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게 종말의 광경일까. 신종인플루엔자 A(H1N1)의 감염자가 한 달도 안 돼 800여명으로 늘었다. 멕시코와 미국에서는 이미 20명이 사망했다. 신종 인플루엔자 A가 전 세계적인 공포심을 자극하는 것은, 이 바이러스가 1918년 4천만 명 이상의 목숨을 앗아간 스페인 독감의 친척이기 때문이다. 당시 스페인 독감으로 죽은 사람 수는 1차 대전의 희생자보다 더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책은 아무것도 우리에게 가르쳐주지 않았다. 위의 5부작 동영상 시리즈를 꼭 보시길 바란다. 중요한 건 교육이다!) 의학이 발전해도 치명적인 바이러스는 사라지지 않는다. 2003년 발병해 774명을 학살한 사스와 2005년 발생해 70여명의 목숨을 가져간 조류독감을 떠올려보시라. 인간을 숙주로 살아가는 바이러스는 의학의 진화보다 더 빠르게 진화한다. 그야말로 영원한 전쟁인 셈이다. 그래도 한국은 신종 인플루엔자 A의 안전지대라 하니 지나치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 현재 가장 위험한 지역은 스페인과 프랑스에서 독일과 아일랜드에 이르기까지 발병자가 속출하는 유럽이란다. 나는 5월 11일 칸국제영화제로 출발한다. 예년에 비해 한산한 극장에서 마스크를 쓰고 타란티노와 이안의 신작을 보게 될 거다. 영화를 향한 목숨을 건 열정? 그럴 리가 있나. 나도 살고 싶다. 오래 살고 싶다. 그래도 만에 하나 지중해 해변에서 죽을 가능성을 대비해 T.O.P이 무대에서 썼던 징 박힌 가죽 마스크를 애타게 인터넷으로 찾고 있다. 평범하고 밋밋한 마스크를 쓴 채 죽은 모습이 <르몽드> 1면에 실리는 건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글. 김도훈 (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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