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5일, 생방송으로 진행되는 < KBS 연예대상 >을 흘끔흘끔 보며 김병만과의 인터뷰를 정리했다. 그 결과에 따라 인터뷰의 인트로가 달라질 것을 예감하며. 결과는 모두 알고 있듯, 이경규의 대상 수상으로 마무리되었다. 하지만 그의 인터뷰를 모두 정리하며 얻은 결론은, 결국 달라질 건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이었다. 지난 1년 동안 그가 준 웃음이 수상 여부에 따라 퇴색되지 않는 것처럼, 그가 자신의 개그와 삶의 방식에 대해 남긴 차분한 말의 무게 역시 주위의 설레발 따위에 흔들릴 게 아니었다. 커다란 맥락 안에서 의미를 갖는 인터뷰도 있다. 하지만 만약 김병만과의 인터뷰가 의미를 갖는다면 그건 온전히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이 의미 있는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우선 연예대상 후보에 오른 걸 축하한다.
김병만: 여태까지 세 번째다. 그것도 ‘달인’으로만. 사실 작년에도 그랬고 재작년에도 그랬고 후보가 됐다는 자체만으로 그냥 영광스럽고 좋다. 크게 꿈을 꾸거나 기대하지는 않는다. (이하 )를 10년째 하고 있지만 내가 좋아하는 코미디 꾸준히 가는 거지, 상을 위해 온 게 아니니까.

“나 스스로 내세울 수 있는 점은 ‘달인’을 쉬지 않고 한다는 것”
김병만│“어릴 적 성룡영화를 보고 직접 차 위를 뛰어 넘은 적도 있다” -1
김병만│“어릴 적 성룡영화를 보고 직접 차 위를 뛰어 넘은 적도 있다” -1
무엇보다 한 프로그램도 아닌 한 코너만으로 세 번 연속 연예대상 후보에 오른다는 게 대단한 거 같다. 그것도 버라이어티가 아닌 짧은 개그 코너로.
김병만: 내 기억으로도 이런 경우가 없는 거 같다. 한 코너로 3년 연속 연예대상 후보에 오른다는 것이. 내 인생에서도 최고의 순간이다. 정말 ‘달인’을 통해 모든 걸 다 해본 것 같다. 캐럴 하면서 노래도 불러보고.

까지 하고.
김병만: 정말 수 년, 수십 년 동안 코미디 쪽에서 일해오신 분들이 자기 이름 걸고 쇼를 하지 않나. 그런 쇼를 내가 했다는 게 영광스럽다. 그걸 의외로 많은 분들이 좋아해주고. 사실 그 때 걱정이 많았다. 했던 걸 다시 반복하는 거라. 다만 나 스스로 내세울 수 있었던 건, 그것들을 쉬지 않고 한다는 거? 대기실도 따로 없이 무대 뒤 한 쪽에서 옷 갈아입고 그랬다. 그랬는데 방송 나가고서 어르신들이 많이 알아봐주시더라. 할머님들도 사인해달라고 하시고. 온 가족 모이는 명절에 방영되어서 평소 을 보지 않으시던 분들도 나를 알게 되었다. 그래서 ‘달인’을 새로 시작한다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3년 연속 연예대상 후보도, 도 모두 코너의 인기가 식지 않기에 가능한 일이다.
김병만: 그런데 또 반대로 많은 분들이 계속 기대를 해주시니까 그럴수록 나는 그 기대를 저버리면 안 된다는 부담도 있다. 요즘 어떻게 보면 안간힘을 쓰는 거다. 그래서 외줄타기고 연습하고, 외발자전거도 타고. 그렇다고 너무 몸 쓰는 것만 보여주고 싶지 않아서 미술의 달인 같은 걸 할 때 내가 직접 만든 소품을 내오기도 한다.

정말 이것들을 ‘진짜’로 하고 있다. 사실 2008년 처음 후보에 올랐던 시기의 ‘달인’은 사기꾼이 달인인 척 하는 거였는데 어느 순간 진짜 달인이 됐다.
김병만: 어느 순간부터 그렇게 됐다. 원래 2008년에는 한 회에 세 개씩 했다. 허무한 거 하나, 조금 가학적이고 몸 쓰는 거 하나, 합성사진 이용하는 거 하나. 그러다 두 개로 줄어들고, 한 개로 줄어들었다. 원래 브릿지 코너이긴 했지만 하나만 하는 상황에서 너무 짧게 가면 게으름피우는 거 같아서 뭔가 땀 흘리는 걸 보여주자고 한 게 이렇게 된 거 같다. 개그란 게 결국 장기를 보여주는 거 아닌가. 그런 면에서 내 장기는 운동 쪽이니까 그걸 보여주려 했다.

그러면서 웃음 포인트도 변했다.
김병만: 전에는 우기는 걸로 웃겼다면 지금은 조마조마해 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풀어주는 걸로 웃기고 있지. 가령 사다리의 달인 할 때, 여러분이 조마조마할 필요 없어요, 내가 조마조마하면 되는 거예요, 하면서. 링의 달인을 할 때도 안간 힘 써서 매달리면서 대사를 치니까 재밌게 봐주시고.

“개그맨들은 기대를 받으면 전투력이 몇 백 퍼센트 올라간다”
김병만│“어릴 적 성룡영화를 보고 직접 차 위를 뛰어 넘은 적도 있다” -1
김병만│“어릴 적 성룡영화를 보고 직접 차 위를 뛰어 넘은 적도 있다” -1
그냥 몸을 쓴다고 뭉뚱그려 말하지만 분명 매 회 다른 분야의 다른 장기를 보여준다. 그런 면에서 ‘달인’을 위한 일주일의 과정이 궁금하다.
김병만: 녹화가 끝나면 머릿속이 되게 복잡해진다. 뭘 보여주지? 몇 주 전부터 준비하는 것들도 있지만 그건 기본이고 또 뭐가 있을까 습관적으로 고민한다. 누군가 컴퓨터 자판 치는 걸 보면, 타자의 달인 독수리 김병만 이런 건 어떨까 생각하고. 24시간 동안 생각한다. 어떨 땐 잠이 들까말까 하다가 퍼뜩 아이디어가 떠올라서 시계를 보니 새벽 3시가 넘었더라. 그냥 자면 까먹을 거 같아서 (노)우진이에게 이 아이템 기억하라며 문자를 보냈다. 모든 개그맨이 다 같을 거다. 앉으나 서나 다 자기 코너 생각이지. 이렇게 떠오른 걸 아이디어 회의 하며 얘기해보고 녹화 분량이 나올 거 같으면 해보고, 약하면 보류한다. 가령 잠수의 달인에선 예전 에서 스킨스쿠버 하는 분께 배운 걸 활용했다. 그 분은 장비를 찬 상태로 수심 5m에서 콜라를 먹는데, 나는 그 정도 깊이에서는 안 되도 수족관에서는 장비 없이 가능할 거라는 생각에 시도를 해본 거다.

혹 몸이 안 따라줘서 접은 아이디어는 없나.
김병만: 내가 내 몸을 누구보다 잘 아니까 몸이 안 따라줄 거 같으면 안 한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여태껏 과연 될까, 반신반의하면 우선 해보는데 또 다 된다. 외줄타기도 전문가에게 배워봤는데 두 시간 만에 세 번 왕복을 했다. 가르쳐주시는 분이 그러는데 특전사 분이 와서 배우는데 오전에 와서 왕복 두 번 성공하는데 오후 6시까지 걸렸다더라. 그분이 달인 맞다고 인정해주셨는데 (웃음) 그런 감각은 있는 거 같다.

말하자면 좀 타고난 건가?
김병만: 어렸을 때 자란 곳이 산골이라 위험한 게 많았다. 절벽도 많고. 어릴 때 그런 곳에서 놀아서인지 그런 감각이 생긴 거 같다. 시골에 징검다리가 많지 않나. 어릴 땐 그것도 누가 빨리 건너나 경쟁을 했다. 이 때 어떤 돌은 흔들리는 것도 있기 때문에 몸에 너무 힘을 줘서 뛰면 삐끗해서 다리를 다친다. 발에 힘을 빼고 사뿐사뿐 뛰어야 하는데 그런 걸 하다 보니 에서도 징검다리를 쉽게 할 수 있는 거다. 또 학창시절에도 위험한 짓을 많이 했다. 성룡이 영화에서 달리는 차 위를 달려서 넘어가는 걸 보면 다른 사람에게 부탁해서 차를 천천히 몰게 하면서 직접 타다닥 뛰어 넘은 적도 있다.

성룡 이야기를 했는데 희극 배우로서 성룡과 겹치는 지점이 많은 것 같다.
김병만: 처음에는 심형래 선배님 하던 거, 성룡 하던 걸 많이 따라하고 그걸 내 식대로 소화하려 했는데 나중에 보니 그게 버스터 키튼 영화에서 이미 시도된 게 많았다. 사실 버스터 키튼이라는 배우가 찰리 채플린과 동시대에 라이벌 격으로 존재했다는 건 최근에 알았다. 이걸 진즉에 알았더라면 공부할 기회가 많았을 것 같았다. 내가 생각했던, 내가 하고 싶던 위험한 몸개그가 여기에 있었다. 일종의 스턴트 슬랩스틱이지. 겹겹이 이어진 그늘막을 통통 튕기며 내려오는 그런 것. 어쩌면 같은 것일 수도 있는데 사실 는 너무 위험하고.

말 그대로 위험하다. ‘달인’ 역시 재미는 있지만 이게 실패했을 때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김병만: 그게 대책 없이 하는 게 아니라 철저히 계산해서 하는 거다. 전에 ‘김병만은 살아있다’에서 계단에 길게 펴진 매트리스에 말려 내려오는 걸 시도했었다. 그런데 내 생각에 매트리스는 말릴수록 더 두꺼워지니까 오히려 다치지 않을 것 같았고, 실제로 해보니 아무렇지도 않더라. 어떤 급소를 찾아 그 부분을 공략하는 게 중요하다. 사다리의 달인의 경우 제주도에서 중국 서커스단이 하는 걸 보고 시도한 건데, 그들은 사다리를 계속 흔들면서 올라가더라. 그게 어린 아이가 일어났을 때 넘어지지 않으려고 발을 계속 왔다갔다 디디는 것과 같은 원리다. 그래서 무대 뒤에서 나도 한 번 해보자고 해서 나름 요령을 익혀 연습한 거고.

겁이 없는 편인가.
김병만: 그런 게 있다. 모든 개그맨들이 다들 어린 아이 같은 게 있어서 남들이 자기를 보고 기대를 하면 전투력이 몇 백 퍼센트 올라간다. 잘한다, 잘한다 하면 더 잘하고, 저게 웃긴가? 그러면 상처 받고.

하지만 과거 개그맨 시험을 볼 때는 울렁증 때문에 고생했던 걸로 안다.
김병만: 낯을 많이 가리는 편이었다. 친구들과 편하게 노는 자리에서는 개그맨 뺨치게 웃긴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선생님이 나와서 노래 불러보라고 하면 목소리가 안 나오는 거다.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정답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에서는 긴장을 많이 한다. 공채 개그맨으로 뽑힌 이후에도 끼가 있어서 에너지 있게 무대 위에서 활동하는 후배들을 보면 부러웠다. 연습한 아이디어는 재미나도 그걸 무대 위에서 할 때에는 애드리브를 첨가해서 부드럽게 해야 하는데 마치 한 편의 연극처럼 짜인 그대로, 틀리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했던 게 문제였던 것 같다. 그러니까 긴장하고 틀리면 죄송하다고 말하면서 얼굴 상기되고. 그러면 다시 녹화할 때 보는 사람들도 웃기보다는 ‘저 사람이 실수하면 안 되는데’라고 생각하며 같이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그나마 ‘달인’을 하며 극복을 많이 했다. 어느 순간, ‘내가 왜 계산된 대로만 해야 하지?’라는 생각이 들며 무대 위에서 편하게 즐겨보려 했다.

사진제공. BM 엔터테인먼트

글. 위근우 eight@
편집. 장경진 thr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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