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명석의 100퍼센트] 우리는 가수의 목숨을 원한다
[강명석의 100퍼센트] 우리는 가수의 목숨을 원한다


* 이 기사에는 영화 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니나 레전드 공연”, “요즘 스완 퀸들 다 발라버리는 영상” 영화 이 현실이라면, 인터넷에는 니나(나탈리 포트만)의 영상이 돌 것이다. 영상을 올린 사람이 를 본 적 없어도 상관없다. 도 니나의 발레를 제대로 보여주지는 않는다. 니나는 무용수에게 들려지거나, 연속된 턴을 하는 정도다. 그러나, 니나의 턴에 관객들은 환호한다. 니나의 인생이 니나가 원한 “Perfect”를 보여줬으니까. 내성적인 성격 탓에 한계가 뚜렷했던 발레리나가 엄청난 고통 끝에 예술적 성취를 이룬다. 발톱이 부러지고, 살점이 나가떨어지고, 발목은 부러질 듯 연약하게 흔들린다. 그러나 마치 못으로 유리창을 긁는 것 같은 이 고통 사이에는 우아한 발레가, 숨 막히는 섹스가, 호러적인 환각이 뒤섞인다. 고통과 쾌락이 함께하는 예술가의 인생은 대중을 매혹시키고, 그의 결과물마저 신화화 시킨다. 때론 예술가의 인생은 그의 결과물보다 훨씬 더 엔터테인먼트 적이다.

물론 은 영화다. 하지만 우리는 이 박스오피스 1위를 하는 사이 현실의 예술가들에게도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MBC 의 ‘서바이벌 나는 가수다’(이하 ‘나는 가수다’) 방영 이후의 일들을 보라. 이소라가 ‘나는 가수다’에서 ‘바람이 분다’를 부르자, 인터넷에는 “소름끼쳤다”는 글과 함께 수많은 동영상이 올라왔다. ‘바람이 분다’는 디지털 음원 실시간 차트에도 올랐다. 그러나 이소라는 얼마 전 KBS 에서도 ‘바람이 분다’를 불렀다. 에서는 이소라의 노래를 예능인의 멘트로 잘라먹는 일도 없었다. 물론 반응은 없었다. 주말 예능과 심야 음악 방송의 차이일 수도 있다.

예술가의 절박함마저 재미로 팔리는 곳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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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 ‘예능’은 출연자의 인생 그 자체가 재료다. Mnet 나 MBC 도 마찬가지다. 노래가 절실했던 가수가 데뷔하고, ‘바람이 분다’가 다시 알려지는 건 좋은 일이다. 그러나 윤도현밴드는 무대에 오를 때 록을 들려주고 싶다는 이유로 가장 비대중적인 곡을 골랐다. 김건모는 데뷔곡으로 무대 위에 올랐다. 그들이 ‘나는 가수다’에서 보여준 건 단지 노래가 아니라 노래에 임하는 각오였고, ‘나는 가수다’가 노래 그 자체가 아닌 예능으로 소비되는 건 이 각오가 시청자들에게 명확하게 전달 될 때부터다. 우연인지 모르겠지만, 이소라가 ‘나는 가수다’의 첫 무대에 오른 건 상징적이다. 이소라는 때론 심리적인 이유로 방송 진행을 하기 어려울 때도 있었을 만큼 섬세한 성격의 뮤지션이다. 그가 이 서바이벌의 무대 위에서 눈을 감고 ‘바람이 분다’를 불렀다. 검투사들이나 설 것 같은 콜로세움 같은 예능의 무대에 우아한 백조가 올라왔다. 시청자들은 조마조마하다. 하지만 도저히 안 볼 수 없다.

프로 가수에게 ‘나는 가수다’라고 증명할 진정성을 찾는다. 가수들은 무대 뒤에서 긴장하는 모습을 공개하고, 때론 (예고에 따르면) 눈물을 흘리기까지 한다. 그들이 그렇게 절박하게 노래한다는 것을 확인한 뒤에야, 또는 주말 저녁 예능 프로그램에서 노래를 들은 뒤에야 그들의 노래에 감동했다고 고백한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이소라는 과거 공연에서 노래에 스스로 만족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관객에게 환불을 했다. 관객이 알든 모르든, 어떤 가수들은 예전부터 최선을 다하고 있다. 대중이 정말로 노래의 감동과 가수의 진정성을 원하는 걸까.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어떤 대중은 그 감동을 자신들이 확인할 수 있는 방법으로, 그리고 재밌게 보여주길 바란다.

‘나는 가수다’, 부디 제대로 된 브레이크를 장착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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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서 니나가 그런 것처럼, ‘나는 가수다’는 예술가의 결과물이 아닌 과정의 절박함을 요구한다. 그 때 대중은 그들의 노래에 감동하고, ‘레전드 공연’을 올리고, 노래 잘하는 가수들이 설 무대가 없다는 사실에 대한 안타까움이 뒤따른다. 그러나 그들이 정말로 걱정된다면 차라리 그 무대에 선 가수들을 위해 눈물 흘리는 게 낫다. 그 우아하고 섬세한 백조들이 서로를 제껴야 하는 무대에 선 처지를 슬퍼하면서. 물론, 반드시 그럴 필요는 없다. 우리는 쇼를 보고 있을 뿐이다. 다만 솔직해질 필요는 있다. 우리는 감동을 원하지 않는다. 우리는 주말 예능에서 무대를 보는 즐거움을 원하지 않는다. 우리는 가수의 목숨을 원한다. 그래서 의 흥행에 이어 등장한 ‘나는 가수다’는 한국 리얼리티쇼의 불길한 기점처럼 보인다. 가창력이 트레이드마크인 가수들, 한 번이라도 무대에서 망신을 당하면 안 되는 가수들이 서바이벌을 하면서 그들이 쇼에 쏟아 붓는 노력도, 명예도, 절박함도 모두 한계가 사라졌다. 에서 니나에게 “Lose yourself”를 요구하던 발레단장 르로이(뱅상카셀)는 정작 자신의 욕망은 능수능란하게 통제했다. ‘나는 가수다’의 제작진도 ‘프로’인 가수들에게 이 상황을 받아들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무대 위에서 백조와 흑조를 모두 연기하는 발레리나와 무대 아래에서 예산과 흥행을 생각하는 단장이 다르듯, 가수와 PD도 다르다. 니나는 어느 시점에서 멈추지 못하고 결국 폭주한다. ‘나는 가수다’는 바로 그 브레이크를 뗀 리얼리티 쇼다. 이 뒤에 무엇이 일어날지는 이제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혼신의 힘을 다한 노래가 아니라 노래가 나오는 과정의 진정성까지 확인해야 노래의 감동을 확인하는 사람들. 또는 감동과 진정성이 음악이 아닌 예능의 재료가 되는 시대의 쇼. 물론, 무대 위에서 노래 이전에 절박함을 보여주는 가수들을 위해서라도 ‘나는 가수다’는 성공해야 한다. 또한 프로그램의 완성도는 첫 탈락자가 정해지는 이번 주 일요일 이후 평가해도 좋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가수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이 시대에서 노래만으로 살아가는 가수의 비극을 보여준다. 그들은 노래를 예술적으로 부르는 것을 넘어 의 니나처럼 대중에게 ‘흑조’의 내면을 끄집어낼 만큼 절박함을 요구받는다. 그리고 이런 시대에 쇼를 위해서는 그들의 절박함을 통제해서는 안 되지만, 그들을 위해서는 통제해야만 살 수 있는 리얼리티 쇼가 등장했다. 김영희 PD는 ‘나는 가수다’에서 쇼의 성공을 이끌 “Lose yourself”와 가수들을 위한 통제의 경계선을 찾을 수 있을까. 제발, 그러길 바란다. 김영희 PD가 아니라 그 가수들을 위해. 감동적이라고, 재밌다고 그들에게 ‘Swan song’을 요구할 수는 없다.

글. 강명석 two@
편집. 이지혜 s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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