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와 다름없는 오늘이라는 관용어만큼 학교라는 공간과 어울리는 말은 없다. 호기심이나 활기가 없는 공간이라는 뜻은 아니다. 지난주와 같은 사이클로 시간표가 짜여 있고, 매일 보던 그 친구들과 매일 보던 그 선생님들 사이에서 일상의 울타리는 여간해선 쉽게 무너질 것 같지 않다. 하지만, 어제와 같아 보이던 바로 오늘, 아프다던 친구는 좀비가 되어 사람들을 물고 바이러스와 공포가 순식간에 퍼지는 순간, 낯익은 교실과 복도 곳곳은 <레지던트 이블>의 연구소만큼이나 숨 막히는 두려움의 공간이 된다. “한국에는 왜 좀비물이 없지?”라는 생각으로 만든 주동근 작가의 웹툰 <지금 우리 학교는>이 수많은 좀비 영화와 게임, 만화의 문법을 제법 충실히 따르면서도 결코 식상하지 않은 공포를 주는 건 그 때문일 것이다.

“무엇보다 내가 잘 아는 공간, 그리고 폐쇄되었을 때 주는 공포감이 큰 공간이 필요했어요. 이런 것들을 만족시켜줄 가장 적합한 곳이 학교라는 생각과 더불어 한국 사람이라면 대부분 학교생활을 경험해본 사람들이기에 모두가 잘 아는 그 공간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만화에의 몰입을 높여줄 거라고 생각했어요.” 작가의 말처럼 <지금 우리 학교는>에서 복도는 감염자를 피해 입에 단내가 나도록 뛰어야 하는 도주로가 되고, 주인공 온조를 비롯한 친구들이 옆 반에서 생필품을 챙기는 건 목숨을 건 미션이 된다. 하지만, 진정한 공포는 감염자 대 비감염자의 구도가 아닌, 그 안에서 서서히 붕괴되어 가는 일상의 관계들이다. 어쩌다 흘린 코피만으로 반 친구들에게 감염을 의심당하고, 수틀리는 일이 있다고 유리 조각으로 비감염자를 찌르는 일이 일어나며 ‘지금 우리 학교는’ 진정한 생지옥이 되어간다. 이 작품을 19금으로 묶어놓는 인체 절단과 한 회도 빠짐없이 등장하는 피범벅조차 그 균열의 잔인함보다는 덜할지 모르겠다. 그래서 매력적인 여성 보컬들의 노래를 추천한 주동근 작가의 플레이리스트는 의외지만, 한 회 한 회를 볼 때마다 가쁜 호흡을 몰아쉬어야 하는 독자들이 잠시 마음을 쉬어갈 일종의 백신 역할을 해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1. Regina Spektor의 < Begin To Hope >
“레지나 스펙터는 ‘On The Radio’가 국내에서 모 드링크제 광고음악으로 사용되면서 더욱 유명해진 가수죠. 저 역시 TV에서 흘러나온 그녀의 노래를 우연히 듣고 반해 그녀의 전곡을 들었어요. 앨범에 한 가지 색깔만 있는 것이 아니라 ‘Apres Moi’처럼 기존에 들어볼 수 없던, 여러 가지가 시도된 음악들이 있어 좋았어요. 무엇보다 그녀의 감정이 노래 속에 잘 담겨진 것 같아 더 매력적으로 들리고요. 개인적으로는 ‘Hotel Song’을 추천해 드리고 싶네요.” 레지나 스펙터의 노래는 결코 화려하지 않다. 연주가 사운드를 꽉꽉 채우는 것도 아니고, 그녀가 노래하는 스타일 역시 테크니컬하진 않다. 하지만, 그녀는 추천 곡인 ‘Hotel Song’이나 영화 <500일의 썸머> OST에 수록된 ‘Us’ 같은 곡에서 그가 아니면 안 될 유일무이한 감정의 전달을 들려준다.



2. Ke$ha의 < Animal >
“말이 필요 없죠. 작업하면서 푹 빠진 가수예요. 레이디 가가의 음악에 푹 빠져 있던 저에게 여자친구가 케샤의 음악을 추천해주었고, 저는 또 다른, 하지만 기분 좋은 충격에 빠지고 말았어요. 클럽 성향의 음악이 많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저와 취향이 맞지 않겠거니 들었는데 오히려 덕분에 클럽 음악에 푹 빠져버렸어요. 유명한 곡으로는 ‘TiKToK’이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Party At A Rich Dude`s House’와 ‘Blind’를 추천하고 싶네요.” 지난 3월 29일로 예정됐던 케샤의 내한 공연은 일본 지진으로 인한 추모 분위기 속에서 취소된 바 있다. 아쉬운 일이지만 이 일화를 통해 케샤 음악의 본질을 파악할 수도 있다. 그녀의 노래는 결코 추모 속에서는 들을 수 없는, 함께 춤추고 놀아야 하는 곡이다. 그래야만 하는 곡이 세상에는 있다.



3. The Veronicas의 < The Secret Life Of… >
“더 베로니카스를 처음 접하게 된 것은 ‘When It All Falls Apart’를 들었을 때예요. 듣자마자 너무 좋아서 이 노래를 부른 가수가 궁금해졌죠. 처음 들으면 한목소리에 대해 기계로 화음을 넣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사실은 쌍둥이인 제스와 리사가 서로 화음을 맞춘 거죠. 쌍둥이라서인지 화음이 잘 맞아서 더욱 빛이 나는 팀이에요. ‘When It All Falls Apart’도 좋고, 영화 <쉬즈 더 맨>의 OST에 수록됐던 ‘4ever’도 추천해 드릴게요.” 더 베로니카스는 비교적 이지 리스닝 타입인 록 사운드에 얼굴이 예쁘다는 이유 때문에 종종 두 명의 에이브릴 라빈이라는 평가를 받는 팀이다. 간혹 비주얼에만 신경 쓰는 얼치기 취급을 당할 때도 있지만 잘 빠진 멜로디 라인과 두 명의 화음이 귀에 그대로 감겨든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4. t.A.T.u.의 <200 Km/H In The Wrong Lane>
“타투의 경우 앨범 속 음악 대부분이 좋아요. 처음에는 레즈비언 가수라는 콘셉트 때문에 말이 많았지만, 음악적인 능력으로 논란이 다시 잠잠해졌죠. 저 역시 어떤 가수이기에 이슈가 된 걸까, 싶어 그녀들의 음악을 들었는데 많이 새로운 느낌이었어요. 몇 곡만 좋은 게 아니라 모든 곡이 좋았던 만큼, 제가 들어본 여성 듀오 중에서는 최고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애니메이션학과 재학 중일 때는 애니메이션으로 그들의 뮤직비디오를 만들 정도로 푹 빠져 있었죠. <지금 우리 학교는> 속 방송실을 유심히 보신 분이라면 타투의 포스터가 붙여져 있는 걸 찾으실 수 있을 거예요. 그들의 대표곡인 ‘All The Things She Said’와 ‘All About Us’를 추천합니다.” 교복을 입은 그녀들이 나왔던 ‘All The Things She Said’ 뮤직비디오의 충격, 다들 잊지 않고 있을 것이다.



5. Cranberries의 < No Need To Argue >
“여성 보컬이 좋은 팀의 대표주자로서 크랜베리스를 빼놓을 수 없겠죠. 제가 처음 접했던 그들의 곡이 공교롭게도 ‘Zombie’였는데요, 그들의 음악을 듣고 암시를 받아 <지금 우리 학교는>을 하게 되었던 건지도 모르겠네요. 하하하. 그만큼 노래가 좋아요. 워낙 유명하고 익숙한 음악들이 많아 그들의 음악을 하나씩 찾아 들을 때마다 ‘아, 이 노래!’ 하곤 했었어요. 그들의 대표곡 중에서 ‘Dreams’와 ‘Ode To My Family’를 추천합니다.” 한 때, 반에서 노래 좀 부른다던 여자아이들치고 크랜베리스와 주주클럽 노래 모창을 시도하지 않은 애들이 없는 시절이 있었다. 그만큼 90년대 말, 특히 한국에서 크랜베리스, 더 정확히 말해 메인 보컬 돌로레스는 여성 모던록 보컬의 교과서처럼 받아들여졌었다.




<지금 우리 학교는>은 벌써 2년여의 시간 동안 연재되고 있지만, 아직 온조와 남라, 수혁 일행이 겪고 있는 지옥 같은 날들은 아직 며칠 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 속도가 결코 느리게 느껴지지 않는 건, 그들이 겪는 지옥 같은 하루가 우리의 1년만큼 길고 힘겹게 느껴지기 때문일 것이다. 다시 말해 <지금 우리 학교는>의 시간은 더디게 가지만, 결코 느슨하거나 늘어지는 순간은 단 한 번도 없다. 주동근 작가가 준비해 놓은 스토리의 뼈대가 튼튼하단 뜻이기도 하다. “처음에는 좀비라는 소재를 이용해 학교 아이들의 심리 묘사 중심으로 진행하자 생각하고 일주일가량 일어나는 일을 100회 분량으로 잡았어요. 그러다 연재 제의를 받고 나서는 시간적인 여유가 주어져서 좀 더 뚜렷한 개성을 지닌 캐릭터를 추가하고 에피소드를 재설정하면서 그보다 좀 더 늘어난 120화 분량으로 완결 나지 않을까 싶어요.” 조만간 만날 수 있는, 주동근 작가의 머릿속에 준비된 이 지옥도의 결말은 어떤 풍경일까. 알 수 없지만, 이것만큼은 확실하다. 제발 주인공들이 일상의 울타리 안에 돌아가길 바라게 되는 이 간절함, 정말 오랜만이다.

<10 아시아>와 사전협의 없이 본 기사의 무단 인용이나 도용, 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이를 어길 시 민, 형사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 텐아시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