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영진 : 최고 인기곡을 만들었다. 최고로 욕도 먹어봤다. 눈물 나게 좋은 곡도 써봤다. 눈물 나게 이상한 곡도 써봤다. 수많은 아이돌 가수 팬들의 지지도 받았고, “제발 좀!”이란 소리도 들어봤다. 요즘엔 가사가 희한하다는 말도 듣는다. 하지만 분명한 것. 그는 지금도 히트곡을 내고 있다.



오티스레딩 : 유영진이 어린 시절 좋아했던 뮤지션. 유영진은 라디오로 그의 ‘These arms of mine’을 듣고 한글로 가사를 적어 따라 불렀다. 흑인 음악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던 그는 이후 무작정 ‘목소리를 구부리는’ 노래만 찾아 들었다고.

강원래 : 유영진의 친구인 가수. 가수가 되려고 서울에 올라온 그는 1년여 만에 MBC 무용단에 합격, 현진영과 와와로 활동하던 강원래와 구준엽을 알게 된다. 유영진은 그들을 만나러 가끔씩 현진영이 소속된 SM엔터테인먼트(이하 SM)의 전신 SM기획에 들렀고, 이 때 이수만과 처음 만났다. 그는 자신에게 반말하지 않고 깍듯하게 대하는 이수만의 모습에 “나중에 이 사람과 인연을 만들겠다”고 생각했다고.

Groovie. K. : 유영진의 친구인 기타리스트. 군에서 문선대로 복무하며 만나 함께 120여곡을 만들었다. 유영진은 문선대에서 작곡 및 연주를 독학했다. 음악을 듣고 그것을 그대로 따서 연주하는 식으로 공부했다고. 문선대에는 탤런트 유준상도 있었는데, 유영진은 그와 Groovie. K.가 작곡한 ‘혼자 있으면’을 부르기도 했다. 유영진은 제대 후 “1주일이면 될 걸 2년 정도” 걸려 미디를 독학하는 등 계속 맨땅에 헤딩하듯 음악을 배웠다. Groovie. K.는 동방신기의 ‘O-正.反.合.’에도 참여하는 등 오랫동안 SM에 특화된 기타리스트로 활약했다.

이수만 : 유영진의 동반자. 유영진이 스스로 원해서 종신계약을 맺었다. 계약 전 이수만은 유영진에게 3일 정도 “곡이 더 있냐”고 물어봤고, 유영진은 하루에 10곡씩 준비해 들려줬다. 이수만은 결국 유영진과 계약했고, 그 결과로 한국 R&B 역사의 초기작이라 할 수 있는 ‘그대의 향기’가 나왔다. 유영진은 뮤직비디오에서 턴을 하기도 하고, 2집에서는 댄스음악 ‘너의 착각’을 내놓는 등 R&B뮤지션과 댄서의 모습을 함께 보여줬다. 당시 그의 뒤에는 문희준과 강타가 춤을 췄고, 유영진은 두 사람이 소속된 그룹을 이수만의 기획 아래 프로듀싱하며 기획자-수석 프로듀서-아이돌의 트라이앵글이 가요계를 지배하는 시대를 연다.

H.O.T. : 유영진이 처음으로 디렉팅, 믹싱, 프로듀싱을 맡은 그룹. 춤, 작곡, 노래 모두 가능하고, 독학으로 음악을 배운데다 프로듀싱 경험이 전혀 없던 그는 기존 가요의 구성과 상관 없이 철저하게 아이돌 그룹에 어울리는 음악을 만들었다. H.O.T.의 ‘전사의 후예’는 멤버별 파트와 후렴구의 교차 반복으로 진행, 멤버의 춤과 그룹의 군무를 계속 보여줄 수 있었고, 분위기를 절정으로 끌어올리는 브릿지 멜로디와 춤을 위한 간주가 가미돼 곡의 모든 부분에서 임팩트있는 퍼포먼스가 가능하도록 했다. 곡의 맥락보다 퍼포먼스를 중시하는 이런 구성은 훗날 SMP(SM Music Performance)라는 SM만의 음악 스타일이 된다. 그러나 “겁 없이 믹싱하겠다고 덤볐다가 머리 터지고, 속 터지고, 쪽팔리고”라고 했던 초보 프로듀서였던 그는 퍼포먼스를 효과적으로 보여줄 다양한 비트를 만들거나 이질적인 멜로디를 유기적으로 연결시킬 구성 능력이 부족했다. 결국 ‘전사의 후예’는 사이프러스 힐의 ‘I ain`t goin` out like that’의 리듬과 랩을, ‘열 맞춰’는 레이지 어게인스트 더 머신의 ‘Killing in the name’의 유니크한 진행 방식을 표절했다는 논란에 휩싸였다. 그는 가장 성공한 동시에, 가장 비난받는 작곡가가 됐다.

S.E.S. : 여성 3인조 그룹. S.E.S.는 음악에 멤버들의 캐릭터와 퍼포먼스를 고려해야 했던 H.O.T.와 달리 세 명의 소녀들이 발랄한 멜로디를 부른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유영진은 좋은 멜로디가 살아있는 ‘I`m your girl’을 만들었고, 노래는 대 히트했다. 당시 대다수의 곡들이 멜로디를 중심으로 리듬을 붙인 것과 달리, ‘I`m your girl’은 리듬을 중심으로 멜로디가 따라붙었다. 심플한 리듬에 맞춰 멜로디의 강약이 조절되면서 ‘I`m your girl’은 1절부터 강하게 치고 나가며 대중을 사로잡았고, 댄스음악의 리듬과 발라드의 호소력을 함께 가진 걸그룹에 최적화된 댄스음악이 됐다. 유영진은 R&B의 작법을 한국인에게 어울리는 팝 댄스로 이식했다. 특히 섹시함을 강조하지 않고도 성숙함을 이끌어낸 ‘Love’, 재즈적인 사운드를 바탕으로 멤버들의 파트를 불규칙하게 전개, 팝 안에 재즈를 품은 ‘Be natural’은 걸그룹 노래의 레전드다.

Fly to the sky : R&B를 하고, 춤도 추는 2인조. 유영진은 그들에게 ‘Sea of Love’라는 ‘링딩 돋는’ 명곡을 줬다. ‘Sea of Love’는 곡이 하나의 흐름으로 연결되는 대신 동일한 리듬에 환희, 브라이언, 듀엣으로 부르는 후렴구가 파트별로 독립적인 R&B 멜로디로 전개된다. 그럼에도 곡이 일관성을 유지한 건 각각의 파트가 뚜렷한 기승전결 속에서 끊임없이 상승감을 연출했기 때문이다. 모든 파트에서 흡인력 있는 R&B 멜로디가 진행되며, 분위기가 상승하다 기타 솔로로 절정에 달하는 전개는 바다의 청량함에 비견될 만 했다. 유영진이 별다른 장식 없이 R&B적인 멜로디와 리듬의 감각만으로 만들어낸 역작.

신화 : SM 출신의 최장수 아이돌 그룹. ‘해결사’, ‘T.O.P.’, ‘Yo!’ 등 신화의 초기작들은 H.O.T.의 SMP처럼 멤버들의 개인별 파트와 후렴구를 반복하며 멤버들의 캐릭터를 강조하고, 대중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후렴구로 대중성을 확보하려 했다. 그러나 가장 반응이 좋았던 건 ‘T.O.P.’의 군무였고, 유영진은 이후 신화의 곡에 새로운 스타일을 시도한다. ‘Hey come on’은 심플한 비트 위에 후렴구를 신화의 짧고 강한 떼창으로 만들면서 곡 내내 박진감 있는 리듬이 그대로 이어졌고, 후렴구의 군무가 강조됐다. ‘Wild eyes’는 여기에 엄청난 속도감을 더하고, 후렴구를 계속 반복해 안무 전체가 신화의 군무 위주로 진행되도록 만들었다. 신화는 빠르고, 강하고, 남성적이며 보다 극단적인 댄스곡을 소화하는 아이돌이 됐다. 유영진에게 신화는 일종의 실험실이었던 셈. 특히 동생 유한진과 함께 작업, ‘Wild eye’처럼 빠른 속도와 다이나믹한 후렴구로 극도로 조직적인 군무를 끌어낸 ‘너의 결혼식’은 비대중적인 댄스곡이라고 할 만큼 극단적이었다. 물론, ‘하필 내 동생의 결혼식에서 신부가 된 너를… 이제 나는 어떡해야 하나’라는 가사는 더 극단적이었다.

동방신기 : 언제 다시 모일지 모를 5인조 그룹. 동방신기는 데뷔 직후부터 큰 인기를 얻었지만, 작곡가로서의 유영진에게는 위기의 시작이었다. 그런 스타일의 곡이 아직 시장성이 있는 중국을 감안한 것이라 해도 ‘트라이앵글’‘Rising sun’은 당시로서는 SMP의 완성판이었던 H.O.T.의 ‘아이야’‘We are the future’보다 딱히 낫다고 하기 어려웠다. 10년 전에는 사회 비판적인 가사가 아이돌의 카리스마적인 이미지를 강화할 수 있었지만, 2000년대에 ‘나의 반이 정, 바로 정, 바로 잡을 때까지, 정.반.합.의 노력이, 언젠가 이 땅에, 꿈을 피워 낼거야’(‘O-正.反.合.’)같은 가사는 이상해 보였다. 심플하면서도 묵직한 비트와 짜임새있게 멜로디를 절정으로 끌고 갔던 ‘Purple line’은 그가 ‘Rising sun’처럼 하지 않아도 동방신기의 퍼포먼스를 최대한 살릴 수 있음을 보여줬다. 하지만 그 곡의 사운드 역시 새로운 트렌드를 제시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의 사운드는 더 이상 트렌디하지 않았다. 그리고 SM에는 외국 뮤지션의 곡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샤이니 : 새로운 5인조 그룹. 유영진은 샤이니의 ‘아미고’, ‘누난 너무 예뻐’, 동방신기의 ‘Mirotic’ 등 외국 작곡가의 곡을 편곡하거나 멜로디를 추가했다. 곡에 브릿지와 랩 등을 섞어 곡을 폭발적인 분위기로 몰고 가는데 능한 그는 외국곡을 한국인의 감성에 맞게 고치는데 제격이었다. ‘아미고’는 몇몇 사운드 소스나 멜로디 전개가 저스틴 팀버레이크의 ‘Sexy back’을 벗어나지 못했다. 하지만 ‘Mirotic’은 단도직입적으로 제시되는 멜로디에 맞춰 강하고 심플한 비트와 서서히 등장하는 전자음만으로 장중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멤버들의 애드립이나 랩을 이용해 곡을 점점 더 격렬하게 끌고 간다. ‘Mirotic’은 동방신기의 퍼포먼스와 트렌드 양쪽을 잡았다. 그리고 그는 새로운 경험을 바탕으로 샤이니의 ‘링딩동’을 만들었다. 시작하자마자 1분여동안 네 개의 멜로디를 정신없이 전개되고, 중반이후 다시 변주했거나 새로운 멜로디가 계속 등장한다. 그만큼 곡의 모든 부분이 임팩트 있는 ‘훅’이 됐고, 그럼에도 곡의 일관성은 유지되며, 기존의 SMP처럼 뒤로 갈수록 강렬해진다. 이는 멜로디가 음의 높낮이가 아닌 속도로 조절되고, 하나의 비트를 일관되게 반복하면서도 멜로디 변화에 따라 다양한 사운드를 배치한 결과다. 그는 SMP의 장점을 유지하면서 새로운 방식을 개발했다. 샤이니의 두 번째 미니 앨범의 ‘You’-‘링딩동’-‘Jojo’는 근래 SM의 가장 세련된 3연타다. 유영진이 2010년 버전으로 업그레이드된 순간.

슈퍼주니어 : 10인조로 돌아온 그룹. ‘Twins’, ‘Don’t Don’처럼 기존의 SMP를 부르다 유영진의 변화와 함께 ‘Sorry Sorry’, ‘미인아’ 등을 불렀다. 슈퍼주니어가 현재의 트렌드를 입자, ‘Sorry Sorry’는 그들 최고의 히트곡이 됐다. 한 개의 비트를 중심으로 멜로디를 계속 변주하며 속도감을 유지하고, 반복적인 멜로디와 가사로 강한 임팩트를 주며, 동시에 곡을 절정을 치닫게 하는 유영진의 작법은 대중이 원하는 댄스곡의 기준을 모두 충족시켰다. 하지만 ‘Sorry Sorry’에는 여전히 저스틴 팀버레이크나 리한나를 연상시키는 사운드가 곡을 이끌었다. ‘미인아’는 사운드는 보다 개성이 있지만 도입부나 려욱이 부르는 멜로디는 ‘Sorry Sorry’와 겹쳐지고, 곡의 일관성이 끝까지 유지된 ‘Sorry Sorry’에 비하면 후반에 멜로디의 갑작스러운 변화가 일어나기도 한다. 분명히 변했다. 하지만 완전한 혁신은 아니다. 그게 지금 유영진의 음악일지도 모른다.

f(x) : 여성 5인조 그룹. 최근 ‘NU ABO’를 발표했다. 유영진은 외국곡인 이 곡의 작사와 추가 작곡 등을 맡으며 ‘독창적인 별명짓기 예를 들면 꿍디꿍디’같은 가사를 넣었다. ‘미인아’에는 ‘옛말에 세이 열 번 찍으면 넘어간다 으쓱으쓱으쓱 그녀는 강적’같은 가사도 있다. 예전부터 독특했던 그의 가사는 이제 좋게 말하면 아방가르드라 해도 좋을 지경으로 가고 있다. 하지만 ‘Nu ABO’의 가사는 철저하게 비트에 대응하며 진행된다. ‘Mysteric Hysteric’같은 가사는 멜로디가 변하는 순간에 맞춰 등장, 곡의 변화를 부각시킨다. 그의 가사를 통해 ‘NU ABO’나 ‘링딩동’처럼 복잡한 진행을 가진 곡들이 멜로디마다 확실한 포인트를 갖는다. H.O.T. 시절 사회비판성 가사로 멜로디를 부각시켰던 유영진은 이제 맥락과 의미 없이 오직 감각에 호소하는 가사로 다시 대중에게 접근한다. 그리고 ‘NU ABO’는 범 대중적이지는 않아도 SM과 유영진이 이만큼 사람들에게 새로운 자극을 줄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 그가 좀 더 상식적인 가사를 쓰면 좋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R&B를 처음 부를 때도, 작곡을 배울 때도, 프로듀싱을 할 때도 자기만의 방식으로 모든 걸 했다. 그는 이번에도 그럴 것이다. 좋든 싫든, 유영진은 지금 다시 뭔가 새로운 걸 하고 있다. 꽤 오랜만에, 유영진에게 ‘다음’이 기대되기 시작했다.

Who is next
유영진이 프로듀싱했던 S.E.S.의 멤버 유진이 출연했던 SBS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에 출연했던 강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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