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정태우가 야구장에서 깜짝 프러포즈를 했다. 지난 4월 11일 정태우와 정민희는 대전구장에서 열린 한화 이글스와 롯데 자이언츠의 경기에 시구자와 시타자로 나왔다. 5회말 클리닝 타임에 정태우는 그라운드에 다시 등장했다. 전광판에는 신부를 위한 프로포즈 영상이 흘러나왔다. 영상이 끝나자 정태우는 무릎을 꿇고 신부에게 꽃을 건네며 프로포즈를 했다. 신부는 울었다. 이 모든 건 카메라에 담겼다. 인터넷 뉴스들은 감동적인 프로포즈라며 기사를 쏟아냈다. 감동적이라니. 손발이 오그라들었다. 며칠 전엔 광화문 광장 공사장 주변을 걷다가 공사 개요를 봤다. 청계천 광장과 마찬가지로 광화문 광장에도 공개 프로포즈를 위한 장소가 마련될 거란 내용이 있었다. 얼굴이 화끈거렸다. 한국은 어느 순간부터 이벤트 사회가 됐다. 모든 게 이벤트다. 대통령 선거도 이벤트다. 클럽 공연도 이벤트다. 프리허그 운동도 이벤트다. 모든 것이 극도로 이벤트화된 나머지 종종 소름이 끼친다. 그중에서도 가장 겸연쩍은 건 이벤트 청혼이다. 왜 우리는 수많은 타인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청혼을 하는 게 로맨틱하다고 생각하는 걸까. 거대한 빌딩의 전광판이나 청계천 주위의 벽 따위에 영상으로 그려지는 샤방샤방한 사랑고백이 왜 필요한 걸까. 평생 한 사람하고만 섹스하겠다고 선언하는데 수많은 타인들의 환호성이 필요한가. 프로포즈는 긴밀하고도 개인적인, 일평생 가장 로맨틱한 순간이다. 작은 촛불 하나와 근사한 반지 하나면 충분하다.

글. 김도훈 ( 기자)

© 텐아시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