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명석의 100퍼센트] 장진의 < SNL >에 내려진 숙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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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국민이 희망찬 새해를 맞이하는 이 마당에 (이명박 대통령이 출연해서) 재 뿌릴 일 있어? 친인척분들하고 조용히 내년을 대비하시라고 그래.” tvN < Saturday Night Live >(이하 < SNL >)는 지금 TV에서 할 수 있는 가장 수위 높은 시사 코미디다. < SNL >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장진은 첫 회 ‘위크엔드 업데이트’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집배원들에게 “어려운 상황에서도 노고가 많은 집배원들에 고마움을 표한다”는 메시지에 대해 “어려운 상황은 누가 만들었을까요?”라고 포문을 열었고, 지난주에는 김문수 도지사와 119로 전화를 받은 소방관의 일화를 패러디한 네티즌의 동영상을 내보냈다. 동영상에는 네티즌이 김문수 도지사를 비난하는 자막까지 그대로 포함됐다. 연출자가 “정치, 높은 사람, 공권력, 이 비슷한 거 말 꺼내지도 마”라고 말하며 “잡혀갈까 무섭다”는 < SNL >의 제작 회의 패러디는 < SNL >의 풍자 방식을 보여준다. 현 정권을 가열차게 비판하던 의 정봉주 전 의원은 앰네스티에서 양심수 선정을 검토할 만큼 석연치 않은 이유로 구속됐다. 이 ‘잡혀갈까 무서운’ 시대에 < SNL >은 이명박 대통령을 직접적으로 조롱한다. ‘주어 있는’ 시사풍자가 담긴 < SNL >은 최근 동시간대 케이블 시청률 1위를 기록했다.

정치적 공정성, 코미디라고 피해갈 수 없다
[강명석의 100퍼센트] 장진의 < SNL >에 내려진 숙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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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세상은 용기보다는 배려와 정치적 공정함이 더 필요할 때가 있다. “남성과 여성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코미디를 보여주겠다던 < SNL >의 연출자는 ‘슈퍼스타 Gay’를 만든다. ‘슈퍼스타 Gay’에서 이 날의 호스트 김상경은 입술에 립스틱을 바른 채 심사위원들을 유혹하고, 안영미는 터프한 남성의 모습으로 여성스러운 남성과 커플을 연기한다. 명확한 잘못을 저지른 정치인은 조롱의 대상이다. 하지만 게이가 타인의 웃음을 위해 희화화 될 이유는 없다. 퀴즈를 소재로 한 코미디에서 전라도 출신 부부를 등장시키며 ‘홍어’를 언급하거나, 빈부격차가 큰 두 가족의 대결에서 가난한 가족이 무식한 사람들로 묘사돼야할 이유 역시 없다. 정치인을 조롱할 때는 시원했던 태도가 특정 집단을 다룰 때는 당사자들에게 불쾌할 코미디가 된다.

원작인 미국판 < SNL > 역시 온갖 계층에 대한 조롱과 야유가 뒤섞여 있다. 하지만 미국은 애초에 다양한 나라 출신과 인종이 모여 만들어졌고, 그들 간의 갈등이 곧 역사다. 풍자와 조롱은 그런 갈등 속에서 끊임없이 한계와 경계가 수정된다. 미국판 < SNL >이 특정 인종과 계층을 전형적으로 묘사하는 것은 역사를 통해 나온 결과물이다. 반면 한국은 성별, 세대, 계층, 지역 어느 것 하나도 그 갈등이 제대로 표면화 되지 않았다. 게이는 한국 사회에서 공식적인 목소리조차 내기 힘들다. < SNL >은 미국판처럼 특정 집단의 전형적인 특징들을 잡아내 조롱한다. 그러나 조롱해도 좋은, 또는 그 대상마저 인정하게 되는 전형적인 특징은 한국에서 최소한의 합의조차 이뤄진 적이 없다. 있다면 단 하나, 정치인들에 대한 비난뿐이다. 그들은 아무리 썩었다고 조롱받아도 거의 대부분 떳떳하게 반박할 수 없다. < SNL >에서 유독 풍자 코미디가 두드러지는 이유다.

모든 코미디에서 완벽한 정치적 공정성을 기대할 수는 없다. 그러나 전형적인 집단 묘사에서 우려해야할 것은 오히려 웃음의 질이다. 우등생과 문제아, 가난한 가족과 부유한 가족의 퀴즈대결은 양쪽에 속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웃을 수도 있다. 하지만 두세 번 비슷한 구도가 반복되면 식상해진다. 게다가 한국은 미국처럼 대립시킬 집단이 많은 것도 아니다. 6회 만에 특정 지역을 개그의 소재로 끌고 나온 건 < SNL >이 이미 소재 고갈을 겪고 있다는 의미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 날 < SNL >은 한국 대통령이 일본 수상에게 한국어를 가르친다며 “독도는 한국 땅”이라는 말을 하게 만들고, 김상경이 의 김어준으로 분장해 정치가 아닌 금연 문제에 대한 농담을 했다. 표면적인 소재는 정치적이지만, 웃음을 일으키는 요소는 다른데 있다. 전형성에 함몰된 코미디는 디테일을 잃고, 디테일을 잃은 시사 코미디는 현실 풍자 대신 더 강한 발언이나 실존 인물의 희화화로 웃음을 끌어내려 한다. 장진이 단독진행하던 ‘위크엔드 업데이트’는 6회부터 안영미가 동석, 욕설을 연상시키는 대사들을 쏟아냈다.

‘모두까기’들만 보는 코미디가 되지 않으려면
[강명석의 100퍼센트] 장진의 < SNL >에 내려진 숙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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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의 ‘사마귀 유치원’에서 최효종은 정치인을 실명으로 말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는 꼼꼼한 디테일로 실명 비판 이상의 효과를 만들어낸다. 강용석의원의 고소로 논란이 됐던 국회의원 비판에서도 그는 국회의원의 석연찮은 공천 과정과 대국민 홍보 방식을 하나하나 열거했고, 서민들의 주택 마련 과정을 징글징글하게 자세하게 말했다. 최효종은 디테일을 쌓아 올려 납득할만한 근거가 있는 전형성을 구축했다. 반면 < SNL >은 전형성을 밀어붙여 디테일을 없앤다. < SNL >에서 사라진 디테일의 자리를 아이러니가 채우는 것은 흥미롭다. 현실 풍자의 요소를 모두 지우면 < SNL >의 코미디는 아이러니로 가득하다. 김상경은 결국 담배를 피우나 안 피우나 결국 죽는 건 마찬가지라고 말하고, 아이돌의 열성팬은 아이돌에 대한 지식 때문에 퀴즈 문제들을 척척 맞춰 나간다. < SNL >은 아이러니를 통해 무대 위의 주인공들을 끊임없이 조롱하는 것을 원동력으로 삼는다. 심지어 장진마저 자신의 영화가 망한 것을 밝히며 스스로를 조롱한다. 그래서 < SNL >은 명백하게 장진의 것이다. 아이러니를 통한 성역 없는 조롱은 장진이 데뷔 이후 끊임없이 보여준 그의 세계다.

영화 에서 장진은 대통령에게 로또를 당첨시키고, 장기 기증을 해야 할 상황을 만들면서 대통령들을 가지고 놀았다. 에는 당시 이명박 정부에 대한 반감과 이상적인 대통령에 대한 기대를 풀어줄 판타지는 있었지만, 현실 정치에 대한 성찰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게 잘못은 아니다. 하지만 < SNL >은 대중의 큰 흐름을 반영하면 되는 영화가 아니라 매주 끊임없이 디테일이 달라져야 하는 주간 코미디 프로그램이다. 정국은 가 방영되던 시절보다 더 소용돌이 치고 있다. 이 시절에 모든 것을 조롱의 소재로 삼는 것만이 옳은 것일까. 아니, 그것만으로 버텨갈 수 있을까. 지금 장진은 ‘위크엔드 업데이트’에 던질 멘트를 위해 단어보다 성찰을 다듬어야 할 것처럼 보인다. < SNL >이 무언가를 ‘까고 싶은’ 사람만 보는 코미디가 되지 않으려면 말이다.

글. 강명석 기자 two@
편집. 이지혜 s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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