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명석의 100퍼센트] 신과 함께 뉘우치겠습니까, 계속 지옥을 만들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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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 베어스의 팬이다. 하지만 요즘은 차라리 베어스가 지는 게 편하다. MBC 스포츠플러스 를 보기 편해서다. 는 故 송지선 아나운서가 진행했었다. 그녀는 두산 베어스의 임태훈 선수와 관련된 루머와 스캔들에 시달린 끝에 그와 사귄다는 입장을 발표했었다. 두산은 당사자 대신 곧바로 “그런 일 없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그러나 얼마 뒤 그녀가 스스로 세상을 떠났을 때는 조문은 커녕 조의도 표하지 않았다. 그러니 를 볼 수밖에 없다. 그렇게라도 이 팀의 팬이 가진 미안함을 표시하기 위해, 그리고 잊지 않기 위해.

댓글, 트위터, 페이스 북 등으로 사람들은 어느 때보다 빨리 여론을 형성한다. 다만, 여론은 야구팀의 조의조차 쉽게 끌어내지 못한다. 비슷한 일은 또 있다. 고려대학교의 세 학생은 술에 취해 쓰러진 동기 한 명을 성추행했고, 그 장면을 사진으로 찍었다. SNS에서는 ‘무한 RT’로 그들의 출교를 외친다. 하지만 학교는 여러 이유를 들어 조치를 미룬다. 심지어는 가해자와 피해자가 함께 시험 보도록 했다. 여론이 어떻든, 결정권을 가진 집단이 여론을 크게 신경 쓰지 않는 시대. 윤리와 미안함이 오히려 거추장스러운 것처럼 여겨지는 시대. 대신 죄는 다른 사람이 짊어진다. 그럼에도 그 야구팀을 놓지 못하는 팬. 또는 그럼에도 자식이 그 학교에 들어가길 바랄 수밖에 없는 학부모 같은 사람들 말이다.

산 자 모두를 죄인으로 만드는 이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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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팀은 포기하면 된다. 고려대학교 말고도 명문대는 있다. 그게 옳다. 그러나 주호민의 에서 한 대학생은 등록금을 벌기 위해 재개발 주민들을 몰아내는 용역 깡패가 된다. 그는 분명한 죄인이다. 처벌 받아야 한다. 하지만 1년 등록금이 천만 원에 가까워진 시대다. 놀라울 정도로 선하고, 뛰어난 능력을 갖지 않았다면 돈 없는 대학생이 아르바이트만으로 등록금을 마련할 수 있는 방법은 실질적으로 없다. 의 ‘저승편’에 등장하는 김자홍은 저승에서 살아생전 대기업에 다니며 하청업체의 고혈을 짜냈다는 혐의를 받는다. 하지만 그의 변호사 진기한은 김자홍이야말로 회사의 압력 때문에, 영업 실적 때문에 폭음과 스트레스에 시달리다 죽은 피해자라고 강변한다. 김자홍은 누구에게 험한 말조차 하지 않았고, 부모에게 저지른 작은 잘못도 아파하는 사람이다. 지금 이 세상은 그런 사람도 타인에게 알게 모르게 죄를 짓도록 한다. 태어나는 것이 곧 죄인 세상이라면, 김자홍은 지옥에 떨어져야 하는가. 그래서 저승에서도 변호사가 필요해졌다. 지금 이승은 모두를 죄인으로 만들기 때문에.

주호민은 “경제성장률 6.1%”과 “홀로 살던 노인 사망”이 신문에 나란히 실리는 것이 놀랍지 않은 시대의 단면을 보여준다. 군대에서 보초를 서던 군인이 오발사고로 죽었다. 승진이 급한 지휘관은 그를 탈영한 것으로 조작한다. 다음 보초 근무자들은 그의 강압에 의해 조작에 가담하게 된다. 때로는 그 곳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산다는 것만으로도 죄인이 될 처지에 놓이는 시대가 있다. 그 때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그 실마리는 누군가의 죽음에 있다. 김자홍의 죽음을 시작으로 펼쳐지는 ‘저승편’은 수없이 많은 죄와 형벌을 펼쳐 놓는다. 누군가에게 무심코 던진 말 한마디도 저승에서는 혓바닥이 뽑히는 죄가 될 수도 있다. 저승의 기준에서 죄 짓지 않는 사람은 많지 않다. 하지만 누군가는 ‘저승편’을 읽으며 죄에 대해 더 민감해질 수 있을 것이다. 는 마치 처럼 “지옥이 꽉 찰 만큼” 죄 짓는 게 당연해진 한국 사회를 보여준 뒤, 이 모든 죄인들에게 처럼 사후 세계를 보여주며 참회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더 제대로 살기 위해 우리는 죽음을 함께 기억해야 한다
[강명석의 100퍼센트] 신과 함께 뉘우치겠습니까, 계속 지옥을 만들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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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편’에서 구청은 철거 대상자들에게 구백만원을 주고 임대 아파트 입주를 제안한다. 임대 아파트 보증금은 천 오백만원이고, 철거 대상자 중 태반은 임대 아파트 20만원을 내기 어려운 형편이다. 세상이 김자홍 같은 평범한 남자를, 졸지에 거리로 내몰리게 된 할아버지를 죄인의 길로 유혹한다. 그 때 우리는 죄인이 되는 길을 선택할 것인가. 하지만 에서 의도치 않았던 죄의 희생자는 원혼이 돼 우리 곁을 맴돈다. 의도와 상관없이 죄는 누군가를 죽음에 이르게 할 수 있다. 망자의 주변에는 남겨진 사람들이 있다. 이승에 정말 원혼이 있다면, 그건 누군가의 불행한 죽음이 주변 사람들에게 주는 어두운 기운일 것이다. 그 기운은 세상을 더 불행하게 만든다. 죄에 대해 스스로 자각하고 반성하지 않는다면, 그 죄는 언젠가 우리의 삶까지 잡아먹을 것이다. , SBS , 은 비슷한 시기에 연이어 누군가의 죽음에 대해 다뤘다. 이 작품들은 모두 누군가의 죽음이 세상에 대해 말하는 것, 그리고 누군가의 죽음을 기억하는 것이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보여준다. 살기 위해, 우리는 모두 죄인이 된다. 그러나 우리는 죽음을 함께 기억해야 한다. 더 제대로 살기 위하여.

이 시대에 내가 죄인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은 유리한 일이 아닐 것이다. 죄 짓지 않았다고 믿어야 야구도 편히 보고, 대학도 편히 가고, 성공도 편히 할 수 있다. 에서 자신의 죄를 가장 민감하게 느끼고, 반성하는 것이 김자홍 같은 소시민이라는 사실은 슬픈 아이러니다. 그러나 그와 같은 소시민이야말로 죄 없는 세상이어야 행복할 수 있는 사람일 것이다. 우리가 죄를 짓고 있다는 사실이라도 인정해야 세상은 그나마 지옥이 되지 않는다. 는 우리 모두의 죄가 결국 우리에게 돌아올 것이라는 사실을 망자의 입을 통해서라도 외치는 절규다. 그래도 세상은 변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야구는 오늘도 계속된다. 퇴근 후에는 어김없이 야구 하이라이트 프로그램을 볼 것이다. 그러나 신이 보고 있다. 우리를 용서하고, 벌할 신이. 지금은 그걸 믿을 수밖에 없다.

글. 강명석 기자 two@
편집. 이지혜 s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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