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추격 신, 총격 신에 베드신까지 KBS 는 초반부터 과감한 볼거리로 주목을 받고 있다. 그리고 이 ‘규모의 드라마’를 만들어가는 이병헌, 김태희, 정준호, 김승우 등의 배우들 역시 한자리에 모이기 어려울 것 같았던 스케일을 자랑한다. 그러나 작품의 화려한 면면 사이에서 김소연은 심플한 차림새와 뚜렷한 캐릭터로 오히려 눈길을 끈다. 북한의 공작원 김선화 역할을 맡은 그녀는 트레이드마크와도 같았던 긴 생머리를 잘랐고, 부상을 마다않고 열성적으로 액션 연기를 소화했다. 그러나 겉으로 보이는 것 보다 내면에 숨겨진 캐릭터의 깊이에 집중하는 그녀는 “앞으로 보여주게 될 것”들 때문에 행복하고, 설렌다고 말한다. 한국 드라마사상 가장 새로운, 그러나 그녀로서는 오랫동안 꿈꿔온 캐릭터인 ‘슬프도록 아름다운 여 전사’에 흠뻑 빠진 김소연을 만났다.

촬영이 진작부터 진행되고 있었던 것으로 아는데, 혹시 현장이 여유롭게 진행되고 있지는 않나?
김소연:
2월에 캐스팅 되고, 3월 초부터 촬영을 시작 했다. 그런데 방영 직전에 딱 절반을 찍어 놨더라. (웃음) 이야기보다는 볼거리에 치중을 많이 하는 작품이다 보니 여전히 소화해야 할 분량이 많다. 많은 드라마들이 용두사미로 흘러가는데, 우리 <아이리스>는 감독님들이 끝까지 할 수 있는 건 다 할 생각이라서 좀 힘들게 진행하고 있다.

“헝가리어 대사는 죽을 때까지 못 잊을 듯”

감독이 두 명인데, 흔히 생각하기에 김규태 감독은 미장센을, 양윤호 감독은 스케일을 담당할 것 같다. (웃음)
김소연:
큰 구분으로는 그런 면도 있지만, 미장센은 두 분 다 워낙 신경을 쓴다. (웃음) 감독님 성을 따서 K팀, Y팀으로 부르는데, 두 팀 모두 각자의 색깔이 있다. K팀은 온화한 카리스마가 있어서 웃음도 자근자근하게 끊이질 않는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촬영을 하면 젖어드는 기분이 된다. Y팀은, 양윤호 감독님이 진짜 쾌남이시다. 목소리도 크고 디렉팅도 명료하셔서 연기자를 편하게 해 주신다. 분위기가 활발해서 촬영하고 나면 한건 하고 온 기분이 된다.

촬영 기간이 길어서 배우들 간의 팀웍도 상당히 좋을 것 같다.
김소연:
오빠들이 너무 재미있으셔서 금방 다들 친해졌다. 정준호 선배님은 정말 웃기신데, 정작 본인은 안 웃는 타입이시다. (웃음) 승우 오빠는 정말로 좋은 사람이다. 나랑 태희에게 “우리는 너희 둘에게 최소한 감동을 하나쯤은 줄 것이고, 작품이 끝나고 나서 잘했다는 생각을 한번은 하도록 해 주겠다”고 선포를 하셨는데, 감동적이었다. 이병헌 선배님은 역시나 연기를 너무 잘하시고 성격에 재미있는 부분이 많으시더라. 태희도 새침할 것 같은 이미지인데 되게 성실하고 착하다.

첫 촬영이 해외 로케이션이었다고 들었다.
김소연:
일본에서 촬영을 시작했다. 나랑 태희는 스케줄 막바지에 둘이서 하는 큰 액션이 있어서 매일 밤마다 회의실에서 테이블 치워놓고 연습을 했었다. 이병헌 선배님도 차량 액션도 있었고, 댐에서 뛰어내리는 장면도 있어서 고생이 많았는데, 한 달 지나고 로케 마지막 날에는 거의 쫑파티 분위기였다. (웃음) 그런데 그 후에 한국에서 그만큼 촬영이 또 있었고, 헝가리에서도 또 그만큼 있었고, 중국 로케도 다녀오고. 강행군이 계속 되더라.

해외 장면이 많다면, 현지어로 대사도 소화 하나?
김소연:
태희는 일본어 대사가 있었고. 나는 1부에 헝가리어로 말하는 장면이 하나 있다. 영어랑 전혀 다르고 생소한 말이다 보니 아무리 적어놓고 따라 해도 흉내를 낼 수가 없더라. 한마디 문장 때문에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그 대사는 아마 죽을 때까지 까먹지 않을 것 같다. 안 그래도 그 장면이 중요한 부분이라 신경을 많이 썼는데, NG를 여러 번 내서 결국 촬영 끝나고 울기도 했다. 그런 일이 잘 없는데.

대사 뿐 아니라 소품 때문에도 고생했다는 얘기는 들었다.
김소연:
장총을 들고 현준(이병헌)을 죽이려 하는 장면인데, 그 총이 8kg정도 나간다. 한국에서 연습할 때는 총을 못 구해서 플라스틱 총으로 연습을 했는데 현장에서 받아든 건 독일에서 공수해 온 진짜 총이었다. 무겁긴 했는데, 청록색에다가 진짜 예뻤다. (웃음) 독일 현지 담당자가 아니면 함부로 손도 못 대게 해서 긴장감은 흐르지, 총은 무거워 죽겠지, 신 호흡은 길지. 결국엔 내가 좀비처럼 되어 버리더라. 항상 첫 번째 테이크에 온 힘을 다 쏟는 편인데 천 번 이상 연습한 대사도 자꾸 틀리고, 너무 아쉽고 속상했다.

“가녀린 여자가 총 들고 액션하는 게 너무 멋져 보였다”

다른 액션 신들은 어떤가. 부상이 소식이 있었는데, 이후로 촬영하면서 겁나지는 않았나?
김소연:
워낙 액션 강도가 높아서 다들 고생이다. 이병헌 선배는 온 몸에 파스를 달고 사는데, 나만 유독 보이는 부상이 많아서 혼자 뉴스가 많이 났다. (웃음) 때리거나 발로 차는 장면에서 너무 몰입을 하면 제어가 잘 안되기도 한다. 게다가 첫 테이크에 끝내야 한다는 욕심이 있으니까 더 그렇다. (웃음) 그런데 이제는 100% 중에 30% 정도는 힘을 조절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니까 오히려 화면에는 더 잘 나오더라. 액션에 대해 알아가는 중이다.

촬영 전부터 훈련이 만만찮았겠다.
김소연:
평소에 운동을 안 하는데 갑자기 운동량이 늘어서 너무 힘들었다. 초반에는 살도 많이 찌워야 했고. 체력 훈련도 하고 태권도의 발차기, 쿵후 동작도 배웠다. 집에 가면 화장도 못 지우고 쓰러져서 잠들기도 했는데 힘들지만 즐거웠다. 배역을 원하는 마음이 고된 것보다 훨씬 컸기 때문에.

배역의 어떤 점에 그토록 강하게 끌린 건가?
김소연:
이런 역할에 목말라 있었다.

액션이 가능한 캐릭터 말인가?
김소연:
액션뿐 아니라 강한 이미지의 캐릭터. 안젤리나 졸리를 너무 좋아하는데 <원티드>나 <툼레이더> 같은 영화에서 가녀리고 섹시한 여자가 총을 들고 누비는 모습이 그렇게 멋있어 보일 수가 없더라. 나도 좀 강하게 생긴 편이라 총을 들거나 형사 같은 역할을 하면 잘 어울리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럴 때 <아이리스> 시놉시스가 들어왔는데 김선화는 캐릭터 설명이 대여섯 줄 밖에 없는 뼈대뿐인 인물이었지만 너무 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짧은 설명 속에서 어떤 매력을 발견 한 것인가?
김소연:
이 여자는 시놉시스에서처럼 아쉽게 끝날 배역이 아닌 것 같았다. 뭔가 더 보여줄 것이 많다는 예감이 들었는데, 실제로 수정대본이 나오면서 역할이 많이 변하기도 했다. 처음에는 현준과 선화의 로맨스가 없었는데, 일본 촬영 중에 이 부분이 바뀌면서 나와 태희가 현준을 두고 삼각관계가 되었다. 중반 이후로는 아마 내가 현준에게 확실히 마음을 주게 될 것 같다.

이념을 버리고 사랑을 택하는 것인가. 죄책감을 담보로 하는 러브 스토리가 예상된다.
김소연:
그래서 더 매력적인 것 같다! 선화는 비극적인 운명을 가진 인물이다. 여자로서의 느낌도 모르고, 세포조차 세뇌당한 인간 병기로 키워졌기 때문에 사랑에 빠져도 그걸 어떻게 표현할지 모른다. 그런 여자가 감정을 싹틔우고 바라보면서 걱정을 하기 시작하는 거다. 최근에 그런 감정의 변화를 촬영 했는데 액션을 하다가 몸이 닿게 되면 미세한 떨림, 눈빛을 표현해야 했다. 어렴풋이 알게 되는 사랑을 표현하는데 너무 신나고 찍고 나서도 ‘바로 이거야!’하고 생각을 했다. 보는 입장에서도 그런 사랑이 더 끌리지 않나? 결국 캐릭터가 무엇을 얻는가가 문제가 아니라, 어떤 존재감을 남기느냐, 그게 중요하다.

“가발은 가짜 같아서 머리를 자르겠다고 했다”

선화의 존재감은 이미 헤어스타일에서부터 성공적이다. 본인의 아이디어였나?
김소연:
처음에는 생각을 못했다. 제작진 쪽에서 선화는 여러 가지로 변화를 줬으면 해서 가발을 권했는데, 가발을 쓴 모습이 너무 가짜 같은 느낌이었다. 그래서 내가 자르겠다고 했더니 다들 놀라더라. (웃음) 지금은 너무 잘했다고 생각한다. 작가 선생님도 잘했다고 하시고, 원했던 이미지들이 더 잘 살아다는 것 같아서 대 만족이다.

의상도 보통의 드라마와는 다른 방식으로 고민했겠다.
김소연:
항상 진에다가 워커를 신고 가죽 재킷, 민소매, 야상 점퍼, 이런 것만 입는다. 처음 보여주는 스타일이라서 매력이 있는 것 같다. 이 배역이 마냥 보이시하고 강하기만 한 건 아니라고 본다. 분명 복합적으로 섹시한 면도 있는데 그런 부분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한다.

비현실적인 캐릭터임에도 나름대로 인물에 대한 리얼리티를 많이 확보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김소연:
신기할 정도로 ‘어떻게 해야지’ 하는 생각은 안한다. 이 여자의 히스토리와 아픔을 이해하게 되면 억지로 뭔가를 만들지 않게 되는 것 같다. 실제 상황이라면 가슴 아프고, 불쌍하고, 괜히 청승인 것 같겠지만 연기를 할 때는 사연과 상처를 안고 사는 배역이 너무 좋다. 감정적으로 표현할 것도 더 많고.

선화가 굉장히 새로운 역할인 것 같지만, 생각해 보면 그동안 <이브의 모든 것>을 비롯해서 자기억제적인 배역을 많이 맡아왔다.
김소연:
감정적인 면에서는 <이브의 모든 것>의 영미랑 비슷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배우가 서커스를 하지 않는 이상 매 작품마다 완전히 다를 수는 없지 않나. 본연의 성격이 있고, 천성이 있는데. 그렇지만 ‘나’라는 사람은 변하고 있지 않나. 나이도 들고, 무의식중에 쌓아가고 덜어내는 것들이 생기면서 비슷한 인물이라도 표현하는 게 분명히 달라진다고 믿는다. 그래서 분명 다른 눈빛과 다른 뭔가가 있을 것 같다. 가능하다면 다른 깊이를 보여주고 싶고.

스케일이나 캐스팅이나 평균 이상의 반응이 기대되지만, 여성 시청자들은 이런 스타일의 드라마를 선호하지 않는 편인데, 어떤 점에서 소구할 수 있을까?
김소연:
나야말로 한명의 ‘여성 시청자’다. 아까 말한 안젤리나 졸리 영화들도 거의 다 빨리 돌려서 졸리가 나오는 장면들만 봤다. (웃음) <쉬리>도 최근에 봤을 정도다. 그랬던 내가 이렇게 빠져들었다. 이야기로 설명하는 것 보다는 10분을 보는 게 더 와닿을 텐데, 스케일과 연기적인 면에서 한층 깊어진 작품이다. 전에는 인터뷰를 하면 내 이야기를 더 많이 했는데 이번에는 <아이리스> 얘기만 하게 된다. 나는 3부부터 나오지만, 1부부터 다 보셔야 한다. 멜로라인도 정말 최고다! 진짜다!

글. 윤희성 (nine@10asia.co.kr)
사진. 채기원 (ten@10asia.co.kr)
편집. 이지혜 (seven@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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