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tionary] ㅈ: <제멋대로 함선 디오티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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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만화가 권교정이 1999년 만화 잡지 에서 연재를 시작한 만화. 잡지의 폐간으로 인한 연재 중단 후 2005년 만화 잡지 , 2007년 장르소설 잡지 에서 연재 재개와 폐간으로 인한 중단 등을 거쳐 현재 단행본 4권까지 발매.
b. 인류 역사상 최초의 우주 함선이자 최신형 우주 정거장인 ‘디오티마’를 무대로 영혼의 죽음과 부활을 경험하며 진화하는 미스터리의 존재 ‘나머 준’ 함장을 중심으로 인류의 존재와 진화, 그리고 지혜에 대한 철학적 질문을 던지는 ‘순정+SF’ 만화.
c. 제목의 디오티마는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의 에서 에로스의 본질에 대해 탁월한 식견을 피력한 현명한 여인의 이름이자 독일의 작가 휠덜린이 소설 을 비롯한 많은 작품에서 대상으로 삼은 여인의 이름.

연관어: 권교정
a. 의 만화가. 1974년생. 1996년 단행본 로 데뷔. 체중 40kg 이하의 저질 체력과 만화 출판업계의 고질적인 병폐로 연재하던 잡지가 폐간되는 상황 속에서 완결된 작품이 손에 꼽을 정도인 ‘불운한 연재 중단의 아이콘’. 현재 항암 치료 중.
b. , , , 등 일련의 작품을 통해 중세, 학교, 우주 등 다양한 시공간을 배경으로 원작을 재해석하거나 판타지를 현실적인 터치로 그리거나 학업과 친구 같은 일상적인 고민이 살아 있는 학교와 학생을 그리는 등 형식과 장르도 다양하지만, 인간과 세계에 대한 지적 호기심을 일관되게 탐구하는 만화가.
c. a.k.a 킹교, 세일즈교. 작품의 설정 자료 및 컬러 일러스트 등이 있는 홈페이지 ‘교월드’를 운영하고 있어 ‘킹교’라 불리거나 자신의 단행본과 관련 팬시 제품을 적극적으로 홍보해 ‘세일즈교’라 불림.
[덕tionary] ㅈ: <제멋대로 함선 디오티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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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tionary] ㅈ: <제멋대로 함선 디오티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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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의 뒷면이 궁금했던 사람이 있다. 달 궤도를 돌지 않는 한 평생 볼 수 없는 그 곳에 가보고 싶었던 사람이 있다. 묘하게 사람을 끄는, 누구라도 거역할 수 없는 압도적인 호감을 갖게 되는 그의 이름은 디오티마. 현재 이름은 나머 준. 혜성이 지나가다 뒤돌아 볼 정도의 미인이지만 시도 때도 없이 코를 골며 졸고, 다리를 벅벅 긁고, 쓸모없이 빈둥대는 것 같은 헐렁한 성격의 나머 준은 우주 쓰레기 수거, 우주선 구조 작업 등을 하는 우주 정거장 디오티마에 새로 부임한 함장이다. 늘 함장에게 잔소리를 하면서도 인력 같은 힘으로 끌리는 ‘함장 매니아’ 지온 부함장처럼 사람들은 그녀에게 반한다. 이는 ‘진화하는 영혼’이라는 존재 자체가 갖는 강렬함 때문인지도 모른다. 삶과 죽음을 반복하며 영혼의 진화를 거듭하는 디오티마는 ‘알고 싶다’는 마음이 아무리 간절해도 정해진 시간밖에 살 수 없는 인간의 치명적인 유한함을 초월한 존재다. 그래서 아무도 갖지 못한 인간에 대한 통계와 세상의 시스템에 대한 이해를 경험치로 축적할 수 있다. 동시에 단 한 번의 생밖에 살 수 없는 다른 인간들과 언제나 엇갈리는 가혹한 운명을 짊어진 이다. 디오티마는 작품 속에서 인류 역사가 쌓아 온 ‘지식’과 ‘지혜’에 경외를 감추지 않는 권교정 자신이기도 하다.

권교정은 거대하고 치밀한 세계를 만들고 그 속에서 깊고 본질적인 질문을 품은 인물들이 발 붙인 채 살아가는 현실을 이야기하는 작가다. 이론상 초당 540km의 최고속도를 낼 수 있는 직경 2km의 초대형 구조물이지만 평상시엔 라그란쥬 점(두 천체 간의 인력과 원심력이 균형을 이루는 점)에 정박해 있는 디오티마. 우주에 둥실 떠 있는 이 신기하고 아름다운 공간을 무대로 우주의 경이로움과 고독감, 지구의 압도적인 아름다움을 그리는 에는 권교정의 장기와 세계관이 응축되어 있다. 중력을 만드는 분당 회전속도에서 우주복의 섬유까지 정교하게 구축된 SF 설정은 만화니까 라는 안이한 변명에 기대지 않고 핵심적인 세계관을 반영한다. 독특하지만 동시에 현실적으로 그려진 캐릭터에는 존재와 관계에 대한 깊은 이해가 담겨 있다. 작은 표정과 몸짓, 말풍선 속 혼잣말 같은 작은 대사에 숨은 소소한 재미 역시 발군이다. 한편, 피터팬을 재해석한 단편 ‘피터팬’에서 후크선장이 피터팬에게 “아이의 눈으로 세상을 인식하는 데는 한계가 있는 거야. 이 세상에는 아이인 채로는 죽었다 깨어나도 알 수 없는 수많은 감동이 있는 거라고!”라고 얘기했듯이, 일상적이어서 의심 없이 받아들이는 것들의 이면을 이야기하는 작가답게 역시 지구 바깥의 세계인 우주가 배경이지만 ‘인간에게 소중한 모든 것을 푸른빛으로 압축시켜 뭉쳐 놓은 것 같은’ 지구의 아름다움을 역설적으로 그린다. 스스로 품어 작품으로 풀어내는 호기심을 통해, 달의 뒷면을 보여주듯 세계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넓혀주는 이 소중한 작가가 얼른 건강을 되찾기를, 그리하여 의 다음 이야기를 볼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사진제공. 교월드

글. 김희주 기자 fift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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