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 오바마: “나는 민주당이 당파성과 이데올로기적인 측면을 한층 강화하는 전략을 추구한다면 현재 민주당이 처해 있는 상황을 잘못 판단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우리가 자신의 주장을 과장하거나 지나치게 단순화하거나 허풍을 떤다면 그 때마다 선거에서 질 거라고 확신한다. 그러나 반대로 정치적 논란에 대해 침묵을 지킬 때에도 우리는 선거에서 패배한다. (중략) 또 그 결과가 뻔히 예상되는, 현재와 같은 정치적 논쟁을 지속적으로 추구하고 있기 때문에 새로운 방법을 찾아낼 수 없는 것이다. 그런 자세라면 우리는 ‘흑백’의 사고방식에서 벗어날 수 없다.”
– 버락 오바마, 에서

버락 오바마
버락 오바마
스탠리 앤 던햄: 오바마의 어머니. 열일곱에 오바마를 갖고 스물둘에 이혼했으며, 여섯 살의 오바마와 인도네시아로 떠나 열 살까지 그곳에서 키웠다. 인류학자이자 흑인과 결혼한 백인여성이기도 했던 그는 오바마가 인도네시아에서 가톨릭 성향의 학교를 다니든 회교 성향의 학교를 다니든 개의치 않았고, 대신 누군가 인종적 편견을 드러내거나 약한 자를 괴롭히는 것에 대해 민감해 했다. 던햄은 오바마가 타인에게 잘못을 저지르면 “다른 사람이 그렇게 하면 네 기분이 어떨 것 같니?”라고 말했고, 그 말은 오바마에게 인생의 좌우명이 됐다. 흑인과 백인, 카톨릭과 회교, 미국과 인도네시아 등 좀처럼 섞이기 어려운 입장들을 어려서부터 자연스럽게 받아들였고, 어머니에게 타인의 입장을 생각하는 것에 대해 배웠다. 오바마 스스로 말하듯 1960년대 전세계적으로 벌어지던 사회적 변혁이 그를 탄생시켰고, 그 시대에 맞는 다원적이고 상호 이해의 정신이 그를 성장시켰다.

미셸 오바마: 오바마의 아내. 오바마가 하버드 법과 대학원을 졸업하고 로펌에서 인턴으로 일할 때 그 곳 변호사로 일했다. 당시 미셸 오바마는 “직장에서 수트입은 흑인 남자”를 봤다는 것만으로도 그를 기억했고, 오바마는 “둥글고 검은 눈에서 무엇인가 알 수 없는 어렴풋한 기운”이 느껴지고, 겉으로는 단단해 보이지만 “연약함의 징후”가 느껴지는 미셸 오바마에게 매력을 느꼈다. 아버지가 자신과 어머니를 떠난 것 때문에 가족을 이루는 것에 회의적이었던 오바마는 행복한 가정 생활을 하는 미셸 오바마를 보며 생각이 바뀌었고, 결혼 후 아이를 가지며 인생의 행복을 찾았다. 오바마가 “안정적이며 수입도 좋은 생활방식에 안주”하지 않고 정치에 도전할 수 있었던 것도 늘 오바마보다 수입이 좋고, 육아에 남편보다 더 많은 시간을 쓴 아내의 지원이 있었기 때문. 이런 영향으로 인해 오바마는 일하는 여성의 육아 제도 개선 등에 많은 관심을 갖게 됐다. 또한 “모르는 게 있으면 아내에게 물어본다”는 남편이 됐다.

마틴 루터 킹: 전설적인 흑인 민권 운동가. 그가 없었다면 오바마가 미국의 첫 번째 흑인 대통령이 될 수 없었을 것이다. 또한 킹은 흑인 민권에 대한 전설적인 연설로 새 시대를 열었고, 오바마는 2004년 민주당 전당대회의 연설을 통해 첫 번째 흑인 대통령의 가능성을 알렸다. 흑인인 그가 자신의 가족사를 통해 미국이 누구에게나 자유와 평등과 행복을 보장해주는 나라로 발전해왔음을 역설하고, “우리의 투표가 그 가치를 인정받는 것”에 대해 말하며 “우리에게는 해야 할 일이 더 많이 남아있다”고 말했다. 정치인으로 나서기 전, 흑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백화점의 백인 경비원에게 도둑으로 의심 받기도 했던 그는 헌법과 민주주의의 토대 위에 세워진 미국 고유의 가치를 역설하면서 오히려 다원화된 현재의 미국을 끌어갈 수 있는 통합의 정신을 제시했다. 상원의원 시절 선거 자금으로 10만 달러 이상을 쓰지 않았다는 정치가가 미국의 가장 기본적인 정신으로 돌아가서 미래의 꿈을 이야기하자 사람들 사이에서 ‘담대한 희망’이 퍼지기 시작했다.

힐러리 클린턴: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의 아내. 오바마의 첫 번째 대선에서 민주당 대선후보 자리를 놓고 경쟁한 라이벌. 그리고 오바마 정부의 첫 번째 국무장관. 오바마가 라이벌이자 이라크 전 파병을 지지하는 등 국제정세에 대한 시각이 다른 힐러리를 기용한 것은 그의 리더십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또한 오바마가 “절충이나 타협에 머물지 않고 이념에 얽매이지 않는 미국인 대다수의 실용적인 태도”라 평한 빌 클린턴의 ‘제 3의 길’을 지지했다. 오바마 역시 현재의 미국이 종교, 인종, 문화, 국제정세 등 몇 가지 요소를 기준으로 극단적인 대립과 분열에 놓여있고, 이를 극복하려면 상대방을 이해하려는 자세를 갖고 실용적으로 가장 좋은 결론을 내야한다는 입장을 가졌다. 동성애, 임신중절, 이라크 파병 문제 등 수많은 문제에서 보수와 진보로 나뉘어 대립하던 미국에서 각자의 입장을 존중하며 통합의 길을 찾자는 것은 민주당의 새로운 비젼이었고, 오바마는 ‘Hope and Change’를 슬로건으로 내세우고 백악관에 입성한다.

조지 W. 부시: 미국 전 대통령. 재임 기간 동안 미국 정부 부채가 12조 달러로 늘어날 만큼 국정운영에 실패, 미국 경제를 최악의 상황에 몰아넣었다. 또한 부자 감세로 일컬어지는 부유층 세금 감면, 복지제도 삭감, 9.11 테러 이후 테러 방지를 위한 개인의 자유 억압과 이슬람에 대한 강경 일변도의 정책은 국내외적인 비난과 함께 미국이 진보와 보수로 극단적인 대립을 하도록 만들었다. 첫 흑인 대통령의 당선은 부시의 실정이 그만큼 컸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오바마는 대통령이 된 직후 적대국과의 관계 개선, 러시아와의 관계 재설정, 관타나모 수용소 폐지 등 부시 시절의 과오를 청산하는 것이었다. 또한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을 통해 경기부양을 시도하고, 저소득층 복지제도의 확충을 시도했다. 그러나 현실은 꿈과 같지만은 않았다.

에이브러햄 링컨: 노예 해방 선언으로 미국은 물론 전 세계의 역사를 바꾼 대통령. 오바마는 상원의원 시절 링컨에 대해 “대통령이 된 후에는 오늘날 우리를 서글프게 만든 실용주의를 따랐다”고 평했는데, 그것은 자신의 첫 번째 대통령 임기에 대한 예언이 됐다. “인기 없는 정책이라도 필요하다고 믿으면 끝까지 밀어붙이는 용기”가 있다던 그는 빌 클린턴도 실패한 의료보험 개혁안을 밀어붙였다. 국민이 의료보험에 의무 가입, 4700만명 이상이 새로 의료 보험의 혜택을 받도록 하려는 취지였다. 그러나 개혁안은 개인의 보험 가입을 국가가 강제할 수 없고, 보험 시장에 개입할 수도 없다는 공화당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혔다. 대법원 판결 끝에 법안은 통과됐지만 정부가 별도의 보험회사를 만들어 민간 업체를 경쟁시킨다는 ‘퍼블릭 옵션’이 제외됐고, 보험료 인상폭 제한 등 보험사를 제어할 장치는 사라졌다. 의료 혜택을 받는 사람들은 분명히 늘어났다. 하지만 그 하나 빼고는 다 잃었고, 보수와 진보 양쪽 모두 오바마에 만족하지 못했다. 미국 매체 은 “대통령의 연설을 들어보면, 여전히 좌파와 우파를 고루 만족시킬 수 있는 ‘중간 지대’를 찾고 있다는 느낌”이라고도 했다. 실용과 절충과 협의만으로 할 수 있는 것의 한계.

티파티: 미국에서 가장 보수적인 정치적 입장을 가진 단체. 오바마가 경기 부양을 통해 경기를 살리는 것에 “내가 낸 세금으로 부실 기업을 살리는 것”에 불만을 품은 사람들이 모인 것을 계기로 결성됐다. 그들의 세금이 사용되는 사회보장 제도나 고령자 보험의 단계적 폐지를 주장하고, 백인우월주의적인 성향이 있으며, 심지어는 성폭행에 의한 임신마저도 임신 중절을 반대해 공화당 내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그러나 놀랍게도 이들은 지난 미국 국회의원 중간선거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오바마는 부시 시절 망가진 경제를 되살리기 위해 노력했지만 임기 4년차에야 실업률이 떨어지기 시작할 만큼 더딘 회복세를 보였고, 의료 보험과 부유층에 대한 증세는 공화당 지지자에게는 극렬한 반대를 불러 일으키는 동시에 진보주의자들에게는 만족스럽지 못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오바마는 각자의 입장이 분열에 가까울 만큼 다른 다원주의 사회의 리더십을 천명한다. 그만큼 그는 공통의 지지를 이끌어내기 어렵다. 반면 그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단 하나의 가치 아래 똘똘 뭉친다. 어느 쪽이든 그가 원하는 것을 얻기란 어렵다. 21세기의 대통령 앞에 놓인 난제.

오사마 빈 라덴: 9.11 테러의 주범. 오바마의 지시로 사살됐다. 그의 죽음은 미국 내에서 오바마 정부의 가장 큰 업적으로 인정받곤 한다. 또한 오바마는 무인 전투기 드론을 이용해 테러단체의 요인 사실을 지시하는데, 이 횟수가 부시 정부보다 늘었고, 이와 함께 민간인 사상자도 증가하고 있다. 오바마는 기본적으로 “이슬람을 존중”하는 입장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미군 병사들이 이라크와 아프간 전에서 잡은 포로에게 가혹행위를 하는 것을 금지했다. 그러나 그가 아무리 “정의로운 전쟁”만을 천명한다 해도 자국의 이익과 자신의 정치적 입지가 드론으로 인해 무분별하게 죽은 아프간의 민간인보다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분명하다. 오바마가 대통령으로 있는 동안에도 미군에 의해 수많은 민간인들이 죽었다. 다만, 오바마는 결국 아프간과 이라크의 종전을 선언했다. 전쟁을 막지는 못했지만 어.쨌.든. 끝내기는 했다. 아주 작고, 불만스럽기도 하지만 그래도 중요한 발걸음. 세계인이 미국 대통령에게 그나마 가질 수 있는 ‘소박한 희망’.

미트 롬니: 이번 미국 대선의 공화당 후보. 또는 오바마의 반대말. 2억 달러 이상의 재산을 가졌고, 성폭행에 따른 임신이라도 임신 중절을 금지할 것을 주장한 폴 라이언 의원을 부통령 후보로 내세웠으며, 대통령이 되면 곧바로 의료보험개혁안을 폐지하겠다고 주장했다. 또한 동성결혼 반대와 불법이민자 일괄 추방을 공약으로 내걸었고, 대선 자금을 모으는 정치 행사에서 “전체 유권자의 47%는 무슨 일이 있어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을 지지한다”며 그들이 “소득세를 한 푼도 내지 않는다. 이들은 걱정할 필요가 없다. 어차피 설득할 수도 없을 거다. 이 사람들도 자기 삶에 스스로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패 큰 파문을 일으켰다. 하지만 정작 롬니의 소득세율은 미국인의 평균보다 훨씬 적은 13.9%다. 금융투자에 대한 수익의 세율이 낮은 ‘부자감세’의 혜택을 톡톡히 보고 있기 때문이다. 미트 롬니가 오바마의 맞수로 떠오른 이번 대선은 미국의 현재를 보여준다. 대통령 후보가 국민의 47%를 적대적으로 생각할 만큼, 나라는 계급, 종교, 성 등에 따라 극단적으로 분열됐다. 가치의 옳고 그름, 그리고 더 많은 사람의 행복보다 내 편의 이익이 더 중요해졌다. 미트 롬니의 등장은 오바마의 지난 4년이 그가 원하던 상호 이해와 통합이 (실패는 아닐지라도) 성공하지 못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대통령이 누가 되느냐에 따라 나라의 미래가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간다. 오바마는 지금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해야만 할까.

빌 클린턴: 이제는 힐러리 클린턴의 남편. 하지만 여전히 현실 정치에 강한 영향력을 주는 민주당의 절대 고수. 지난 9월 5일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오바마를 지지하는 연설을 한 것을 비롯, 이번 대선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오바마의 지지율 상승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오바마가 당선이 확정된 직후 빌 클린턴에게 바로 전화를 했을 정도. 대통령 재임 당시 호황을 이끌어냈던 클린턴은 오바마에 대해 “(부시가 망친) 엉망진창의 경제를 물려받았지만 이를 수백만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는 경제로 회복”했다며 “공동번영, 공동 책임의 사회를 원한다면 오바마를 찍어라”라고 지지를 호소했다. 실제로 오바마의 집권 이후 470만 개의 일자리가 늘어났고, 한 때 10%까지 치솟았던 실업률은 8%대로 떨어졌다. 또한 화석연료대신 청정에너지로 산업 기반을 이동시키고, 금융기관의 불투명한 회계 등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는 정책 등은 제대로 실행되면 더 많은 미국인들의 삶을 향상시킬 것은 물론, 세계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다. 그리고 오바마는 미국 대통령 역사상 처음으로 동성 결혼을 공개적으로 찬성했다. 지난 4년 동안 오바마는 능력의 한계를 보였고, 많은 실책을 저질렀으며, 미국을 보다 건설적으로 통합시키지 못했다. 하지만, 그는 과거와는 조금이라도 다른 세상을 향해 움직였다. 그리고 이번 대선에서 아프리카계의 93%, 라틴계의 71%, 아시아계의 73%, 그리고 여성의 55%는 오바마를 지지했다.

버락 후세인 오바마: 오바마의 아버지. 사실 오바마의 제대로 된 이름은 버락 후세인 오바마 주니어다. 오바마는 아버지의 피부색과 이름을 그대로 물려 받으면서 어린 시절 인종차별을 겪었고, 아버지와 함께 살지 못한 어린 시절 때문에 아버지를 원망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결국 아버지의 피부색과 이름으로 미국 대통령이 됐다. 오바마는 아버지 시절에는 꿈 꿀 수 없었던 것을 이뤘고, 단 한 번도 미국 사회의 주류로 나설 수 없었던 사람의 정체성을 통해 주류에 묻혔던 미국 사회의 다른 목소리를 조금씩 대변한다. 그것은 불만족스러울지라도 지난 4년 동안 세상을 아주 조금은 바꿔놓았다. 미래는, 그렇게 쉽게 오지 않았다. 하지만 오바마의 4년은 역설적으로 새로운 미래가 오기까지 얼마나 지난한 과정이 필요한지 보여줬다. 그리고 오바마는 새로운 정부의 슬로건으로 “Forward”를 선택했다. 그 수많은 문제와 상처들을 뒤로 하고, 이제는 앞으로 간다. 그의 말대로, “보통 사람들이 과하지 않은 온당한 소망을 품고 있으며 인종이나 지역, 종교, 계급에 관계없이 이들의 판단 가운데 상당 부분이 옳다”고 말할 수 있는 진정한 다원주의의 세상으로.

Who is next
오바마가 당선이 되면 노래에 맞춰 말춤을 추겠다고 한 곡 ‘강남스타일’을 부른 싸이가 출연한 영화 에 나온 김선아와 MBC 에 출연한 정려원

글. 강명석 기자 tw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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