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도│보기만해도 유쾌해지는 애니메이션
이미도│보기만해도 유쾌해지는 애니메이션
“얼떨결에 입문하게 되었습니다.” 외화번역가의 길로 들어서게 된 계기에 대해 이미도는 이렇게 말했다. “영화와 영어를 좋아해서 꾸준히 글쓰기를 준비했더니 ‘영화 번역 한 번 해보겠어요?’ 라는 행운의 제의가 따랐어요.” 대수롭지 않게 말한 답변의 무게와는 달리 1990년대 초부터, 그러니까 이미도가 외화 번역을 시작한 이후부터 지금까지 대중들의 사랑을 받은 외화의 대부분은 엔딩 크레딧에 그의 이름이 올랐다. 영화 좀 본다하는 사람은 물론이고, 외화번역가 하면 이미도를 떠올릴 정도로 그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이미도는 1993년, 첫 영화 를 시작으로 , , , 등 이른바 명작이라 할 수 있는 예술영화들에서부터 흥행에서 큰 성공을 거둔 상업영화까지 영화와 영어의 바다에서 종횡무진 했다. 어렸을 적 아버지에게서 처음 배운 영어로 어떤 배우나 감독보다도 긴 450여 편에 이르는 필모그래피를 보유하게 된 그가 가장 애착을 가지는 영화는 무엇일까? “등장인물들끼리 치유의 언어로 서로의 속 깊은 아픔을 어루만져주는 영화, 창조적 언어로 상상력을 마음껏 발휘하고 구사하는 영화들을 특히 좋아합니다.” 그래서 이 두 가지를 모두 충족시키는 애니메이션 영화를 작업할 때 가장 즐겁다는 이미도가 보기만 해도 유쾌해지는 애니메이션 5편을 추천했다. 다음은 에서 장화 신은 고양이가 동키에게 “빵꾸똥키”라고 외친 것을 가장 만족스러웠던 번역 작업으로 꼽을 만큼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 그에게 어울리는 영화들이다. 이미도의 손길을 거쳐 한국의 관객과 만났던 슈렉과 쿵푸 팬더와 뮬란의 이야기를 그가 직접 들려준다.
이미도│보기만해도 유쾌해지는 애니메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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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Shrek)
2001년 | 빅키 젠슨, 앤드류 애덤슨
“모든 위대한 혁신은 ‘다르게 생각하기를 통한 통념 깨기’에서 시작됐다고 믿습니다. 시리즈는 스토리, 캐릭터, 소재 등에서 고정관념을 뒤집는 역발상 전략을 썼습니다. 그 유쾌하고 발칙한 기발함과 창의성에 관객들은 혀를 내두르는 것이지요. 우리에게 ‘Think different to think creative’의 교훈을 가르쳐주는 걸작이라고 생각해요.”

슈렉은 주인공의 모든 정석을 거부한다. 그래서 멋지고 정의롭지만 지루했던 주인공들에게 싫증난 수많은 관객들은 그에게 열광했다. 게다가 못생기고 지저분한데다 성격까지 까칠하지만 알고 보면 마음 약한 슈렉과 수다스러운 민폐 캐릭터지만 미워할 수 없는 동키는 영화사상 길이 남을 짝패다.
이미도│보기만해도 유쾌해지는 애니메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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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Kung Fu Panda)
2008년 | 마크 오스본, 존 스티븐슨
“헬렌 켈러는 “Active faith awakens a sense of creativity”라고 했지요. 누군가가 “잠만 자고, 먹기만 하고, 굼벵이처럼 느려터진 판다가 쿵푸를 한다면?!”이라는 아이디어를 냈을 때 상사가 콧방귀를 끼며 손사래를 쳤다면 우리는 를 만날 수 없었을 겁니다. 꿈꾸는 걸 ‘실천하는 믿음(active faith)’은 곧 위대한 정신임을 일깨워주지요. “Yesterday is history. Tomorrow is a mystery. Today is a gift”라는 명대사 때문에도 더 좋아하는 영화입니다.”

대체 어쩌다가 쿵푸와 팬더를 만나게 했을까? 도저히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이 둘의 조합은 완벽한 성장 드라마를 이끌어냈다. 포의 스승의 목소리에는 더스틴 호프먼, 포의 동료로는 루시 리우 등 유난히 캐스팅이 돋보이지만 무엇보다 팬더 포와 완벽한 싱크로율을 자랑하는 잭 블랙의 목소리 연기가 포를 살아 움직이는 쿵푸 키드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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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Toy Story 2)
1999년 | 존 라세터
“스티븐 스필버그는 “인류가 이룩한 모든 위대한 업적 뒤엔 어린이 같은 ‘순진한 왜(innocent why)’와 같은 호기심이 있다”라고 했지요. 아인슈타인은 인간이 가장 재미있는 상상을 하는 때가 5-10세라고 했는데, “만약 토이가 살아서 움직인다면?!”이라는 ‘순진한 왜’가 이 걸작 시리즈를 탄생시켰기에 저는 시리즈를 ‘위대한 탄생’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어렸을 적, 아끼는 장난감들은 그저 장난감이 아니었다. 그들은 상상 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친구였으며 나를 위로해주는 가족이었다. 누구나 한 번쯤 꿈꿔봤음직한 장난감 친구들의 모험과 우정 그리고 사랑이 우디와 버즈를 통해 펼쳐진다. 아웅다웅 둘의 여정은 오랫동안 를 기다리고 했고 마침내 2010년, 그들은 우리를 찾아온다.
이미도│보기만해도 유쾌해지는 애니메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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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How To Train Your Dragon)
2010년 | 딘 데블로이스, 크리스 샌더스
“저는 ‘똘끼’라는 표현을 좋아하는데, 그 의미를 긍정적으로 풀이하기 때문이지요. 팀 버튼 감독의 에는 이런 명대사가 나옵니다. 자신이 미친 게 아니냐면서 걱정하는 딸에게 아버지가 “쉿! 이건 비밀인데”라고 눈짓하곤 이렇게 말하지요. “모든 멋진 사람들은 다 미쳤단다. (All the best people are mad)” 발명가를 꿈꾸는 주인공 히컵처럼 ‘똘끼’를 가진 어린이가 미래의 창조자임을 웅변으로 설파하는 걸작이지요.”

드림웍스는 최고의 애니메이터 집단 픽사의 강력한 라이벌이다. 초록 괴물과 팬더에 이어 내놓은 드림웍스의 야심작은 드래곤. 골라보는 재미가 있는 캐릭터 강한 드래곤들과 주인의 찰떡궁합은 단순히 외양에 그치지 않고,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묵직한 주제와도 궤를 같이한다. 는 드림웍스의 진보된 현주소를 말해주기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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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Mulan)
1998년 | 토니 밴크로프트, 베리 쿡
“소녀 뮬란이 남장을 하고는 아버지를 대신해 전장에 나갈 때의 그 비장미! 대사가 하나도 없지만 대사가 있는 장면보다 더 설득력이 크다는 걸 보여준 설정이지요. 번역한 영화들 중 이 작품만큼 관객이 폭발적으로 많이 웃었던 영화는 없었던 것 같죠, 아마? 누군가가 1998년 작품인 이 셀 애니메이션을 각색해서 3D로 제작해도 또 대성공할 것만 같은 느낌, 안 드는지요?”

인어공주, 잠자는 숲속의 공주, 백설공주 등 디즈니 왕국은 공주님들로 가득했다. 뮬란이 등장하기 전까지는. 동양적인 외모에 까칠한 성격의 중국 소녀는 드레스를 입은 예쁘장한 공주들과 달랐다. 꿈을 꾸고, 정의를 위해 싸우는 뮬란은 애니메이션의 캐릭터를 넘어 새로운 여주인공을 정의했다.
“어떤 위치에서든 실력을 발휘하는 박지성이 온 몸으로 증명하듯, 이 시대에 가장 중요한 prefix(접두어)는 multi입니다.” 지금의 트렌드를 ‘멀티’라고 말하는 이미도의 최근 활동은 영화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영화와 영어를 키워드로 그의 행동반경은 작가에서 ‘창조적 상상력 디자인’ 강사에 이르기까지 폭넓다. 아이들을 위한 영문법 교재에서부터 영화로 배우는 법률에 이르기까지 늘 영어를 사람들 가까이에서 숨 쉬게 하기 위해 달려온 이미도. 그는 이제 책에만 머무르지 않고 영어 교육용 애니메이션 콘텐츠 제작까지 꿈꾸고 있다. 이 영어 멀티 플레이어의 포지션 스위치는 멈추지 않을 것 같다.

글. 이지혜 s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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