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마흔하나. 그러나 유준상은 여전히 ‘발견되는’ 배우다. 올해 개봉한 두 편의 영화 <잘 알지도 못하면서>와 <로니를 찾아서>에 출연한 그는 선명한 캐릭터를 전형적이지 않게 연기하거나 혹은 특별할 것 없는 인물의 다양한 얼굴을 세밀하게 포착하면서 연기의 스펙트럼을 횡으로 넓게 펼쳤다. 캐릭터가 주는 신선함 외에도, 두 편의 영화는 저예산으로 제작되었다는 점에서도 주목을 받았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를 찍을 때는 홍상수 감독에 대한 믿음과 애정만을 담보로 개런티 없이 출연을 했고, <로니를 찾아서>는 주인공인 그를 포함해 단 4명이 방글라데시 로케이션을 강행한 결과물이었다. 사람들은 영화를 통해 TV에서 소모되던 좋은 배우의 색다른 모습을 발견했지만, 그 배우는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았던 좋은 작품의 씨앗을 홀로 발견하고 있었던 것이다.

거기에 그가 여전히 사람들에게 신선할 수 있는 비결이 있다. 그는 자신의 모습을 숨긴 적이 없었다. MBC <결혼하고 싶은 여자>, SBS <강남엄마 따라잡기>를 통해 속물적이지만 순수하고 유쾌한 남성의 전형을 구축한 그는 MBC <어사 박문수>나 SBS <토지>를 통해 사극에 도전하기도 했고 영화 <리턴>과 뮤지컬 <천사의 발톱>에서는 예상치 못한 거친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가 새롭게 보이는 것은 그동안 우리가 그의 모습을 몰라봤기 때문이 아니라, 그가 아직도 멈추지 않고 새로운 연기에 도전하고 있기 때문인 것이다.

사실 도전과 탐험은 유준상이 일생을 통해 중요하게 간직하고 있는 모토이기도 하다. 다양한 운동을 섭렵하면서 기타, 드럼, 피아노를 꾸준히 연습하고 있는 그는 틈틈이 책을 읽고, 시간을 내서 여행을 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그 여행은 언제나 몸으로 부딪히고 가슴으로 느끼는 고행을 기반으로 한다. 심지어 여행 중에도 어찌나 부지런한지 그림을 그리고 책을 읽고, 글을 쓰느라 “되도록이면 가사가 없는 음악을 선호하게 된다”라고 말하는 유준상에게 여행의 친구가 되어주는 음악을 추천받았다. 지금 여행을 준비하는 사람이라면 특히 눈여겨보자. 좋은 준비물 다섯 곡을 소개한다.




1. Fourplay의
1991년 결성한 포플레이는 최고 실력의 연주자들이 모인 그야말로 슈퍼밴드다. 키보디스트 밥 제임스를 주축으로 베이시스트 네이던 이스트, 드러머 하비 메이슨이 멤버로 활동 중이며, 기타리스트 리 릿나워는 1998년 그 자리를 레리 칼튼에게 물려 준 바 있다. 퓨전 재즈를 기반으로 하고 있지만 R&B와 소울의 요소를 수용하여 보다 대중적이고 자유로운 음악을 구사하는 이들이 1994년 발표한 은 필 콜린스, 피보 브라이슨의 목소리가 더해져 한층 풍요로운 사운드를 선보이는 앨범이다. “포플레이를 제일 좋아해요. 개인적으로 만나서 밥을 먹은 적도 있답니다. 제 기타를 가져가서 멤버 4명의 사인을 다 받았죠. 모든 곡이 다 소중하지만 ‘Magic Carpet Ride’는 정말로 푹신한 카펫을 타고 여행을 하는 느낌이 듭니다.”




2. Pat Metheny의
“어느 여행지에 가건, 이 곡은 꼭 들어요. 그래서 이제는 이 노래만 들어도 ‘내가 여행을 가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서 좋아요. 그 순간만큼은 정말 자유로운 거죠.” 유준상이 두 번째로 선택한 음악은 재즈 기타리스트 팻 매스니의 담백한 앨범 이다. 다양한 뮤지션들과 다양한 음악작업을 하는 것으로 유명한 팻 매스니는 (밴드 시절 포함)1988년부터 2005년까지 한해도 거르지 않고 17년간 계속해서 그래미 트로피를 수상하는 대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여행을 할 때 저는 편안한 게 싫어요. 인도나 동남아에 가서 그 곳의 사람들 속에 섞여서 걷고 몸으로 체험을 합니다. 그런데 생각만큼 힘들거나 하지는 않아요. 오히려 우리가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하는 나라들이 훨씬 아름답고, 여유롭거든요. 국내 여행도 좋아하는데, 주로 산에 갑니다. 우리나라의 산이란 산은 다 갔을 거예요. 그리고 그때마다 항상 음악을 준비해 가죠. 음악을 들으면서 추억을 되새길 수 있으니까요.”




3. Larry Carlton의
앞서 유준상이 소개한 포플레이의 기타리스트인 래리 칼튼은 기타 연주를 유난히 좋아하는 그가 특히 사랑하는 연주자다. 70년대에 소울 펑키 밴드 크루세이더의 기타리스트로 활동 했던 래리 칼튼은 지금도 매년 수 백 장의 앨범에 참여하고 있는 최상의 세션맨이며 자신의 인스트루먼트 앨범으로 수차례 그래미를 수상한 경력을 갖고 있다. “래리 칼튼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그분이 피는 담배보고 담배 취향을 바꿨을 정도입니다. 따라 피는 거죠. ‘Room 335’는 335호 방에서 만든 곡이라는데, 정말로 듣고 있으면 홀 속으로 싹 빠져 들어가는 느낌이 들어요. 그리고 이분이 깁슨 ES335를 항상 갖고 다니는 걸로도 유명해요. 그것도 따라서 사고 싶은데 너무 비싸서 일단 보류 했습니다. 연주로 가끔 따라서 해 보는데 어렵더라구요. 앞부분은 좀 흉내 내다가 곧 입으로 소리를 내는 거죠. 하하하.”



4. 11월의 <11월 1집>
유준상이 네 번째로 고른 음악은 그가 LP로 소장하고 있는 그룹 11월의 첫 번째 앨범이다. 70년대 클래식 록을 구사했던 그룹 하늘바다 출신의 베이시스트 김영태, 기타리스트 장재환을 주축으로 드러머 박기영, 하몬드 오르간 연주자 김효국, 기타리스트 조준현 등이 합류한 11월은 당시 최고 수준의 세션맨들로 구성된 밴드였다. 말하자면 한국의 포플레이가 될 뻔 했던 프로젝트였던 것이다. 정해진 보컬 없이 각자 자신이 쓴 곡을 불렀던 것으로 유명하며, 이들의 노래 ‘머물고 싶은 순간’은 이후 빛과 소금에 의해 리메이크되기도 했다. “처음 들었을 때도 그렇지만, 이 곡은 지금 들어도 놀라워요. 전혀 시대에 뒤처지지 않았단 말이죠. 노래를 듣고 있으면 제가 정말로 행복했던 그 시간으로 돌아가는 기분이 들어요. 노랫말 자체도 정말 아름답거든요. CD를 구하고 싶은데 발매가 안 되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5. George Benson의
“사실 저는 라디오 DJ가 되고 싶었거든요. 그래서 나중에 DJ가 되면 꼭 시그널 음악으로 쓰겠다고 생각해 둔 곡이 있었는데, 그게 바로 조지 밴슨의 ‘This Masquerade’입니다. 도입부가 나오고 나서 잠시 휴지기가 있다가 기타 연주가 나오거든요. 바로 그 때 멘트를 하는 거죠. 밤을 잊은 그대에게, 유준상입니다.” 유준상이 마지막으로 고른 곡은 재즈 역사상 가장 위대한 기타리스트로 손꼽히는 조지 밴슨의 ‘This Masquerade’다. 그가 이미 추천한 래리 칼튼도 ‘조지 밴슨의 계보를 잇는 연주자’로 평가되고 있으니, 정교한 기타플레이에 큰 매력을 느끼는 유준상의 취향을 짐작해 볼 수 있다. “정교하게 사람의 마음을 찌르는 이런 음악들은 듣고 나면 또 듣고 싶어져요. 그래서 저는 앨범을 사면 질리도록 몇 백번씩 듣고 다음 앨범을 또 계속 듣는 식으로 음악을 즐겨요. 그런데 진짜 좋은 음악은 나중에 다시 들으면 또 좋은 거죠.”


“해금 연주도 좋은 게 있는데”



유준상│여행의 친구가 되어주는 음악들
사실, 테마를 벗어나자면 유준상이 사랑하는 음악은 종횡으로 끝없이 다양하다. 그는 에릭 베넷이나 마이클 부블레의 노래를 연습하는가 하면 함께 뮤지컬 <즐거운 인생>을 공연했던 뮤지컬배우 이영미의 노래도 좋아한다. 드라이브 여행을 떠날 때는 벅샷 르퐁크의 앨범을 주로 듣고 어느 날 무작정 떠난 여행지에서 들었던 봄여름가을겨울의 ‘내가 걷는 길’은 그에게 잊을 수 없는 여행의 추억으로 남아있다. “해금 연주도 좋은 게 있는데”하며 아쉬워하는 모습이나 지난해 <윤도현의 러브레터>에 나와 할로윈의 노래를 샤우트 창법으로 불렀던 장면을 생각해 보면 그의 음악 취향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다양하다. 그러나 그 많은 음악들의 공통점에 대해서 유준상은 단호한 생각을 갖고 있다. “10년 후에도 이 음악들이 제 마음속에서 차지하는 순위는 변함없을 것 같아요.” 음악을 향한 그의 사랑처럼, 앞으로 10년 동안 유준상이 많은 관객들의 마음속에 확고한 순위를 새겨 놓을 것 같은 예감이 든다. 벌써 하반기에 영화 <천국의 향기>와 뮤지컬 <살인마 잭>이 예정되어 있다고 하니, 부지런하기로 치면 그는 벌써 일등 배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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