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지은의 10 Voice] 무엇이 드라마이고, 무엇이 현실인가
[최지은의 10 Voice] 무엇이 드라마이고, 무엇이 현실인가
“내 아이에게, 이 나라를 어떻게 설명해야 합니까?” 쏟아지는 빗속에서 서혜림(고현정)이 절규하던 순간, SBS 은 승기를 잡았다. 이는 비단 동시간대 타사 드라마인 KBS 나 MBC 와의 시청률 경쟁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서혜림의 질문은 2010년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수많은 이들의 마음을 담은 문제제기이며 ‘지금 시청자들은 무엇을 보고 싶어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하나의 대답이기도 하다.

내 아이에게 이 나라를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혜림의 남편 민구(김태우)는 종군기자로 분쟁지역에 갔다 피랍되어 목숨을 잃는다. 똑같이 납치당한 일본 기자들은 살아 돌아왔지만 한국인인 그는 죽어 돌아왔다. 육군 포병으로 나라를 지키고 월급에서 세금도 꼬박꼬박 냈던 민구처럼 국민은 법과 제도에 묶여서나마 국가를 위한 의무를 다하지만 국가는 편의에 따라 국민을 저버린다. 국방력 탓이든 외교력 탓이든, 분명한 것은 혜림의 아이가 아버지를 잃었다는 사실이다.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는 헌법 조항 역시 농담만도 못한 거짓말이다. 여당은 소속 의원 김태봉(이문수)의 수뢰사건을 축소하려 검찰을 흔들고, 사건에 연루된 여당 대표 조배호(박근형)를 소환하려던 검사 하도야(권상우)는 지청장(이재용)으로부터 “평등 같은 소리 집어치우고 방문조사하라”는 지시를 받는다. 그러나 방치된 매립지에 모여든 모기떼로 괴로워하는 농민들에게는 사회정의 구현보다 공장을 지어 모기를 퇴치해 주겠다는 김태봉의 공약이 더 절실하다. 이 부조리한 세상을, 내 아이에게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현실과 드라마의 갭, 카타르시스를 주다
[최지은의 10 Voice] 무엇이 드라마이고, 무엇이 현실인가
[최지은의 10 Voice] 무엇이 드라마이고, 무엇이 현실인가
훗날 “대한민국에서 더는 국가가 지켜주지 않는 국민들이 나오지 않게 하기 위해” 대통령이 된 서혜림은 중국 영해에서 좌초된 잠수함 승조원들의 목숨을 구하려 중국 주석에게 머리를 숙인 뒤 탄핵 위기에 처한다. 미국에 넘겨주었던 전시작전통제권을 신주단지처럼 모시며 반환 시기를 굳이 연기한 현 정부와 달리 서혜림은 “지금은 전시가 아니지 않느냐”며 정면 대응한다. 이렇듯 이 주는 카타르시스는 결국 현실과의 갭으로부터 나온다. 46명의 승조원이 사망한 천안함 사건에서는 누구도 이들의 죽음에 책임지지 않았고, 유족들을 향해 “소, 돼지처럼 울부짖는다”고 비난한 이는 무사히 경찰청장 자리에 올랐다. 하도야는 국회의원 부인의 ‘호빠’ 출입 사건을 ‘법대로’ 처리하려다 지방으로 좌천당하지만 최근 MBC < PD 수첩 > ‘검사와 스폰서’ 시리즈는 “업소 여성보다 모델들로부터 성 접대 받는 것을 선호하는” 검사들에 대해 폭로했다.

가장 약하고 국가의 보호가 필요한 ‘국민’들은 선거철이 지나면 가장 쉽게 외면당한다. 폭우가 쏟아지면 반지하와 쪽방 주민들이, 배추 값이 오르면 김치 밖에 반찬이 없는 서민들이 고통 받지만 돌아오는 것은 “기왕 이렇게 된 거 마음 편히 먹어라”라는 ‘속 편한 소리’와 “김치 같은 건 당분간 좀 참아라”라는 야속한 소리 뿐, 민구의 유품을 직접 들고 혜림을 찾아온 백성민(이순재) 대통령의 마음씀씀이는 짧은 판타지에 불과하다. 이달 초, 한 일용직 노동자 아버지가 장애 아들에게 복지 혜택을 주기 위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보건복지가족부는 올해부터 장애등급 재심사를 의무화하며 등급 심사를 강화했다. 그는 자신의 아들에게 이 나라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알지 못했을 것이다. 과연 은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한 2010년 대한민국에서 ‘설명 가능한’ 하나의 세계를 구축하는 데 성공할 수 있을까.

글. 최지은 five@
편집. 장경진 thr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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