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은 다양한 방식으로 존재한다. 생활고에 찌든 소시민의 얼굴을 하고 있을 수도, 복면 도둑으로 위장하고 있을 수도, 대기업 총수로 마음껏 선의를 펼칠 수도 있다. MBC 의 도혁(이준기)은 스스로 삼류라고 말하는 신문사의 기자다. 그리고 에서 기자는 스스로의 의지만 있으면 사회 정의를 구현할 수 있는 존재로 그려진다. 영웅에게는 가장 효과적인 위장막이자 무기인 셈이다. 일지매나 홍길동처럼 활극을 펼치지 않고도 자신만의 방식으로 정의를 위해 싸울 수 있는 도혁은 과연 그들과 다른 영웅상을 제시하고 있을까? 위근우 기자와 윤이나 TV평론가가 말한다. /편집자주

아버지는 영웅이었다. 약자들이 처한 문제의 본질을 성찰하고 그들의 아픔에 같이 아파할 줄 알았으며, 그것들을 공론화할 능력과 용기도 있었다. 하지만 신념보다는 경제적 이익의 추구가 내면화된 사회에서 자신이 속한 신문사의 모기업에 관한 비리를 파고들 정도로 순결한 영웅의 자리는 없었다. MBC 를 이끄는 도혁(이준기)과 대세그룹 최 회장(최정우) 의 악연과 갈등은 과거의 영웅이라 할 수 있는 도혁의 아버지 진언의 죽음에서 비롯된다. 즉 이 드라마는 제목과 달리 영웅의 죽음과 함께 시작된다. 그것은 한 시대의 종언이다. 15년이 지난 현재, 진언과 달리 해성(엄기준)으로 대표되는 대세일보의 기자들은 사주의 충실한 직원 노릇을 한다. 그래서 는 영웅이 떠나고 영웅이 등장하기 어려운 시대에 과연 어떤 방식으로 약자들이 싸울 수 있는지 질문하는, 아니 질문했던 드라마다.

효율도 명분도 결여된 싸움의 방식
<히어로> vs <히어로>│정의와 마감, 둘 다 잡으셨습니까
vs <히어로>│정의와 마감, 둘 다 잡으셨습니까" />대한민국 대표 ‘찌라시’ 먼데이 서울을 거쳐 용덕일보에 안착한 도혁이 해성에게 “잘난 대세일보는 너 같은 일류 인생 기사만 쓰는 모양인데, 우리 삼류 용덕일보는 삼류 인생들 기사만 쓸까 하거든”이라고 말하는 장면은 그 얄팍한 이분법에도 불구하고 어느 정도는 진실이다. 거대기업 회장이 사주로 있는 신문에게서 독립적인 목소리를 기대하는 건 순진한 생각이다. 실제로 대세일보는 종종 드라마의 리얼리티가 떨어질 정도로 최 회장의 사회봉사와 출마 소식에 상당한 지면을 할애하며 대세그룹의 충실한 이데올로그 역할을 한다. 그에 반해 광고가 없어 광고주의 압박으로부터 자유로운 용덕일보는 재개발 때문에 보금자리로부터 밀려난 사람들에 대한 기사를 쓸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그 이후다. 매체가 힘을 갖는 것은 독자의 리액션이 따라올 때다. 그래서 중요한 건 싸움의 방식이다.

도혁은 신문고 같은 신문을 만들자고 했지만 신문고는 그 자체로 나라님이 들어주는 권위의 미디어다. 즉 진언이 있던 시기의 대세일보라면 가능할 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현재의 용덕일보에게 가능한 것은 기사 하나로 사람들을 감화시키는 것이 아닌, 끊임없이 물고 늘어져 이슈를 공론화하는 것이다. 용덕일보가 인터넷 기반 매체가 된 건 그래서 의미 있는 한 걸음이다. 그럼에도 용덕일보와 에게 독자의 반응은 한 번도 중요했던 적이 없다. 사실 그럴 필요가 없다. 특종 한 방이면 정의를 바로 세우는 게 가능하기 때문이다.

결국 는 무협 활극으로 귀결되는가
2009년에 진언과 같은 영웅이 등장하기 어려운 건 단순히 정의롭고 능력 있는 사람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명확한 단 하나의 적을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는 결국 언론이 사주의 이익을 대변하는 자본주의 시스템 대신 최 회장이라고 하는 가시적 대상만을 겨냥한다. 최 회장은 언론과 경제력 모두를 갖춘 거물이자 이익을 위해 얼마든지 잔인해질 수 있는 인물이지만, 동시에 데스크를 압박하는 편하고 위험부담 없는 방법 대신 청부살인으로 진언의 기사를 막고, 적당한 보상으로 달래는 대신 납치로 혼외자식에 대한 사실을 숨기는 멍청한 인물이기도 하다. 이토록 치명적인 도덕적 치부를 드러내는 특종 하나라면 공론화도 뭣도 필요 없이 이 거물의 심장에 비수를 꽂을 수 있다. 때문에 룸살롱 사장 납치 사건의 배후에 최 회장이 있다는 걸 알게 된 도혁은 아버지가 그랬던 것과 특별히 다르지 않은 방식으로 이 악과 맞서는 게 가능하다. 여기서 새로운 싸움의 방식과 서사를 모색하는 것 같았던 는 결국 영웅이던 아버지의 뒤를 잇는 주인공이 등장해 적을 물리치는 무협지식 영웅담으로 후퇴한다. 영웅을 죽이며 2009년의 답답한 현실을 열었던 드라마가 다시 영웅을 불러들이며 판타지로 선회한 셈이다. 삼류를 대변하겠다며 위험에 뛰어든 도혁에겐 미안하지만 굳이 우리 이름을 팔지 않고 싸웠으면 싶은 건 그래서다.
글 위근우

“잘 생겼잖아.” 차기 대권주자로 나선 대세그룹 최 회장(최정우)의 기자회견을 보며 재인(윤소이)의 엄마는 말한다. 그가 잘생겼고, 청렴하게 기업을 운영하고 있으며, 가정적이고, 사생활도 깨끗하기 때문에 대통령 선거에 나오면 표를 줄 생각이라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이 MBC 가 말하는 ‘보이는 것’만 믿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대한민국 대표 기업인 대세그룹의 회장이며 대세일보의 사주인 최 회장의 진짜 모습은, “청렴한 기업가”의 외피를 쓰고 용역을 사주하여 비리와 악행을 저지르고, 룸살롱 사장과의 사이에서 낳은 제 자식의 죽음에도 눈 하나 깜박하지 않는 절대 악이다.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것만 믿지만, 보이는 것이 다는 아니다. 이렇게 는 보이는 것들에 속아 보이지 않는 진실을 드러내 보여주고자 한다. 이를 위해 ‘보이는 것’의 세상을 만드는 거대한 권력 앞에서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던 소시민들은 ‘용덕일보’를 향해 모여든다.

제2호 만큼이나 히어로되기가 요원한 용덕일보
<히어로> vs <히어로>│정의와 마감, 둘 다 잡으셨습니까
vs <히어로>│정의와 마감, 둘 다 잡으셨습니까" />자칫하면 뻔한 이야기로 빠져들기 쉬운 소시민, 루저, 삼류들이 거대권력에 맞서는 도식적인 구도는 도혁(이준기)의 시선으로 반전된다. 도혁은 최 회장을 개인적인 복수의 대상이 아니라, 스스로 사회적으로 억울하고 불쌍한 사람들의 입장에 서서 그 반대편에 서 있는 인물로 최 회장을 바라본다. 도혁에게 이러한 생각을 심어준 것은 용덕(백윤식)이다. 용덕은 또 다른 과거의 자신이 되어버린 칠성(주진모)이 그러하듯 계속해서 반복되는 악의 고리를 끊으려고 하고 있고, 그 거대한 악의 고리를 끊어내기 위해서는 자신의 15년 감옥생활에 대한 복수가 우선이 아니라 최 회장과 대세그룹을 향한 생각 자체를 변화시켜야 하는 것이 먼저임을 알고 있다. 그래서 보이는 것 이면의 이야기를 전해주고, 아무도 대변해주지 않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용덕일보가 필요한 것이다.

하지만 의 가장 큰 문제점은 바로 그 용덕일보의 존재를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도혁은 자신의 행동이 복수도 아니고, 이기기 위해서도 아니라고 말했지만 지금까지의 모든 사건들이 실질적으로 도혁과 연관되면서 도혁이 최 회장과 대세 그룹의 비리를 찾기 위해 발로 뛰는 것의 목적이 모호해지고 말았다. 최 회장과 대세 그룹이 저지른 악행이 사회 전반의 문제로 확대되지 않고 도혁 주변에만 집중된 것은 극을 진행하기에는 수월할지 몰라도 기자로서의 도혁과 용덕일보의 역할은 축소시키는 것이다. 아직 제 2호를 발간하지도 못한 용덕일보는 그저 용덕과 도혁, 기자들이 모여서 도혁의 복수를 돕기 위한 구실쯤으로 기능하고 있다. 대개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은 용덕의 조언과 도혁의 활약이 그 중심으로, 드라마가 반이 지나도록 용덕일보는 ‘조폭신문’의 불명예를 아직 떨쳐버리지도 못했다. 그래서 도혁이 최 회장에 맞서는 지금 상황은 개인적인 복수와 특별히 차별화되지 않는다. 용덕과 도혁은 모두 자신들이 하는 일이 개인적인 복수가 아니라 사회의 인식의 변화에 도전하는 상식적이고 정의로운 일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용덕일보 자체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끊임없이 최 회장 주변을 맴돌며 기사거리를 찾는 일은 이야기를 단조롭게 만들 뿐이다. 거기에 주재인(윤소이) 경위를 비롯한 경찰들은, 초반 ‘도혁의 개인 경찰’ 이냐고 일갈하던 재인의 말처럼 정말 도혁이 가져다주는 일감만을 받아 해결하고 있고, 해성(엄기준) 역시 악역을 위한 악역처럼 묘사되고 있어 도혁과 재인, 혜성 사이의 관계의 긴장감도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싸움은 이제 시작이다
용덕일보는 대어를 너무 일찍 낚았고, 는 너무 늦게 본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했다. 7, 8회에 이르러서야 최 회장이 ‘공공의 적’인 것이 모든 면에서 확실해졌고, 도혁에게 조언을 해주는 역할로서만 드러나던 용덕이 위험에 처하면서 갈등은 심화되었다. 그래서 의 진짜 이야기는 반환점을 돌기 시작한 이제 막 다시 시작한다. 그렇다면 나머지 시간 동안만이라도 이들이 ‘히어로’인 이유를 다운 방식으로 보여줄 필요가 있다. 재인이 말한 것처럼 “도혁 씨의 방식으로 패주는 것”은 ‘기자’로서, 펜으로, 보이지 않는 것을 드러내면서 싸우는 것이다. 그렇게 싸운다면, 도혁의 말대로 이기고 지는 것은 중요한 것이 아닐 것이다. 스스로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최선을 다해 하는 것이 때로는 이기는 방법이 되기도 한다는 것을 가르쳐 줄 수는 있을 테니까 말이다. 지금의 는 용덕일보를 통해 ‘대세’인 대한민국 1%에게 통쾌한 한 방을 날리지도 못하고, 하자투성이의 평범한 사람들을 이 시대의 ‘히어로’로 만들어 줄 밑바탕을 마련하지도 못한 채 제대로 된 싸움을 시작하지도 못하고 있다.
글 윤이나

글. 위근우 eight@10asia.co.kr
글. 윤이나(TV평론가)
편집. 이지혜 seven@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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