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232명, 2008년 332명, 2009년 268명 등 매년 200~300명의 대학생들이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통해 생을 마감했다. 자살 원인 대부분은 등록금과 관계가 있었다. 이번 달 9일에는 두 아들의 대학 등록금으로 고민하던 50대 가장이 자살했다. 학자금 대출 신용불량자는 이미 3만명을 넘어선 형편이다. 등록금 문제는 이미 20대에게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가 되어버린지 오래고, 대학생들은 거리로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청년세대가 가장 보고 싶어하고 이야기를 듣고 싶어하는 선배

그렇게 거리로 쏟아져 나온 대학생들의 한가운데 김여진, 김제동, 박혜경 등 연예인이 버티고 있는 것은 이채로운 일이지만 슬픈 일이기도 하다. 2010년 한 시사평론가는 ‘20대를 포기한다’고 선언했고, 2011년 지난 3월 500회 특집으로 마련된 MBC ‘오늘 대한민국, 희망을 말한다’ 편에 출연한 패널들은 20대를 질타하거나 아예 무관심으로 일관했다. 이 날 방송에서 전원책 변호사는 ‘20대의 깊이 없음‘을 질타하기도 했다. 대학생들이 거리로 나오기 전까지 대학생의 엄혹한 현실에 대해 대학생의 입장에서 같이 고민하고 그들이 왜 스펙에 몰두하고, 사회 문제에 대해 고민하지 않는지 이해해준 기성세대는 없었다. 이 날 방송에서 청년들의 현실에 대해 주목한 패널은 박경철과 김여진 뿐이었다.

그래서 김여진은 특별하다. 김여진은 홍대 청소 노동자 정리 해고와 처우 개선 문제에 대해 적극적으로 발언하고 활동하며 인터넷상에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김여진은 당시 인터넷에서 농성 중이던 청소 노동자에게 시험 공부에 방해가 되니 농성을 자제해달라는 입장으로 인해 큰 비난을 받은 홍대 총학생회장에게 블로그를 통해 “밥이나 먹자”고 오히려 위로와 격려의 뜻을 피력했다. 당시 김여진은 밑반찬을 싸들고 농성장을 찾았다가 우연히 만난 그 학생회장이 청소 노동자들이 차려준 밥도 못 먹는 것을 보고 “무엇이 널 그렇게 복잡하게, 힘들게 만들었을까”라고 반문하기도 했다. 김여진은 자신의 주장과 다르더라도 복잡한 문제에 직면해 있는 청년들에게 따뜻하고 포용력 있는 태도를 취했다. 기성세대 중심의 미디어가 20대를 무기력하다고 힐난하거나 박태환과 김연아같은 ‘엄친아’나 ‘엄친딸’로 양분하는 것과 달리, 김여진은 20대의 입장을 바라본 것이다.

김여진의 이런 언행이 알려진 뒤 많은 청년들이 김여진을 신뢰하고 지지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지난 3월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자본주의 연구회’ 대학생들이 연행된 것과 관련해 항의 방문한 대학생 40여명이 모두 집시법 위반으로 연행되자 연행된 대학생의 지인들은 김여진에게 도움을 청했다. 한국대학생연합과 한국대학문화연대는 고려대 새내기 콘서트를 준비하며 김여진에게 응원 메시지를 부탁했고, ‘2011 희망공감 청춘 콘서트’에서는 안철수, 박경철, 김제동, 법륜스님 등과 함께 멘토로 참여했다. 청년세대와는 너무 거리감이 있는 ‘어른’들과 달리, 김여진은 지금 청년 세대가 쉽게 다가설 수 있고, 이야기를 듣고자 하는 ‘선배’같은 역할을 하는 셈이다.

더 복잡한 갈등의 한복판에서

김여진의 사회 활동은 점점 첨예한 갈등이 일어나는 영역으로 들어가고 있다. 최근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 노동자 정리 해고에 농성중인 노동자들을 지원하는 ‘희망버스’ 행사에 참여, 경찰로부터 출석요구서를 받았다. 지난 15일 오후 서울 종로구 청운동사무소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는 눈물을 흘리며 한진 중공업 회장에게 호소했다. 홍대 청소 노동자 정리 해고 문제나 반값 등록금 시위보다 한진중공업 노동자 정리해고 문제는 훨씬 더 보수와 진보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사안이다. 보수매체인 조선일보에서 칼럼을 통해 김여진을 비롯한 소셜테이너를 거론하며 ‘견해가 첨예하게 갈리는 정파적인 문제보다는 보편적인 공감대가 형성된 이슈부터 관심을 갖는건 어
떨까’라는 입장을 피력한 것도 이 때부터다.

대학을 졸업한 청년의 대부분은 비정규직이 되고, 비정규직의 대부분이 쉽게 정리해고 당한다. 이 현실을 생각하면 김여진이 한진중공업의 노동자 정리해고 문제에 적극 참여하게 되는건 사회에 관한 일관적인 관점에 따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보다 첨예한 영역으로 들어갈수록, 김여진의 활동은 보다 커다란 벽에 막힐 수도 있다. 당장 연예인의 사회적 발언에 대한 편견과 한진중공업 조남호 회장의 묵묵부답, 또는 배우로서의 이미지가 달라지면서 생길 수도 있는 문제, 더 나아가서는 첨예한 보수와 진보의 갈등 탓에 어떤 실수와 작은 흠결조차 공격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실제로 한나라당 정책 자문위원은 트위터에서 김여진에게 욕설을 섞으며 비난했고, 게이임을 커밍아웃한 한 패션 칼럼니스트는 김여진의 외모를 비하하고, 허위 사실까지 유포하기도 했다.

서로 외롭지 않기 위해서
그러나 김여진은 불이익을 걱정하는 사람들에게 15일 미디어몽구와의 인터뷰에서 “어떤 불이익도 감수할 거니까, 걱정마세요”라고 말했다. 한나라당 정책 자문위원의 트윗에는 “(미친X) 맞을지도”라는 답을 돌려줬고, 패션 칼럼니스트에게는 “그래도 당신이 차별을 받을 때 함께 싸워드리겠다”고 대답했다. 첨예한 갈등의 한복판에서 김여진이 맞닥뜨릴 벽은 한 사람의 개인이 견뎌낼 수 없는 크기와 무게일 수도 있다. 하지만 김여진의 사회활동에 대한 찬반의 입장과 별개로, 그가 20대의 현실과 사회 문제에 뛰어든 이유는 기성세대가 주목할만하다. “외롭고 싶지 않아서”, 그리고 “그러는 게 더 행복하니까” 기성세대 중 누구도 쉽게 자신의 이름과 커리어를 걸고 20대 의 현실을 돌아봐주지 않는 시대. 이런 시대에 “외롭고 싶지 않아서” 그들의 현실에 뛰어든 사람이 자신의 직업에 상관 없이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정치적 입장과 별개로 사회가 해야할 일 아닐까. 김여진이 직업 때문에 입을 닫고, 현실적인 압박 때문에 소신을 지키지 못하게 내버려둔다면 청년들은 다시 그들의 문제에 귀를 기울여줄 몇 안 되는 기성 세대 중 한 명을 잃게 될 것이다. 그건 우리가 진보-보수 갈등 때문에 더 큰 시민적 가치를 잃어버리는 결과일지도 모른다. 지금 조금씩 우리 모두가 외롭지 않게 서로를 지켜줘야 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글. 김명현 기자 eighteen@
사진. 채기원 t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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