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호동, 씨름보다 어려운 상대를 만나다
“제가 오늘 세 시간을 기다렸습니다.” 어제 첫 방영한 KBS <달빛 프린스>에서 소설가 황석영의 첫 멘트였다. 하지만 정작 그의 방송 분량은 5분 남짓, 팬더 인형탈을 쓴 채 ‘힌트맨’으로 소개된 시간을 빼면 3분 정도였다. 남은 한 시간은 MC와 패널들이 황석영의 소설 <개밥바라기>를 소재로 토크와 게임을 하는 것으로 채워졌다. 책을 소재로 한 토크쇼이면서도 정작 작가 본인은 ‘힌트맨’이라는 예능적인 요소로만 사용됐다. 작가에 대한 예우의 문제를 거론하려는 것이 아니다. <달빛 프린스>의 첫 회가 가진 문제들은 지금 토크쇼의, 그리고 토크쇼 MC로서 강호동의 딜레마를 보여준다.



강호동의 전작 SBS <강심장>과 복귀 후 시작한 <달빛 프린스>는 정반대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강심장>은 10명 이상의 스타들이 모여 앉아 자신의 사연을 털어놓고, <달빛 프린스>는 한 명의 게스트가 책을 매개로 자신의 인생에 대해 담담하게 회고하거나 시청자의 고민에 답한다. <강심장>의 키워드가 스타, 사생활, 눈물이라면 <달빛 프린스>는 책, 정보, 메시지다. 두 프로그램의 차이는 토크쇼의 지형도를 보여준다. 많은 토크쇼는 게스트의 사생활을 중심에 둔다. <강심장>은 출연자 수를 늘려 더 많은 에피소드를 뽑아냈고, KBS <안녕하세요>는 출연자의 범위를 일반인으로 넓히며 에피소드의 수위도 높였다. 하지만 <강심장>은 곧 포맷을 바꿔 시즌 2를 시작하고, SBS <고쇼>와 MBC <놀러와>는 시청률 부진을 이유로 폐지됐다. ‘토크클럽’을 내세운 <놀러와> 후속 MBC <배우들>은 2회까지 2%대 시청률을 기록했다. 최근 대부분의 토크쇼는 시청률 10%를 넘기기도 쉽지 않다. 수많은 토크쇼에 겹치기로 나오는 출연자들이 “어디에도 말하지 않았던 이야기”를 반복하는 것에는 명확한 한계가 있다.

<달빛 프린스>의 구멍을 메워라
는 스스로 무엇을 해야할지 아직 모르는 것처럼 보인다." src="https://img.hankyung.com/photo/202001/AS10CkPrNbzSEbg14hOdV7KuVFaYOWaHlKD.jpg" width="555" height="185" border="0" />

토크쇼에 지식과 지혜를 녹이려는 시도는 기존 토크쇼에 대한 하나의 대안이다. 강호동의 활동 중단 전 MBC <황금어장>의 ‘무릎 팍 도사’는 안철수와 이외수 등을 섭외해 사회적인 파장을 일으켰고, SBS <힐링캠프>는 문재인, 박근혜, 안철수 등 지난 대선 후보들이 출연, 프로그램의 브랜드를 격상시켰다. 명사들의 토크콘서트가 사회적 현상이 되고, 지식 경제라는 말이 흔하게 쓰이는 시대에 명사, 또는 책이 전달하는 지식과 지혜는 새로운 엔터테인먼트다. 케이블에서는 tvN <스타 특강쇼>처럼 아예 명사의 강연을 보다 엔터테인먼트적으로 소화하는 프로그램이 종종 3% 이상의 시청률을 기록한다. 파일럿으로 방영된 SBS <땡큐>는 <스타 특강쇼>에 대한 지상파의 답처럼 보인다. 전문 MC없이 혜민스님, 박찬호, 차인표가 여행을 하며 자신의 삶과 철학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 프로그램의 하이라이트는 박찬호가 은퇴 후의 계획에 대해 “살아야죠, 그리고 살아가야죠”라고 말하며 자신의 삶을 한마디로 응축하는 순간이었다.



<달빛 프린스>는 토크쇼의 두가지 흐름을 절충한 것처럼 보인다. 명사 대신 책을 쇼의 중심에 놓으면서 연예인 게스트가 출연해도 지식과 지혜를 전달할 수 있도록 했고, 강호동을 중심으로 게임과 벌칙 등을 넣으며 기존 토크쇼의 재미도 함께 넣으려 한다. 그러나 책의 저자 대신 연예인 게스트가 등장하자 책의 메시지를 전달할 사람은 사라졌고, 프로그램은 예능의 재미와 책의 지식을 하나로 결합하지 못한다. 황석영이 팬더 인형탈을 쓰고 ‘힌트맨’으로 나올 만큼, <달빛 프린스>는 스스로 무엇을 해야할지 아직 모르는 것처럼 보인다. 지식과 지혜를 전달할 명사는 사라졌다. MC는 그 빈 자리를 채우며 책으로부터 재미와 메시지까지 끌어내야 한다.

지금 강호동이 돌파해야할 숙제
와 tvN <백지연의 피플 인사이드>도 있다." src="https://img.hankyung.com/photo/202001/AS10SyfgptHJGkIwefeOQF.jpg" width="555" height="185" border="0" />

<달빛 프린스>가 MC에게 요구하는 것들은 지금 강호동이 돌파해야할 숙제이기도 하다. ‘무릎 팍 도사’는 복귀 후 첫 게스트로 정우성을 섭외했다. 폭발력 강한 이슈를 가진 인물로 다시 시작하는 ‘무릎 팍 도사’의 색깔을 규정한 셈이다. 또한 류현진과 워쇼스키 남매가 출연했을 때, 강호동의 질문은 그들의 성장사나 에피소드, 스캔들 등에 집중됐다. 특별한 게스트가 ‘무릎 팍 도사’에 몰리던 시절, 강호동은 대중의 눈 높이에서 게스트에게 궁금한 것을 물어보고, 게스트가 편안히 이야기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중요했다. 하지만 지금은 <힐링캠프>와 tvN <백지연의 피플 인사이드>도 있다. 쇼의 변별력은 게스트가 누구냐를 넘어 게스트에게 무엇을 얻어낼 것인가의 단계로 간다. 공교롭게도 돌아온 ‘무릎 팍 도사’는 좀처럼 10% 이상의 시청률을 기록하지 못하고 있다. 또한 정우성의 발언 중 가장 화제가 된 것은 그의 스캔들에 대한 구체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그에 대한 정우성의 생각과, 그의 발언들로부터 유추할 수 있는 삶의 철학이었다. 지금까지 강호동이 방송 진행의 영역에서 최고의 능력을 보여줬다면, 그는 보다 많은 영역의 지식과 지혜에 대해 더 쉽고 재미있게 풀어내고 질문해야 한다. 그의 능력과 별개로, 프로그램이, 또는 대중이 그것을 요구한다.

이런 영역은 어떤 MC도 도달하지 못한 것이기는 하다. 하지만 강호동이 강호동인 이유는, 또는 유재석이 유재석인 이유는 그들이 단지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기 때문이 아니라 ‘무릎 팍 도사’나 MBC <무한도전>처럼 예능의 흐름을 바꾸는데 한 가운데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새로운 패러다임은 그들에게 다시 새로운 역할을 요구한다. 이 변화의 시기에도 강호동은 가장 앞에 선 MC로 남을 수 있을까. 그리고 <놀러와>를 끝낸 유재석의 다음 선택은 무엇이 될까. 쇼의 현재는 서서히 과거가 되고 있고, 미래는 현재로 다가온다. 지금 정상에 있는 두 사람은 미래에도 그 자리에 있게 될까. 지금과는 조금 다른 모습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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