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눈에 띈다는 것은 분명 배우에게 축복과 같은 일이다. MBC <트리플>의 상희를 연기하는 김희는 그런 점에서 순조로운 첫 발을 내딛고 있다. 길게 자란 갈색 머리카락과 엉뚱하지만 기발한 말투는 많은 배우들이 복닥거리는 드라마 안에서도 그녀를 누구보다 먼저 눈에 들어오게 한다. 그러나 그런 설정들을 걷어내고 다시 보아도, 김희는 확실히 다른 사람들보다 이목을 끄는 외모를 가졌다. 쉽게 울어버릴 것 같은 크고 둥그런 눈매, 깡마른 다리와 껑충한 키가 그려내는 비현실적인 분위기와 꾸밈없이 크게 웃어버리는 털털하고 친근한 성격의 격차가 만들어 내는 독특한 느낌은 그녀를 주목하게 하고, 다시 한 번 돌아보게 만든다.

“키를 문제 삼지 않는 감독님은 처음이었어요”

그러나 그 가치를 발견하기 전까지, 축복은 때로 저주와 같은 얼굴을 하고 있기도 한다. 훌쩍 큰 키 덕분에 대학을 졸업하고 무난히 모델 일을 시작할 수 있었지만, 정작 배우가 되고 싶었던 그녀에게 키는 도무지 극복 할 수 없는 일종의 장애였다. “키만 조금 더 작았으면 너는 정말 잘 됐을 것”이라고 위로 아닌 위로를 해 주는 사람도 있었다. 캐스팅의 문턱에서 번번이 키를 이유로 거절당하고, 급기야 “평생 휠체어 타는 역할이나 맡아야겠다”는 평가를 들었을 때는 집으로 돌아가 혼자 울기도 했다. 노력이 부족했다면 더 채워 넣으면 될 일이고, 태도에 문제가 있다면 고치려고 생각 했을 텐데 타고난 생김을 원인으로 돌리라니 백번, 천 번도 더 고민을 하게 되었다. 이 길은 내 길이 아닌가. 이쯤에서 그만 둬야 하나.

스스로를 미운 오리라고 여길 무렵, 그녀에게는 ‘기적’과 같은 일이 일어났다.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는데 ‘MBC 이윤정 감독인데요’ 그러시는 거예요. 너무 놀랐는데, 그 와중에 제가 ‘혹시 <커피프린스 1호점> 감독님이세요?’그런 거 있죠. 워낙 팬이었거든요.” 단박에 그녀를 알아본 감독은 두 번째 만남에서 캐스팅을 약속했고, 지극히 상식적인 이야기로 그녀를 감동시켰다. “저한테 ‘키가 좀 크면 어때. 나는 그래서 희씨가 더 눈에 띄고, 에너지 있어 보여서 좋아요’라고 하시는 거예요. 정말 처음이었어요. 저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봐 주시고, 키를 문제 삼지 않는 감독님을 저는 그 전까지 단 한분도 만나 뵙지 못했었거든요.” 그리고 감독은 촬영장에서도 계속 그녀를 격려하고, 신뢰해 주는 고마운 사람이다. 첫 작품이라 스스로의 연기를 확신하지 못하는 그녀에게 “상희는 세상에서 가장 예쁘고 순수한 사람인데 본인만 그걸 몰라요. 그러니 세상을 두 팔로 껴안으세요”라고 힌트를 준 사람도, “희가 현장에 와서 하는 모든 행동이 다 그냥 상희 같아”라고 칭찬을 해 준 사람도 이윤정 감독이었으니 말이다.

순간을 기다려 온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행복

스스로는 발견된 기쁨을 말하지만, 사실 김희는 아주 오랫동안 이 순간을 기다려 왔던 사람이다. 고등학생 시절, 어머니는 미스코리아 대회 출전을 권했지만 그녀는 “연예인이 되는 것보다 수학여행이 좋아서” 그 제안을 거절했고 “연예계에서 잘 버티려면 나만의 알맹이가 확실히 있어야 할 것 같아서” 데뷔 방법을 찾기 보다는 학교에 열심히 다녔다. 덕분에 출발은 늦어졌지만, 그녀에게는 오래오래 쉬지 않고 달릴 수 있는 잘 여문 마음이 생겼다. “그동안 정말 많이 힘들었고, 많은 생각들을 했는데 간절한 마음들이 쌓여서 지금껏 버텨낼 수 있었던 것 같아요”라고 말하는 그녀는 눈물과 희망으로 쌓은 지층을 마음에 품고 있는 사람이다. 그리고 그 단단한 마음의 지층이야말로 그녀를 주목하고, 그리고 계속해서 바라보게 만드는 숨겨진 힘이다. 속이 여문 미운 오리는 마침내 백조가 되었고, 이제 그녀에게는 넓게 날개를 펼칠 날들이 기다리고 있다.

글. 윤희성 (nine@10asia.co.kr)
사진. 이원우 (four@10asia.co.kr)
편집. 장경진 (three@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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