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p7ewvPeYvkS
Tp7ewvPeYvkS


“그건 경계를 넘을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야.” 웹툰 <인간의 숲>에서 영화 속 살인마에게 쫓기는 사람의 심리를 이해할 수 없다는 주인공 하루에게 김 교수는 말한다. 인간과 괴물의 사이에 그어진 경계, 그리고 그 경계 위에 놓인 인간. 19금 사이코패스 스릴러이자 극악한 연쇄살인마 캐릭터들이 벌이는 살육전을 넘어, <인간의 숲>을 긴장감 있게 만드는 건 바로 이 경계의 문제다. 살인마들과 같은 공간에 갇힌 하루가 생존을 위해 자신이 설정했던 인간의 경계 앞에서 흔들릴 때마다 스스로를 정상적인 인간으로 분류하는 대부분의 독자 역시 자신이 그은 경계를 되돌아보는 경험을 한다. 다시 말해 이 작품은 살인마를 정의하는 보고서가 아닌, 반대로 우리가 정의한 인간에 대해 끊임없이 균열을 내는 끈질긴 물음에 가깝다.

<인간의 숲>의 황준호 작가가 ‘록 스피릿을 보여주는 밴드들의 음악’을 추천하며 그런 정신을 작품에 반영하고 싶다 말하는 건 그래서 고개를 끄덕일 만하다. 돌아보면 그의 작품 또한 항상 그랬다. 데뷔작이자 역시 사이코패스 살인마가 등장하는 <악연>은 가해자와 피해자의 이분법 대신 서로가 서로를 상처 입히는 인간군상이 괴물을 만들 수도 있는 상황을 보여주며 우리 스스로에게 윤리적인 질문을 던지게 하는 작품이었다. 입시 스릴러라는 독특한 장르를 개척한 <공부하기 좋은 날> 역시 입시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으면서도 이것이 과연 불가항력적으로 모든 십대가 감내해야만 하는 것인지, 그것이 근거 없는 폭력은 아닌지 사회 그리고 당사자인 학생들에게 물어보았다. 당연하다고, 혹은 그것이 정상이라고 쉽게 정의되는 것들에 균열을 내는 것이 록 스피릿이라면 그의 작품 역시 동류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황준호 작가가 “이것이 록의 정신을 표현하는 말 같다”며 인용한 하루키의 말, “혹시 여기에 높고 단단한 벽이 있고 거기에 부딪혀서 깨지는 알이 있다면 나는 그 알의 편에 서겠다”처럼. 다음은 이처럼 깨지는 걸 두려워하지 않고 벽을 향해 돌진하는 맹렬한 진짜 록그룹들의 음악들이다.
4YxxmX2DuGDEL
4YxxmX2DuGDEL
1. Rage Against The Machine의 <1집 Rage Against The Machine>
“<공부하기 좋은 날>을 그릴 때 레이지 어겐스트 더 머신처럼 되고 싶었어요. 불의에 분노하고 정의를 부르짖는 밴드, 위험하고 정치적이며 논란을 일으키고 끝내주게 멋있는 밴드라고 정의하고 싶어요. 개인적으로 랩메탈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편인데도 이들의 1집 앨범은 많이 들어요. 이 앨범에 수록된 모든 곡이 최상품이지만 그중에서 가장 강력한 폭발력을 자랑하는 ‘Bullet In The Head’를 추천하고 싶어요.” 혁명가 체 게바라를 존경하고, 모국인 미국을 악마의 나라라 비판하는 이 밴드의 성향을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반골’이지 않을까. 한국의 입시 제도에 대해 비판적 시선을 보여준 <공부하기 좋은 날>을 그리며 황준호 작가가 이들을 꿈꾼 건 당연해 보인다. 톰 모렐로의 날선 기타 리프와 잭 델 라 로차의 극렬한 보컬로 세상에 대한 분노를 음악적으로 형상화한 역작 앨범.
TqJ1ukC8VcRXzbt4
TqJ1ukC8VcRXzbt4
2. U2의 < The Unforgettable Fire >
“U2는 80년대의 양심이자, 스스로의 목소리를 잃어버린 록음악계에서 투우장의 황소가 되어 홀로 정의를 설파하던 위대한 밴드죠. 가장 유명한 앨범인 < The Joshua Tree >부터 구매했고 그들의 여러 명곡을 좋아하지만 그중에서도 < The Unforgettable Fire > 앨범의 ‘Bad’를 추천하고 싶어요. 원곡도 훌륭하지만 ‘Live Aid(1985)’의 공연 실황으로 감상하시길 강력하게 추천할게요. 공연 중에 보컬인 보노가 관객과 함께 춤추고 즐기는 장면이 있는데 그게 정말 멋있었어요.” 오아시스의 악동 노엘 갤러거는 U2의 보컬 보노에게 제발 아프리카 얘기는 닥치라고 일갈했지만, 아프리카 개발도상국의 부채 탕감과 에이즈 퇴치를 위한 보노의 지속적인 헌신은 결코 스타의 자기 과시일 뿐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음악과 가사, 그리고실천에 이르는 완벽한 삼위일체를 확립한 U2의 수많은 명반 중 하나.
rFOGacLUFfBcTdQu
rFOGacLUFfBcTdQu
3. The RollingStones의 < Let It Bleed (Remastered) >
“비틀즈의 유일한 라이벌이자 역시 록의 전설인 롤링 스톤즈의 곡도 추천하고 싶어요. 우리나라에선 비틀즈에 비해 덜 유명하지만, 롤링 스톤즈는 흔히 ‘로커’ 하면 떠올리는 반항적이고 사고 치는 이미지의 조상님 격인 밴드잖아요. 사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밴드는 아니지만 60년대에 록으로 세상을 바꾸려던 낭만 세대에게 ‘늘 네가 원하는 대로 되지는 않는다’고 말하는 ‘You Can`t Always Get What You Want’는 정말 좋아하는 곡이에요. 처음에는 어쿠스틱 기타로 단출하게 시작하는데 조금씩 가스펠 스타일도 등장하고 리듬도 바뀌면서 신나고 화려한 축제 분위기로 흘러요. 어떻게 보면 조금은 씁쓸한 이야기를 하는 것일 수도 있는데 거기서 이런 축제 같은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게 감동적이었어요.” 만화 <20세기 소년>에서도 주인공 켄지가 멋도 모르며 로커가 되겠다며 도전한 첫 곡은 롤링 스톤즈의 ‘Jumping Jack Flash’였다. 그만큼 세상과 대결하는 로커의 이미지를 대표하는 밴드의 성깔 넘치던 시절의 앨범이다.
ozKg3VQzwqvR7AxG92LzFb55
ozKg3VQzwqvR7AxG92LzFb55
4. Smashing Pumpkins의 < Mellon Collie And The Infinite Sadness >
“얼터너티브가 모든 것을 심판하고 펑크 정신의 부활로 거대하거나 복잡한 음악이 사라졌던 90년대 중반, 그런지는 물론 펑크에서 프로그레시브까지 모든 것을 집대성한 음악을 그것도 더블 앨범으로 들려줬다는 점에서 스매싱 펌킨스의 < Mellon Collie And The Infinite Sadness > 앨범의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요. 모두가 얼터너티브를 할 때 거기에 휩쓸리지 않고 자기의 색깔을 지켰다는 점에서 얼터너티브 안의 얼터너티브라고 할까요. 이 앨범에 실린 ‘Porcelina Of The Vast Oceans’는 90년대 얼터너티브 신에서 가장 좋아하는 공이에요. 아주 격렬하진 않은 아름다운 곡이죠. 제목의 Porcelina가 어딘지는 모르겠지만, 곡을 듣고 나면 그곳이 보이는 것 같아요.” 너바나의 팬에게는 커트 코베인에게 여자 친구를 뺏긴 불쌍한 2인자 정도로 여겨질지 모르지만, 황준호 작가의 말대로 < Mellon Collie And The Infinite Sadness > 앨범은 90년대의 거대한 성과다. 그런지의 격렬한 톤부터 현악을 이용한 서정적인 사운드까지 록의 미학을 다양하게 탐구한 수작.
Mrlnsu32hYCkF2P8T4d3tNV6t8oc
Mrlnsu32hYCkF2P8T4d3tNV6t8oc
5. 델리스파이스의 <1집 Deli Spice>
“앞서 소개한 밴드들에 비해 말랑말랑한 음악을 하는 델리스파이스가 무슨 록음악이냐고 말할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이들이 등장할 당시 한국의 록은 하늘 모르고 뻗어 나가는 고음과 종횡무진 질주하는 기타 솔로가 대접받았었죠. 그게 아니면 록이 아니라 무시당할 정도의 시기에 이 밴드가 들려준 감미로운 사운드는 오히려 혁신적이었죠. 처음 들었을 때 ‘한국에 이런 곡이 있었다니!’ 하고 감탄하게 만든 ‘챠우챠우’만으로도 이 앨범의 존재 이유는 충분하지만 제가 소개하고 싶은 곡은 앨범의 숨은 보석 같은 ‘사수자리’라는 곡이에요. 여전히 첫 트랙부터 마지막까지 통째로 자주 듣는 앨범이에요.” 처음 ‘너의 목소리가 들려’라는 노래를 들었을 때, 정말로 그들의 목소리는 끊임없이 우리의 귀에서 맴돌았다. 이젠 그들과 같은 감성적 모던록이 한국 인디의 주류가 되었지만, 이 정도의 흡인력은 초기의 델리스파이스 외에는 여전히 드물다.
CkEMWMqxT
CkEMWMqxT
“누가 이러이러하다고 할 때 그냥 생각 없이 듣기보다는 ‘이럴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했던 것 같아요. 평범한 건 싫어하고.” 중학교 시절 영화 <매트릭스> OST로 접하게 된 록 음악이 자신의 태도에 미친 영향에 대해 황준호 작가는 이렇게 답했다. <인간의 숲>을 포함해 세 편의 성공적인 스릴러를 독자에게 보여줬음에도 그를 스릴러 작가라는 장르적 분류에 가두기 어려운 건 그래서다. 이미 스토리 작가로 코믹 로맨스물인 <잉잉잉>을 만들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그의 작품은 장르적 문법을 지키는 것보다는 사회적 선입관의 문법을 파괴하는데 주력하기 때문이다. 젊은 작가에 대한 클리셰인 ‘앞으로의 작품이 기대된다’는 말은 적어도 그에게는 그 온전한 의미를 드러낸다. 그저 카멜레온 같은 장르적 변화를 기대한단 뜻은 아니다. 다만 “무조건 새로운 걸 하는 게 록의 정신 같진 않아요. 록의 전설이라 불리는 롤링 스톤즈가 자신들의 음악 스타일을 새롭게 바꾸진 않잖아요. 그보단 타협하지 않는 태도 같아요” 라는 매력적인 고집에 기대를 품지 않는다면 무엇에 기대를 품겠는가.

© 텐아시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