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지은의 10 Voice] MBC는 어디로 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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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가 머지않아 조선일보로 변할 수도 있다.” 지난 2일 단행된 시사교양국 인사발령에 대한 한 MBC 직원의 표현이다. MBC는 이날 오후 < PD수첩 >의 최승호 PD를 비롯한 26명의 PD들을 대거 인사 이동시켰다. 윤길용 시사교양 1부 부국장이 시사교양국장으로 발령난지 1주일만의 일이다.

최승호 PD의 인사이동이 말하는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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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면적으로 이번 인사이동에 큰 문제는 없어 보인다. 윤길용 국장은 “내가 < PD수첩 >을 흔들거나 없앨 거라는 예상은 오해다. 시사교양국의 변화를 위해 1년 이상 한 프로그램을 맡아 온 사람은 예외 없이 교체하겠다는 것이 원칙”이라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안을 들여다보면 다르다. 윤 국장은 지난해 ‘낙하산 인사’ 파동으로 총파업의 원인이 되었던 김재철 사장의 대광고-고려대 후배이자 소망교회에 다닌 것으로 알려져 ‘고소영 라인’으로 불리는 인물이다. 이에 앞서 최근 연임에 성공한 김 사장은 시사교양국을 기존의 TV제작본부에서 편성제작본부로 이관하는 조직개편안을 내놓았다. 최승호 PD는 이를 “자율성과 PD 개개인의 창의성이 강조되는 TV제작본부와 달리 편성제작본부는 관료적 통제가 강하다. 콘텐츠 만드는 부서가 다 모여 있는데 (시사교양국) 하나만 떼어가면서 콘텐츠에 집중하기 위해서라고 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옮겨놓는 게 통제가 용이하다는 판단 때문이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즉, < PD수첩 > 11명의 PD 가운데 6명을 다른 부서로 이동시킨 이번 인사는 외부의 조직개편에 이은 내부적 조직개편을 통한 ‘< PD수첩 > 흔들기’라는 해석이 유력하다. 통상적으로 인사 발령 문제는 PD들과 논의해 진행하지만 < PD수첩 > PD들이 잔류 의사를 밝혔음에도 이를 묵살하고 유례없이 강제 발령을 내렸다는 점도 혐의를 더한다. 지난해 ‘검사와 스폰서’, ‘4대강 수심 6m의 비밀’ 등 권력의 그늘을 파헤치고 최근 소망교회의 문제점을 취재하던 최승호 PD는 으로 발령받았지만 “이는 말 그대로 외주 관리직에 가깝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제작에 발붙이지 못하게 하려는 의도”라는 것이 내부의 중론이다. < PD수첩 >을 진행하던 홍상운 PD, 최승호 PD와 함께 < PD수첩 > ‘황우석 사건’을 파헤쳤던 한학수 PD 역시 마찬가지 상황에 처했다. 특히 86사번인 최승호 PD, 91사번인 홍상운 PD에 비해 97사번인 한학수 PD는 관리직을 맡기엔 이른 나이임에도 아침 방송을 담당하게 되어 눈길을 끈다.

‘지킬 것’마저 사라져버린 MBC의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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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 PD수첩 > 연출 경험이 전혀 없는 김철진 PD가 새 팀장으로 발령받고 상대적으로 < PD수첩 > 경력이 적은 PD들이 이들의 빈자리를 채우게 되었다는 점도 의문이 가는 지점이다. 한 MBC 직원은 “단적으로 말할 수는 없지만 상대적으로 정치색이 없어 보이는 PD들이 < PD수첩 >으로 가고, 시사적인 아이템에 관심을 보이는 등 성향을 드러낸 PD들은 제작에서 물러나는 추세”라고 말했다. 특히 < PD수첩 >의 최고참 PD로서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후배들을 이끌며 외압에 굴하지 않고 굵직굵직한 아이템을 진행해 온 최승호 PD의 존재는 상징적이다. 시사교양국의 한 작가는 “< PD수첩 > 팀장 재직 시절에도 아이템 하나하나의 팩트와 진행 상황을 꼼꼼히 챙기며 가장 많은 질문을 던졌다. 아이템에 대한 근본적인 호기심이 남다른 분”이라는 말로 최승호 PD를 설명하기도 했다. 그러나 지난 28일, 제 23회 한국 PD대상에서 ‘올해의 PD상’을 수상한 최승호 PD는 “상을 받아서 좋지만 즐거워할 수만은 없는 현실이다. 세상도 같이 바뀌면 좋겠다. 일련의 사건들이 묻히지 않도록 국민 여러분이 < PD수첩 >을 돌봐주시길 바란다”는 소감을 밝힌 이틀 뒤 < PD수첩 >을 떠나라는 통보를 받았다.

결국 이번 인사를 ‘막장 인사’로 규정한 시사교양국 구성원들은 비상총회 개최, 국장의 직접 해명 요구, 피켓시위 등의 투쟁을 전개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이렇게까지 심각해지기 전에 김재철 사장 연임을 막았어야지 이제 와서 어떻게 되돌리겠다는 건지 답답하다”는 목소리도 있다. 파업 중이던 지난 해 4월, ‘검사와 스폰서’ 편 방송 직후 이근행 MBC 노조위원장은 과의 인터뷰에서 “후배들은 파업으로 MBC를 지키고, 최승호 선배는 권력과 타협하지 않고 시청자들의 기대에 부응하는 방송을 만드는 것으로 MBC를 지킬 것이다. 우리가 파업하는 이유도 바로 그런 방송을 만들기 위한 것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하지만 이후 이근행 위원장은 해직 당했고, 최승호 PD는 < PD수첩 >을 만들 수 없게 됐다. 마지막 ‘지킬 것’조차 사라져가는 지금, MBC는 어디로 가고 있을까.

글. 최지은 five@
편집. 장경진 thr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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