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살아있을 때와 죽고 나서 살아있다는 어떤 흔적이라도 사회에 남아있으면 그게 제일 바라는 삶이다. 그게 내가 바라는 삶이라는 생각을 했기 때문에 직업도 바꿨는데, 혼자서 들어가서 아무런 변화도 못 일으키면 차라리 (정치를) 안 하는 게 나을 것 같다.”
-안철수, 와의 인터뷰에서
안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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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영모: 안철수의 아버지. 안철수에 따르면 환자 볼 때 외에는 늘 책을 읽고, 50대 중반의 나이에 가정전문의 시험을 쳐서 합격할 만큼 언제나 공부했다. 안철수가 서른이 넘어 경영학을 배우러 미국에 갈 수 있던 것은 아버지의 영향 때문이었다고. 또한 잘 알려진대로 그의 어머니는 안철수를 포함한 모든 사람에게 존대를 하고, 안철수 역시 군대에서 부하에게조차 반말을 잘 하지 못했다. 의학과 경영학 학위를 따고, 백신 프로그램을 개발할 만큼 공부를 하며, 운전 중 좌회전 신호 위반만 해도 잠을 못 잘 만큼 자책하는 모범생의 탄생에는 부모의 영향이 크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기계나 전자부품을 만지는 것을 좋아했지만 부모님이 의대 진학을 바란다는 것을 짐작, “부모님께서 내게 얼마나 많은 것을 무조건적으로 베풀어주셨는지” 생각하며 의대로 진학한다.

김미경: 안철수의 아내. 학교 후배로 봉사 진료 서클에서 만났다. 안철수는 의대의 극심한 성적 경쟁에 대한 부담 때문에 혼자가 된 것 같은 두려움에 빠져 “내 평생 가장 힘든 시기”라고 할 만큼 힘들어했다. “공부만 하다 보니 시야가 너무 좁아져서 그러는 것”이라는 조언에 따라 선택한 것이 봉사 진료 서클 가입. 처음에는 서클 활동으로 성적이 떨어질 것이라는 걱정도 했지만 “스스로에 대한 구속과 기대”를 어느 정도 놓으면서 사람들과 어울리기 시작했다. 특히 김미경은 살아온 과정이나 취향이 비슷해 안철수가 공부를 하다 말고 몇 시간씩 대화하게 만들었다. 두 사람은 도서실에서 공부와 데이트를 함께하다 결혼했고, 안철수는 결혼생활과 학업, 직장생활을 모두 훌륭히 하는 아내를 보며 놀랐다. 대인 관계에서는 아내에게 많은 것을 배웠다고 말할 정도. 안철수는 대학시절을 거치며 공부만을 파던 모범생에서 “내가 세상에서 해야 할 일”을 고민하는 의사로 세상에 대한 시야를 넓힌다.

이찬진: IT업체 드림위즈 대표. 워드프로세서 ‘한글’을 만든 한글과 컴퓨터의 창업자. 안철수가 세운 안철수 연구소에 투자하기도 했다. 안철수는 27세의 의대 학과장이자 바이러스 백신 프로그램 V1을 만든 프로그래머였다. 천재라 할법도 하지만 그는 “공부를 즐겼다 재밌었다 등등의 이런 이야기는 말짱 거짓말”이라고 말했다. 일본의 수학자 히노라카 헤이스케가 에서 쓴 “어떤 문제에 부딪히면 나는 남보다 시간을 두세 곱절 더 투자할 각오를 한다. 그것이야말로 평범한 두뇌를 지닌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란 문장이 평생의 신조일 정도. V1도 워드프로세서 하나를 써도 운영체계부터 배우고, 매일 새벽 3시에 일어나 프로그래밍을 한 결과다. 심지어 바둑도 이론부터 파악하려고 수십 권의 책을 읽고 실전을 시작했다. 재능보다 노력, 순간의 영감보다 탄탄한 기초에 기반을 둔 탐구 대상에 대한 완벽한 이해가 그의 행동방식이라 해도 좋을 듯. 천재가 아니라는 자각이 천재 이상의 결과로 이어진 셈.

김현숙: 안철수 연구소 중국법인 대표. 컴퓨터 잡지 기자로 일하다 안철수 연구소 초기에 합류했다. 안철수가 백신을 무료 배포하면서 “백신을 왜 돈 주고 쓰냐”는 세간의 인식이 생겼다. 당연히 수익은 나지 않았고, 직원들은 안철수의 집 식탁을 책상으로 사용했다. 그러나 안철수는 의사와 백신 개발자를 선택해야하는 상황에서 “백신 만드는 사람은 우리나라에 나 혼자”고, 그래서 의학보다 더 큰 의미가 있을 것이라 확신했다. 또한 혼자가 아닌 회사를 만든 이유로 “왜 사람이 모여 일을 해야 하지?”라는 질문을 스스로 던진 후 “한 사람이 모여 할 수 없는 크고 의미 있는 일”을 하기 위해서라는 답을 얻었고, 기업의 존재 이유로 “이 기업이 없다면 우리 사회는 무엇을 잃어버리는가?”라고 물었다. 세상과 큰 교류 없이 자신의 분야에 대해 가장 기초부터 철저하게 훑다보니 기업에 대해서도 가장 근본적인 문제부터 교과서적인 방식으로 접근한 것. 시장이 없는데 세상에 쓸모가 있을 거라는 이유로 기업을 만든, 한국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던 기업가의 시작.

피터 드러커: 현대 경영학을 정립한 천재 중의 천재. 안철수는 기업의 수익에 대해 “목적이 아니라 기업의 활동 결과”라는 결론을 내렸는데, 이것이 피터 드러커가 했던 말이라는 걸 알고 자신의 기업관이 옳다고 생각했다. 안철수 연구소는 1999년 CIH 바이러스로 인터넷이 마비되다시피 한 것을 계기로 백신의 중요성이 부각돼 연매출 100억을 돌파했다. 그러나 안철수 연구소가 현재 시가총액 1조가 넘는 기업이 된 건 그 이후의 경영 때문이다. 안철수는 2000년에 안철수 연구소를 기업의 컴퓨터 보안을 책임지는 종합보안기업으로 변화 시켰고, 모바일 사업과 무선 인터넷 사업을 시작했으며, 기업마다 보안 관리 비용이 늘어나는 것을 생각해 관리 프로그램인 ‘V3 매니저’를 만들었다. 안철수의 시작은 프로그래밍을 할 줄 아는 의사였지만, 기업의 성장은 경영인 안철수의 역할이 훨씬 컸다.

제리 포라스: 의 저자. 경영자가 된 안철수는 여러 번 실패를 경험한 뒤 유학을 떠나 경영학을 배웠는데, 당시 제리 포라스의 강연을 듣고 큰 충격을 받는다. 구성원들이 진심으로 믿고, 기업의 제도 속으로 스며들어 일관성 있게 유지되는 기업의 ‘핵심가치’의 중요성을 깨달은 것. 이후 안철수는 오랜 생각 끝에 신뢰, 발전, 존중, 고객과의 약속 등을 회사의 핵심 가치로 내걸고, 이를 인사고과에도 반영했다. 이런 것들은 경영학에서 이미 다루고 있는 것들이다. 그러나 안철수는 “마케팅 이론을 교과서로 공부해 그것을 시장에 적용해 성공”했다는 점에 자부심을 느낄 만큼 책 속의 이론을 현실에서 증명했다. “천 마디 말보다 하나의 행동이 더 값지다”는 그는 기업이 윤리적이고 사회에 공헌할 때 더 성공할 수 있다는 이론을 실제로 증명했다. 그가 이 교과서적인 원칙을 지키며 성공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을 했을지는 상상하기 어렵다. 경영자 안철수의 가치는 거기에 있다.

랜 로디쉬: 안철수가 멘토로 삼고 있는 경영학자. 워낙 랜 로디쉬를 존경해 카이스트 교수로 임용될 당시 추천서까지 부탁했다. 안철수는 유학시절 한 대기업을 중심으로 여러 중소기업이 협력해 공생하는 수평적 네트워크에 깊은 인상을 받았고, 자신들이 가르친 우등생이 경제사범으로 감옥에 가 있는 것을 개탄한 교수들의 얘기를 들었다. 안철수는 유학 전에도 회사의 이익이 예상을 훨씬 상회하게 나도 원래 계약대로 직원들에게 성과급을 지급했다. 그런 그가 유학 후 보다 원칙에 철저하고, 상생의 경영이 보다 건전한 기업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된 것은 당연한 일. 귀국 후 안철수는 카이스트 교수로 일하며 자신의 경영철학을 전파한다. 당시 학생들의 강의평가에서 5.0만점에 4.8점을 받기도 했다.

이건희: 삼성 전자 회장. 대기업의 초과이익을 협력 중소기업과 나누는 초과이익공유제에 강하게 반대했다. 반면 안철수는 전 세계 기업들의 생태계가 대기업과 협력하는 중소기업들이 다양한 아이디어와 혁신을 제공하며 만들어지고, 중소기업에게 이익을 나누는 건 이 경쟁력을 성장시키기 위한 조건이라고 주장한다. 또한 이를 통해 일자리가 많아진다고 생각한다. 애플을 중심으로 한 애플리케이션 개발 업체 등이 그 예. 또한 그는 한국에서는 대표이사가 회사의 빚에 연대보증을 서도록 하면서 망해야할 회사가 살아남기 위해 덤핑까지 하는 것을 강력히 반대한다. 그의 경영은 분배와 자선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 오히려 경쟁력을 위해 분배가 필요하고, 경영을 잘못한 경영자는 법대로 퇴출시켜야 한다고 믿는다. “단돈 1원이라도 투자받은 돈은 가볍게 처리해서는 안 된다”는 신념을 가져 회사에 빚을 거의 끌어들이지 않았고, “(중소기업을) 도와달라는 게 아니라 투명하고 공정한 시장을 만들어 달라”고 말하는 상식적인 자본주의자. 깨끗하고 공정한 경쟁이 기업의 생산성을 극대화한다는 이 교과서적인 발언이 파격적으로 받아들여진다면, 그 사회의 논점은 분배냐 성장이냐가 아니라 윤리냐 비윤리냐일지도 모른다.

박경철: 의사이자 주식투자자, 또는 20대의 멘토. 젊은이들을 대상으로 안철수와 함께 토크콘서트를 진행했다. 안철수는 자신의 강의를 듣고 진로를 바꾼 학생들을 보며 그들을 올바르게 이끄는 것의 책임을 느꼈고, 사회가 20대를 안전지향으로 내몬다고 주장한다. 그는 사회가 청년들의 실패를 용인해야 한다고 요구하는데, 이는 도덕적 문제가 없다면 실패를 인정해야 청년들이 더 의미 있는 일을 찾는다는 생각 때문이다. 실제로 안철수는 회사에서 일종의 사내대학을 만들어 교육하고, 사내 벤처를 운영하며 다양한 기회를 만들어낸다. 하지만 이는 청년들에 대한 동정어린 시선이 아니다. 그는 자신이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동안 책을 읽는다고 말하고, 청년들에게 무엇을 하는데 주저하며 시간을 낭비하는 대신 뛰어들라고 주문한다. 과거 회사 동료가 “유아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착하다”라고 말할 정도였지만, 동시에 대학시절 “전 세계의 경쟁자들”의 존재를 자각하고 공부하며 “세상이 얼마나 빨리 변해 가는지는 열심히 일하고 공부하는 사람만이 알 수 있다”고 할 만큼 경쟁과 능력을 중시한다. 천재거나 멘토이기 이전에 벤처 기업가의 DNA.

박원순: 서울시장. 안철수는 시장선거 당시 자신의 1/10 지지율이었던 박원순에게 “더 잘 할 수 있다”며 후보를 양보했다. 박원순은 서울시장이 된 후 시립대의 등록금을 반으로 낮췄고, 서울시 부채를 2조원 줄였으며, 민자 기업이 운영하는 서울시 지하철 9호선의 요금이 500원 인상되려는 것을 막고 있다. 전국 투표율 55%를 기록한 지난 총선에서 20대의 투표율은 64%로 추정된다. 박원순은 분배와 재무개선을 동시에 실현하면서 명확한 성과를 냈고, 자신의 정책 지지자의 투표율을 끌어올렸다. 박원순의 당선과 이후 행보는 안철수에 대한 관심의 단서다. 그를 지지하는 대중이 기대하는 건 성장과 분배 어느 한 쪽이 아니라 양쪽 모두를 충족시키는 경영능력이자, 이념적 방향이 아니라 성과다.

박근혜: 유력 대권 후보. 서울시장 선거 후 안철수는 박근혜와 지지율을 다투는 대선 후보로 떠올랐다. 그러나 안철수는 강연이나 저서에서 특정 문제에 대한 답을 ‘첫째, 둘째, 셋째’하는 식으로 정리한다. 의사, 프로그래머, 경영자를 선택할 때마다 그는 그렇게 논리적인 과정을 통해 결론을 내렸다. 안철수는 지금까지 보여준 행보대로라면, 정치참여 역시 “정말로 의미를 느낄 수 있는 일인지, 지속적으로 열정을 갖고 할 수 있는 일인지, 실제로 내가 일을 잘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혜택을 줄 수 있는 일인지”에 대한 완전한 답을 얻은 뒤에 움직일 것이다. 판단의 원칙을 세우고, 거기에 적합한 답을 찾아야 움직인다. 답답할 수도 있다. 그러나, 자신의 원칙을 기준으로 경영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늘 “난 틀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는 이 의사, 프로그래머, 경영자는 자신이 국가를 의사처럼 진단해 프로그래머처럼 명확한 답을 내야 경영에 자신감도 얻을 것이다. 대선까지 결정을 내리지 못한다 해도 그는 “손해를 감수하면서 지킬 때 진정한 의미”가 있다는 자신의 원칙을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다.

앤디 그로브: 안철수가 존경하는 인텔의 전설적인 CEO. 안철수는 그의 저서 < Passion for details >에서 경영인이면서도 전문가적인 역량을 놓치지 않고, 끊임없이 회사의 미래에 대비하는 경영에 감명을 받았다. 특정 분야의 전문가에서 시작한 그는 전문가가 경영에 참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가 서울대에서 원장을 맡은 융합과학은 각각의 전문분야를 융합해 새로운 지식산업을 만들어내는 경영과학이기도 하다. 안철수가 “공익과 이윤추구가 서로 상반된 것이 아니라 양립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건 지금까지의 IT산업이 그랬듯 지식 산업이 단지 기업의 수익뿐만 아니라 인류의 효율과 생산성을 높여 새로운 부를 창출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의 새로운 부는 수많은 기업들이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융합해 새로운 산업을 개발하고, 상식적이고 투명한 운영을 통해 부의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방식으로 이뤄질 것이다. 노동자라는 단어의 역사적인 의미와 해당 계층에 대한 존중은 유지하면서도 노동자라는 말에서 생길 수 있는 계층구분과 분리의식은 싫어하고, 보수는 긍정적이며 M&A에 대해 “윈윈의 관계일 수도 있는 것을 성패의 관계로만 해석하는 것은 이성적이기 보다는 감정적인 시각”이라 말하며, “경제는 진보, 안보는 보수”라는 평을 듣기도 했던 기업가. 정치를 자신이 아직까지 해보지 못한 “전체를 아우르는 큰 일”이라고 생각하는 이 경영자는 나라의 경영을 어떻게 생각할까.

이명박: 대통령. 안철수와 마찬가지로 기업인 출신이다. 그러나 이명박은 전국에서 수없이 건물을 세우던 시대의 건설업자였고, 안철수는 건물에서 소프트웨어를 만들었다. 이명박이 4대강 사업을 통해 국토를 뒤집는 것으로, 안철수는 지식의 융합으로 부를 약속한다. 이명박은 건설을 통해 국민소득 1만 달러를 향해 달리던 개발시대에서, 안철수는 위험감수보다는 위험관리가 더 중요하다는 국민소득 2만 달러의 시대의 지식산업에서 탄생했다. 또한 이명박이 국정에 대해 “내가 해봐서 아는데”라는 말을 하며 자신의 능력을 입증하려는 자수성가 타입이라면, 안철수는 개인의 성공은 사회적인 바탕이 있어야 가능하다고 말한다. 그들은 같은 경영인이었지만, 전혀 다른 시대와 세상과 가치에서 나왔다. 그래서, 이명박 정부 아래에서 안철수에 대한 지지가 확산된다는 것은 우리 사회가 다른 이념과 체제로의 전환이 아닌, 좀 더 다른 자본주의를 원한다는 메시지이기도 할 것이다. 이명박은 5년 더 높은 주가와 더 높은 아파트 값을 약속하고 당선됐고, 안철수는 경제적 부의 확대와 분배의 정의를 동시에 말하며 지지를 얻고 있다. 국민은 여전히 부유해지는 것을 원한다. 다만 다음 대통령에게 이명박이 실패했던 모든 것을 더 제대로, 더 크고 공정하게 해내길 바란다. 안철수는, 또는 안철수가 지지하는 누군가는 합리적이고 상식적이며 정의로운 부의 생산을 가능케 할 수 있을까. 경영자가 자기 사람을 뽑는 기업과 달리, 정치는 저마다 수많은 욕망을 가진 국민을 상대로 성과를 보여줘야 할 뿐만 아니라, 그들의 상이한 이해관계를 조율해야 한다. 또한 논리와 원칙을 바탕으로 경영을 하는 그에게 대중은 당장 눈에 보이는 성과를 요구하며 그의 원칙을 흔들지도 모른다. 그가 어떤 방식으로든 정치에 참여한다면, 안철수는 직원들에게 자신의 핵심가치를 받아들이게 했듯 국민에게 국가의 핵심가치를 제시하고 납득시켜 나라 전체를 ‘융합’할 수 있을 것인가. 자신이 했던 모든 것에 이름이 아닌 흔적을, 명예대신 세상의 변화를 바라는 의사, 프로그래머, 경영인. 그리하여 초인처럼 노력했고, 좀처럼 사사로워 보이지 않지만 보통의 인간의 범위를 뛰어넘는 역사적 사명의식, 또는 야심을 가졌을지도 모를 인물. 이제 남은 건 스스로 납득할 수 있는 선택과 행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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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와 토크콘서트를 함께 한 김제동과 SBS 에 출연한 윤종신이 나온 영화 의 주연 배두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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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강명석 기자 tw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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