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헌 “<지.아이.조 2>는 스톰 쉐도우의 존재감을 보여줄 수 있는 기회다”
요즘 이병헌은 슈퍼 히어로처럼 살고 있다. 지난해 말 영국 런던에서 <레드 2>를 찍으면서 제49회 대종상 영화제의 남우주연상을 <광해, 왕이 된 남자>(이하 <광해>)로 받았고 할리우드에서의 입지를 넓힐존 추 감독의 <지.아이.조 2>가 곧 개봉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지.아이.조 2>에서 그의 캐릭터인 스톰 쉐도우가 전편보다 화려한 액션과 깊은 감성을 보여주는 인물로 거듭나는 것처럼 이병헌 또한 할리우드를 향한 꿈을 좀 더 구체화시키고 있다. 어느새 할리우드 스태프와 동료들에게 새로운 시각을 주는 것은 물론 미국 관객들의 반응을 보며 자신의 연기를 다듬는 게 익숙한 배우 이병헌을 만났다. 영화와 연기에 대한 신념이야말로 그를 진짜 슈퍼 히어로로 만들고 있는 동력이었다.

이 기사에는 영화 <지.아이.조 2>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Q. 전편 개봉한 지 4년 만에 <지.아이.조 2>가 개봉한다. 소감이 어떤가.
이병헌: 사실 1편에서 스톰 쉐도우란 인물은 다소 독단적으로 그려졌다. 왜 그가 혼자만의 길을 걷고 차가워졌는지 제대로 나오지 않았던 거다. 하지만 이번 편에서는 그 이유가 나온다. 스톰 쉐도우가 왜 그래야만 했는지 동료들과 스승 앞에서 오랜 기간의 누명을 토해내는 장면도 있고. 1편에선 다소 차갑게 연기했다면 이번 편에서는 자연스럽게 비밀이 밝혀지면서 비중을 떠나 인물의 존재감을 보여줄 수 있는 기회라 생각한다.

Q. 전편도 마찬가지였지만 그 미스터리가 풀리는 2편에서도 스톰 쉐도우는 고독한 인물인데 연기하면서 무엇을 가장 신경 썼나.
이병헌: 그 점이 스톰 쉐도우란 인물에 매력을 느꼈던 부분이었다. 코브라에 몸을 담고 있지만 그 중 어느 누구와도 소통하지 않고 누구도 달갑게 받아들이지 않고 이번 편에서 변화가 있을 때도 그렇다. 스톰 쉐도우는 자신이 어디에 있는 건 그저 내 목표만을 위해서라고 생각한다. 코브라에 있던 이유는 날 함정에 빠뜨린 인물 중 하나인 스네이크 아이즈가 지아이조에 있기 때문인 것처럼 말이다. 세계를 정복하려는 코브라의 목표나 그런 코브라를 막고 인류를 구하려는 지아이조처럼 거대한 목적으로 움직이는 게 아닌 거지. 그래서 어떻게 보면 스톰 쉐도우는 이기적인 인물이다. 하지만 그 이기적이고 시니컬하고 본인 생각이 뚜렷한 점이 매력이라 생각해 연기할 때도 두 집단 중 어디에 있든 ‘쿨’하게 있으려고 노력했다. 갑자기 웃거나 극 중 인물들과 어깨동무를 한다거나 하지 않고 언제든지 내 목적만 달성하면 된다는 걸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Q. 스네이크 아이즈와 대결할 때 눈빛으로만 드라마를 전달하는 것처럼, 이병헌 만의 장점으로 스톰 쉐도우를 소화한 것 같았다. 스스로는 어떤 점 때문에 캐스팅이 됐다고 생각하나.
이병헌: 눈빛이 좋다 혹은 배우답게 생겼다는 이유로 캐스팅됐으면 좋을 텐데 사실 스티븐 소머즈 감독은 내 도쿄돔 팬미팅 DVD 보고 ‘아! 딱 스톰 쉐도우다!’ 했다고 들었다. (웃음) 할리우드는 확실히 티켓 파워를 보면서 캐스팅을 고려하는, 굉장히 상업적인 곳이란 생각이 들더라. 하지만 돌이켜보면 내가 팬미팅 처음부터 끝까지 흰색 양복만 입어서 그랬나 싶기도 하다. (웃음)

Q. 드라마 뿐 아니라 액션도 화려한데 이번 편에 액션 대역이나 무술지도를 맡은 정두홍 무술감독의 도움이 컸는지 궁금하다.
이병헌: 굉장히 많이 됐다. 최고의 닌자들이 싸우는 장면을 그려야 했는데 정 감독이 아이디어가 있었던 것 같았다. 하지만 액션 하나하가 이미 다 정해져있었고 그걸 바꾸긴 정말 힘들었다. 액션 코디네이터로 갔다면 그 권한으로 아이디어를 많이 반영시켰을 텐데 그러지 못해서 답답해 미치려고 하더라. (웃음) 나중엔 나한테 시켜서 내 아이디어인 것처럼 감독한테 제안하기도 했다. 현장에서 정 감독이 ‘두’로 불렸는데 감독이 아이디어를 듣고 괜찮으면 “두, 한 번 보여줘”라고 시키고 리허설한 후 반영했다.

Q. 실제 정두홍 감독의 아이디어가 들어간 장면은 어떤 건가.
이병헌: 초반에 스톰 쉐도우가 감옥을 탈출하는 장면에서 칼을 연결하는 게 있다. 그 부분이 정 감독의 아이디어였다. 현장에서 그 신 촬영했을 때 워낙 강력해서 다들 박수치고 너무 좋아했다. 생각해보면 정 감독과 가끔 한탄도 했지만 한국 영화 액션이 정말 좋다는 걸 더 알게 된 것 같다. 주인공이 아무리 히어로이지만 사람이니까 싸우다 맞으면 비틀거리고 먼지를 뒤 집어 쓰고 이런 게 다 표현되지 않나. 인물들이 날아다니는 액션보다 비틀거려도 손끝에 감정이 살아있는 걸 하자고 서로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

Q. 동서양 문화가 달라서 미국 관객들에게도 어필할 수 있는 액션을 고민했을 것 같다.
이병헌: 회의를 참 많이 했다. 일단 스톰 쉐도우에겐 싸이라고 하는, 삼지창 같은 상징적인 무기가 있다. 원작인 만화가 워낙 긴 역사를 갖고 있기 때문에 미국 관객들은 이 삼지창을 들기 시작하면 ‘아, 이제 제대로 싸우는 구나’ 하면서 굉장히 흥분하고 긴장한다고 들었다. 그럼 점을 많이 살리려고 했고 판타지 액션이니까 벌이 날아가 폭파시키는 것처럼 신무기를 보는 재미가 살아나도록 노력했다.

“할리우드에서 좋은 작품을 선택할 수 있는 입장이 빨리 되면 좋겠다”



이병헌 “&lt;지.아이.조 2&gt;는 스톰 쉐도우의 존재감을 보여줄 수 있는 기회다”
Q. 촬영하면서 느낀 문화적 차이는 없나.
이병헌: 스톰 쉐도우의 누명이 벗겨지는 장면이 있었는데 난 시나리오를 읽을 때부터 그 장면이 통쾌했고 한편으론 울컥했다. 충분히 스톰 쉐도우가 감정적으로 폭발할 수 있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래서 그만큼 연기를 했는데 감독이나 스태프들이 다들 의외라고 하더라. 본인들은 그 장면을 전혀 그렇게 해석하지 않았다면서 처음에는 헷갈렸지만 재밌는 생각이라며 좋아했다. 이런 부분에서 정서적인 차이를 느꼈다. 할리우드는 늘 ‘쿨’한 게 익숙하지 않나. 이번 편에서도 브루스 윌리스가 심각한 상황에서 농담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게 미국 관객들에겐 편한 건가 싶은 생각을 했다. 그래서 너무 스톰 쉐도우가 혼자만 진지하게 나가면 나쁘게 비춰질까 고민했지만 어차피 원작에서도 혼자 미스터리한 인물이기 때문에 생각대로 밀고 나갔다.

Q. 연기 해석 뿐 아니라 촬영하는 시스템도 한국과 많이 다를 것 같다. 어느 정도 익숙해졌나.
이병헌: 아침 6,7시 출근해서 저녁 7,8시 퇴근하는 건 이제 적응이 됐다. 하지만 이런 시스템이 촬영할 땐 더 힘들기도 하다. 예정 촬영 일수보다 하루 이틀이 미뤄져도 난리가 나는 곳이라 실수를 많이 하면 그만큼 촬영이 지연되니까 편한 마음으로 할 수가 없다. 시간을 맞춰야 한다는 압박감은 있었던 것 같다.

Q. <지.아이.조 2> 촬영 뿐 아니라 <광해>와 <레드 2>까지 워낙 여러 작품을 계속 촬영하다보니피로가 많이 쌓였겠다.
이병헌: <지.아이.조 2>, <광해>를 순서대로 끝내고 <레드 2> 촬영에 들어갔다. 하지만 <광해> 찍으면서 중간 중간 <지.아이.조 2> 추가 촬영이 있다고 해서 수염이랑 사극 분장 다 내던지고 5일을 <지.아이.조 2> 촬영하기도 했다. 그 때 한 컷 찍는데 NG를 20번 넘게 낸 것 같다. 왜 그렇게 대사가 길게 느껴졌는지. (웃음) <광해> 때문에 계속 사극 톤으로 하다가 갑자기 영어 대사 하고 그러다보니 내 삶도 참 스펙터클한 것 같더라.

Q. 1,2편 연속으로 촬영했고 오랜 시간 노력을 쏟은 만큼, 이 시리즈에 대한 애정이 남다를 것 같다.
이병헌: 시리즈에서 고참이란 기분은 안 들지만 촬영하면서 새로운 사람 만나고 내 영화 팬이라는 분들을 만나면 반갑다. < 공동경비구역 JSA > 너무 재밌게 봤다고 나중에 같이 작품하자고 할 때도 있고 사진 먼저 찍자고 할 때면 우쭐했다. (웃음) 나중엔 <달콤한 인생> DVD를 한국에서 직접 구해서 싸인 해주기도 하고. (웃음) 그런 시간이 좋았던 같다.

Q. 예전 인터뷰에서 할리우드에서 좋은 작품을 하기 위해 <지.아이.조>를 선택했다고 했었다. 2편까지 끝낸 지금, 이 작품이 앞으로의 할리우드 활동에 어떤 영향을 줄 것 같다고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이병헌: 지금도 <지.아이.조>는 잘 선택했다고 생각한다. 많이 걱정하고 긴장했는데 영화 팬, 관객 분들의 반응을 보니 다행이라 생각했다. 앞으로 바람이 있다면, 이제 스톰 쉐도우 가면도 벗었으니까 사람들에게 ‘저 친구 괜찮더라’ 이런 이야기를 들었으면 좋겠다. 아직은 잘 모르니까. (웃음) 업계에서도 많이 소문이 나서 정말 내가 좋은 작품을 선택할 수 있는 입장이 빨리 되면 좋겠다.

사진제공. 퍼스트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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