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용민│기분을 업 시키는 힙합음악
미친 예술고등학교의 “웃지 않는” 개그반. 이름부터 노골적인 이 반에는 곧 쓰러질 듯 식은땀을 흘리는 듬성듬성한 백발의 노장 체육 선생님과 레게 헤어를 하고 영어 랩을 흥얼거리며 들어오는 흑인 국사 선생님, 까칠하게 뻗은 턱수염과 터미네이터형 근육을 민소매 발레복에 타이즈 차림으로 태연하게 소화한 담임선생님이 있다. 학교 선생님에 대한 일반적 통념 딱 한 꼭지만을 집어 비튼 캐릭터들처럼, “웃지 않는”이라는 수식이 붙은 이 반은 “웃지 않아야 웃길 수 있다”는 한 문장의 급훈에 의해 다스려진다. 학생들은 웃지 않는 것이 아니라 웃어선 ‘안’ 되며, 벌을 받지 않기 위해 웃음을 참고 견디기에 반 분위기는 사뭇 치열하고 진지하다. 웃고 싶다는 간절함을 안고 개그반에 진학한 주인공 왕진지는 그 소기의 목적을 이루지 못했고, 외려 웃지 않는 자신의 특기를 살려 담임선생님인 ‘담임네이터’를 패러디하는 등 그만의 개그를 습득해버린 상태다.



수요일마다 연재되고 있는 웹툰 <웃지 않는 개그반>은 현용민 작가가 “나라의 경제를 얘기하는데 얼굴에 파리가 앉습니다”라는 말과 함께 터진 생방송 사고를 보고 “심각한 상황에서 예기치 않게 웃기는 상황이 발생하고, 웃음을 참지 못해 수습할 수 없는 지경까지 가버린 진행자와 패널의 모습”에 흥미를 느끼며 시작됐다. 그리고 작가는 이를 그려내는 한 방법으로 웃음과 상황과 인물의 감정이 역설적인 지점에 집중한다. “당사자들도 미치도록 웃기겠지만 보는 사람들은 더 배꼽을 잡고 웃게 되는 순간이 있잖아요. 그렇게 유발되는 웃음에 초점을 맞췄어요.” 웃음에 대한 인간의 욕망이 개그맨, 개그쇼, 개그콘서트, 개그영화 등을 만들어 냈다면, 개그 만화인 웹툰 <웃지 않는 개그반>은 오직 개그에 대한 욕망에 집중한다. 어떤 꼼수도 없이 컷의 전환보다는 해당 컷 자체로 돌직구를 날리고, 그림체가 가진 선 그 자체로 웃음을 터뜨린다. 이 노골적인 캐릭터들 중에서도, 작가 스스로 가장 즐기며 그린다는 담임네이터를 두고, “근육질의 남자 몸을 그리길 좋아하는데 발레복이라는 정해진 콘셉트 상 복부의 근육을 그리지 못하고 있음이 아쉬운 마음이 든다”고 할 정도로 이 웃지 못할 작품에 애착을 두고 연재 중인 현용민 작가가 자신의 학창 시절을 사로잡았던 음악들을 추천했다. <웃지 않는 개그반>에 등장하는 선생님들처럼 독특한 구석들을 지녀 그의 기분을 “업 시키”곤했다는 힙합 음악 다섯이다.

현용민│기분을 업 시키는 힙합음악


1. Vanilla Ice의 < To the Extreme >
“바닐라 아이스는 에미넴보다 훨씬 이전에 빅히트를 친 백인 솔로 랩 가수예요. 그의 앨범 중 < To the Extreme >에 수록된 ‘Ice Ice Baby’는 밴드 Queen과 David Bowie의 ‘Under pressure’에 나오는 “동동동” 두드리는 부분을 샘플링한 곡인데요. 절도 있으면서도 흥겹고 현란한(지금은 좀 촌스러운) 춤으로 당시 엄청난 센세이션을 일으켰지요. 가사가 좀 선정적이어선지 국내엔 정식으로 소개되지 못했고 라디오에서나 겨우 들을 수 있었는데요. 심의가 엄격하던 그 시절, 바닐라 아이스의 실제 모습이 어떨지 무척 궁금해 하며 즐겨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고등학생 시절, 시험 시즌이면 겪곤 했던 스트레스를 해소해 주던 곡입니다.” 수많은 뮤지션들이 샘플링한 ‘Under Pressure’가 바닐라 아이스의 ‘Ice Ice Baby’에서는 올드 스쿨 스타일로 재현됐다. 특유의 춤과 스타일을 어필하며 팝 차트에서 랩 싱글로는 처음으로 1위에 올랐고, 데뷔앨범인 < To the Extreme >은 전 세계적으로 1500백만 장이 팔렸다.

현용민│기분을 업 시키는 힙합음악


2. House Of Pain의 < House Of Pain >
아일랜드계 백인인 DJ Lethal, Danny Boy, Everlast로 구성된 3인조 힙합 그룹 House of Pain의 이름을 세계적으로 알린 그들의 데뷔 음반 < House Of Pain >은 메가 히트를 기록한 트랙, ‘Jump Around’로 수렴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용민 작가는 이를 처음 들었던 고등학교 3학년 재학 시절을 두고 “힙합이 잘 알려지지 않았던 시절, 라디오에서 < House Of Pain >의 ‘Jump Around’를 듣고 기이하고 신나는 느낌에 매료됐다”며 회상했다. “인터넷이 없었던 때라 더 알아보지는 못하고, 그저 곡을 기억만 해두고 있다가 몇 년이 지난 후에야 겨우 정식 발매된 앨범을 레코드숍에서 구할 수 있었죠. ‘Jump Around’는 리더인 Everlast가 구사하는 묵직하고 파워풀한 랩이 인상적인 곡인데요. 지금도 간혹 예상치 못한 장소에서 듣게 되곤 하더군요.”

현용민│기분을 업 시키는 힙합음악


3. Snow의 <12 Inches of Snow>
“<12 Inches of Snow>에 수록된 ‘Informer’는 힙합이라기보다 자메이칸 랩에 가까워요. 안경 쓴 금발의 백인이 구사한다는 점이 독특한 곡입니다. 원한이 서린 듯한 가사 내용과는 관계없이 속사포처럼 뱉어내는 빠른 랩에 저절로 어깨가 들썩여지는 트랙이에요. 그 흥겨움 덕에 저는 암울했던 재수 시절의 일부분을 조금이나마 행복하게 보낼 수 있었죠. (웃음)” 캐나다 출신 뮤지션인 Snow가 발매한 <12 Inches of Snow>는 1993년 첫 발매 이후 10년 만인 2003년 재발매된 앨범이다. 전곡에 걸쳐, 당시 유행하던 주류 힙합과는 다른 자메이칸 스타일의 음악을 펼쳐내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현용민│기분을 업 시키는 힙합음악


4. Beastie Boys의 < Hello Nasty >
현용민 작가가 네 번째로 추천한 앨범은 1998년, 제41회 그래미어워드에서 최우수 랩 부문과 최우수 얼터너티브 부문의 상을 수상한 Beastie Boys의 < Hello Nasty >다. “Beastie Boys는 왠지 그룹 서태지와 아이들에게도 많은 영감을 주었을 것으로 추측되는 전설적인 백인 남성 3인조 랩 그룹이에요. 가느다란 목소리의 샤우팅이 인상적인 팀인데요. 1998년에 발표된 앨범 < Hello Nasty >의 ‘Intergalactic’은 음악도 음악이지만 일본에서 찍은 특촬물 설정의 뮤직비디오 영상이 코믹하면서도 재미있습니다. 1986년에 데뷔한 팀인지라, 사운드가 다소 촌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으나 수록앨범 전곡을 들어보면 결코 가벼운 그룹은 아니라는 걸 알게 될 거예요.”

현용민│기분을 업 시키는 힙합음악


5. 드렁큰타이거의 <6집 1945 해방>
현용민 작가의 마지막 추천 곡은 드렁큰타이거의 <6집 1945 해방>에 수록된 ‘소외된 모두, 왼발을 한 보 앞으로!’다. 드렁큰타이거는 1992년 미국 웨스트 코스트 L.A의 힙합 축제에서 데뷔 후, 한국에서 힙합이 대중적으로 소화 가능한 장르로 자리 잡게 한 장본인이며 이후 ‘무브먼트’라는 크루를 만들어 범위를 넓히며 대한민국 힙합의 기둥 역할을 해왔다. “드렁큰타이거는 늘 색깔이 분명하고, 열정이 가득한 음악을 선보여 좋아하는 뮤지션입니다. 저와 동갑내기라 애정이 가는 부분도 있지만, 무엇보다 그의 음악 스타일 자체가 좋아요. 그중에서도 가장 힘차고 신나는 곡이 바로 이 곡이 아닐까 싶어요. 제가 만화가들이 진행했던 콘서트인 ‘러브콘서툰’에서 이 곡을 부르기도 했는데요. (웃음) 지금도 노래방에 갈 때면 가끔 이 노래를 부릅니다. 가수가 아닌 제가 유일하게 관객들과 호흡했던 그때를 떠올리면서요.”

현용민│기분을 업 시키는 힙합음악


2012년 하반기, <웃지 않는 개그반>으로 네이버라는 새로운 플랫폼 위에 안착한 현용민은 출판 만화를 경험한 작가다. 만화를 향한 꿈에 대해서 그는 “마음이 그렇게 고정되었기” 때문이라고, “다른 일은 잘할 수 없었고, 어쩔 수 없이 다른 일을 할 때에는 항상 아이를 집에 두고 온 부모의 걱정스러움과 아쉬움”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는 이제 극화가 아닌 개그 만화에 대한 집중에 대해 잠시 주춤거리다 양영순 작가의 <아색기가>와 <누들누드>를 보며 확신을 가지던 시절을 지나, 전작인 <영웅 강철남>과 <도대체 왜?인구단>에선 개그로 시작해 스토리로 빠지고 또 <웃지 않는 개그반>을 통해서는 개그에 더 치중하는 등 작품 간의 변주를 그려내며 자신만의 개그 만화를 발전시키는 중이다. “믿음을 주는 작가가 되고 싶어요. 신뢰가 두터워 언제나 기립박수를 받는 국가대표선수처럼요.” 현용민은 네이버 웹툰에 연재를 시작하며 꽤 높은 파고의 변화를 맞았던 때에 대해 “조기 축구를 하던 사람이 7만 관중이 운집한 서울월드컵 경기장 위에 선”것 같았다고 표현했지만, 만화가로서 집중하는 최고의 가치를 단단한 “믿음”에 둔 그가 그 어떤 변화에 쉬이 스러지겠는가. 이 다부진 믿음을 가진 만화가에겐 앞으로 맞게 될 어떠한 변화도 자신을 향해 휘어들게 만들 만한 힘이 있음이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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