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승룡│남자라면 꼭 들어야 하는 다섯 곡
“연기하면서 가장 힘든 순간이 되지 않을까요?” 류승룡은 <내 아내의 모든 것>의 성기로 인터뷰할 당시, <7번방의 선물>을 준비하는 어려움을 이렇게 표현했다. 연극으로 시작해 넌버벌 퍼포먼스와 영화, 드라마까지 20여 년을 온갖 장르와 캐릭터를 거쳐 온 그에게도 지체장애를 가진 6살 지능의 아빠는 낙관하기 쉽지 않은 도전이었다. 예민한 왕의 버팀목이 되어주던 든든한 허균(<광해, 왕이 된 남자>)이나, 포기를 모르던 집념의 쥬신타(<최종병기 활>)처럼 눈 속에 칼을 품은 것 같았던 그가 “어른들을 위한 동화” 속 주인공이 될 수 있을까 우려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용구, 1961년 1월 18일 태어났어요. 제왕절개. 엄마 아팠어요. 내 머리 커서. 허엉”이라며 용구가 자기소개를 하는 순간 이환경 감독이 류승룡에게서 봤다는 “강아지 눈”이 거기 있었다. 물론 거칠고 차가운 감옥의 냉기를 단번에 몰아내고, 딸을 향한 부성애로 온기를 더한 용구는 눈빛 하나로 해결되는 성질의 것은 아니었다. 여느 때처럼 메모로 빼곡했던 대본은 그를 배신하지 않았다.



“예를 들어 맞는 신이 있다고 하면 맞을 때 강도를 Hit 1, Hit 2로 표시해서 매번 다른 느낌으로 가보려고 했어요. 우는 것도 장면마다 T1, T2로 표시해두고 그때마다 다른 강도로 조절하려고 했어요. 용구의 롤모델이 된 친구나 저의 아들들을 봐도 아이들은 표현이 굉장히 커요. 그래서 용구가 딸 예승이와 치는 장난도 그렇고 이번에는 좀 과장된 행동을 하는 게 캐릭터에 맞겠다고 판단했죠. 극 중에서 용구가 하는 장난이나 오버하는 행동들은 평소에 제가 아들들과 치는 장난들이에요. (웃음)” 개봉 5일 만에 160만 명의 관객을 동원한 <7번방의 선물>은 이제 겨우 류승룡의 첫 단독 주연작이다. <광해, 왕이 된 남자>처럼 누가 봐도 성공할 것 같은 프로젝트가 아니어도, <최종병기 활>처럼 거대한 스케일이 아니어도 스스로 빛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 류승룡. 30초짜리 짧은 라면 CF에서마저 ‘상남자’의 아우라로 눈부신 그가 남자라면 꼭 들어야 하는 다섯 곡을 골라주었다. “이 노래들을 감상한 모든 남자들이 한 여자의 올가미, 덫, 감옥 같은 존재가 되길 바라며!”라는 축복을 덧붙이면서.

류승룡│남자라면 꼭 들어야 하는 다섯 곡


1. 신중현과 엽전들의 <열창(熱唱)>
“‘남자의 노래’로 제일 먼저 떠오른 건 바로 신중현 선배였습니다. 걸어온 인생과 현재를 살아가는 모습 모두 남자로서 너무 멋지시지 않나요?” ‘한국적 록’이라는 신세계를 개척한 신중현과 엽전들의 등장은 혁명 그 자체였다. 신중현은 이미 숱한 히트곡을 만들어낸 작곡자였던 당시, 사이키델릭과 록, 국악을 결합시킨 새로운 사운드를 선보이는 밴드로 다시 한 번 음악적인 정점을 경험한다. 명곡들로 가득한 이 앨범에서도 류승룡이 힘주어 추천한 곡은 ‘미인’. “수많은 명곡들 중 특별히 ‘미인’을 고른 이유는 기타 리프가 끝내주기 때문이죠. 이런 건 무형문화재로 지정해야 하지 않을까요?”

류승룡│남자라면 꼭 들어야 하는 다섯 곡


2. Gary Moore의 < Still Got The Blues >
“사실 게리 무어는 워낙 유명한 뮤지션이라 이름만 알고 있었지 노래는 제대로 들어본 적이 없었어요. 하루는 영화 미팅 건으로 바에 갔는데 ‘Still Got The Blues’가 흘러나왔고, 전주부터 반해서 노래가 중반으로 넘어가기도 전에 곡명을 물었죠. 게리 무어만 있으면 주종불문 안주 없이도 2병은 가능하다는 농담도 그날 들었어요. 그 후로 종종 밤에 혼자 운전할 일이 있거나 간단히 한잔할 때 찾아 듣고 있습니다.” 울부짖는 기타 리프가 인상적인 ‘Still Got The Blues’는 전설적인 기타리스트이자 블루스의 거장으로 평가받은 게리 무어의 대표곡이다. 2011년 첫 내한공연을 마치고 돌아간 지 얼마 되지 않아 갑작스러운 사망소식이 전해져 팬들을 안타깝게 했다.

류승룡│남자라면 꼭 들어야 하는 다섯 곡


3. AC/DC의 ‘Big Gun’이 수록된 <마지막 액션 히어로 OST>
<마지막 액션 히어로 OST>는 <다이하드> 시리즈의 존 맥티어난 감독과 당시 <터미네이터>로 한창 인기를 구가하던 아놀드 슈왈제네거가 만나 큰 기대를 모았지만, 흥행에는 실패했다. 그러나 영화의 인기와는 상반되게 OST만큼은 크게 사랑받았는데, 그도 그럴 것이 AC/DC를 비롯해 메가데스, 에어로스미스, 사이프레스힐 등 당대의 내로라하는 밴드들의 곡이 수록되었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AC/DC의 ‘Big Gun’은 마초 액션 히어로를 내세운 영화를 대표하기에 손색없다. “‘Big Gun’은 도입부의 10초만으로도 진정한 남자의 땀 냄새가 진동하는 노래죠, 마초 음악과 마초 배우가 만나 전설적인 액션스타를 탄생시키는데 큰 공헌을 했다고 생각해요.”

류승룡│남자라면 꼭 들어야 하는 다섯 곡


4. 술탄 오브 더 디스코의 <오리엔탈 디스코 특급>
“이 노래가 플레이리스트 중 가장 최신곡일 것 같아요.” 세밀한 관찰력에서 탄생한 코믹한 가사들과 에너지 넘치는 폭풍 사운드가 유쾌하게 결합한 술탄 오브 더 디스코의 ‘오리엔탈 디스코 특급’은 제목에 걸맞게 시종일관 신나게 몰아친다. “소속사 홍보팀 친구가 듣고 있던 걸 우연히 들었는데 이전에도 추천했던 술탄 오브 더 디스코더라고요. 이번에 나오는 앨범의 노래라며 들려줬는데, 제목을 보고 ‘얘 또 이상한 거 만들었네’하고 웃었는데 노래가 신나고 즐거웠어요. 가사를 음미해보면 중동의 콧수염을 기른 남자가 섹시한 춤을 추는 모습이 떠오른달까요?”

류승룡│남자라면 꼭 들어야 하는 다섯 곡


5. 박완규의 <사랑이 아프다>
“남자라면 누구에게나 한 번쯤은 이런 사랑의 기억이 잊지 않을까요?” 류승룡이 마지막으로 추천한 곡은 박완규의 ‘사랑하기 전에는’이다. 영원히 당신만을 사랑하겠다는 다짐이 박완규의 허스키한 목소리에 실려 거부하기 힘든 강력한 고백으로 완성되었다. “세상에 하나뿐인 평생 지켜주고 싶은 내 여자, 내 사랑. 시간이 흘러 좋은 추억으로 남은 기억일 수도 있고, 아내와 함께하고 있는 순간순간일 수도 있겠죠. 남자답게 있는 그대로 표현하고 있지만 사실 무척 간질간질한 정서의 노래예요. 그야말로 진짜 남자랄까요? 제 팬카페에 가면 늘 흘러나오는 곡이기도 해서 무척 익숙하기도 해요.”

류승룡│남자라면 꼭 들어야 하는 다섯 곡


<내 아내의 모든 것>을 끝마치고 바로 <7번방의 선물>에 돌입했던 것처럼, <7번방의 선물>을 크랭크업한 이후 류승룡을 사로잡고 있는 인물은 정유재란의 소용돌이를 통과했던 해적 왕이다. <최종병기 활>의 김한민 감독과 다시 한 번 만난 <명량-회오리바다>에서 그는 이순신에 대적하는 왜군 장수를 맡았다. 정규군이라기보다는 전술능력을 인정받아 편입된 해적으로 그의 말을 빌리자면 “이제껏 본 적 없는 캐릭터”. 투구를 쓰고, 갑옷을 입고 왜장으로 변신한 사진을 보여주며 설레는 그의 모습을 보니 류승룡의 또 다른 도전은 이미 시작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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