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의 인물들에게는 각자의 이상향이 있다. 진호(이민호)는 사람과 공간이 조화롭게 공존하는 건물을, 개인은 한 사람을 위한 따뜻한 가구를 꿈꾼다. 그러나 타인과의 관계망 안에서 이들의 작동 원리는 결코 이상적이지 않다. 개인은 그것이 오해이든 진실이든 시시때때로 진호가 게이라는 걸 공표하고, 진호는 개인의 무신경함 못지않게 까다로운 성미를 자랑한다. 상식적인 상황이었으면 절대로 화해할 수 없는 두 사람은 로맨스라는 만능 패스 덕분에 사랑에 빠지는 연인으로 재탄생한다. 그러나 당신은 이들이 사랑에 빠지는 것에 공감할 수 있나? 개인의 아우팅 사건을 그저 해프닝으로 웃어 넘길 수 있나? 이 물음에 대해 최지은 기자와 김선영 TV 평론가가 답한다. /편집자주

박개인(손예진)은 1인용 가구 전문 디자이너다. 특히 어린이용 가구를 주로 만든다. 이 직업은 그 자체로 그녀의 캐릭터에 대한 은유다. 5살 때 엄마를 잃은 개인은 상처받은 아이에서 한 발짝도 더 자라지 못했다. 그녀가 홀로 작업실에서 만들어내는, “팔리지 않는” 싱글용 가구들은 자기만의 세계에 갇힌 스스로의 모습 같다. 그런데 미숙하고 폐쇄적인 인물은 개인만이 아니다. 아버지의 죽음 뒤 앞만 보고 달려왔으나 “늘 그 꼬마인” 진호(이민호)도, 유일한 사랑의 기억에 머무른 채 아버지와 대립하는 도빈(류승룡)도 소통에 서툴고 자신만의 세계에 고립돼 있긴 마찬가지다. 뚜렷하게 의도적인 설정 안에서 이 지향하는 것은 고독하고 파편적인 개인들이 결국 소통하고 관계 맺는 이야기이다. 물론 그 의도가 작품 안에서 성공을 거두고 있나 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개인, 타인과 나란히 앉다
<개취> vs <개취>│개인의 취향, 타인에 대한 예의


vs <개취>│개인의 취향, 타인에 대한 예의" />이 작품의 이상이 상징적으로 담겨 있는 공간은 상고재다. ‘서로를 연모하는 집’이라는 뜻의 이곳은 원래 개인의 부친 박철한 교수(강신일)의 바람대로 그의 “아내와 아이가 꿈을 꾸게 만들 작은 세계”였다. 집 구조가 훤히 보이는 유리창과 공간을 연결해주는 마루는 가족끼리 소통하고 교감하는 공간으로서의 상고재의 성격을 시각화한다. 하지만 이곳은 비극적 사건 뒤 마음의 문을 닫은 인물들처럼 외부인에게 수십 년 간이나 공개되지 않은 폐쇄적 공간으로 변하고 만다. 이곳이 다시 열리게 되는 계기는 담 미술관 프로젝트다. 상고재를 핵심 콘셉트로 삼은 이 프로젝트가 지향하는 공간 역시 타인과 함께 꿈을 꿀 수 있는 집이다. 이 기획을 주도하는 도빈이 진호를 눈여겨본 것도 그가 자연과 사람의 ‘조화’를 이야기했기 때문이었다. 요컨대 의 건축 이야기는 결국 ‘어울림의 미학’을 핵심으로 하는 우리 한옥처럼, 파편화된 고독한 개인들의 소통과 이해라는 드라마의 주제를 담고 있다.

이러한 소통은 폐쇄적인 인물들이 어느새 타인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서로의 진심을 털어놓는 데서부터 출발한다. 계약 당시 지정된 공간 외의 영역은 침범하지 말라던 개인은 진호와 상고재의 마루에 나란히 앉아 이야기하는 시간들이 차츰 많아지면서 그에게 마음을 열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장면은 다른 인물들의 관계에서도 반복된다. 개인과 도빈은 미술관 의자에 나란히 앉아 커피를 마시며 짝사랑에 대한 대화를 나누는 친구가 되고, 도빈과 진호는 낚시터에 함께 앉아 처음으로 진심어린 대화를 나눈다. 진호가 제주도에서 도빈에게 자신이 게이가 아니라는 진실을 털어놓을 때도 두 사람은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나란히 앉아있다. 극 중에서 가장 사교적이고 외향적인 두 인물 영선(조은지)과 상준(정성화)이 마주보고 앉아 수다를 떠는 모습과는 대조적이다. 자신의 세계가 강하고 취향도 성격도 다른 개인들은 섣부른 마주보기보다 나란히 앉아 진심어린 대화를 통해 서로를 이해하는 방식을 택한다.

개인의 취향보다 중요한 것
하지만 은 종종 자폐 성향과 타인에 대한 오지랖이라는 양극단을 오가는 개인의 캐릭터처럼 이상적 설정과 실제 극 전개 사이에서 모순에 빠진다. 가장 큰 문제는 인물들이 타인과 소통하기도 전에 그의 영역을 너무 자주 침범한다는 데 있다. 초반의 개인은 “제발 노크 좀 하고 들어오라”는 핀잔을 들을 만큼 시도 때도 없이 진호의 방문을 열어젖혔고, “들러붙지 말라”고 해도 거침없이 기대고 안겼으며, 그의 전화나 방안의 상황을 엿듣기도 했다. 이러한 행동은 수차례의 무신경한 아웃팅으로까지 이어졌다. 심지어는 사소한 신에서조차 타인에 대해 함부로 이야기하는 인간들이 등장한다. 찜질방의 인희(왕지혜)를 헐뜯는 아줌마들이나, 남장한 개인과 진호를 보고 ‘저렇게 멋진 남자가 왜 저런 여자와 있는지 모르겠다’며 다 들리게 말하는 옆 커플의 모습 등은 아웃팅 못지않게 불편한 장면들이다.

무엇보다 타인에 대한 이해를 이야기하는 기획의도와 가장 괴리가 큰 지점은 개인과 진호 못지않게 가족사의 트라우마와 그늘을 지니고 있는 인물들인 창렬(김지석)과 인희가 사각관계 멜로 안에서 진부한 악역 혹은 방해꾼으로만 소비되는 것이다. 개인과 진호의 로맨스가 여성 쪽의 지나친 의존관계로 그려지는 것도 아쉬운 지점이다. 제작진에게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개인의 취향은 타인에 대한 예의를 지킬 때만 존중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다.
글 김선영

세상의 수많은 로맨스 소설은 네 문장으로 요약될 수 있다. 남자와 여자가 있다. 그들은 피치 못할 사정에 의해 함께 살게 된다. 싸운다. 그리고 사랑에 빠진다. MBC 에 이은 KBS 의 히트와 함께 본격적으로 쏟아지기 시작한 ‘동거’ 로맨틱 코미디의 구조 역시 비슷하다. 이 장르의 장점은 명백하다. 성격도 취향도 극과 극인 남녀가 관계에 대한 부담 없이 일상을 공유하며 서로의 매력을 알아가는 과정은 그 자체만으로도 유사 연애의 판타지를 자극한다. 한 지붕 아래 사는 성인 남녀에게 적절한 성적 긴장감이 동반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뚜렷한 단점도 있다. 반복되는 패턴의 식상함이다. 그래서 MBC 은 태생적 진부함을 해소하기 위해 기이한 변주를 선택했다.

정치적인 공정함보다 허술한 로맨스
<개취> vs <개취>│개인의 취향, 타인에 대한 예의
vs <개취>│개인의 취향, 타인에 대한 예의" />동명의 로맨스 소설을 바탕으로 원작자 이새인 작가가 직접 집필하는 에서 개인(손예진)은 진호(이민호)를 게이로 오해한다. 중요한 프로젝트를 성공시키기 위해 개인이 살고 있는 상고재에 꼭 입성해야 하는 처지인 진호는 해명을 포기하고 동거를 선택한다. 작품의 전반부를 온통 뒤덮는 게이 오해 소동이 얼마나 폭력적이고 동성애에 대한 왜곡된 이미지를 주입하는지에 대해 일일이 설명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당사자에게는 사회적 죽음이 될 수도 있는 아우팅이 가벼운 해프닝으로 사용되고, 수 년 전 미드에서 유행했던 ‘게이 친구 판타지’가 참신한 시각인 양 등장하는 이 드라마 안에서 게이는 오로지 ‘코드’로만 존재한다. 게이로 설정된 최 관장 역을 맡은 류승용의 과장 없이 섬세한 연기만이 유일하게 진지한 접근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렇듯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못한’ 지점들을 차치하고서라도 로맨틱 코미디로서 의 결정적 문제는 기나긴 소동을 거치면서도 주인공들이 사랑에 빠져야 하는 이유를 제대로 그려내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나마 다소 까다로운 성미를 제외하면 완벽한 남자로 설정된 진호에게 개인이 호감을 가질 만한 근거는 몇 차례 등장하지만 진호가 ‘우리 어머니와 너무 닮았다’며 개인과 친구가 되고 ‘솔직하고 순수한’ 개인의 매력에 빠져드는 식의 느슨한 감정선을 만회할 수 있는 것은 폭풍 같은 키스신뿐이다. 개인을 무참히 버렸다가 뺨 한 대 맞고 돌아와 개과천선하는 창렬(김지석)이나, 개인에게서 창렬을 빼앗았다가 다시 진호에게 매달리는 소통불가의 캐릭터 인희(왕지혜), 진호의 약혼자를 자처하는 혜미(최은서) 등 로맨스의 방해꾼들 역시 산발적으로 등장해 재를 뿌리지만 정작 개인과 진호의 감정 에는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앞으로 산적한 과제들은 더 골치 아프다
10회를 지나며 진호가 게이가 아님을 밝히고 개인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것으로 은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초반의 ‘박개인 여자 만들기 프로젝트’나 연애 시뮬레이션 트레이닝에 비해 연애다운 연애라는 면에서 제주도 데이트 등 후반의 전개는 장르적 장점을 잘 활용하고 있다. 하지만 앞서 모자랐던 두 사람의 로맨스를 채워 넣어야 할 곳에는 선대의 악연 때문에 개인과의 관계를 반대하는 진호의 어머니(박해미)나 창렬의 개인에 대한 집착, 상고재와 담 미술관 프로젝트 등 너무나 많은 과제들이 산적해 있고 진호와 개인은 여전히 불필요한 오해와 화해를 반복 중이다. 물론 그럼에도 은 3사 수목 드라마 가운데 꾸준히 시청률 2위를 기록하고 있으며 로맨틱 코미디 고유의 매력 또한 지니고 있는 작품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것이 박개인과 전진호로부터 나온다기보다는 오로지 손예진과 이민호에 의한 것이라는 점이다.
글 최지은

글. 김선영(TV평론가)
글. 최지은 five@
편집. 이지혜 s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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