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 받을 일이 없는데 위로가 된다.” 머쉬룸즈의 데뷔 EP <원 포인트 릴리프(one point relief)>를 두고 누군가가 트위터에 남긴 말이다. 기타 둘에 드럼 한 명, 흔치 않은 구성처럼 머쉬룸즈는 따뜻하지만 흔하지 않은 위안을 건네는 밴드다. 완, 식보이, 준서, 20년 지기 동네친구 셋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기타를 잡고 음악을 들으며 함께 밴드를 시작했다. 다른 이름의 밴드를 거쳤고 음악이 아닌 일을 하며 살기도 했지만 결국 서른하나의 나이에 머쉬룸즈라는 이름을 세상에 내놓았다. 이들은 무언가가 되고 어떤 것을 이루라고 자주 강요받는 세상에서 실패해도 괜찮다고 나 역시 그렇다고 노래한다. 담담하고 사려깊은 노래가 지금 마음이 힘든 사람은 물론 힘든지조차 모른 채 내달리고 있는 사람에게 조용히 닿고 있다.
앨범이 발매된 지 한 달 정도 되었는데 기분이 어떤가?
준서:
신기하다는 느낌이 제일 큰 것 같다. 예전에 우리끼리 자체적으로 음반을 만들어서 낸 적도 있지만 이렇게 회사에 들어 와서 정식으로 앨범을 내고 어느 레코드숍에 가도 우리 앨범이 있고 공연장에서 아는 척 해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게 좀 낯설기도 하다.

“부족하기보다 다르다고 받아들여지면 좋겠다”



완(기타/보컬), 식보이(기타/코러스), 준서(드럼/코러스). (왼쪽부터)
콘텐츠진흥원의 ‘K-루키즈’에 선정되어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 무대에 섰을 때 느낌은 어땠나? 대형 페스티벌 무대는 처음이었을 텐데.
식보이:
굉장히 얼떨떨했다. ‘끝난 거 맞아?’ 이런 기분. (웃음)
완: 펜타포트는 고등학생 때부터 되게 서 보고 싶은 무대였다. 한 번도 그렇게 큰 야외무대에서 공연을 해본 적이 없었는데 기분이 상당히 다르더라. 관객의 수가 문제가 아니라 특유의 환경에서 오는 느낌이 달랐던 것 같다. 긴장을 많이 해서 너무 순식간에 지나가버렸지만.

걱정도 크지 않았나? 밴드 구성상 앨범의 사운드를 야외 페스티벌에서 구현하기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완:
그 부분은 녹음 과정에서부터 어려움이었다. 머릿속으로 쓴 곡을 녹음으로 풀어내는데 있어 우리 밴드의 악기 구성이나 세션이 문제가 될 수 있으니까. 하지만 우리 음악에 있어 가장 최우선이 되는 것은 기본적인 멜로디와 가사라고 생각한다. 그걸 꾸미는 사운드는 양념일 뿐이기 때문에 녹음에서도 공연에서도 그 기본을 잘 들려줄 수 있는 쪽으로 연주하자고 생각한다. 펜타포트에서는 앨범에 들어간 스트링 세션 같은 건 빼고 우리 악기 세트에 피아노만 더해서 했는데 이건 앞으로 어떤 공연이든 마찬가지일 것 같다.

기타 둘에 드럼 한 명이라는 구성이 흔치 않은데 어떻게 만들어진 조합인가.
완:
머쉬룸즈를 시작하기 전에 했던 다른 밴드는 기타 두 대, 베이스, 드럼이 있는 기본적인 록 밴드 세트였다. 곡의 방향성 자체는 그 때나 지금이나 비슷한데 풀어내는 방법에서 조금 차이가 있었다. 지금은 우리를 두고 모던 록 밴드에서 베이스가 빠진 사운드라고 판단하시는 분도 있고 어쿠스틱 팀에 드럼이 추가되어 있다고 생각하시는 분도 있는데 그건 듣는 분들이 판단하실 문제인 것 같다. 앞으로도 베이스를 넣지는 않을 것 같다.

특별한 이유가 있나?
완:
기본적으로는 우리 셋이서 표현할 수 있는 만큼을 하자는 것이고 가장 중요한 멜로디와 가사를 표현함에 있어서 여기에 사운드가 추가되는 게 크게 필요치 않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셋 다 노래를 한다. 보컬이 만드는 공간감이 빈 부분을 채워 넣고 있는 팀이기도 하다. 무언가가 빠져 있다기보다 다르다고 받아들여지면 좋겠다.

짙은의 멤버였던 윤형로가 피아노 세션과 공동 프로듀싱을 맡았다. 어떤 인연인가.
완:
예전부터 짙은의 두 형들과 가까운 사이였다. 음악적으로 많이 배웠다. 형로 형은 처음부터 프로듀서로 참여한 건 아니고 피아노 세션을 구하던 와중에 형이 자기가 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 후 녹음에 들어가면서 우리가 아무래도 첫 앨범이다 보니까 모르는 게 많지 않나. 그래서 형로 형에게 프로듀서와 보컬 디렉터 역할을 부탁했다. 녹음 엔지니어이기도 했고, 이번 앨범을 만드는데 많은 영향을 받았다.

콜드 플레이나 데미안 라이스 같은 영국이나 유럽 뮤지션의 영향을 받았다고 소개되었는데 한편으론 어떤 날 같은 포크 록 밴드들도 연상된다.
준서:
포크의 초창기나 그 다음 세대 앨범을 알게 모르게 들어 왔으니 그 영향권 안에 있겠지만 우리가 가장 많이 들었던 건 오히려 (이)장혁 형 앨범이다. 우리 셋 다 장혁이 형 음악을 정말 좋아해서 그 분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완: 데미안 라이스 같은 경우는 곡의 방향성보다는 사운드에서 영향을 받았다는 의미다. ‘내일로 미룬다’라는 곡은 후반작업 하면서 박자를 일부러 다 뜯어서 안 맞게 했다. 박자를 틀어서 기타 사운드가 양 쪽에서 따로 들리게 하고 했는데 그런 게 데미안 라이스 음반을 들으면서 느꼈던 걸 사운드로 집어넣은 거다. 후반부의 스트링 같은 건 콜드 플레이에서 많이 영향을 받은 것 같고.

“어릴때는 그냥 좋아서 하는 놀이였다”



처음 음악을 시작했을 때는 어떤 뮤지션에 반했나. 역시 너바나인가. (웃음)
준서:
당연히. 90년대에 음악을 들으면서 자란 세대는 너바나에서 벗어날 수가 없지. (웃음) 지금 ‘강남 스타일’이 들리듯이 ‘Smells like teen spirit`이 온 길거리에서 나오던 시대니까. (웃음)
완: 너바나 다음엔 오아이스, 트래비스 거쳐서 콜드 플레이까지 영국 밴드 음악을 많이 들었다. 국내 인디 음악 같은 경우엔 (이)장혁 형, 코코어, 마이 앤트 메리도 많이 들었고.
준서: 우리가 딱 90년대에 중,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인디 1세대 음악을 듣고 자란 세대다.

세 사람이 어릴 적부터 친구인데 음악에 관심을 가진 시기도 비슷했나?
준서:
리스너로서 음악을 듣거나 기타를 배우거나 한 건 중, 고등학교 때 비슷하게 시작을 했고 나름 본격적으로 밴드를 건 셋 다 스무 살 넘어 대학에 들어가면서부터였다.

그 때 이미 앞으로 음악을 업으로 삼겠다고 생각했었나?
완:
솔직히 어릴 때는 별 생각이 없었던 것 같다. 그 때는 되게 열심히 하고 있는 줄 알았다. 그런데 돌이켜 보면 그 긴 시간 동안 한 번도 열심히 했던 적이 없는 것 같다. 음… 그냥 좋아서 하는 놀이였던 것 같다. 머쉬룸즈를 시작하면서 업으로 삼아야겠다, 정말 열심히 해봐야겠다고 생각한 것 같다. 무슨 생각으로 그러고 있는 건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올인 하고 있다. (웃음)
준서: 놀이의 영역에서 일로 넘어 온 건 맞다. 어렸을 때는 스타일이고 뭐고 안 따지고 하고 싶은 대로 했다. 어차피 노는 거니까 우리가 즐거운 게 좋다고 생각한 게 컸다면 지금은 듣는 사람에게 어떻게 전달될까를 생각하는 것 같다. 물론 그러다보면 내가 하기 싫고 보여주기 싫은 것을 꺼내놔야 하는 순간이 있는데 예전과 달리 그런 부분을 좀 당연하게 생각하고 안고 가고 있는 것 같다. 다만 나 같은 경우엔 음악으로 돈을 벌고 이게 생업이 되는 것까지는 아직 개념이 안 잡혔고, 좀 진지해지기 시작한 건 맞다.

그렇게 진지하게 음악을 다시 하게 된 건 언제부터인가.
완:
작년 여름 쯤. 작년 초에 지금 음악을 안 하면 앞으로 영원히, 다시는 못 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절박해진 거지. 그리고 음악을 다시 한다고 했을 때 이 친구들이 아닌 다른 사람과 한다는 건 상상을 못 했다. 그래서 한 명 한 명 같이 하자고 설득하기 시작했다.

딱 서른이었고 각자 생업도 있지 않았나.
식보이:
나 같은 경우는 되게 일하기가 싫었다. (웃음) 정말 아무 것도 하기 싫었다. 그래서 오랜만에 완이를 찾아갔는데 나를 살살 회유하기 시작하는 거다. 거기에 혹해서 준서를 잡고 늘어졌지. (웃음)

‘원 포인트 릴리프’라는 제목부터 앨범의 전체적인 분위기에서 뭔가 큰 야심이 없는 사람들같이 느껴졌다.
준서:
음악적인 야심은 사실 방향성의 문제인 것 같다. 대한민국 최고의 밴드가 되겠다거나 어쿠스틱 신을 씹어 먹어버리겠다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우리는 누구보다 낫다, 못 하다는 식으로 평가받는 방향 안에서 움직이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다. ‘원 포인트 릴리프’ 라는 게 정말 중요한 순간에 딱 한 타자만 상대하기 위해 올라오는 투수지 않나. 우리는 사람들의 MP3 플레이어에 콜드 플레이 같은 대형 밴드처럼 앨범 전체가 들어가 있는 게 아니라 한 곡만 들어 있어도 된다. 딱 한 곡이라도 그 사람에게 음악이 정말 필요한 순간에 소통할 수 있었으면 하는 것, 그게 우리의 야심이라면 야심이다.
완: 처음 밴드의 콘셉트를 정할 때 ‘루저’에 대해 많이 이야기했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 인생에서 싸움을 하면서 살고 있는데 그 싸움에서 진 사람들, ‘오늘도 졌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위안이 되는 노래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비교적 늦은 나이에 데뷔를 한 건데 음악을 하면서 겪은 우여곡절이 있어서 그런 결론에 도달한 건가.
완:
예전에 밴드를 할 때는 이 세상이 진짜 엿 같다는 얘기를 하고 싶었던 것 같다. 지금은 이 세상이 진짜 엿 같지만 그래도 우리는 괜찮을 거야, 내일도 괜찮을 거야, 그런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 같다. 그게 가장 큰 변화인데 나이를 먹으면서 생긴 변화일 수도 있다. 이 세상의 생김새가 너무 괴롭고 나 역시 인생에서 매일 지면서 살아가고 있고 거기서 오는 괴로움이 있지만 그래도 괜찮을 거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 같다. 어떤 사람들은 이제 위로나 위안 같은 키워드가 너무 진부하고 나올 만큼 나왔다고 하는데 어떻게 보면 그건 위로가 필요하지 않은 사람들의 말이라고 생각한다. 아직도 지금 이 순간에도 위로받아야 하는 사람이 너무나 너무나 많다.

“‘우주에서 온 노래’는 축구선수 솔샤르에게서 영감을 얻었다”



‘우주에서 온 노래’의 사운드와 가사가 인상적이다. 전자음이 별로 쓰이지 않았는데 우주 특유의 공간감이 느껴진다.
준서:
식보이가 주로 작업한 곡인데 우리의 방향성과 맞아 떨어져서 개인적으로도 가장 좋아하는 트랙이다. 우주적이라고 하면 일렉트로닉 사운드여야 한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어쿠스틱 기타와 드럼, 브러시를 통해 생각한 것 이상으로 그 느낌을 낸 것 같다. 우리 악기 세트나 어쿠스틱 사운드를 두고 한계가 많을 거라고 하시는 분들이 있고 스스로 그렇게 생각했던 부분도 있는데 어떻게 보면 그런 한계가 없다는 걸 반증하는 곡인 것 같다. 가사도 되게 마음에 들었고.
식보이: 보통 내가 가사를 써 가면 준서가 이렇게 쓰면 안 된다면서 엄청 고친다. (웃음) 그런데 그 곡은 되게 많이 칭찬하고 거의 안 고쳤다.
완: 오히려 내가 많이 태클을 걸었지. 이 노래는 안 된다는 입장이었다. (웃음)

어떤 부분이 마음에 들지 않았나? (웃음)
완:
곡으로서 기승전결이 너무 없다고 느꼈다. 데모 녹음을 할 때는 내가 녹음 엔지니어 입장이어서 곡을 감성적으로 받아들이지 못 했던 것 같다. 그래서 클라이맥스가 없다, 훅이 없다 그런 걸 계속 얘기했다. 그런데 준서와 식보이가 자꾸 좋다고 해서 계속 듣다 보니까 얘들이 말하는 포인트가 이런 거였구나 싶더라.

길지 않은 가사인데 임팩트가 있다. 관계가 주는 경외와 두려움이라는 보편적 감정을 어렵지 않게 핵심을 뚫는 표현으로 이야기한다.
준서:
어떻게 썼는지 알게 되면 환상이 깨질 텐데. (웃음)

어떻게 썼기에?
식보이:
이해할 수 없는, 도대체 뭔지 모르겠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알 수 없는 알파벳’이라고 표현한 건데 축구선수 중에 솔샤르(Solskjaer) 라는 엄청난 선수가 있다. 그런데 그 선수 이름 스펠링이 되게 이상하게 생겼다. 노르웨이 사람이라서 도대체 읽을 수가 없다. 그걸 보고 ‘아, 이거다!’ 싶었다. 아, 창피해. (웃음)

스포츠에 관심이 많나? 블로그에 ‘K-루키즈’ 공연을 앞둔 마음을 테니스 선수 앤디 머레이의 심경에 비유한 글도 썼던데.
준서:
많다고 얘기하기엔 모자르고 좀 광적이다. 셋 다 웬만한 스포츠엔 다 빠져 있다. 하는 것이 아니라 보는 것이지만.
완: 앤디 머레이는 세계 랭킹 4위지만 어떻게 보면 전형적인 패배자 이미지를 가진 선수다. 메이저 대회에서 한 번도 우승을 해보지 못 했고 늘 결승 문턱에서 떨어지고 울면서 인터뷰 하고. (웃음) 그래서 더 좋아하는 것 같다.

공연에 서기 전에 왜 그를 떠올렸나?
완:
그 날 데이브레이크, 문 샤이너스, 망각화 이 3팀과 함께 공연을 했다. 워낙 대단한 팀들과 같이 한 무대에 서게 되어서 심적으로 부담감이 컸다. 할 수 있는 최대한을 끌어내서 보여줘야겠다, 머쉬룸즈가 나쁜 의미로 튀지 않고 이질감 없이 잘 녹아들었으면 좋겠다는 각오가 있었다. 그런데 그 무렵 앤디 머레이가 출전하는 윔블던 결승이 예정되어 있었다. 늘 지는 사람이지만 그래도 또 윔블던 결승에 나서는 각오는 남달랐지 않았겠나. 그 마음이 지금 내가 공연을 준비하는 마음과 비슷하겠구나 싶었다.

지금 활동을 하면서 음악을 다시 하길 잘 했다고 생각하는 순간은 언제인가.
식보이:
어떤 한 순간이 아니라 이 두 친구가 좋아하는 모습을 보는 게 너무 좋다. 사람들 반응을 보는 것도 행복하다. 인상 쓰면서 고민도 많이 했는데 요즘은 조금 힘든 일 있어도 넘길 수 있는 느낌이다.
준서: 처음에 앨범을 딱 받아 들었을 때는 사실 생각했던 것만큼은 감흥이 없었다. 엄청 많이 봤던 디자인이기도 하고 그 안에 있는 음악도 정말 많이 들었으니까. 사실 우리는 운전하면서 우리 노래 잘 안 듣는다. 잠들어 버릴까봐. (웃음) 오히려 앨범을 산 누군가가 사진을 찍어서 트위터로 보내주거나 할 때 훨씬 더 감흥이 큰 것 같다. 누군가의 손에 전달된 걸 볼 때.
완: 노래를 만드는 작업이란 게 음반이 나오는 걸로 끝나는 게 아니라 사람들이 듣고 느끼는 것까지도 포함된다고 생각한다. 녹음을 하는 과정이 개인적으로 너무 힘들어서 하기 싫다는 생각도 되게 많이 했다. 형로 형이랑은 술 먹고 욕 하고 싸우기도 했다. 몸이 힘든 것보다 내가 하고 있는 게 맞는 건가, 좋게 만들고 있는 건가를 끊임없이 의심했다. 이걸 누가 찾아서 들을까 이런 생각을 정말 많이 하면서 스트레스가 너무 심했다. 그런데 이렇게 앨범이 나와서 들어주는 사람들이 있는 것 자체가 정말 신기하다. 우리가 생각했던 의도한 대로 들어주고 있다는 걸 느낄 때 정말 기쁘다.

장소 협찬. As though I had wing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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