들이 있다. 그리고 아르헨티나 탱고는 편곡이 정말 중요한 음악이라서 나는 늘 편곡 작업을 하고 있다. 일단은 피아니스트 조윤성 씨가 주도하는 피아노, 바이올린, 반도네온 트리오 앨범 녹음이 곧 시작된다. 그 이후에 개인 앨범을 작업하려고 구상 중이기도 하고.

“싸움이나 음악은 몸의 활동을 기억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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탱고를 계속하기 위해서 개인적으로 포기하는 것이 있나.
고상지: 아! 영춘권을 포기했다. 방송 스케줄 일주일 전에 엄지손가락 인대를 다쳐서 용한 침술가에게 급하게 치료를 받고 무리하게 연주를 한 적이 있다. 그 후로는 포기 상태다.

직접 배우기도 한 건가. 견자단의 팬이라는 얘기는 들었다. (웃음)
고상지: 견자단, 사랑한다. (웃음) 팬 카페도 가입했고, 견자단이 나오는 영화를 계속 찾아보고 있다. 그리고 이노우에 다케히코가 미야모토 무사시를 주인공으로 그린 만화 도 정말 좋아한다. 무(武)와 음악이 연관성이 많아서 그런 것 같다.

아무래도 연습한 것이 몸에 축적된다는 점에서 유사한 부분이 있을 것 같다.
고상지: 공부와 달리 싸움이나 음악은 몸의 활동을 기억하는 거지, 머리로 암기해서 되는 것이 아니다. 실제로 견자단도 액션배우가 될지, 줄리어드에 가서 피아노를 연주할지 고민했었다고 한다. 그만큼 공통점이 많다. 그리고 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무대에 오를 준비가 안 되어 있다!’ (웃음) 에서도 견자단과 이연걸이 싸울 때 “음악과 무술에는 공통점이 있지” 그런 대사를 하는데, 그런 게 억지스러운 은유가 아닌 거다.

그렇다면 영춘권 사부님에게도 탱고를 전파할 수 있었겠다.
고상지: 사부님이 정말 멋진 분이셨는데, 내가 부끄러워서 말도 못 붙였다. (웃음) 원래 무인들은 여자 보기를 돌 같이 하지 않나.

여러모로 영춘권을 포기한 것이 안타까워진다. (웃음)
고상지: 연주를 위해서 무술을 포기한 대신, 무술 음악을 해보고 싶다는 희망은 생겼다. 도 한국에서 코미디 소재로 많이 써서 그렇지 멋진 음악이고, 도 음악이 정말 멋진 영화다. 어릴 때 게임 음악에 빠졌던 것도 그렇고, 학창 시절에는 메탈을 많이 들었던 것도 같은 맥락인 것 같다. 싸우는 건 싫은데, 싸움을 보는 건 좋아한다. 그리고 그 싸움을 멋있게 해 줄 수 있는 음악이 좋은 거고.

반대로 탱고를 하면서 얻은 것도 있을 텐데.
고상지: 구체적인 것을 말하자면, 좋아하는 뮤지션들과 합주할 수 있는 경험이다. 애기 때부터 패닉의 엄청난 팬이었는데, 에서 ‘이적과 유혈사태’를 결성해서 함께 연주한 적이 있다. 그동안 공연 뒤풀이에서는 뵌 적이 많은데, 같은 무대에서 공연한 것은 그때가 처음이라서 잊을 수 없는 날이었다. 게다가 방송 무대라서 동영상까지 남아 있다! (웃음) 언젠가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와서 “누구세요?” 했는데 “상지야, 적이 오빠야” 그러더라. 그 때 음악하길 잘했다고 생각했었다. (웃음)

정재형 씨나 다른 뮤지션들이 들으면 질투 하겠다.
고상지: 아니다. 친한 오빠들은 나를 충실하고 믿음직한 동생으로 여길 뿐이다. 부르면 언제나 달려가는. (웃음)

스스로에게는 어떠한가. 믿음직한 연주자인가?
고상지: 3, 4년 전에는 스스로에게 만족하지 못했다. 늘 엉망인 것 같았는데, 지금은 10번 연주하면 2번 정도는 괜찮은 것 같다. 오늘은 그래도 잘 했어, 하는 거다. 앞으로 이 횟수를 늘려가는 게 나의 목표다. 어쨌든 나는 계속해서 음악을 하고, 탱고를 할 테니까. 언젠가는 더 많이 만족하는 날이 오겠지.

글. 윤희성 nine@
사진. 채기원 ten@
편집. 장경진 thr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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