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혁이라는 배우를 만나는 것은 마치 영화에서 미리 예상했던 것과는 다른 반전을 확인하는 것에 가깝다. 충격적이진 않지만 신선한 반전. SBS <시티홀>에서 차승원 옆에 있어서 평범해 보였던 키는 180㎝를 넘기고, 얼굴에선 시청률 30%대의 주말극 SBS <조강지처 클럽> 출연과 문영남, 노희경, 김은숙 등 스타작가와의 작업으로 다져진 노련함과 자신감보단 20대 중후반 청년의 앳된 호기심과 불안감이 엿보인다. 하지만 가장 적응하기 힘든 건, 역시 그의 출연작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던 조곤조곤한 목소리와 수줍어하는 미소다.

무대 위에 서는 것 보다 연출에 몰두했던 대학 시절

“사실 처음에는 이 역할 못하겠다고 그랬어요. 저랑 비교하면 너무 완벽한 사람인 거 같았거든요.” 그의 말처럼 <시티홀>의 하수인은 자신이 하는 일이라면 모든지 성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지닌 조국(차승원) 옆에서 역시 자신감 충만한 태도를 보이는 엘리트 보좌관이다. 시의회 민주화(추상미) 의원을 조국에게 소개시켜주고, 밴댕이 아가씨 선발대회 사업계획서를 확인할 땐 오히려 조국보다 한 발 앞선 속도를 보여주기도 한다. 만화 캐릭터 그리는 걸 좋아하고 이런저런 스토리를 구상하느라 수업시간에도 멍하게 있던, 그래서 부모님께서도 “커서 뭘 할진 몰라도 회사원은 아닐 거라” 생각할 정도로 몽상가 타입의 소년이었던 그와는 분명 어울리지 않는 인물이다. 하지만 그가 하수인에게서 조국에 대해 갖는 동경과 질투, 열등감을 읽어냈을 때 “수인이야 말로 나와 가장 닮은 사람”이라는 결론을 얻을 수 있었다.

영화광인 이모를 따라 영화 보는 걸 무척 좋아하고 고등학교 3학년 땐 선생님의 권유로 연극반 활동까지 했지만 그가 연기자에 이르는 과정은 결코 키도 크고 얼굴도 잘생긴 연기 지망생의 자신만만한 도전기와는 거리가 멀다. “어떤 창작물이 있으면 표면에 드러나는 것보다 뒤에 서는 게 좋았던” 그가 대학생활을 하며 관심을 가진 분야는 영화 연출이었다. 10개월짜리 연출 교육을 받고나서 연기 아카데미를 찾았던 것도 연출자로서 배우를 지도하기에는 연기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러다 아직 연기에 대한 자의식을 갖기도 전에 기획사에 소속되었으니 뮤직비디오 출연으로 데뷔하던 날, 잘생기고 스타일이 좋은 수많은 사람들이 같은 필드에서 다툴 경쟁자가 된다는 생각에 강한 열등감과 부담을 느낀 건 당연한 일일지 모른다.

“어릴 적부터 읽었던 영화 잡지 표지에 나오는 게 꿈”

그런 그가 연기자라는 직업에 매력을 느낀 건 무대의 화려함 때문이 아니라 영화 속 캐릭터들의 연기에 감정이입하는 과정을 통해 “까탈스럽던 성격이 어느 정도 배려심 있게” 변했기 때문이었다. 때문에 그에게 출연작들은 캐릭터에 대한 공감으로 기억된다. 여자들에게 상처주지 않으려 노력하는 <조강지처 클럽>의 한선수를 연기하며 “감동도 많이 받고 내 삶 자체가 치료됐다”고 말하고, KBS <그들이 사는 세상>에서 자신이 연기한 준기와 이별하고선 전화기에 뜬 지오(현빈)의 번호를 보고 웃는 준영(송혜교)에 대해 “정말 싫은 타입이에요, 그죠?”라고 재차 확인할 때 좋은 연기를 하고 싶다는 그의 한 줌 진심을 만날 수 있다.

그래서 이준혁이라는 배우의 매력은 연기라는 새로운 길 위에서 얻게 된 관심과 환호보단 <슬램덩크>를 보며 꿈을 찾아 노력하는 열정에 가슴 뛰고 조곤조곤한 말투 가운데서 <파이트 클럽>의 영상미에 대해 말할 때만 목소리가 커지는, 몽상가 혹은 시네마 키드의 태도에서 더 잘 드러난다. 다른 어떤 것보다 어릴 적부터 읽었던 영화 주간지의 표지에 단체 샷으로라도 나오는 게 꿈이라고 역시 수줍게 웃으며 말하는 그의 맑은 열정이 앞으로 어떤 구체적인 형상으로 우리에게 드러날 지 기대하게 되는 건 그래서다.

글. 위근우 (eight@10asia.co.kr)
사진. 이원우 (four@10asia.co.kr)
편집. 이지혜 (seven@10asia.co.kr)

© 텐아시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