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종 시상식의 레드카펫 위에 선 여배우들의 드레스를 품평하고, 신사동 가로수길과 하라주쿠 캣츠 스트리트를 거닐며 윈도우 쇼핑을 한다. 쇼핑에 지치면 그곳의 가장 핫한 플레이스에서 잠시 수다를 떨어도 좋다. Mnet <트렌드 리포티 필>과 스토리온 <토크&시티>가 전하는 풍경이다. 패션과 스타일, 유행을 다룬다는 점에서 이 두 프로그램은 거의 다를 바 없는 자세를 취하지만 그 방식은 조금 다르다. <트렌드 리포트 필>이 패션의 한가운데에 있는 스타일리스트와 디자이너, 모델의 입을 빌려 트렌드를 소화하고픈 10대-20대 여성들에게 리포팅을 하는 모양새라면, <토크&시티>는 트렌드에서 그리 멀지도 가깝지도 않으나 친근한 진행자들이 30-40대 여성들에게 요즘 유행하는 것들에 대해 수다를 떠는 자리다. 굳이 패션에 관심이 없어도 케이블 채널을 틀면 우수수 쏟아지는 스타일 관련 프로그램들 중에서 서너 번의 시즌을 거치며 여전히 장수하고 있는 두 프로그램을 <10 아시아> 강명석 기자와 김교석 TV평론가가 엣지 있게 비교 분석했다. /편집자주

“패션 잡지계의 노홍철입니다!” Mnet <트렌드 리포트 필>의 4시즌 MC 노홍철이 한 패션 에디터를 소개한다. 옆 자리의 패널 이윤정은 ‘워스트 패션’을 노리고 온 몸을 분홍색으로 휘감았다. 두 사람의 등장은 곧 <트렌드 리포트 필>의 방향 전환과 같다. 3시즌까지 <트렌드 리포트 필>의 MC는 최여진 같은 ‘패셔니스타’였고, 옆 자리의 패션 관계자들은 전문가적인 입장에서 자료화면 속 셀러브리티의 패션에 대해 조목조목 설명했다. 셀러브리티의 패션 탐구와 해외 트렌드 탐방, 그리고 때론 패션 에디터 심정희가 자신이 진행하는 화보 촬영 현장을 보여줬던 이전 시즌은 마치 ‘W TV’나 ‘보그 TV’ 같았다. 물론 4시즌에서도 디자이너 하상백은 미국에서 프라다 신상 백을 소개하고, 가격이 공개되는 셀러브리티의 드레스는 입이 벌어질 만큼 비싸다.

노홍철의 <트렌드 리포트 필>, 조금 달라졌다

하지만 노홍철은 그 코너들 사이에 패셔니스타가 아닌 패셔니스타같은 ‘예능인’인 자신의 캐릭터를 각인시킨다. 그는 워스트 패션을 노렸지만 다른 사람들을 생각해 옷의 수위를 약간 자제했다는 이윤정에게 “그걸로도 충분히 워스트”라 말하고, 슈퍼모델 강소영에게 자기 취향의 옷을 들고 “입어봐 입어봐 입어봐”하며 추천한다. 옆 자리의 이윤정 역시 패션에 대해 말하다가도 멋진 남자만 나오면 환호를 지른다. 4시즌은 패션 전문 프로그램이기도 하지만 ‘패션 예능’의 성격이 가미된 셈이다. 셀러브리티의 패션에 대해 말하던 ‘올 어바웃 셀러 브리티’도 기존의 베스트/워스트 뽑기 대신 KBS <샴페인>의 ‘이상형 월드컵’같은 ‘패션 배틀’ 형식으로 변했다.

물론 노홍철이 출연한다고 해서 <트렌드 리포트 필>의 성격이 크게 변하지는 않는다. 출연자들도 가격을 보고 들고 있던 아이템을 내려놓는 이 프로그램에서 패션은 입는 것이 아니라 구경하는 것이고, 노홍철의 역할은 대부분의 시청자들이 거리감을 느낄 <트렌드 리포트 필>에 더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창구가 되는 것이다. <트렌드 리포트 필>에서 하상백이 셀러브리티의 1000만 원짜리 드레스 대신 동대문의 5만 원짜리 진을 소개할 게 아니라면, <트렌드 리포트 필>이 더 많은 시청자를 끌어들이는 방법은 스튜디오에서 노홍철의 주도로 벌어지는 수다뿐이다. 그리고 노홍철은 회가 갈수록 그 기대를 만족 시킨다. 첫 회 오프닝만 해도 작가가 써준 글을 읽는 것처럼 입에 달라붙지 않던 말을 하던 그는 4회에서 최강희의 레드 카펫 드레스의 아쉬운 점을 자기 특유의 톤을 유지하며 이해하기 쉬운 언어로 풀어냈다. 패션 잡지가 반드시 프라다 백을 살 사람만 보는 것이 아니듯, <트렌드 리포트 필> 역시 그와 비슷한 길을 걸으려는 시도를 하는 것은 아닐까.

‘보그 TV’ 대신 <스타일>

물론 그것이 성공할지는 미지수다. 노홍철을 비롯한 출연진의 수다가 살아나기 위해서는 출연자들뿐만 아니라 패션 전반에 대해 보다 거침없는 이야기들이 튀어나올 필요가 있다. 특히 ‘올 어바웃 셀러브리티’에서 패션에 대해 품평하는 그들의 태도는 이전 시즌보다는 시끌벅적 하지만, 여전히 일정 선을 넘지 못한 채 조심스럽게 진행된다. 지금까지의 <트렌드 리포트 필>이 정제된 분위기의 패션 잡지였다면, 노홍철의 <트렌드 리포트 필>은 좀 더 웃긴 <스타일>처럼 패션에 대한 이야기로 흘러갈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지금도 클러치 백 같은 단어들이 여전히 생소한 사람에게는 지난 시즌보다 한결 편하게 볼 수 있긴 하지만 말이다.
글 강명석

‘트렌드의 중심!’을 외친 삼남매가 벌써, 100회를 넘기고 세 번째 시즌을 진행중이다. 이런 프로그램이 아니라면 패션잡지를 사물로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올 가을 트렌드가 블랙과 레이어드라는 것을 어찌 알 수 있겠는가. 게다가 이 삼남매는 엣지 있는 올 가을 트렌드를 말로만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압구정과 청담동 일대를 거의 미세 현미경으로 훑듯이 뒤지며 당신도 직접 가서 도전할 수 있음을 끊임없이 환기시킨다. 이 모든 과정이 수다 속에서 벌어진다. 패션의 전도사, 가정 방문 교사였던 잡지가 텔레비전 안으로 걸어 들어온 것이다.

<토크&시티>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말은 패셔니스타, 엣지, 잇백, 신상, 핫 플레이스 등이다. 그런데 위의 단어와 이질적임에도 유독 엄청나게 많이 사용되는 말이 바로 ‘싸다’이다. 거기다가 하유미, 우종완, 김효진이라는 패션으로만 묶기에는 다소 이질적인 조합까지. 이제 뭔가 명확해진다. 디자이너, 메이크업 아티스트, 젊은 배우들이 주로 등장하는 <트렌드 리포트 필>이 하이패션, 클럽, 파티, 스튜디오 등 패션 피플들의 사교계와 전 세계 패션 메카의 언저리를 보여주고자 한다면 <토크&시티>는 서울의 30대 이상 여성들이 쇼핑과 맛집 탐방까지, 하루나들이 코스를 제안한다.

삼남매가 전하는 <토크&시티>의 엣지

TV와 드라마에서 본 바로 그 머스트 잇 아이템을 30분의 1인 가격으로 소개하니까 <토크&시티>라는 우종완의 말은 최저가와 트렌드라는 두 마리 토끼를 쫓고 있는 <토크&시티>의 정체성을 잘 드러낸다. 그래서 매장정보 소개를 가장 기본으로 하고 그 위에서 패셔니스타의 스타일과 계절 트렌드를 알아본다. 요즘 같은 가을에는 퍼와 가죽이 제격이라며 소개하고 ‘보헤미안 룩 연출시 노출보다는 자연스럽게 몸의 실루엣을 살리는 게 관건이다’ 같은 코디 팁을 직접 입어보며 설명한다. ‘우 선생의 패션스쿨’ 같은 코너를 활용해 유행하는 패션 용어들도 정리해준다. 글래머 하유미와 평범한 김효진이 시청자의 눈높이의 옷태 역할을 하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우종완은 그에 대한 해석을 변사 이상으로, 감수성과 상상력에 기반을 둔 온갖 찬사와 천변만화라 할 만한 언어 묘사력을 보여준다. 심지어 조개구이 앞에서 ‘용왕이 된 것 같다’라고 말하니 정말 대단한 어휘력과 상상력이다.

이 프로그램의 엣지는 여기에 있다. 이들의 수다는 유쾌하면서도 찰 져서 훨씬 더 친근하고 믿음직스럽다. 하이패션만을 추구하지도 않고 우린 세련됐지만 너희와 비슷한 사람들이다, 주머니 사정을 고려한다는 동질감을 심어준다. 그러면서 이것도 아직 안사고 있느냐는 반문은 세일 소식과 맞물려 용솟음치는 욕망에 부채질을 가한다. TV앞에 앉는 것만으로도 패션피플이 될 것만 같은 기분, 강남권에 살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그 세상에 편입한 것 같은 심정, 이들이 말한 옷과 비슷한 것을 장만하고, 여기서 소개된 가게를 알고 있으면 트렌드세터가 된 것과 같은 착각. 이 프로그램은 여성지 혹은 하이틴 잡지의 역할과 똑같다.

<트렌드 리포트 필>과 다른 점

이들이 칭송해마다 않는 패셔니스타는 사실 정말 패션을 앞서가는 사람이라기보다 그냥 유명 연예인 스타다. 패셔니스타 따라잡기 코너는 하이틴 잡지나 여성지에서 오려낸 모델이나 연예인의 모습을 따라하고 유행을 쫓는 것과 비슷하다. 이를테면 드라마 <스타일> 속에 나왔던 김혜수의 옷을 직접 보여주고 그와 관련된 에피소드를 들려주는 것을 보고, 그와 비슷한 것을 따라하는 식이다.

그러나 “패션을 사랑하는 분들 모두 당신이 베스트드레서예요”라고 용기를 불어넣지만 용기만으로 안 되는 게 외모다. 그래서 스타의 패션 따라 하기, 패션계의 반 발짝 뒤에서 유행에 편승하는 법을 아무리 세련되게 알려준다 해도 2년만 지나고 보면 가장 촌스러울지도 모를 멋에 도전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게 될 수도 있다. ‘참 엣지 있다’란 말 뒤편에 도사린, 결국 ‘누구누구st’는 트렌드의 선도와 이율배반적인 명제임을 직시해야 한다.
글 김교석

글. 강명석 (two@10asia.co.kr)
글. 김교석 (TV평론가)
편집. 이지혜 (seven@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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