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레나 엄마, 아니 릴리라고 불러야 하나요? 흔히 ‘부러우면 지는 거다!’라고들 하지만 반클리프 앤 아펠 목걸이부터 켈리 백까지, 한때 제가 침만 열심히 바르다 포기해버린 고가의 아이템들을 대수롭지 않게 척척 걸치고 나오는 당신을 어찌 부러워하지 않을 수 있겠어요. 게다가 같은 아줌마거늘 저는 숱 때문에 삼십대 이후엔 언감생심 꿈도 못 꾸는 생머리 가 여전히 잘 어울리지, 계란형 얼굴에다가 모델 못지않은 몸매를 유지하고 있으니 부러울 수 밖에요. 당신 딸 세레나를 비롯한 젊은 축들의 패션 센스에 열광하는 이들이 많다지만 사실 <가십걸>의 패션 퀸이라면 누가 뭐래도 릴리, 당신 아니겠어요? 오죽하면 지금까지 사귄 남자들의 리스트가 A4 용지로 두 페이지를 넘기겠습니까. 그 방면에 일가견이 있는 세레나도 엄마의 남자 리스트를 보고는 두 손 두 발 다 들던 걸요. 미모로 보나 사회적 지위로 보나 어지간한 남자는 눈에도 안 차련만 그 많은 남자들이 대체 다 어디서 어떻게 조달된 걸까요. 평생 달랑 한 남자만 바라보고 산 저로서는 그야말로 판타지죠 뭐.

대체 그 자제력은 어디서 오는 것입니까

그런데 저는 그 무엇보다 당신이 지닌 평정심이 제일 부럽더군요. 세레나가 이때껏 벌인 사건사고가 어디 한두 가지입니까. 자고 깼더니 누군가가 옆에서 죽어있질 않나, 절친의 연인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어 입방아에 오르질 않나, 얼마 전엔 음성 메시지 하나 남겨 놓은 채 스페인으로 놀러가기까지 했죠? 여행에서 돌아와서는 아무래도 만취 상태에서 결혼을 해버린 것 같다며 변호사를 찾아다니기도 하고요. 아무리 자유분방한 미국 땅이라 한들 아직 고등학생이거늘 그게 있을 수 있는 일이냐고요. 저라면 딸을 붙들고 죽네 사네 난리 법석을 피우고 남으련만 큰 소리 한 번 내는 법 없이 고작 외출 금지만 내리고 마는 당신이 저는 너무나 신기했답니다. 지난 번 루퍼스의 딸 제니의 생일 파티 때도 그래요. 제니가 반발심에 어중이 떠중이들을 당신 집에 죄다 불러들이는 바람에 귀한 가구며 그림이며 옷가지들을 온통 망쳐 놓았지만 잠시 잠깐 얼음이 되었을 뿐 크게 화를 내지는 않더군요.

물론 저도 이미 벌어진 일을 두고 왈가왈부하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은 없다고 ‘생각’은 합니다. 되돌릴 수 없다 싶을 땐 쿨하게 처신하는 편이 그나마 인심이라도 잃지 않는 길이라는 걸, 알고는 있다고요. 하지만 그게 어디 말처럼, 생각처럼 쉽나요. 부자라면 돈이 다 해결 해줄 텐데 화내고 자시고 할 게 뭐냐 반문하는 이도 있을 거예요. 그러나 만약 KBS <미워도 다시 한 번>의 한명인(최명길) 회장이라면 벌벌 떨며, 중히 여기는 아들이 저지른 일이라 해도 싸대기부터 한 대 날리고 볼 걸요. <미워도 다시 한 번> 얘길 꺼내고 보니 당신과 은혜정(전인화)은 첫 아이를 낳자마자 입양을 보냈다는 점에서 동병상련의 비밀을 지닌 동지네요. 죽은 줄만 알았던 딸아이가 남의 손에서 자랐다는 사실을 알고 미칠 듯 괴로워한 은혜정에 비해 루퍼스와 함께 아이를 찾아 나섰을 때도 당신은 비교적 담담했지요. 그런 놀라운 자제력은 어디서 오는 걸까요. 훈련의 결과일까요, 아니면 타고 난 기품일까요.

그래도 제가 더 잘난 게 하나는 있더군요

굳이 당신의 기품에 흠집을 내려는 의도는 아니지만 루퍼스와 척의 아버지 바트 사이에서 갈등하다 결국 바트와 결혼해버린 이유가 순전히 세레나와 루퍼스의 아들 댄의 사랑을 배려했기 때문은 아니라고 여겨집니다. 젊은 시절 연인 루퍼스와 재산 상속 중에 상속을 택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바트에게 따라올 엄청난 부가가치를 선선히 포기할 수 없었던 건 아닐는지요. 특히 바트가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난 후 바로 루퍼스와 여행을 떠나는 걸 본 뒤론 더 이상 당신 편을 들어줄 수가 없더라고요. 중국 고사에 남편 무덤에 흙이 빨리 마르라고 부채질을 해댄 여자가 있었다지만 남편 장례를 치르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밀월여행을 떠나다니요.

이런 게 애증일까요? 당신의 우아함과 평정심은 부러워하면서도 그 뒤에 숨겨진 속물근성엔 치를 떨게 되니 말이에요. 이런저런 얘기 구구절절 늘어놓았지만 당신을 얄밉게 보는 진짜 이유를 마지막으로 대자면, 아들 에릭이 마음의 병을 얻었을 때 따뜻하게 감싸주기는커녕 정신병원에 방치했던 사실만큼은 아무리 너그러이 봐주려 해도 이해가 안 됩디다. 적어도 저는 제 체면 때문에 아들에게 그런 상처를 주지 않을 자신은 있거든요. 백 가지를 지다가 한 가지 이기니까 그거 물고 늘어지는 꼴이라고요? 하하, 그럴 수도 있겠네요.

글. 정석희 (칼럼니스트)
편집. 이지혜 (seven@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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