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저들을 위한 패션사용 설명서
전설 따윈 믿지 않아도 희망을 잃지는 말 것. ‘자고 일어나니 루저가 되어 있더라’ 지금쯤 비탄에 빠져있을 당신과 당신의 남자를 위한 ‘루저 탈출팩’ 사용설명서.

1) 구성 요소
줄자
키높이 깔창
깔창을 적절히 숨겨줄 하이톱 스니커즈
깔창을 숨길 수 있을 만큼 발목이 높게 올라오는 데다 겉으로 드러난 굽까지 높은 YSL 앵클부츠(YSL의 가격이 부담스럽다면 브랜드는 무시할 것. 어차피 우리는 모두 루저!)
바지통이 적당한 스트레이트컷이나 부츠컷 팬츠
화이트셔츠
핀스트라이프 수트
내로(narrow) 타이
포켓스퀘어, 모자, 머플러, 컬러풀한 안경 등 각종 액세서리

2) 사용법
루저지만 똘똘한 친구가 있다면 집으로 부른다. 줄자를 그의 손에 들려준 다음, 당신의 몸 여기저기를 재게 한다. 당신도 친구 몸의 여기저기를 재준다(같은 루저끼리라도 루저의 아킬레스건인 키를 재는 것은 상대방에게 실례가 될 수 있으니 주의한다). 가슴둘레, 목둘레, 팔길이, 허리둘레, 바지 안쪽과 바깥쪽 솔기 길이 등을 메모지에 적어둔다. 누군가에게 쇼핑을 부탁하거나, 인터넷 쇼핑, 예고된 옷 선물에 대비해 이 사이즈를 반드시 숙지한다. 키가 조금이나마 커 보이고 싶다면 몸에 맞는 옷을 입어야 한다. 특히 바짓단은 구두굽이 보이도록(가능하다면 더 짧게) 수선하라. 질질 끌리는 바짓단만큼 키를 작아보이게 하는 것도 없다.
② 스키니 실루엣은 키 작은 남자에겐 쥐약이다. 다리의 결점을 드러냄으로써 자칫 다리를 더 짧아 보이게 하기 때문. 와이드 팬츠 또한 키가 작아 보이게 만드는 건 마찬가지. 아무리 날씬한 사람이라도 와이드 팬츠를 입으면 ‘루저’처럼 보인다. 키가 작은 남자에겐 부츠컷이나 스트레이트컷 실루엣이 좋다. 스트레이트컷을 골랐다면 길이를 발목 정도까지 오게 수선해 입되 납작한 스니커를 신어라. 부츠컷을 선택했다면 적당한 굽이 있는 워크 부츠나 구두를 신고(키높이 깔창은 필수!) 발등을 살짝 덮는 길이로 바지를 수선해 입어라. 스키니나 와이드 실루엣을 입었을 때에 비해 3센티미터는 충분히 커 보일 것이다.
③ 검은색을 비롯해 짙은 색은 사물을 작고, 날씬해 보이도록 하는 반면, 흰색을 비롯한 밝은 색들은 사물을 팽창해 보이도록 한다. 특히 수트를 입을 때는 화이트나 아이보리 컬러 셔츠를 입으면 키가 커 보인다.
④ 키 작은 남자가 앞코가 뾰족한 신발을 신으면 더 작아 보인다. 지나치게 큰 신발도 마찬가지. 사각형에서 모서리만 살짝 둥글린 앞코를 가진 스퀘어 토 신발이 가장 무난하다.
⑤ 작은 키를 감출 수 없다면 사람들의 시선이 ‘머리부터 발끝’이 아닌 몸의 어느 한 지점에 머물게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가장 좋은 도구는 액세서리다. 커다란 목걸이나, 시계, 브로치, 포켓 스퀘어 등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좋다. 특히 모자는 가장 좋은 도구다. 사람들의 시선을 끌어당기는 효과를 낼 뿐 아니라 머리 위에 무언가를 얹음으로써 키가 더 커 보이는 효과까지 노릴 수 있다.
⑥ ‘루저’들이 토로하는 가장 큰 어려움 중 하나는 키가 작아 존재감이 없어 보인다는 것이다. 그러나 클래식한 분위기의 핀 스트라이프 수트를 이용하면 얼마든지 상대에게 당신의 존재감을 확인시킬 수 있다. 키가 작은 데다 마르기까지 했다면 더블브레스트 수트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더블브레스트 수트는 앞섶에 단추가 두 줄로 달려 있어 몸통이 넓어 보이는 데다 앞섶까지 두 겹으로 여며지므로 체구가 커 보인다. 위아래 단추 사이의 폭이 좁은 것을 선택하면 키도 커 보이는 효과를 낼 수 있다. 단, 키가 작고 뚱뚱한 사람이라면 더블 브레스트 수트는 피해야 한다.
⑦ 폭이 넓은 넥타이는 작은 체구를 더욱 돋보이게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넥타이는 폭이 좁은 것으로 고른다. 이때 길이를 약간 짧은 듯하게 매면 효과가 배가된다.
⑧ 키가 작은 사람이 늘어지는 느낌의 상의를 입으면 더 작아 보인다. 상의는 짧은 것으로 선택하고, 하의도 약간 짧은 듯한 느낌의 길이로 매치하면 전체적으로 시선이 위로 향하게 되면서 키가 커 보이는 효과를 낼 수 있다. 이때 상의와 하의의 컬러는 비슷한 계열로 맞추거나 같은 색으로 맞추어야 시선의 분산을 막을 수 있다. 단, 상의끼리는 컬러 대비감을 살리는 것이 좋다. 짙은 감색 점퍼를 입었다면 감색 바지를 입고, 조끼는 자주색으로 선택하는 게 그 예. 슈트라면 검은색 재킷과 흰색 셔츠, 아이보리 셔츠와 감색 재킷 등을 매치할 수 있다. 이때 모자나 스카프, 머플러 등을 이용해 상의 쪽에 포인트를 주면 시선이 위쪽에 머물게 됨으로써 작은 키를 보완할 수 있다.

3) 반드시 지킬 것
① 위의 팁들을 적절히 활용한다.
② 이번과 같은 ‘루저의 난’이 다시 일어날 경우, 지나치게 과민반응하지 않는다. 과민반응을 보일 경우, 키와 무관하게 진짜 ‘루저’처럼 보일 수 있다.
③ 아무리 해도 루저에서 벗어날 수 없다면, 혹은 만사가 귀찮다면 루저임을 즐긴다. <스킨스>에 나오는 ‘찌질이’들도, <빅뱅이론>의 ‘찐따’들도 다 루저다. 지금은 바야흐로 루저들의 시대, 이제 그 누구도 위너들의 뻔한 성공 스토리에 관심을 갖지 않는다.

글. 심정희 ( 패션디렉터)
편집. 장경진 (three@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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