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지은의 10 Voice] <부러진 화살>, 법의 수호자들이 우리를 위협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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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기사에는 영화 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사실 은 시작부터 스포일러인 작품이다. 지난 2007년, 김명호 전 성균관대 수학과 교수가 자신의 교수지위 확인소송 항소심 재판장이었던 박홍우 판사(현 의정부지방법원 법원장)을 찾아가 석궁을 쏘아 위협했다는 이른바 ‘석궁 테러사건’은 순식간에 뜨거운 이슈로 떠올랐다. 재판이 시작되기도 전, 대법원은 발 빠르게 전국법원장 회의를 열어 “사법부에 대한 중대한 위협”이라는 입장을 밝혔고, 이후 재판이 불공정하게 진행되었다는 비판이 있었음에도 이미 ‘판사 테러범’으로 낙인찍힌 김 교수는 항소 끝에 4년간의 징역형을 살아야 했다. 1995년, 재임 중이던 대학의 본고사 수학 문제의 오류를 지적했다가 이듬해 재임용에서 탈락한 그가 교수지위 확인소송에 패소하고 항소심마저 정당한 사유 없이 기각되자 박 판사에게 공정한 재판 진행을 요구하려 찾아갔다는 사건의 전후 맥락은 감히 일개 시민이 ‘법의 수호자’인 판사를 향해 석궁을 겨누었다는 충격적 사실에 가려져 버린 뒤였다.

“이게 재판입니까? 개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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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실화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은 픽션과 논픽션의 사이에 있지만 영화에서 차라리 과장이나 거짓이길 바라게 되는 내용들은 대부분 ‘팩트’에서 나왔다. 박 판사가 김 교수가 자신에게 쏘았다고 주장하며 경찰에 맡긴 ‘부러진 화살’은 사라졌고, 아랫배에 화살을 맞아 상처를 입었다고 한 박 판사의 옷가지들이 증거로 제시되었지만 속옷, 조끼, 양복에 묻어 있는 피가 그 사이에 입고 있던 와이셔츠에는 묻어 있지 않았다. 증거 조작 의혹이 제시되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겁을 주려 가까이 갔을 뿐, 석궁을 쏘지 않았다”고 주장한 김 교수 측의 혈흔 감정 요청 역시 항소심 재판부로부터 거절당했다. 영화 속 김경호(안성기) 교수의 판사를 향한 일갈, “이게 재판입니까? 개판이지!”는 스스로 법을 공부해 재판과정에서 적극적으로 싸웠던 그의 실제 발언에서 나왔다.

그러나 앞뒤가 맞지 않아도 판결은 내려진다. 감옥에서의 4년은 결코 짧지 않다. 지난해 1월 만기 출소한 김 교수는 한 인터뷰에서 영화에서만큼 심각한 상황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성추행과 괴롭힘을 당한 경험이 있으며 다른 재소자가 강간당하는 것을 목격한 적도 있다고 말했다. 한 인간에게 부당하게 가해진 정신적, 육체적 폭력과 시간의 강탈은 아이러니하게도 ‘법’으로부터 비롯되었다. 아니, 사건의 주인공이자 피해자, 뒤집어 보면 승자이기도 한 김 교수는 자신의 홈페이지에 “대한민국의 법은 잘 만들어져 있다. 단 한 가지 결점은 판사 새끼들이 법을 위반하고 소송을 지휘할 경우 그를 막을 방법이 전혀 없다는 것”이라 적었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검사, 판사들은 사법고시에 합격하는 순간 ‘법을 위반할 자격증’을 얻은 것과 마찬가지라 생각한다”고도 말했다.

법은 아무 것도 보장해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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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이 문제인가. 법을 집행하는 인간이 문제인가. 전자에 대해서는 논쟁의 여지가 있겠지만 후자에 대한 우리 사회의 불신은 해소되지 못한 채 임계점을 향해 쌓여가고 있는 것이 사실인 듯하다. 지난해, 역시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는 음험한 악, 명백한 범죄가 법정에서 얼마나 어처구니없이 세탁되고 면죄 받을 수 있는가를 보여주며 사회적 공분을 자아냈다. 흔히 ‘법과 상식’을 함께 묶어 이야기하지만 이들이 서로 일치하지 않은지는 오래다. 50대 남성이 20대 여성을 5년간 성폭행하고 살해 협박해 온 사건에 대해 최근 “정상적으로 사회 생활하는 여성이 그렇게 오랫동안 성폭행을 당하고도 신고하지 않았다면 강간으로 보기 어렵다”며 1심을 깨고 상습 강간 혐의를 무죄로 돌린 재판부의 어디에서 ‘상식’을 찾을 수 있는가. 김 교수의 교수지위확인 소송을 맡았다가 판결을 미룬 채 부서를 옮겨 갔던 이상훈 판사(현 대법관)가 2006년 론스타 경영진에 대한 영장 기각 문제를 처리하기 위해 영장전담판사, 검찰 측 관계자들을 사적으로 만나 법정윤리조항 등을 어겼다는 비판을 받았고 대법관 후보 인사청문회에서 부동산 투기 및 탈세 의혹에 휘말렸던 사실은 정작 법을 집행하는 인간에게 법이란 얼마나 무가치하고 사소한 규범인가를 확인시킬 뿐이다. 최근 사진가 박정근이 조국평화통일위원회에서 운영하는 트위터 계정 ‘우리민족끼리’에 올라온 글을 장난삼아 리트윗한 것만으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되는 현실은 법의, 혹은 법 집행자들의 시대착오가 극에 달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군사독재 시절의 사법살인 인혁당 사건에서부터 현재까지, 법의 권위 뒤에 숨은 인간이 다른 인간의 삶을 ‘합법적으로’ 망가뜨리는 상황은 반복된다.

그래서 우리는 계속 물을 수밖에 없다. 집요하다 못해 징글징글한, ‘꼴통’이라는 말을 들으면서도 그 숨 막히는 권위와 권력에 맞서 싸웠던 의 김 교수처럼. 슬프지만 법은 아무 것도 보장해주지 않는다. 이 나라에서, 이 시대에 법을 집행하는 이들을 무조건적으로 믿고 따르는 것은 어쩌면 법을 어기는 것보다 더 위험한 일일지도 모른다. 재개발과 철거민 투쟁 과정에서 일어난 사망 사건을 둘러싼 법적 공방을 통해 국가 권력과 소외된 국민의 싸움을 그린 손아람의 소설 의 한 대목은 이 그렇듯 이 춥고 일그러진 현실의 정곡을 찌른다. “결국 그녀가 옳았다. 내가 틀렸다. 나는 법을 믿었다. 그녀는 법을 믿지 않았다. 보상도, 복수도 법이 해주지 않았다.”

글. 최지은 five@
편집. 이지혜 s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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