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은 잔인한 달이다. 그리고 음악이 없는 달이다. 애초에 비, 이효리, 2PM 등이 한꺼번에 돌아오는 4월은 올 한해 가요계의 방향을 가늠할 수 있는 한 달이었다. 하지만 천안함 사건과 MBC 파업 등으로 가요 프로그램은 언제 방영될지 모를 상황이 됐고, 가수들의 컴백과 함께 달아올랐던 가요계는 시간이 정지된 것처럼 새롭게 떠오른 스타도, 새로운 유행도 없이 인기 가수들의 컴백 순서에 따라 음원 차트의 순서만 바뀌고 있는 상황이다. 마치 월드컵 16강은 정해졌지만 정작 경기는 벌어지지 않는 상황. 이 이상한 휴지기가 보여주는 것들에 대해 가 분석했다. 그리고 가요 프로그램 방영과 함께 재개될 가요계의 치열한 경쟁에서 주목해야할 8개의 팀에 대한 분석과 그들이 어쩌면 연말에 벌일지도 모를 일들에 대한 농담반 진담반의 이야기를 더했다.

그룹 시크릿은 KBS 에서 숙소를 공개했다. 숙소는 반지하에 있었고, 창문은 커튼대신 은박지로 가려졌다. 그들의 신곡 ‘Magic’이 인기를 얻으면 그들의 숙소는 더 나아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의 숙소가 바뀌어도 그들의 살림살이가 나아지려면 좀 더 기다려야 할 것이다. 요즘 천안함 사건과 MBC 파업 등으로 시크릿이 활동할 무대가 없기 때문만은 아니다. 두 사건과 상관없이 시크릿이 이번 활동으로 소녀시대의 라이벌이 될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Magic’이 대중적으로 실패할 노래여서가 아니다. 이건 차라리 MBC 에서 세경이가 말한 “신분상승의 사다리”의 문제다. 시크릿이 수많은 CF출연을 보장하는 가요계의 사다리 꼭대기에 오르기까지, 그들은 한 칸씩 사다리를 올라가듯 꾸준히 성장할 수밖에 없다. 2AM이 ‘죽어도 못 보내’로 발표 즉시 각종 음원 차트 1위를 기록하기 전까지, 그들은 두 개의 미니 앨범을 발표했고, 조권은 2년여 동안 오락 프로그램에서 ‘깝’을 떨며 그룹의 인지도를 높였다. 카라도 ‘루팡’이 공개 즉시 인기를 얻기 전까지 ‘Rock you’, ‘프리티걸’, ‘미스터’로 이어지는 성장사가 있었다.

패션 산업처럼 변하는 음악 산업의 현재
가요월드컵│나 혼자 성공해서 미안해
가요월드컵│나 혼자 성공해서 미안해
원더걸스의 ‘Tell me’처럼 신드롬적인 인기를 일으키거나, 2NE1처럼 데뷔 전부터 휴대폰 CF, 빅뱅, YG엔터테인먼트(이하 YG)라는 큰 힘이 한꺼번에 더해져 신인을 정상에 올리는 건 이례적인 일이다. 지금 가수들이 지상파 음악 프로그램 불방으로 휘청거리는 건 활동 무대가 줄어들어서만은 아니다. 발표 즉시 음원차트 1위를 하는 곡을 얻기 전까지, 대부분의 가수들은 여러 단계를 거친다. 섹시한 느낌을 가미해 좀 더 강한 사운드로 몰아붙이는 ‘Magic’이 소녀적인 이미지를 강조한 데뷔곡 ‘I want you back’보다 먼저 나오지는 않는다. 애프터스쿨이 ‘Bang!’에서 그들의 압도적인 다리를 드러내는 마칭 밴드 제복을 입고 마칭 드럼 퍼포먼스를 하는 건 유이와 가희 등의 멤버들이 개인별 인지도를 쌓은 팀이 그룹으로서의 ‘포스’를 보여줄 수 있는 회심의 한 수다.

버라이어티 쇼는 가수의 지명도를 높이고, 음악 프로그램 동영상은 인터넷을 통해 순식간에 퍼지면서 음원에 대한 반응을 결정한다. 열악한 음악 시장은 가수에게 음원과 음반판매로만 슈퍼스타가 되도록 만들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CF와 음원차트 ‘올킬’이 궁극적인 목표인 가수들은 이제 그냥 음악만을 내놓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들의 현재 위치와 이미지를 고려해 정교한 콘셉트의 노래와 무대를 발표해야 성공확률이 높아진다. 그리고 음악 프로그램은 그들의 전략을 대중에게 온전히 전달할 수 있는 장소다. 음악만으로 무명의 신인 가수가 톱스타가 되던 시절에는 라디오로도 충분했다. 그 다음에는 뮤직비디오가 등장했다. 이제는 가수들이 음원과 뮤직비디오를 내놓은 뒤에도 “무대를 봐야 제대로 평가할 수 있다”는 말이 나온다. 가요 프로그램은 이런 가요 산업 시스템의 중요한 요소가 됐다.

그래서 음악 산업은 점점 패션 산업처럼 변한다. 패션 브랜드가 브랜드의 이미지와 위치, 트렌드를 반영해 신상품을 만들듯 가수들도 그 모든 요소를 고려해 자신들의 행보를 결정한다. 지난해 걸그룹은 대부분 발랄한 이미지와 일렉트로니카 사운드, 그리고 곡 시작부터 치고 나가는 멜로디가 있는 이른바 ‘후크송’들을 들고 나왔다. 하지만 올해 소녀시대, 티아라, 카라, 애프터스쿨 등은 모두 약속이나 한듯 보다 강한 여성의 이미지를 보여주고, 강한 리듬의 사운드를 초반부터 제시하면서 ‘후크송’의 반복적인 멜로디가 가진 흡인력을 대체한다. 그건 마치 패션산업에서 계절마다 새로운 트렌드에 부응하는 신상품을 내놓는 것과 같다.

소녀시대, 비, 이효리, 2AM, 2PM의 전략
가요월드컵│나 혼자 성공해서 미안해
가요월드컵│나 혼자 성공해서 미안해
그래서 지금 한국의 메인스트림 대중음악 시장에서 좋은 음악은 가수에게 대중이 요구하는 것들을 수용하면서도 대중의 기대를 새로운 방식으로 만족시키는 곡이다. 가수들은 여기서 각자의 승부수를 던진다. 소녀시대는 ‘오빠 사랑해’를 외치는 ‘Oh’와 강한 여성의 콘셉트를 내세운 ‘Run devil run’으로 연이어 활동했다. 그건 극단적인 콘셉트 변화가 오히려 대중의 흥미를 끌 수 있을 만큼 높은 인지도를 가진 소녀시대이기에 가능한 시도다. 반대로 시크릿처럼 멤버 한 명 정도만 알려진 그룹은 펑키한 사운드의 ‘Magic’으로 그들의 이전 모습을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의외의 재미를 주는 동시에 최근 걸그룹의 트렌드와는 차별화된 콘셉트를 제시한다.

또한 대중은 스타성의 정점에 오른 비와 이효리에게 그만큼 큰 기대치를 갖는다. 그리고 두 사람은 직접 음악을 프로듀싱하는 것으로 그들의 경력에 걸맞은 음악적인 증명을 시도했다. 하지만 이효리는 ‘Chitty chitty bang bang’의 뮤직비디오에서 계속 화려한 패션을 선보이고, 앨범 < h.logic >에는 자기 반영적인 이야기를 담았다. 한국 대중음악시장의 가장 대중적인 트렌드의 한 축이었던 이효리는 이제 자기 자신을 트렌드 그 자체로 제시한다. 반면 비는 ‘Rainism’처럼 뚜렷한 무대 콘셉트를 보여주는 대신 < Back to the basic >이라는 앨범 타이틀처럼 ‘널 붙잡을 노래’의 무대에서 자신의 목소리와 몸이 가진 힘을 극단적으로 밀어붙인다. 그건 지금 ‘비’이기 때문에, 혹은 비만 가능한 시도다. 또한 ‘죽어도 못 보내’로 아이돌 그룹의 강자로 떠오른 2AM은 댄스곡 ‘잘못 했어’로 그들이 보여줄 수 있는 이미지의 폭을 넓힐 수 있는 방법을 모색했다. 2PM은 팬과 안티, 그리고 그들의 성공 여부를 궁금해 하는 대중의 시선이 뒤섞인 상황에서 정면 승부를 걸어야 할 상황이다. 그들의 노래 ‘Without you’의 차트 성적에 따라 실시간으로 기사가 나오는 상황에서, 그들은 싫든 좋든 대중의 반응이 곧 그들의 모든 성패를 결정짓는 요소가 됐고, 그것은 그들의 음악과 무대에도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복잡한 마케팅 전략을 한순간에 뒤엎은 등장
가요월드컵│나 혼자 성공해서 미안해
가요월드컵│나 혼자 성공해서 미안해
마케팅 전략은 갈수록 복잡해지고, ‘신분상승의 사다리’는 점점 더 높아만 진다. 대중 역시 가수들의 현재 상황과 이미지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고, 가수들은 그런 대중의 기대를 만족시키는 동시에 참신한 느낌을 더해야 한다. 지금 메인스트림에서 음악은 ‘진부하면서도 파격적인’ 모순된 존재가 돼야 성공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요즘 음악 산업은 ‘웰메이드’는 기대할 수 있어도 가요계에 강렬한 충격을 줄 수 있는 음악이 등장하기는 점점 어려워진다. 그들은 ‘오차범위’ 내에서 성공할 수 있는 음악을 기획하고, 그것의 완성도를 높인다. 지난해 걸그룹과 일렉트로니카 댄스 음악이 붐을 이루기 시작할 때는 대중의 예상을 벗어나는 선택들이 있었다. 브라운아이드걸스는 다른 걸그룹과 똑같을 수만은 없는 그들의 상황을 ’아브라카다브라‘를 통해 단번에 해결했다. 스트릿 패션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인 2NE1은 걸그룹의 새로운 스타일을 보여줬다. 하지만 걸그룹들이 자리를 잡은 뒤, 아직까지는 이런 시도는 보이지 않는다. 그들은 대중의 예상 가능한 범위 안에서 움직인다.

음악 프로그램이 결방한다는 이유로 가요계가 정지한 것처럼 보인다면, 그건 그만큼 지금 대중이 ‘신기해서라도 듣는’ 신선한 음악이 사라졌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가수들이 노래 한곡을 만들 때마다 모든 상업적인 요소를 고려하고, 시스템이 요구하는 단계를 차례대로 밟아야 정상에 오를 수 있으며, 정상에 오른 가수들은 음원을 내놓을 때마다 당연한 듯 음원 차트 1위를 할 수 있는 상황에서 음악의 힘은 약해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유세윤의 ‘성공’은 놀랍다. 물론 그와 다른 가수들을 동일선상에 놓고 비교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그의 프로젝트 그룹 UV의 ‘쿨하지 못해 미안해’는 뮤직비디오가 인터넷에 올라간 것만으로 싸이월드 음원차트 3위까지 올랐다. 가수들의 인지도와 화제성, 그리고 발표 시기에 따라 음원 순위가 결정되는 요즘, 유세윤처럼 음원과 뮤직비디오만으로 시장의 예상을 벗어난 경우는 없다. 게다가 그의 음악은 지금 메인스트림의 트렌드와 전혀 상관없는 1990년대 올드스쿨 랩 음악이고, 뮤직비디오는 네티즌들이 올리는 코믹한 UCC와 NBC < Saturday Night Live >에 등장할 법한 감각의 코미디로 채워졌다. 그는 아직 대형 기획사도, 지상파도 잡아내지 못한 트렌드를 자기 식대로 표현했고, 가요계의 성공의 사다리를 오르는 대신 자신의 땅에서 성공했다. 이제 곧 음악 프로그램은 방송될 것이다. 가수들의 무대도 공개될 것이다. 그 때 가수들은 유세윤처럼 대중의 숨겨진 욕구를 찾아내 이런 ‘미쳤지만 멋있는’ 일을 벌일 수 있을까.

글. 강명석 two@
편집. 이지혜 seven@

© 텐아시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