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가 좋아하는 소재인 불륜, 삼각관계, 운명적인 만남은 모두 사랑과 가족이라는 테두리 안에 묶일 수 있을 것이다. 특히나 주말 저녁 8시라는 시간대는 가족이라는 대의명분 아래 이 세 가지를 재미를 일으키는 요소들로 변주해왔다. 현재 방송 중인 MBC <잘했군 잘했어>와 KBS <솔약국집 아들들> 역시 이 혐의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두 드라마의 가족 모두 요즘은 찾아보기 힘든 대가족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데, 이는 가족의 진정한 의미를 묻는다는 기획의도 외에도 다양한 에피소드를 만들어내는 데에도 유용하다. <잘했군 잘했어>의 가족들을 통해 삼각관계와, 비혼모, 혼전임신, 그레이 로맨스까지 다양한 이야기들을 할 수 있고, 솔약국집과 그 이웃들의 모습을 통해 훈훈한 이웃 간의 정과 가족들의 사랑을 말할 수도 있다. 일견 비슷해 보이지만 하고 있는 얘기도 모양새도 다른 두 가족을 <10 아시아> 강명석 기자와 김선영 TV평론가가 방문했다. /편집자주

MBC <잘했군 잘했어>에서 모든 어머니와 자식은 끊임없이 갈등한다. 강주(채림)는 영순(김해숙)의 반대에도 별(전민서)을 낳고 비혼모가 되고, 승현(엄기준)은 희수(정애리)의 만류에 아랑곳하지 않고 강주를 사랑하며, 별의 아버지인 호남(김승수)은 강주와 재회하자 승현의 친척인 미라(김정화)와 파혼하고 강주와 결혼하려 한다. 이 드라마의 어머니들이 남편과 사별하거나, 남편이 도망치거나, 사업에서 망한 남편 대신 자식을 키운 것은 우연이 아니다. 영순의 말대로 “남편 복은 없어도 자식 복은 바라는” 그들은 자식에게 모든 걸 쏟지만, 자식들은 그 기대를 배반한다. 하지만 어머니의 원망은 자식에게 향하지 않는다. 희수는 자신의 제자이기도 했던 강주에게 폭언을 퍼부으며 승현의 이별을 종용하고, 호남의 어머니는 호남의 파혼 선언에 호남 대신 미라에게 “니가 긁지 않으면 경솔한 말 하지 않을 우리 의사 선생님이 아니지”라고 말한다.

귀한 내 자식 대신 희생양으로 삼은 남의 자식들

소통이 어긋나면서 어머니와 자식, 그의 연인의 관계는 끝나지 않는 도돌이표를 반복한다. 희수는 승현에게 실망할 때마다 강주를 윽박지르고, 영순은 강주에 대한 안쓰러움에 “우리 사위” 승현을 만나 하소연하며 결혼을 요구한다. 어머니와 자식의 갈등은 더 깊이 있게 들어가지 못하고, 반대로 미래의 시어머니와 며느리, 장모와 사위의 공방은 서로의 장소에 찾아가 험한 말 한두 마디 하는 것으로 끝난다. <잘했군 잘했어>에는 며느리와 시어머니의 화끈한 캣 파이트도 없고, 가치관의 차이를 겪는 부모와 자식 세대의 이야기를 들여다 볼 통찰력도 없다. 남는 것은 그릇된 모성에 대한 면죄부뿐이다. 희수는 자신의 연인 상훈(천호진)의 어머니(윤소정)로부터 온갖 모욕을 받지만, 승현과 강주의 관계를 알자 강주에게 똑같이 행동하고, 영순은 남편에게 버림받았으면서도 강주를 버리고 떠난 호남을 별의 아빠라는 이유만으로 붙잡는다.

어떤 여자도 어머니가 되면 어쩔 수 없다. 하지만 타인에 대한 최소한의 상식과 배려마저 무시하는 이 공포스러운 모성은 기존 가부장제를 정당화 시키는 수단일 뿐이다. 희수는 남편 없이 승현을 길렀으면서도 강주에게 한 없이 냉혹하고, 영순은 아들인 은혁(최다니엘)이 공부를 하고 아내인 은비(서효림)가 아이를 키우는 것은 바라도 그 반대는 용납하지 못한다. 이 어머니들은 비혼모가 내 자식의 결혼상대가 될 수 없음을, 시어머니가 며느리를 구박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한다. 영순은 15년 동안 집을 나가 바람을 피웠던 남편(주현)이 돌아온 뒤 이내 그와 가까워진다. 그리고 그 때 <잘했군 잘했어>는 경쾌한 음악과 함께 그들의 갈등을 코믹한 느낌으로 처리한다.

이 ‘막장 드라마’의 유일한 미덕

비록 여주인공이 변신을 위해 얼굴에 점을 그리지는 않지만, <잘했군 잘했어>는 2009년의 가장 퇴행적인 ‘막장 드라마’다. <잘했군 잘했어>가 그리는 어머니와 가족상은 바람둥이 남편이 아내에게 폭력을 휘둘러도 아내는 남편을 사랑하고, 며느리는 시어머니의 말에 쥐 죽은 듯이 침묵하곤 했던 그 시절의 드라마에서 전혀 벗어나지 못한다. 이는 <잘했군 잘했어>가 어떤 존재감도 보여주지 못하는 이유다. KBS <엄마가 뿔났다>에서 김혜자 마저 잃어버린 자신을 찾겠다고 선언하고, SBS <아내의 유혹>에서는 남편에게 버림받은 여성의 복수극이 등장했다. 이 시대에 <잘했군 잘했어>는 그 변화를 반영하지 못한 채, 어머니가 자식을 끔찍하게 사랑하면서 며느리는 구박하는 것이 당연했던 그 시절의 가치를 아무런 고민 없이 옹호한다. 이 드라마에서 단 하나의 볼거리가 있다면, 정애리와 김해숙부터 최다니엘과 서효림에 이르기까지 어떤 극단적인 상황에서도 현실적인 톤을 유지하는 배우들의 좋은 연기뿐이다.

그래서 <잘했군 잘했어>는 역설적으로 한국의 어머니상, 혹은 모성이 결코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한다. <잘했군 잘했어>는 어머니는 다 그렇다고 말하지만, 오히려 이 드라마를 통해 한국의 어머니상이 20여년 전과 달라졌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게 이 얌전한 척, 따뜻한 척 하느라 재미마저 없는 막장 드라마에서 그나마 찾을 수 있는 교훈일 것이다.
글 강명석

솔약국집은 혜화동로터리에 있다. 앞에는 마을버스가 서고, 오가다 마주치는 사람들이 안부를 묻는 곳이다. 옛 풍경의 흔적이 고스란한 좁은 골목길이 사이사이 나있고 그곳에서 느릿느릿 걷는 이들이 있다. KBS <솔약국집 아들들>이 그리는 풍경은 정확히 동물원의 노래 ‘혜화동’의 가사가 불러일으키는 아련한 추억의 정서에 닿아있다. 이를테면 이것은 숨 가쁜 속도전의 시대에 “우린 얼마나 많은 것을 잊고 살아가는지”를 묻는 드라마다.

우리 가족만이 아닌 너른 품을 가진 가족 공동체

그 물음에 대한 대답은 먼저 가족의 의미를 통해 이루어진다. 미국에서 시한부 선고를 받고 돌아온 혜림(최지나)은 진풍(손현주)에게 ‘혜화동에 살던 때가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시절이었다’고 말한다. 그녀가 그 때를 그리워하는 것은 가족과 친구들이 곁에 있는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국으로 떠난 뒤 부모를 잃고 병까지 얻은 그녀에게 혜화동으로의 귀환은 가족 복원의 의미를 갖는다. 철없는 남편과 시누이, 그리고 아이들 뒷바라지에 힘겨워하다가 어머니 같은 배여사(윤미라)와 친구 진풍을 만나며 그리웠던 가족애를 다시 찾는 것이다. 혜림의 남편 브루터스 리(조진웅)와 시누이 수진(박선영) 역시 결손 가정에서 자란 외로운 존재들이지만 혜화동에서 이웃들과 관계를 맺게 되면서 가족의 정을 깨닫게 된다. 고아인 솔소아과 간호사 복실(유선)도 솔약국집 식구들과 가족 같은 정을 나누고 있다.

그러니까 이 드라마에서 혜화동은 그 자체로 커다란 가족공동체다. 주민들은 반상회를 통해 정기적으로 만나고 그것을 주관하는 솔약국집 할아버지 송시열(변희봉)은 동네 전체를 관장하는 아버지 같은 존재다. 앞으로 결혼을 통해 진짜 가족으로 발전하게 될 주요 인물들은 그 이전에 먼저 “같은 동네 같은 이웃”으로 만나 서로에 대해 알아가며 유사 가족 관계를 형성한다. 폭주족 스타일의 브루터스와 보수적인 송시열은 상이한 가치관으로 첫 만남부터 갈등을 빚지만 이내 속마음을 털어놓는 관계가 된다. 무뚝뚝한 광호(백일섭)와 애교 넘치는 은지(유하나)도 우정을 나누는 사이가 되고, 선풍(한상진)도 안여사(김혜옥)와 비밀을 공유하며 한결 가까워진다. 영달(김용건)네 딸 은지가 실은 동생 부부의 자녀라는 사실 또한 가족의 개념을 보다 넓게 보는 설정이다. 그래서 <솔약국집 아들들>은 전통적인 공동체 문화가 살아있는 혜화동을 통해 홈의 개념을 확장하는 홈드라마다.

혜화동 골목 풍경 안에 숨 쉬는 느림의 미학

이 드라마가 강조하는 또 하나의 대답은 느림의 미학이다. <솔약국집 아들들>은 일상성이 살아있는 시시콜콜한 에피소드와 작위적이고 가벼운 해프닝의 경계를 오가는 코미디 안에서 인물들의 중요한 정서를 전달할 때는 종종 카메라를 고정시키고 그들을 가만히 응시하는 멈춤의 순간들을 연출한다. 예컨대 답답할 정도로 과묵한 진풍과 선풍이 할 말을 삼킨 채 그리운 이의 집 앞을 서성거릴 때나 광호가 복실에게 단팥빵을 던져주고 느릿느릿 뒤돌아설 때 혹은 하나를 업은 배여사가 지친 걸음으로 집에 되돌아올 때, 한밤 한적한 골목길 위의 그들을 롱숏으로 오래도록 잡아내는 신들은 최근 드라마에서는 점점 사라져가는 장면들이다. 그 숏 안에 함께 담긴 고즈넉한 혜화동 골목 풍경에는 숨 가쁜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잠시 걸음을 멈추고 지켜야할 가치와 아름다움이 숨어있다. 그것은 사람들이 솔약국이 문을 닫거나 삼미 슈퍼에 물건이 없을 때 더 큰 삼거리로 나가는 동안 자꾸만 잃어가는 것들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솔약국집 아들들>의 가장 중요한 주인공은 그 소박하고 오래된 혜화동 골목일지도 모른다.
글 김선영

글. 강명석 (two@10asia.co.kr)
글. 김선영 (TV평론가)
편집. 이지혜 (seven@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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