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이하 )의 구미호는 무섭지 않다. 그녀를 두려워했던 것은 적나라한 구미호의 모습과 그의 엄청난 괴력을 알고 있는 대웅(이승기) 뿐이다. 아홉 개의 꼬리를 감추고 사는 미호(신민아)는 무섭다기보다는 매력적이다. “인간처럼 안 보일” 만큼 아름다운 외모와 당장 액션배우로 캐스팅하고 싶을 만큼 뛰어난 육체적 능력의 미호는 어린아이의 순수함 마저 가지고 있다. 인간이 되고 싶은 아름답고 순수한 존재와 서서히 그녀의 진심을 깨달아가는 남자는 분명 사랑에 빠질 것이다. 그러나 이들의 연애에는 무언가가 빠져있다. 에서 실종된 마지막 한 조각의 퍼즐을 이승한 기자와 윤이나 TV평론가가 맞춰봤다. /편집자주

어느 날 현실세계로 사뿐사뿐 걸어 들어온 구미호(신민아)는 말했다. “사람 아니라고 무시하지 마.” 그리고 그 구미호를 옆에 끼고 살게 될 운명의 남자 차대웅(이승기)은 대답했다. “사람 아니라고 무서워해주잖아.” 인간이 아니라서 무시 받고, 인간이 아니라서 두려움의 대상이 된다. 얼핏 보면 이 두 문장은 동시에 성립되지 않을 것 같지만, 이는 인간의 습성이다. 인간은 뛰어난 두뇌를 이용해 자연과 모든 야생의 존재들 위에 서려고 하지만, 자연 혹은 초자연적인 존재와 1:1로 맞설 때는 한없이 약한 존재다. 그래서 대웅은 지극히 인간적인 시선으로 봤을 때 무지한 미호를 때로 무시하다가도, 인간을 넘어서는 육체적 능력을 가진 미호를 두려워한다.

그 흔한 로맨틱 코미디라서
<여친구> vs <여친구>│해피엔딩에도 쓴 맛은 필요하다
vs <여친구>│해피엔딩에도 쓴 맛은 필요하다" />(이하 )는 현실 사회에서는 ‘소속도 정체도 불분명한’ 약자이나, 한 사람 앞에서만큼은 그 사람의 운명을 손에 쥐고 있을 정도로 강한, 지극히 인간 친화적인 구미호를 작품 속에 데려다 놓았다. 이 한 없이 천진하고 사랑스러운 구미호의 자리는 인간과 비인간 사이, 무시와 두려움 사이 어딘가에 있다. 라는 제목이 그런 것처럼, 미호는 대웅의 ‘여자친구’로, 지극히 인간적인 방식으로 호명되면서도, ‘인간이 아니라서’ 대웅에게 너무나 잦은 차별을 당한다. 인간이 되고 싶은 구미호의 욕망이 그 차별, 곧 인간이 인간이기 때문에 생활 속에서 당연하게 누리는 것들을 인간이 아닌 자신은 누리지 못하는 불평등에서 비롯된다는 것은 꽤 흥미롭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의 딜레마는 시작된다. 정작 이 작품 속의 구미호는 ‘인간이 아니라서’ 차별을 당하는 일보다는 ‘예뻐서’ 좋은 일이 훨씬 많고, 외적으로는 누구도 의심하지 않을 만큼 인간에 가까운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 작품 속에서 미호는 인간을 흉내 내는 구미호가 아니라, 구미호인 척 하는 조금 ‘특별한’ 인간처럼 보인다. 미호가 하는 독특한 행동들은 미호의 실체를 알고 있는 대웅이 아닌 다른 사람이 봤을 때는 특이하게 느껴지는 정도의 행동일 뿐이다. 미호는 꼬리를 감추듯 자신의 정체를 감출 수 있고,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면 동주선생(노민우)이 그런 것처럼 인간들 틈에 자연스럽게 섞여 살아갈 수 있다. 정체를 들킬 핸디캡이 거의 주어지지 않은 미호에게, 인간이 되는 것은 사실 ‘배움’의 영역이다. 그래서 실제로 대웅이 구슬을 품어준 뒤로 미호는 인간이 아니라는 티를 내지 않기 위해서 그 정도 나이 대의 인간이 지녀야 할 상식을 배우고, 인간처럼 행동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한다. 미호에게는 ‘왜 인간이 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도, 인간이 될 때의 고통에 대한 현실적인 고민도 없다. 사랑하는 이의 죽음을 눈으로 목격했던 동주선생(노민우)과는 다르게 미호는 사라지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를 알지 못한다. 대웅과 미호는 서로 ‘다름’을 이야기하지만, 그들이 지금 인지하고 있는 ‘다름’은 본질적인 차이가 아니라 “이렇게 보니 인간과 별로 다르지 않은” 시선에서나 볼 수 있는 차이다. 구미호가 ‘너무도 인간적인’ 모습으로 그려지면서, 어느 순간부터의 는 서로의 ‘다름’에서 출발해 맞추어가는 흔한 로맨틱 코미디와 다르지 않게 되었다.

비극의 역사를 뛰어 넘으려는 젊은 연인들
지금, 바로 이 순간의 현실에서 인간과 인간이 아닌 존재가 사랑을 하는 몇 안 되는 작품 중 하나인 MBC 의 마지막은 가슴 아리도록 처절한 비극이었다. 인간과 비인간의 사랑은 윤리와 상식의 측면에서도, 그 근본적인 ‘차이’로 인해서도 어쩔 수 없이 그 안에 비극을 내포하고 있다. 뱀파이어의 피가 인간을 서서히 죽여가고, 제 사랑에 대해 말할 수도 없는 벙어리 인어는 물거품으로 사라져가듯 드라마 속 인간은 종(種)의 장벽을 끝끝내 뛰어넘지 못한다. 대웅에게 인간과 비인간이 사랑 이야기에 대해서 들으며 미호가 “잘 되는 얘기가 하나도 없네”라고 중얼거린 말 속에는, 거짓이 없다. 그렇지만 대웅은 “사라지지 않아. 행복하게 잘 먹고 잘 살아”라는 말로 그 비극의 역사에 제동을 걸었다.

하지만 그 ‘행복한 내일’을 위해서는 대웅이 구미호가 될 수 없으므로, 미호가 인간이 되어야 한다. 그건 와이어와 같은 기술의 힘을 빌려 땅을 박차고 하늘을 날아오르는 액션을 보여주고 싶은 인간의 욕망 꼭대기, 액션스쿨의 옥탑방 위에서 자유롭게 꼬리를 펼치고 해맑게 웃던 그 ‘구미호’가 사라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본질의 상실에 대한 고민이 있느냐 없느냐, 사랑을 위해서 어디까지 극복할 수 있느냐에 대한 질문이 이들의 사랑에는 반드시 필요하다. 그 질문의 유무가 바로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 이후로도 내일을 살기로 했던 프란체스카와, 진실도 확신도 없이 해피엔딩을 꿈꾸며 무모하게 ‘인간되기’에 뛰어든 구미호의 차이다. 과연 어느 쪽이 더 비극인가?
글 윤이나

올 여름 안방극장을 찾아 온 두 편의 구미호 드라마가 공히 타자를 대하는 집단의 태도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 것은 주목할 만한 일이다. 그리고 두 드라마가 그리는 세계가 매우 상이하다는 것 또한 유심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KBS (이하 )의 세계가 구미호를 두려워하고 배척할 준비가 되어 있는 폐쇄적인 세계라면, SBS (이하 )의 세계는 미호(신민아)의 초인적인 능력조차 ‘특별함’으로 이해하는 세계다. 미호의 정체를 모르는 이들은 미호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심지어 반감독(성동일)은 나무 위로 점프해 십 수 미터를 날아 사뿐히 착지하는 미호를 보고도 미호가 인간이 아닐 거라고는 꿈에도 의심하지 않는다. 대웅(이승기)의 입을 빌어 “너는 인간보다 모자란 게 아니라 인간이랑 다를 뿐”이라 말하는 는 타자를 정복하거나 교화하지 않고도 공존할 수 있지 않느냐 물으며 희망을 이야기한다.

드라마의 갈등, 유년의 세계로 도망치다
<여친구> vs <여친구>│해피엔딩에도 쓴 맛은 필요하다
vs <여친구>│해피엔딩에도 쓴 맛은 필요하다" />그러나 이 바람직한 결론을 도출하기 위해 는 게임의 룰을 비튼다. 미호를 6살 수준의 사회지능을 지닌 백치에 가까운 존재로 설정함으로써 갈등의 수와 그 정도를 대폭 줄인 것이다. 의 구산댁(한은정)은 딸과 자신의 생존과 복수라는 구체적인 욕망과, 그것을 위해 본심을 숨기고 인간들과 맞설 수 있는 지능을 지녔다. 대등한 지적 수준의 타자와 집단 간의 갈등은 그만큼 첨예하고 격렬하다. 미호는 어떤가? 지금까지 보여진 미호의 욕망은 식욕(고기)과 성욕(짝짓기), 인간 세상에 대한 호기심과 동경, 대웅에 대한 무조건적인 애정이고, 그 단순명료한 욕망을 이루기 위해 미호가 사용할 수 있는 수단은 협박, 무력 행사, 조르기, 고깃집 불판닦이 정도가 전부다. 미호가 인간 세계의 사소한 규범을 위반하며 소동을 벌이는 것은 그 규범이 구미호의 습성에 어긋나서가 아니라, 그 규범의 테두리 안에서 자신의 욕망을 해소할 만큼 사회지능이 발달하지 못 했기 때문이다. 그럴 듯하게 인간 행세를 하며 인간 세계의 규범대로 살고 있는 동주(노민우)를 보라.

그래서 미호와 대웅 사이의 갈등은 타자와 집단 간의 차이에서 빚어지는 갈등이라기보다, 차라리 길바닥에 드러누워 장난감을 사달라고 떼쓰는 어린아이와 부모 간의 갈등에 더 가깝다. 사회적으로 어린 아이와 다를 바 없는 미호가 벌이는 소동은 성인이자 보호자인 대웅이 포용하고 인내해야 할 대상이 된다. 고로 이 게임에서 대웅은 무조건 질 수밖에 없다. 대등한 위치에서 인물들의 욕망이 격돌하던 와는 달리, 는 스스로가 제기한 타자성이란 주제를 직면하지 않고 샛길로 빠져 나와 낙천적인 유년의 세계로 퇴각함으로써 감당해야 할 갈등을 최소화했다.

미호의 해피엔딩보다 선행되어야 할 것
그간 극 자체가 미호와 인간 세계 사이의 경계선을 대등한 조건에서 마주 하지 않으려 도망쳐 왔으니, 미호가 바라던 결말이 자기 정체성을 버리고 인간 세계의 질서에 투항하여 ‘행복하게 잘 먹고 잘 사는’ 디즈니 판 의 해피엔딩이었던 건 당연한 결과일지 모른다. 그러나 8회의 말미, 대웅은 자신이 미호에 대해 선입견을 가졌던 것을 인정하며 미호에 대해 제대로 알아가려는 태도를 보였고, 미호도 “내가 너랑 달라도 나를 좋아해주면 안 되냐”고 묻는다. 극이 절반을 달려 온 시점, 비로소 상대의 다름을 결핍이나 미숙이 아닌 ‘다름’ 그대로 이해하려는 노력을 시작한 것이다. 그렇다면 는 이제 퇴행의 서사를 멈추고 구미호가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인간과 공존하는 방법을 모색할 수 있을까? 비슷한 전례가 없지는 않다. 홍자매의 전작 에서 나상실(한예슬)은 조안나의 기억과 나상실의 삶 중 어느 것도 포기하지 않고도 해피엔딩을 맞았다. 미호에게도 구미호인 그대로의 해피엔딩을 만들어 주려면, 의 남은 절반은 더 성실하고 진지해져야 할 것이다.
글 이승한

글. 윤이나(TV평론가)
글. 이승한 fourteen@
편집. 이지혜 s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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