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다코, 피닉스라 불러다오
사다코, 피닉스라 불러다오
사다코가 마운드에 섰다. 4월 25일 일본햄과 롯데의 경기가 열린 도쿄 돔구장에 시구 주인공으로 일본 공포영화의 히로인 사다코가 등장했다. 길게 늘어뜨려 얼굴을 가린 머리카락, 온 몸을 뒤덮은 새하얀 원피스. 에서 봤던 모습 그대로였다. 단 이날 그녀는 선수용 야구화를 챙겨 신었다. 공을 던지는 포즈는 제법 능숙했다. 공포를 가장한 웃음으로 경기장을 웃음과 함성으로 몰고 간 사다코는 얼굴 한 번 보여주지 않은 채 퇴장했다. 과연 공포영화의 주인공이었다. 야구장의 깜짝 이벤트는 4월 29일 한차례 더 있었다. 주니치와 DeNA의 경기가 있었던 4월 29일 사다코는 나고야 돔의 시구자로 마운드에 올랐다. 공을 무사히 던지고 엉금엉금 걸어 나가는 모습은 사뭇 진지했고, 웃기면서 또 무서웠다. 4월 마지막 주 일본 야구계의 최대 화제는 아마 이대호의 홈런도, 다르빗슈의 메이저리그 선전도 아닌 사다코의 부활이었을 것이다.

4월 사다코의 야구장 나들이는 사실 5월 12일 개봉하는 가도카와 제작 영화 의 홍보 일환이다. 1998년 영화 의 흥행으로 유명세를 타 이후 후속 영화와 관련 드라마 등에 줄기차게 등장하며 일약 일본 공포영화의 새로운 히로인이 된 사다코는 세기말 공포의 원류이자 아이콘이었다. 이승에 원한을 품고 ‘저주의 비디오’를 통해 세상을 죽음으로 몰고 가는 그녀의 역할은 매스 미디어와 대량 복제, 그리고 컴퓨터 네트워킹의 익명성이 낳은 어둠에 대한 반작용이었다. 스즈키 코지의 소설 을 원작으로 한 나카다 히데오 감독의 영화는 일본 공포의 전통적인 주제인 원한과 1990년대 시대상을 제유하는 비디오를 엮어 기존에 없던 공포물을 만들어냈다. 은 영화의 흥행은 물론 이후 J 호러의 붐을 이끌었고, 등이 후속편으로 제작됐다. 한국과 할리우드에서의 리메이크, 드라마와 책 등 장르를 오가는 패러디와 스핀오프는 이 세기말 공포의 뿌리를 적절히 잘 드러냈음에 대한 예시일 것이다.

사다코, 21세기 공포에 대한 가장 적절한 화자
사다코, 피닉스라 불러다오
사다코, 피닉스라 불러다오
3D로 제작돼 공개될 는 의 20년 후다. 스즈키 코지가 시리즈의 신작으로 쓴 소설 < S >를 원작으로 한 영화는 2012년 한 고등학교를 배경으로 공포의 뿌리를 찾아간다. 20년 전 저주의 매체였던 비디오는 인터넷과 스마트폰 속 영상으로 바뀌었고, 사다코는 브라운관 TV의 세계를 나와 모니터와 도쿄 중심가의 판넬 광고 영상, 스마트폰의 액정을 주요 무대로 삼는다. 이 비디오 세대의 관계를 통해 공포를 확산시켰다면 는 스마트폰 세대의 새로운 네트워킹을 통해 원한의 해답을 찾아나가는 것이다. 영화 , 등을 만들었던 하나부사 츠토무 감독이 연출하며, 세토 코지, 이시하라 사토미가 각각 남녀 주인공을 맡았다.

사다코의 시구는 기발했다. 2D에서 3D로의 전환 그 자체였던 의 명장면을 3D 영화 제작으로 발전시킨 제작 아이디어 역시 단순하고 직접적이지만 적절하다. 사다코는 단순히 공포영화의 주인공을 넘어 한 시대를 풍미한 아이콘이었고, 무엇보다 매체를 바꿔가며 공포의 바이러스를 확산시키는 전염체다. 비디오에서 인터넷, 그리고 스마트폰까지. 어쩌면 사다코는 미디어가 지배하는 21세기 공포에 대한 가장 적절한 화자가 아닐까. 모든 이야기는 화자가 필요하다. 도시전설이든, 기담이든 끊임없이 이야기를 확장시킬 주체는 그 이야기의 생명이다. 대부분의 블록버스터 시리즈들이 인기 캐릭터를 중심으로 볼륨을 키워나가듯 사다코 역시 저주의 사명을 받고 부활했다. 신 미디어의 망령이 지금 도쿄 중심을 뒤흔든다.

글. 정재혁 자유기고가
편집. 이지혜 s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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