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해 “나는 세상에서 제일 가는 부자”
송해 “나는 세상에서 제일 가는 부자”
11월이면 KBS 이 30주년을 맞는다. 그리고 30년 세월 중 가장 오랫동안 프로그램의 진행을 맡아 온 송해는 방송의 상징이자 중심이다. 1927년생, 고령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매주 전국 방방곡곡을 누비며 지역과 성별, 세대를 아우르며 모든 출연자에게 맞춤한 진행을 선보이는 그는 지난 28일 방송된 KBS 에 게스트로 등장해 방송의 산 증인으로서 존재감을 확인했다. 방송 30주년을 앞두고 기자 간담회를 가진 송해는 어떤 질문에도 거침없이 대답을 제시하는 것은 물론, 기자들이 미처 질문하지 못한 부분까지도 먼저 짚어주며 현장을 리드했다. 노장은 죽지도, 사라지지도 않는다. 다만 건재한 카리스마와 활력으로 후배들에게 귀감이 될 뿐이다.

이 30주년을 맞았다. 여전히 프로그램이 건재한 비결은 무엇인가?
송해 : 우선, 방송을 보시고 참여해서 응원 해 주시는 분들이 건강하신 덕분이다. 우리 방송은 오셔서 구경하고 박수치시는 분들이 꽃이다. 그리고 전 스태프가 하나가 되어 호흡이 잘 맞는다는 점도 비결이다.

“고부가 함께 춤추고 노래한 무대를 잊지 못한다”
송해 “나는 세상에서 제일 가는 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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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세월 동안 특별히 잊지 못하는 에피소드들도 많았을 것 같다.
송해 : 오늘처럼 기자들이 와서 질문을 하고, 대답을 하는 이런 순간을 잊지 못할 것 같다. (웃음) 아무래도 가족 단위 출연자가 많다. 살아온 얘기도 하고 노래도 하는데, 한번은 103세 어머니가 85세 딸과 나오셨다. 어머니가 가사가 잘 생각이 안 나시자 딸이 가사를 읽어주는 모습을 보면서 한 세기가 같이 무대에 나와 있다는 생각에 뭉클했다. 또 고부가 함께 출연해서 며느리가 노래하고 시어머니가 덩실덩실 춤을 춘 적도 있었다. 당시에는 공개적인 자리에서 고부가 같이 노래하고 춤춘다고 비난도 받았지만 가정의 갈등을 해소할 수 있는 계기가 되어서 보람되었다. 또한 장애를 가진 분들이 활개치고 노래하고 상 타는 것도 잊을 수 없다. 처음에는 사회적인 편견 때문에 시청자가 어떻게 생각할까 제작진이 고민을 많이 했다. 그러나 정월 초하루에 앞을 못 보는 분이 나오셨는데 객석에서 기립 박수가 나오고 앵콜을 두 번이나 했다. 생방송이라 속으로는 진땀이 났지만, 무대 위에서는 다 똑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증명해서 기뻤다.

출연자가 가수로 데뷔한 경우도 많았는데, 누가 기억에 남는가?
송해 : 박상철, 장미화 씨가 을 통해 가수가 되었다. 장윤정이나 현진우처럼 출연했던 것이 꼭 기반이 된 건 아니지만 출연 경험이 있는 친구들도 있고, 개그맨 중에도 출연했던 사람들이 있다.

세월이 흐르면서 출연자들의 성향이 달라지는 것을 느끼나?
송해 : 많이 부르는 노래는 해해년년 달라진다. 요즘은 우리도 어떤 흐름인지 모르는 노래들이 다양하게 등장한다. 그리고 초창기에는 다들 파마하고 한복을 입고 나왔었는데, 요즘은 민요를 부르시는 분이 아니면 특별히 부탁드려야 한복을 입으신다.

악극단 출신 1세대 코미디언으로서 에서도 코믹한 상황 연출을 자주 하는데, 인기 유지를 위한 전략이 있는가?
송해 : 그 시절 선배들이 세상을 다 떠나시고 내 위로 딱 두 분이 계셨다. 그런데 그 중에 배삼룡 선배가 돌아가셨다. 영리하지 않으면 망가지지 못하는데 그 분은 바보연기도 달인이었고, 개다리 춤을 유행시킨 장본인이었다. 구봉서 선배도 몸이 많이 안 좋으시다. 그 분들이 내게 주신 게 많다. 사회자는 그날의 목적과 순서를 지켜나갈 뿐 아니라 시대상, 이야기의 흐름, 분위기의 목적을 빨리 소화해야 한다. 그럴 때 선배들처럼 정극을 경험한 세대들은 경험이 많아서 상황을 해쳐나갈 수 있다. 요즘은 이런 말이 의미 있을지 모르겠지만, 비극을 알아야 희극을 안다.

“악단장이 주는 용돈은 모두 사비”
송해 “나는 세상에서 제일 가는 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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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협 악단장이 용돈을 주는 장면은 이제 트레이드마크 같다.
송해 : (웃음) 김인협 단장이야말로 프로그램 최고의 공로자다. 나보다 오래 한 사람이다. 사실 악단장은 내가 출연자와 이야기 할 때 무료하다. 조는 모습이 방송에 나온 적도 있었다. 그래서 내가 어차피 무대에 있는 사람이니 출연한 아이에게 세뱃돈을 주라고 장난에 끼워 넣은 적이 있었다. 긴장 하라는 거지. 한 번은 서너 살 된 3남매가 나와서 만 원씩 받아 갔었는데 스무 살이 넘어서 그 돈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가 돌려주러 나온 적도 있었다. 베풀면 돌아오는 법이다. 그거 다 악단장 사비에서 나가는 돈이다.

전국을 다니다 보면 특별히 좋은 장소가 있을 텐데.
송해 : 요즘은 지역적으로 평준화 되어서 큰 차이가 없지만 아직도 미세한 차이는 있다. 영호남은 어쨌든 화끈하고, 충청도는 풍미가 있다. 강원도는 가만히 계산을 했다가 터트리는 심사가 있고, 경기도나 서울은 깍쟁이다. 행정 구역이 바뀌면 갔던 곳을 또 가기도 하고, 지자체에서 축제를 기획하면 반드시 초대 행사로 우리를 초청한다. 특히 ‘함평 나비축제’는 지금은 세계적인 행사가 되었는데 우리가 초창기에 갔을 때는 규모가 작았다. 김흥국이 ‘호랑나비’를 부르면 인공수정한 나비를 무대로 날려 보내려 했는데 자연 상태에 겁을 먹은 나비들이 날지 않아서 애를 먹었던 기억도 난다. 어린이 공원이 개원할 때 그늘도 없는 곳에서 방송을 했는데, 그때 꼬챙이 같던 묘목들이 이제 아름드리가 되었다. 세월이 많이 변했다. 기억에 남는 장소는 아무래도 외국이다. 여유가 많으면 동포가 많지 않은 곳에도 갔으면 좋겠는데 그러질 못해 안타깝다. 작년 추석 때 중국 심양에 갔는데 4만 8천명이 입장을 해서 질서 문제로 걱정한 적이 있었다. 94년에는 평양 모란봉 공원에서도 공연을 했고, 뉴욕에서는 3번이나 녹화를 했다. 비행기를 33시간을 타고 파라과이까지 가기도 했고, 심지어 8.15 행사를 동경 일왕궁 바로 앞에서 한 적도 있었다. 기가 막히지. (웃음) 정치나 경제적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이고, 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보통 촬영을 가면 일정은 어떻게 되나?
송해 : 보통 2박 3일 정도다. 미리 내려가서 시장에서 국밥도 먹고 목욕탕에 가서 벌거벗고 얘기도 나눈다. 그래야 그 곳의 사람들과 통하게 된다.

“후임은 아직 생각하지 않는다”
송해 “나는 세상에서 제일 가는 부자”
송해 “나는 세상에서 제일 가는 부자”
그만두고 싶을 때도 있었을 것 같다.
송해 : 사람이 서있으면 앉고 싶고, 앉으면 눕고 싶고, 누우면 자고 싶다. 왜 없겠나. 하던 일이 잘 안되고 출연자와 잘 안 풀릴 때, 객석이 호응이 적을 때 내 실력의 부족이라는 생각이 들면 그만둬야 하나 고민하기도 한다.

후임으로 눈여겨보는 진행자가 있는지?
송해 : 아마 무대에서 마이크 쥐는 사람은 다 이 프로그램을 하고 싶을 것이다. (웃음) 노래자랑에 출연자가 많은 이유와 똑같다. 다들 자신이 더 잘 할 것 같거든. 그게 사람 심리다. 그러나 하고 싶다고 다 되는 일이 아니라 열심히 노력해야 한다. 정년이 없는 직업이라 다들 내가 부러울 거다. (웃음) 20주년 때는 전국의 시장 군수가 전부 꽃을 보냈었고, 그동안 내가 겪었던 연출자가 120명이 넘는다. 지독한 시어머니 120명을 겪은 셈인데 그 세월 동안 충돌과 갈등이 결국은 기억 속에서 미화되었으니 아름다운 일이다. 그러니 이제 앞으로 내가 뭘 못하겠나. 후임은 아직 생각하지 않는다. (웃음)

건강 유지 비법이 특별히 있나?
송해 : 그때 그때 풀어야 한다. 그래서 내가 술을 좋아한다. 속상한 일은 잊어버리려고 마신다. 만사가 내 마음대로 풀리면 재미가 없다. 그러나 아픈 자리를 또 그것만 쓰다듬고 있어서도 안 된다. 아픈 일은 빨리 잊어야 한다. 사실 모두 다르게 생긴 사람을 만나는 일이 참 고달픈데, 나는 사람을 만나야 사는 직업을 가졌으므로 고충이 많다. 한편으로 세상에서 제일 부자는 사람을 많이 아는 사람이다. 그게 여기 있는 송해다. (웃음) 지방에 가면 새벽에 해장국을 먹고 돈을 내 본 적이 없다. 모두가 나를 알고 반가워 해준다. 그래서 항상 즐겁고 행복하다.

사진제공. KBS

글. 윤희성 nine@10asia.co.kr
편집. 이지혜 seven@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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