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르히’ 다케나카 나오토의 인생 2모작
‘미르히’ 다케나카 나오토의 인생 2모작
일본의 코미디언 비트 다케시는 웃음의 무대를 벗어나면 이름을 바꿔단다. 그는 코미디언이 아닌 배우, 연출가로 작업에 임할 때 자신의 본명인 기타노 다케시를 쓴다. 연예인이 활동을 시작하며 예명을 다는 경우는 국내외 어디든 흔한 일이지만 비트 다케시와 기타노 다케시 사이엔 그만의 드러나지 않는 고민이 있다. 코미디언으로 성공을 먼저 맞본 기타노 다케시는 최근 인터뷰에서 프랑스와 일본의 차이를 언급하며 “프랑스에선 코미디언이 영화를 찍으면 할 줄 아는 게 또 있다며 칭찬하지만 일본은 ‘코미디언이 영화를 찍었다’를 중심으로만 이야기를 한다”고 불만을 털어놓았다. 그의 코미디언 후배 마츠모토 히토시가 으로 감독 데뷔를 했을 때도 그는 “꼭 영화감독 데뷔한 코미디언들이라면서 나를 끼고 들어간다”고 볼멘소리를 했다. 그래서인지 그의 초기 영화들은 웃음기를 많이 감춘 야쿠자 영화가 대다수다. 웃기는 것과는 또 다른 재능을 펼치기 위해 그는 다른 이름표가 필요했나 보다.

가수로 돌아온 다케나카 나오토
‘미르히’ 다케나카 나오토의 인생 2모작
‘미르히’ 다케나카 나오토의 인생 2모작
비트 다케시가 이름을 바꿔달며 자신의 정체성을 고민한 코미디언이라면 다케나카 나오토는 보다 자유롭게 여러 영역을 오가는 코미디언이다. 국내에선 의 변태 지휘자나 영화 의 돌고래 조련사, 그리고 최근엔 국내 드라마 에서의 야쿠자 등 감초 연기자로 많이 알려져 있지만, 일본에서 그가 자신의 이름을 알린 건 70년대 인기 오락프로그램 < TV 죠키 >였다. 그는 이 프로그램에 출연해 ‘흉내내기’로 주목을 받았고 이후 코미디언으로 자리를 잡았다. 두꺼운 저음에서 시작해 가볍게 뒤집어지며 웃음을 자아내는 그의 목소리는 만담에 꼭 맞는 옷이었다. 하지만 그는 어떤 계기나 전환점 없이 영화와 음악을 자유롭게 드나들었다. 프로듀서이자 영화감독 오쿠야마 카즈요시의 눈에 띄어 1991년 츠게 요시하루의 만화를 원작으로 한 영화 으로 우연히 주연, 감독 데뷔한 뒤 차곡차곡 연출작을 쌓았고, 동시에 TV 드라마의 주, 조연을 가리지 않고 적재적소 자리에 꼭 맞는 연기를 했다. 그는 코미디 밖에서도 웃었고, 때로는 영화, 드라마 속에서 정색한 샐러리맨이 됐으며, 메가폰을 들고는 코미디의 향연을 벌이기도 했다.

그런 다케나카 나오토가 가수로 돌아온다. 그는 자신의 홈페이지를 통해 7월 20일 새 앨범 을 발매한다고 발표했다. 1996년 이후 14년 만의 신보다. 1984년 앨범 로 음악 활동을 시작한 다케나카 나오토는 이후 10장이 넘는 싱글과 앨범을 발표하며 뮤지션으로 활동해왔다. 피시만즈, SUPER BUTTER DOG과는 친분도 두터워 피쉬만즈의 라이브 다큐멘터리 에선 내레이터로 참여했고, SUPER BUTTER DOG의 노래 ‘사요나라 COLOR’를 바탕으로 영화를 만들기도 했다. 이번 앨범에서 그는 자신이 가수로서 존경하는 뮤지션들의 노래들을 리메이크했다. 피쉬만즈의 ‘いかれたBABY’ ‘비행기’, RC사쿠세션의 ‘좋은 일만 있지는 않지’ 등 10곡이 수록된다. 앨범 발매에 앞서 개설된 유튜브 채널 ‘다케나카 나오토의 오렌지 기분’에는 사이토 카즈요시의 의 커버곡 PV가 미리 공개됐다. 이 PV에서 다케나카는 진지하게 노래도 부르고 귀여운 애드립 춤을 선보이기도 하며 작은 그림도 그린다.

장르의 경계를 허물어버리는 엔터테이너
‘미르히’ 다케나카 나오토의 인생 2모작
‘미르히’ 다케나카 나오토의 인생 2모작
기타노 다케시의 세계가 영화와 코미디의 데칼코마니와 같다면 다케나카 나오토의 세계는 색색 물감의 프로타쥬에 가깝다. 드라마 의 권위적인 아버지, 웃음과 공포가 뒤범벅된 영화 의 연출자, “좋은 일만은 있지 않아”라고 노래하는 마이크 앞의 뮤지션이 어떤 경계도 없이 자연스레 뒤섞인다. 그저 욕심 없는 소탈한 아저씨의 도화지가 TV에서 스크린으로, 그리고 음악으로 순번을 바꾸는 느낌이다. 여기에 그는 자신의 모교인 타마미술대학 그래픽디자인학과에서 객원교수로 교단에 서고 있기도 하다. 두 개의 이름을 가진 다케시의 영화와 코미디를 보는 건 흥미롭다. 두 이름 사이의 화학작용이 작품에 그대로 묻어나오기도 한다. 반면 그만큼 거창하진 않지만 다케나카 나오토의 물 흐르듯 흘러가는 ‘버라이어티’도 작지 않은 즐거움을 준다. 아무리 작은 카메오로 출연해도 다케나카의 연기가 인상적인 건 아마 그가 가진 넓은 토양 덕이 아닐까.

글. 정재혁 자유기고가
편집. 이지혜 s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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