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동원과 대화의 호흡을 맞추기까지는 제법 시간이 걸렸다. 에서부터 이번 까지 좀 더 대사를 빨리 말하려고 노력했다는 특유의 느릿한 말투 때문만은 아니다. 질문을 듣고 한 마디 답변을 하고 오랜 침묵, 그리고 새로운 질문을 하려고 할 때 이어지는 대답. 그는 머릿속에서 충분히 검토하고 스스로의 진심을 확인한 이후에 말을 하는 타입의 사람이다. 진정성이라는, 그저 단어로만 존재하는 것 같았던 가치를 비현실적인 외모의 판타지 스타이자 하반기 최고 기대작 의 주연을 맡은 강동원과의 대화에서 느낄 수 있었던 건 그 때문이다. 어쩌면 이날 대화의 가장 중요한 부분은 미처 활자화되지 못한 그 침묵일지도 모른다.

< M > 때는 금연 시작했다더니 담배는 다시 피우기 시작한 건가?
강동원 : 실패했다. 영화를 찍다 보면 스트레스를 받으니까 금연을 유지할 수 없다. 또 작업하다보면 술자리가 많이 생기고 그 때마다 한 대씩 피우게 됐다. 내년에 다시 끊어보려고 한다.

“부족한 걸 후회하기 보단 다음을 준비한다”
강동원│“내가 이런 연기도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 -1
강동원│“내가 이런 연기도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 -1
스트레스 얘기를 했는데 최동훈 감독도 촬영장을 지옥으로 표현했더라.
강동원 : 그런데 감독님 힘든 거랑 연기자 힘든 건 좀 다를 거 같다. 나는 그냥 여기저기 멍든 정도? 의 액션은 속도전이다. 좌충우돌 떨어지고 어디로 처박히고 두들겨 맞고 도망치는 장면들이 많다.

최동훈 감독과의 작업은 전작 , < M >의 이명세 감독과는 많이 달랐을 것 같다.
강동원 : 스타일이 정말 다르다. 둘 다 좋은 감독님답게 디테일이 좋은데 그 방식이 다르다. 최동훈 감독님이 이야기를 복잡하게 만들어나간다면 이명세 감독님은 단순한 스토리인데 그걸 되게 디테일하게 다듬는다.

게다가 이번 작품은 전통적 의미로의 상업 영화이지 않나.
강동원 : 그런데 나는 도 되게 상업적인 영화라고 생각했다. 영화 찍는 중간에 사람들 사이에서 이거 너무 예술 영화 스타일로 가는 거 아니냐고 했지만 나와 이명세 감독님만 완전 상업 영화라고 주장했다. 둘 다 뭔가 단단히 착각하고 있었던 거지. (웃음) 하지만 이번에는 정말 자신 있게 상업적인 영화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럼 이번 작품에서 증명하고 싶은 건 티켓파워인 건가?
강동원 : 그러면 좋겠다. 20대가 끝나기 전에 영화 하나가 되게 잘 되는 경험을 하고 싶다. 우선 손익분기점인 450만 명 넘긴 다음에 그 두 배까지 동원해서 대박나면 좋겠다. 그리고 연기적으로는 강동원이라는 애가 이런 연기도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

이런 연기라면?
강동원 : 재밌는 악동 캐릭터? 사실 어떤 작품을 하던지 이런 것도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은 마음은 있다. 를 할 때는 순박한 시골 총각을, 에서는 고등학생을, 에선 조선 시대 자객을 연기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은 거다.

모든 작품에서 목표를 다 이뤘나?
강동원 : 솔직히 말해 영화의 촬영이 끝나면 그 작품에 대해 내가 할 일은 다 끝났다고 생각하고 뒤도 돌아보지 않는다. 그러니 목표를 이뤘는지 확인하기보다는 다음 작품에서 잘 하도록 준비한다. 평가에 신경 쓰지 않고 무책임하게 ‘다음에 잘하면 되지’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다. 다만 작품 촬영하면서 부족했다고 느낀 것들을 내가 누구보다 잘 아니까 후회하기보다는 다음 걸 준비한다. 그게 나으니까. 아직 프로모션에 들어가지도 않았지만 도 이미 내 기준에선 다 끝난 작품이다.

그래서 홍보 기간에 힘들어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강동원 : 그럴 수도 있다. 나는 이미 앞으로 할 것만 생각하고 있는데 이미 끝났다고 생각한 걸 끄집어내야 하니까.

“나는 완벽주의자 타입”
강동원│“내가 이런 연기도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 -1
강동원│“내가 이런 연기도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 -1
어떤 동영상을 보면 인터뷰 전에 보도자료 달라고 해서 복습하는 장면이 있던데 같은 맥락인가.
강동원 : 내가 말로 설명을 잘 못하니까 조금이라도 잘 설명해보려는 거다. 일단 내가 생각하는 영화와 마케팅에서 대중에게 보여주고자 하는 모습이 다를 수 있으니까 그걸 미리 인지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혼날까봐. (웃음) 나중에 홍보팀에서 ‘그렇게 말씀하시면 안 되는데’라고 말한다.

굉장히 조심스러워하는 느낌이다. 준비되지 않은 말을 하는 걸 싫어하나.
강동원 : 싫어한다. 실수할까봐. 이런 인터뷰 자리에서는 안 그러지만 영화제 같은 조금 더 크고 말이 와전될 수 있는 자리에서 실수하는 게 싫다. 가령 ‘저희 나라’ 이런 말을 할까봐. 사실 그건 누구나 실수할 수 있는 건데 그걸 가지고 별 얘기를 다 하지 않나. 나는 남들 입에 오르내리는 게 싫다. 물론 잘했다, 잘생겼다 같은 이야기는 다 좋지만 쟤는 좀 이상하다는 식의 안 좋은 이야기는 정말 싫어한다. 막내라서 그런가? (웃음) 사랑받고 자라서?

하지만 작업할 땐 좋은 소리만 들을 수 없지 않나.
강동원 : 그럴 수는 없지. 하지만 그건 내가 더 잘 알아서 자책한다. 내 머릿속에 있는 게 분명히 있는데 아무리 해도 안 되니까. 그러다 그냥 넘어가자, 지금의 나로선 못하는 것이구나, 하면서 다음으로 넘어간다.

이번 에서는 구체적으로 뭐가 잘 안 됐나.
강동원 : 굉장히 호탕하게 ‘음하하하하하하’ 웃는 장면 같은 거? 그 장면의 전우치에게 딱 맞는 거라 생각해서 시도해봤는데 안 되더라. 그런 식으로 되게 사소한 아쉬움들이 많다.

사소한 것까지 욕심이 많아 보인다.
강동원 : 나는 되게 디테일한 편이다. 완벽주의자 타입이다.

실수를 싫어하는데다가 완벽주의자다. 그럼 잘하는 것과 실수하지 않는 것 중 뭐가 더 중요한가.
강동원 : 어려운 질문인데? 실수하면 안 되는데… 그래도 잘하는 게 더 중요하겠지. 실수는 나중에 일을 다시 못할 정도로만 하지 않으면 된다. 그게 아니라면 잘하는 걸로 실수를 묻어야겠지.

사실 남자 팬만 더 확보하면 웬만한 실수는 다 묻을 수 있다. (웃음)
강동원 : 확보되면 좋겠지만… 뭐 안 되도 상관없다. 지금도 행복하다. (웃음) 얼마 전 의 블라인드 시사가 있었는데 리서치를 보니 여자 분들은 다 내 연기에 대해 ‘매우 좋음’이라고 체크해줬더라. 그걸 보고 정말 감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를 아끼면서 봐준다는 느낌이 확 드러나니까. 그런데 남자 분들은 다 ‘보통’에 체크했다. (웃음) 연기 보통, 캐릭터 보통.

“그저 연기 잘하는 분들을 한 번 이겨보고 싶다”
강동원│“내가 이런 연기도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 -1
강동원│“내가 이런 연기도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 -1
이성 팬에게 절대적 지지를 받으면서 일상의 느낌이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에서 톱클래스 여배우를 연상케 한다. 예전에는 게임하고 만화책 보는 얘기도 하더니 요즘은 가구 만들고 산에 들어가는 얘기를 하니 현실과 더 동떨어진 것 같다.
강동원 : 그런데 정말 그랬던 것 같기는 하다. 1년 정도 가구만 만들고 살았다.

대체 가구 만들기의 어떤 매력에 빠진 건가.
강동원 : 내가 가지고 싶은 디자인을 직접 만든다는 성취감이 크다. 마감하면서 오일을 바르면 나무의 결이 살아나고 완성품이 드러나는데 정말 기분이 좋다. 또 직접 만드는 게 돈도 제법 절약된다. 테이블 만드는데 드는 원목 비용이 아마 4, 50만 원 정도일 텐데 돈 주고 사려면 어림도 없는 가격이다.

그걸 만드는 시간에 강동원이라는 배우가 CF라도 찍으면…
강동원 : 안 그래도 주위 사람들 중에서 돈 주고 가구를 사고 다른 일을 하라고 하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정말 내가 즐거워하는 일만 하자는 주의다. 내 좌우명이 ‘지지자 불여호지자 호지자 불여낙지자(知之者 不如好之者 好之者 不如樂之者)’다.

하지만 즐거운 걸 찾아서 하더라도 그게 일이 되는 지점이 결국 생기지 않나.
강동원 : 그런 건 확실히 있다. 화보 찍는 것도 처음에는 즐거워서 시작했다가 옷을 열두 벌씩 준비해야 하면 뭘 선택해야 할지 고민하고 귀찮아진다. 하지만 시작한 걸 끝을 내야 하니까. 또 그걸 귀찮은 걸 참고 다 해놓으면 뿌듯할 때가 있다. 어쨌든 최대한 즐거운 일만 찾고 그게 안 되도 즐겁게 하려고 한다.

그럼 연기라는 일은 어떤 방식으로 즐겁게 하려고 하나.
강동원 : 나는 경쟁을 굉장히 즐긴다. 집에서 을 할 때도 2인용으로만 한다. 조금 예민한 얘기가 될 수도 있는데 작품을 할 때도 감독님이나 상대배우, 혹은 촬영감독님을 경쟁상대로 삼고 혼자 그 경쟁을 즐긴다.

그럼 에서는 무엇이 승부 근성을 자극하던가.
강동원 : 일단 엄청난 배우진이다. 나는 성격이 약간 삐딱해서 정말 장난 아닌 선배님들과 촬영하면 한 수 배우겠다는 생각보다는 따라잡아야겠다고 생각이 든다.

그래서 이겼나.
강동원 : 사실 실제로 이기고 지는 결과는 없지. 그저 연기 잘하는 분들을 한 번 이겨보고 싶다는 거다. 그래야 불꽃 튀고 재밌지 않나.

인터뷰, 글. 위근우 eight@10asia.co.kr
인터뷰. 윤희성 nine@10asia.co.kr
사진. 채기원 ten@10asia.co.kr
편집. 이지혜 seven@10asia.co.kr

© 텐아시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