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원 : 한 때는 호러 퀸이었고, 한 때는 섹시한 여자였다. 그 뒤에는 액션 연기를 시작했고, 때론 무용과 권투를 함께 배웠다. 수많은 작품에 출연했고, 성공과 실패를 반복했다. 그리고 서른이 지나 멜로 연기를 시작한다. 하지원은 이제 무엇을 보여주고 싶은 걸까.

하지원
하지원
전혜림 : 하지원의 본명. 그녀를 처음으로 발탁한 매니저의 첫사랑 이름이 ‘하지원’ 이었다고. 당시 매니저는 동네 사진관에 걸려있던 하지원의 사진을 보고 캐스팅했고, 이후 많은 오디션을 보게 했지만 결과는 좋지 않았다. 어떤 PD는 하지원에게 “쟤가 잘 되면 내 손에 장을 지진다”라는 말을 했을 정도. 하지원은 이를 극복하려고 춤, 무술, 연기 수업 등을 받고, 모래주머니를 차고 산에 오르며 7kg을 감량했다. 그녀가 데뷔 이후 몸을 사리지 않는 연기를 하게 된 것은 이때의 경험 때문인지도.

유지태 : 영화배우. 영화 <가위>, <동감> 등에서 하지원과 함께 출연했다. 하지원은 살인사건 용의자로 출연하는 <진실게임>을 통해 데뷔, 이 작품의 강한 이미지로 인해 여러 호러 영화 출연을 제의 받았다. 그녀는 당시 여배우들이 꺼리던 공포영화에 출연하고, 멜로영화인 <동감>에서 청순가련 캐릭터 대신 애정을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캐릭터를 연기했다. 다른 주연급 여배우들이 그다지 선호하지 않는 방식으로 영화계에 자리 잡았던 셈.

왁스 : 가수. 하지원은 왁스의 데뷔곡 ‘오빠’를 마치 자신이 부르는 것처럼 가요 프로그램에 출연해 춤을 췄다. 춤을 제대로 배우지 못한 상태에서 무대에 올랐다고 하지만, 그녀의 은 ‘오빠’에 대한 관심을 높이는데 충분할 만큼 성공적이었다. 하지원은 어린 시절 동네 무용 교사가 그녀의 골반을 만지며 어머니에게 “이 아이는 무용을 꼭 가르쳐야 한다”고 말했고, 그녀에게 춤을 가르쳤던 안무가는 “배우가 안됐으면 춤꾼이 됐을 것”이라고 말할 만큼 춤에 대한 재능이 뛰어나다. 또한 대학 연극영화과 입시 실기 시험에서 몸으로 돌고래 흉내를 내 합격하기도 했다. 그녀가 몸으로 익히는 연기를 잘 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임창정 : 영화 <색즉시공>과 <1번가의 기적>에 함께 출연한 배우. “나를 한 번 변화시켜준 영화”라는 자신의 말처럼, <색즉시공>은 하지원에게 대중적인 성공과 함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했다. 그녀는 이 작품에서 처음 하는 에어로빅을 빠른 속도로 소화했고, 섹시한 여성인 동시에 어려운 가정환경으로 세속적인 욕망을 가졌으며, 동시에 어두운 내면을 가진 캐릭터를 연기했다. 비록 작품성은 비판을 받았지만, 하지원은 <색즉시공>을 통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연기가 무엇인지 보여줬다. 모두 다 예쁘고 정돈된 모습만 보여줄 때, 그녀는 몸을 부딪치고, 욕망에 충실한 여자로 영화계에 자신의 가치를 입증했다.

이서진 : MBC <다모>에 함께 출연한 배우. 당시 이서진은 하지원을 “연기 욕심과 책임감이 대단하다. 단 한 번도 힘들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며 높게 평가했다. 실제로 그녀는 직접 칼을 만들어 촬영 현장에서 검술 연습을 했고, 김민준과 함께 동굴 신을 찍을 때는 낙석 위험 때문에 모든 제작진이 안전모를 쓴 상태임에도 “죽어도 어쩔 수 없다는 심정”으로 촬영을 할 만큼 몸을 던졌다. 이런 노력이 담긴 <다모>는 ‘다모 폐인’을 양산하며 엄청난 화제를 일으켰고, 그녀만이 할 수 있는 영역을 넓혔다. 하지원이 <색즉시공> 이후 <내 사랑 싸가지>, <신부수업> 등 가벼운 로맨틱 코미디 영화에 출연하면서도 소모되지만은 않았던 것은 <다모> 이후 쌓은 또 다른 필모그래피가 있었기 때문. <다모>의 이재규 감독은 그녀에 대해 “이렇게 성실하고 낙천적인 배우는 처음 봤다. 말에서 떨어져 허리를 다쳤는데도 그냥 웃더라”고 말했다.

조인성 : SBS <발리에서 생긴 일>에 함께 출연한 배우. 하지원에게 “선배님”이라고 부르다가도 배고플 때는 “누나~”라면서 밥을 사달라고 했던 귀여운 후배이기도 했다. <다모>에 이은 <발리에서 생긴 일>은 그녀만의 여성 캐릭터를 극대화 시켰다. <발리에서 생긴 일>의 수정은 남자의 선택을 기다리는 청순가련형 여자나 착한 신데렐라가 아니었다. 수정은 지극히 세속적이었고, 자신도 모르게 두 남자를 붙잡는 일종의 팜므 파탈이기도 했다. 하지원은 현실로서의 가난에 힘들어하고, 때론 ‘여우’도 될 수 있는 여자를 연기하며 기존 드라마와는 다른 새로운 여성상을 제시할 수 있었고, 이는 그녀만의 영역으로 자리 잡았다.

이명세 : 영화 <형사>를 연출한 감독. 이명세 감독은 하지원에게 강동원과의 검무를 위해 탱고를 배울 것을 요구했고, 밥을 먹을 때의 손의 각도까지 신경 쓰게 할 만큼 디테일하게 연기를 체크했다. 또 체력단련을 위해 감독이 “자동”이라고 말하면 그녀가 알아서 앉았다 일어났다를 반복했을 정도. 하지원은 이명세 감독의 말대로 “몸의 움직임에 의해, 그것이 마치 대사와 같이 들리듯”하는 법을 익혔고, <형사>를 거치며 “그동안 거저먹고 있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이후 그녀는 KBS <황진이>의 무용, 영화 <1번가의 기적>의 권투에 도전하며 몸으로 연기하는 것의 한계에 도전한다.

김영애 : <황진이>에서 하지원의 스승 역으로 출연한 배우. 왁스의 뮤직비디오 ‘엄마의 일기’에 함께 출연하기도 했다. 김영애는 하지원에 대해 “천하무적이다. 이렇게 지치지 않고 연기하는 배우는 처음 본다”고 말했다. 실제로 하지원은 이 시기에 <황진이>와 <1번가의 기적>을 동시에 준비했고, 이 때문에 오전에 권투를, 오후에는 무용을 배워야 했다. 스스로 “내가 그걸 어떻게 다 했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이상하게 빈틈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고 했을 정도. 그리고 그녀에게 각각 무용과 권투를 가르치던 사람들은 “마음 같아서는 제자로 받고 싶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남들이 안한 것에 대한 호기심이 많다. 내가 해서 그 분야를 확 부셔 버리고 싶다”는 하지원의 바람이 이뤄진 셈. 하지만 그녀가 <황진이>를 통해 얻은 것은 단지 몸으로 하는 연기가 아니었다. 몸이 ‘진짜’를 연기하면서, 예인의 길과 사랑 사이에서 고뇌하는 황진이의 감정 역시 진짜가 됐다. 많은 연기자들이 말과 머리로 하는 연기 이후에 몸을 쓰는 연기를 익힌다면, 하지원은 극한까지 간 몸의 고통이 오히려 자신이 의지하고픈 사랑에 대한 절실함을 납득시켰다. ‘하지원식 연기’의 완성.

윤제균 : <색즉시공>, <1번가의 기적>, <해운대>에 하지원을 캐스팅한 감독. 하지원은 윤제균 감독에 대한 믿음만으로 시놉시스만 읽은 채 <1번가의 기적>에 출연했고, 덕분에 4일 연속으로 권투 시합 신을 촬영해야 할 만큼 자신의 몸을 몰아붙여야 했다. 당시 촬영이 너무 힘든 나머지 모든 촬영이 끝난 뒤 윤제균 감독에게 딱 3분만 자신의 스파링 파트너와 실제 스파링을 뛰어보라고 하기도 했다. 이런 과정 속에서 <1번가의 기적>은 <색즉시공>에 비해 한결 좋은 평가를 받았고, <해운대>는 천만 관객을 동원했다. 하지원과 윤제균 감독 모두 그 사이 자신의 영역에서 확실한 성장을 한 것. 하지만 두 작품은 동시에 지금 하지원의 한계를 보여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녀는 <1번가의 기적>처럼 몸을 쓰는 작품에서는 최고지만, <바보>와 <해운대>처럼 소소한 감정 연기를 주로 보여주는 작품에서는 보다 섬세하고 다양한 감정 표현이 부족해 평이한 수준에 머무르는 경우가 종종 있다. 다른 여배우들과는 반대의 의미로, 지금 그녀는 새로운 영역을 찾아야할 전환점에 서 있다.

김명민 : 영화 <내 사랑 내 곁에>에 함께 출연하는 배우. “그동안 딱 ‘정통 멜로’라고 부를 수 있는 역할을 하지 않은 건 ‘이건 정말 조심히 갖고 있다가 좋은 시기에 해야지’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던 하지원은 <내 사랑 내 곁에>를 통해 정통 멜로에 도전한다. 또한 그녀의 상대역 김명민은 뛰어난 연기력으로 유명하다. 그만큼 상대배우가 부족한 연기를 보여줄 경우 흠이 더 크게 보일 수 밖에 없다. 배우가 되기 위해 노력했고, 수많은 작품에 출연하고, 몸을 몰아붙이며 감독들의 요구에 부합했으며, 가훈마저 “최선을 다하자”인 배우. 이 여배우는 단지 노력만으로는 완전히 알 수 없는 사랑을 얼마나 잘 표현할 수 있을까.

Who is next
하지원이 출연한 비의 뮤직비디오 ‘러브 스토리’에 함께 나온 노래 ‘I`m coming’에 랩을 피처링한 타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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