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다. 공포영화들이 한 주에도 두서너 개씩 개봉을 하고, <전설의 고향>도 돌아왔다. 이 틈을 타 등장한 MBC <혼> 또한 의 적통자임을 자처하며 납량특집극의 귀환을 요란하게 선전했다. 그러나 성선설과 성악설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법과 선의를 믿지 않는 신류(이서진)가 스스로 정의를 실현하고자 하는 <혼>은 공포물이라기보다는 사회 고발극에 더 가깝다. 그것은 어설픈 귀신 분장과 허술한 이야기 구조로 인해 극적인 공포를 느끼기 힘든 드라마의 만듦새의 탓일 수도, 절대 악으로 대표되는 변호사 백도식(김갑수)과 신류의 대립구도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러나 신류는 빙의 능력을 가진 하나(임주은)를 만나 힘을 얻으면서 백도식만큼 강해졌고, 은 하나의 능력이 부각되면서 공포물의 장르적인 매력을 극대화시키려 하고 있다. 신류와 하나는 배트맨과 로빈처럼 이 도시를 정화시키고, 애초에 이 노렸던 ‘슬픈 공포’또한 자아낼 수 있을까? 김교석, 김선영 TV평론가가 <혼>에 주목했다. /편집자주

<혼>을 논의하기 전에 정리할 것이 하나 있다. <혼>은 MBC판 <전설의 고향>이 아니다. 의 부활도 아니다. 무서운 납량특집 미니시리즈가 결단코 아니다. 그래서 1회만 보거나 공포에 초점을 맞춘다면, 처음부터 끝까지 공포를 조장할 줄 모르는 연출 이야기만 해야 한다. CG로 그려낸 귀신 얼굴 클로즈업이 무서울 리가 없으니까. 게다가 2회부터는 신류(이서진)의 영웅담이 작렬한다. 신들린 가위바위보 재능과 최면술은 마법사 멀린의 주술 그 이상이다. 무섭지도 않고 무슨 촌스러운 영웅담인가 싶어서 여기까지 보고 말았다면, 당신은 제대로 낚인 것이다. 납량특집이라는 홍보 문구와 자랑스러운 ‘19금’ 동그라미는 낚시의 대가 <로스트>의 J.J. 에이브람스가 던진 떡밥 수준이다. 다만 <혼>의 제작진은 에이브람스와 달리 본의 아니게 떡밥을 던진 것이지만.

<혼>은 납량특집극이 아니다

귀신, 사이코패스, 빙의, 게다가 배경은 <두사부일체>의 세계와 일맥상통하는 권력형 학교다. 이 학교의 실질적인 주인 변호사 백도식(김갑수)은 대한민국을 좌지우지하는 거대하고도 악랄한 로펌의 수장이다. 악의 축인 그를 기준으로 선과 악이 나뉘고 억울한 죽음이 생긴다. 여기까지는 너무나 익숙한 귀신 이야기의 배경이다. 그런데 신류의 트라우마가 끼어들자 연금술이 펼쳐진다. 공포에서 수사물로 급선회하더니 결국 복수와 응징이 과연 정의일까, 하는 철학으로 번진다. 신류는 신학도를 꿈꾸었지만 자신의 여동생과 어머니가 자기 눈앞에서 살인 당하는 것을 보고 프로파일러가 됐다. 당시 가해자는 변호사가 됐고 그를 변호했던 백도식 밑에서 일하고 있다. 백도식은 신류에게 정의는 결코 법을 이길 수 없다고 한다. 지극한 사실. 그의 말대로 법의 구멍은 권력과 돈이 있는 사람들에게만 열려 있다. 따라서 관념적으로는 선이 악을 응징하는 것이 정의롭지만 현실 세계에서는 그럴 방책이 없다. 정신분석 상담의 이혜원(이진)이 ‘인간’에 대한 믿음을 주장하면 할수록 점점 프로페셔널과 담을 쌓게 되는 것 또한 그래서다.

신류는 최근 <다크나이트> 등에서 볼 수 있는 신인류 영웅이다. 히어로와 범죄자의 가면을 동시에 쓴 회색영웅. 그는 프로파일러이지만 범죄자보다 더 끔찍한 범죄를 저지르는 한국판 덱스터다. 응당한 죄 값을 묻는 것. 그게 신류가 생각하는 용서다. 인간은 과연 교화가 가능할까? 인간은 본디 선한 마음을 갖고 있는 것인가? 양심의 가책이 교육으로 생길 수 있는 것인가? 법은 정의의 편이 될 수 없는 것일까? 여기에 대한 신류는 대답은 명쾌한 ‘NO’. 그래서 법 위에서 직접 ‘정의’라는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그런데, 문제는 현실적으로 모자라는 능력이다. 혼자서는 대의를 이룰 수 없기에 빙의가 되면 괴력을 갖는 윤하나(임주은)의 초능력이 필요하다. 신류는 하나의 복수심을 자극해 영혼들의 살인청부사로 육성한다. 흔히들 영혼을 볼 수 있는 윤하나를 보고 <식스센스>를 떠올리지만 이쯤에서는 차라리 종교와 법이 해결 못 하는 정의를 위해, 하느님의 이름으로 악인들을 처단하는 영화 <분닥세인트>를 떠올리는 게 맞다. <혼>은 귀신이야기라기보다 복수라는 정의 실현의 방법론에 대한 이야기니까. <분닥세인트>의 경우 현실 밖에서 골 때리는 마초 슈퍼 히어로를 데려왔다면 <혼>은 빙의를 통해 귀신을 데려온 것이다.

신류는 히어로인가 또다른 악마인가?

물론 10회 중 6회가 넘은 지금, 이 무거운 이야기의 결말은 어떻게 지어질지 확실하지 않다. 착한 심성과 진실과 정의는 신데렐라 같아서 모진 구박을 받아더라도 결국에는 멋지게 보상받는다는 환상은 이제 할리우드에서조차 폐기처분 되고 있다. 하지만 착한 심성과 정의를 위한 청부 살인 사이에서 갈등하는 하나와 시종일관 일을 그르치지만 그래도 신념씩이나 가지고 있는 정신분석 상담의 이혜원은 인간 본성에 대한 고민을 계속 붙잡아둔다. 그래서 <혼>의 결말이 진실의 햇빛은 언제가 우리를 비춰줄 것이라는 믿음으로 끝날지, 원혼들의 피칠갑 복수극으로 끝날지 아직 모른다.

<혼>의 세계에 따르자면 우리 안에도 작은 악마가 있다. 우리 마음속에 웅크린 작은 악마는 복수와 정의를 빌미삼아 거대한 악마의 전횡을 한 큐에 날려버릴 히어로의 등장을 기대하고 있다. <혼>이 던진 가장 큰 떡밥은 귀신의 공포가 아닌 정의로운 인간이라는 불편한 진실이 가져온 물음이다. 우린 정의라는 미명 하에 또다른 악마를 키우는 것인가, 아니면 순수하게 사회를 정화하고자 하는 것인가. 이 뫼비우스의 띠 같은 세상 속에서 <혼>의 낚시질은 계속된다.
글 김교석

MBC 은 시작부터 모호하다. 류(이서진)와 하나(임주은)가 서로의 목을 조르고 칼을 든 시우(박건일)가 둘을 향해 달려드는 장면은 분명 파국의 결말 부분이 미리 제시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 뒤 갑자기 잠에서 깬 하나의 모습으로 장면이 전환되면서 모든 것이 그녀의 악몽처럼 처리된다. 꿈인지 현실인지조차 분명치 않은 이 오프닝 시퀀스는 앞으로 전개되는 의 모든 이야기를 보이는 그대로 신뢰할 수 없게 하는 결정적 역할을 한다. 심지어 “죽여줘. 내 안에 악마가 있어”라고 말하는 하나가 류의 악몽일 수도 있다. 이는 언제 어디서 출몰할지 예측할 수 없는 혼령들처럼 이 드라마의 신경증적이고 불안한 분위기 형성에 일조한다.

소재들의 전시장에 머문 이야기

문제는 에서 하나와 류의 각각의 드라마가 악몽과 현실의 매혹적인 혼재처럼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루지 못한다는 데 있다. 1999년 씨랜드 참사를 연상시키는 화재사건에 공포의 기원을 둔 하나의 드라마는 그 자체로 사회의 어두운 이면까지 환기시킬 수 있는 좋은 이야기다. 죽은 자들에 대한 죄의식과 연민으로 저도 모르게 원혼들을 끌어들이며 그들의 만신 노릇을 하는 소녀가 그 집단악몽의 원흉인 기득권층에게 여동생과 어머니까지 잃고 그녀들의 영혼이 빙의된 채 더 처절하게 한을 풀어내는 복수극은 고전적이지만 애초에 이 의도했던 ‘슬픈 공포’에 훨씬 가까운 드라마가 될 가능성이 충분했다. 특히 종종 하나의 다른 인격처럼 보이며 영화 을 연상케 하는 쌍둥이 여동생 두나(지연)와 은연중에 싱글맘에 대한 두려움을 깔고 있는 엄마(김성령)가 형성하는 세 모녀 관계는 6회의 식탁 이별 장면처럼 감수성 짙은 멜로드라마적 상상력을 재현하기에 좋은 모티브였다.

하지만 좀 더 새롭고 현대적인 공포물을 선보여야겠다는 제작진의 야심은 여기에 프로파일러라는 전문직 남성을 주인공으로 한 또 하나의 범죄 심리드라마를 추가했다. 이성적이고 냉철한 프로파일러가 법제도 위에 군림하는 초법적인 악을 빙의라는 초현실적 현상을 빌어 응징한다는 시도 자체는 신선하지만, 문제는 두 개의 이야기가 좀처럼 유기적으로 결합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류에게도 하나처럼 어머니와 여동생을 잃은 트라우마가 주어졌지만 그의 사적 기억과 하나의 집단 악몽은 같은 층위에서 해결되기 어렵다. 결국은 둘의 공동의 적으로 수렴되는 백도식(김갑수)이라는 절대악의 세계를 설명하는 “어차피 세상은 거대한 정신병원이잖아”라는 작위적인 대사로도 그 부조화스러운 플롯을 봉합하지 못한다. 여러 흥미로운 이야기를 실험적으로 뒤섞었으나 하나의 드라마로서 구심력을 발휘하지 못할 때 그것은 더 이상 다층적 이야기가 아니라 화려한 소재들의 전시장에 머물 뿐이다.

기계적인 결합으로 소실되는 감정들

더 난감한 것은 류가 하나의 세계에 들어와 그녀를 최면으로 조종한 순간, 하나의 드라마까지 훼손되었다는 점이다. 하나의 이야기로 시작했던 은 중반부에 들어서는 악마를 죽이기 위해 스스로 악마가 되어가는 류의 이야기로 중심을 이동했다. 그의 ‘완벽한 각본’의 인형이 되었다는 것을 알았을 때 하나가 한 일이라곤 마음의 문을 닫고 무력한 깊은 잠에 빠졌다가 결국 다시 류의 도움으로 죽음의 위기를 넘긴 것뿐이다. 물론 드라마가 결말을 향해 가면서 하나의 자의에 의한 류와의 연대도 결성될 예정이다. 하지만 앞서 이 드라마의 가장 큰 문제점이었던 플롯의 기계적인 결합을 근본적으로 해결하지 못한다면 극 초반에 쌓아올린 원혼들의 아픔과 모호하지만 흥미로웠던 불안의 감정마저 소실될 가능성이 있다.
글 김선영

글. 김교석 (TV평론가)
글. 김선영 (TV평론가)
편집. 이지혜 (seven@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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