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정적으로 말해 ‘예술은 순수하게 마음의 눈으로 보는 것’이라는 말은, 수능 모의고사 언어영역 15번 문제 지문으로 제시된 현대시를 읽으며 회의를 느낀 사춘기 소년소녀가 했을 때나 이해해줄 수 있는 말이다. 그 순수한 마음이란 녀석이 다양한 문화적인 맥락과 사소한 경험들 안에서 만들어진 얼마나 혼탁한 녀석인지 안다면 그런 식의 순진한 말을 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아는 만큼 보인다’는 식의 태도 역시 불완전한 주제에 단정적이라는 면에서 크게 다를 바 없다. 이 말은 결국 아는 만큼‘만’ 보인다는 얘기고, 예술 감상이란 경험을 아는 걸 확인하는 수준의 수동적 행위로 만들 뿐이다.

권오상, 신기운, 이동기, 이수경, 이환권, 정연두 등 국내외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작가들의 작품을 소개하는 인터알리아의 ‘감성론 Logic of Sensibility’展이 흥미로운 건 그래서다. 만약 작가의 이름이 사실은 생소하다고 느껴지는 독자라 해도 자신의 배경지식에 대해 부끄러워할 이유는 없다. 이 전시는 이토록 유명하고 작품마다의 이론적 체계를 이룬 작가들의 작품을 오히려 부담 없이 관람객의 감성만으로 느껴보길 원하는 전시이기 때문이다. 물론 배경지식이 아닌 순수한 마음으로 예술의 순수한 아름다움을 느끼자는 멍청한 얘기는 아니다. 단지 순수하든 혼탁하든 편견에 찌들었든 간에 자신의 감각과 판단력으로 시각 이미지를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감각의 메커니즘, 즉 감각론이야말로 그 어떤 체계적 작가론보다 앞선 것이라는 걸 배경지식 과잉의 시대에 새삼스레 말해줄 뿐이다. 가령 이동기의 ‘777’을 보며 팝아트 혹은 키치에 대해 떠드는 게 결코 잘난 척은 아니지만 이번 전시에서만큼은 그의 작업이 주는 느낌 자체에 집중해보길 바라는 것이다. 적어도 감상이란 것이 아는 걸 확인하고 안심하며 돌아서는 게 아닌, 그 이상의 과잉을 느끼고 불편함과 호기심을 느끼는 경험인 게 맞는다면.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1993년│작가 유홍준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널리 퍼지게 된 건 이 책의 ‘인간은 아는 만큼 느낄 뿐이며, 느낀 만큼 보인다’는 구절 때문이다. 사실 이 말은 예술 감상에 있어 배경 지식의 중요성을 드러낼 뿐 아니라 그것 역시 일종의 감성론이라는 것을 드러낸다. 아는 만큼 느낄 수 있다면 자신이 알고 있는 작품 혹은 작가에 대한 배경은 작품을 보며 느껴지는 감정에 얼마만큼 영향을 미칠 것인가? 이 주제에 천착한다면 이 책은 미학 책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아는 게 많은 가이드가 자신이 느끼고 본 것에 대해 이야기해주며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는 미술사 책이 되었고, 순수한 마음의 눈 운운하는 청소년들을 위한 좋은 교양도서 역할을 해줬다.

<센스 센서빌리티>
1995년│이안 감독

제목에 기댄 추천 같지만 이 영화를 비롯한 제인 오스틴 원작의 작품에 등장하는 사랑의 방식과 입장차는 예술을 받아들이는 방식과 너무나 흡사하다. 가장 잘 알려진 <오만과 편견>에서 엘리자베스가 다아시를 속물이라 여기게 되는 건 가문의 격차 때문에 빙리와 제인의 결혼을 만류하기 때문이다. 아마 그녀라면 유명 작가의 작품이기에 무조건적으로 칭찬하는 사람 역시 속물로 취급했을 것이다. 그에 반해 <센스 센서빌리티>는 일종의 정반합이다. 이성을 대표하는 엘리노어와 감성을 대표하는 마리안 중 어느 한 가지 태도가 맞거나 틀리다고 하지 않는다. 두 방식 모두 일종의 실패를 혹독하게 겪으며 단순한 중도가 아닌 스스로를 지양하는 방식으로 좀 더 폭넓고 여유로운 사랑의 태도를 갖게 된다. 사랑 대신 감상으로만 단어를 바꿔도 이것은 예술을 받아들이는 자세에 대한 이야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글. 위근우 (eight@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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