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는 ‘걸’을 만들어 냈다. 그리고 그들은 발칙하지만 즐거운 단어 ‘플레이’를 제 이름 앞에 달았다. 반짝이는 음악을 만들던 ‘스마일즈’의 진마가 일본인 보브와 함께 결성한 ‘플레이보이’가 기획한 ‘플레이걸’은 발칙하도록 반짝이는 소녀 3인조다. 그리고 이들이 첫 EP에 담아낸 <플레이걸의 24時>는 발랄한 즐거움으로 가득하다. 은밀한 105번 버스를 타고 해피 매니아의 주문 ‘핑키 퐁키 몽키 동키’를 외치는 가사의 아기자기함과 단순하지만 오밀조밀한 안무에 어떤 이들은 낯선 간지러움을 느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어리둥절함과 당혹스러움 너머에 있는 소녀들의 세계는 낭만과 순수함으로 가득하다. 그리고 그것은 21세기에는 만날 수 없는 그런 색감과 촉감으로 채워져 있다.

홍대 인디 신, 여신보다 소녀들!

그러나 소라, 단비, 은별로 하나하나 분리된 소녀들은 너무나 뚜렷한 21세기의 아이들이다. 일찌감치 ‘스마일즈’의 멤버로 활동했던 소라는 이 과거지향적인 프로젝트에 참여하기 전부터 그녀가 태어나던 해에 데뷔한 이지연이나 1970년대 일본 아이돌인 아사오카 메구미를 좋아했다. 그리고 그녀가 섭외한 은별은 “모닝구 무스메나 베리즈 코보 같은 최근 일본 아이돌 그룹”을 섭렵했기 때문에 ‘플레이걸’의 콘셉트를 쉽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이들은 같은 학교 스쿨밴드에서 ‘너바나’나 ‘그린데이’가 아니라 ‘홀’을 연주하는 덕분에 “이상하고 난해한 아이들”이라는 소문을 달고 다녔던 전력이 있기도 하다. 또한 소라는 순수 미술을 전공하고 있으며, 은별은 교회를 열심히 다니는 신실한 친구다. 하나로 묶어 낼 수 없을 것 같은 다채로운 정보와 경험 속에서 이들은 재단되지 않은 비전을 발견한다. 그것은 용기나 도전이 아닌 그저 ‘즐거운 시도’일 뿐이다. 공연 중에 천연덕스럽게 그네를 타느라 다쳤던 허리가 말끔히 나았다며 개인사를 이야기 해놓고서 “역시, 젊음은 좋은 것이에요”라고 웃으며 멘트를 덧붙이는 단비의 낙관주의를 더하고 보면 더더욱 그렇다. 가볍지만 결코 희미하지 않은 즐거움. MR에 맞춰 춤을 추지만 이들이 틀림없는 인디 뮤지션이며 현대적인 팀이라고 말할 수 있는 근거가 여기에 있다.

까르르르, 소녀들의 삼중창은 이제 시작이다

그러나 아무런 준비 없이 무대에 올라 즐거울 수는 없는 법이다. 콘셉트에 맞춰 밋밋하게 프로듀싱한 보컬 때문에 “노래를 못한다는 혹평을 들을 때는 상처도” 받지만, 그것이 이들의 지향이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캔디즈나 핑크레이디 같은 일본 여성 아이돌 그룹을 콘셉트로 했지만, 복고적인 무대를 재연하는데 그치는 건 의미가 없잖아요. 그래서 한국적인 지점들을 보여주고 차별화 하려고 고민을 많이 했죠. 저희가 앨범에서 커버한 장덕 씨나 국보자매, 세또래도 많이 참고했구요. 발성에서 밴딩을 없애고 가능한 플랫하게 부르려고 했어요”라는 소라의 말은 이들의 즐거움이 소멸되는 판타지가 아니라 발전 시켜갈 대안을 좇고 있다는 점을 확인하게 한다.

목소리와 외모, 동작까지 하나의 풀 패키지로 짜여진 ‘소녀성’은 필연적으로 한시적일 수밖에 없다. “3년만 지나도 이런 콘셉트는 무리”라며 손을 내젓는 단비와 소녀들은 그래서 지금 이들에게 주어진 무대를 마음껏 즐기려 한다. “여름에 가졌던 첫 무대는 저희가 봐도 모자란 부분이 많았어요”라고 수줍게 단비가 말을 꺼내자 “야마구치 모모에의 데뷔 영상을 보고나서 조금 용기를 얻었어요. 그녀가 얼마나 성장 했는가를 알게 되었거든요”라고 소라가 말을 받는다. 그러자 활기찬 은별의 목소리가 뒤를 잇는다. “정말 요즘 우리끼리 그래요, 우리 좀 성장 했다!” 그 다음은 예상하는 대로 까르르르하는 웃음의 삼중창이다. 소녀시절은 잡을 새도 없이 흘러간다. 그 고갈임박의 아슬아슬함은 망설이고 의심할 시간을 주지 않는다. 그리고 그 막무가내의 낭만이야말로, 우리가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바로 그 즐거움이다. 얘얘!

글. 윤희성 (nine@10asia.co.kr)
사진. 이진혁 (eleven@10asia.co.kr)
편집. 이지혜 (seven@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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