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화(바람의 화원)갤러리 일동’, ‘이승기 갤러리 일동’. 지난 21일 서울 목동 SBS 본사에서 열린 SBS <찬란한 유산>의 제작 발표회 입구 앞에는 <찬란한 유산>의 남자 주인공인 이승기와 SBS <바람의 화원>의 팬들이 보낸 화환들이 늘어서 있었다. 이 광경은 <찬란한 유산>을 단적으로 설명했다. <찬란한 유산>에는 이승기를 비롯, SBS <바람의 화원>에서 정조와 정향을 연기했던 배수빈과 문채원이 출연한다. 연출 역시 <바람의 화원>에 참여했던 진혁 감독. 여기에 청춘스타 한효주까지 가세한 탓에 <찬란한 유산>의 제작 발표회 분위기는 한껏 들뜬 분위기에서 진행됐다. 배우들이 한 명씩 등장할 때마다 환호성이 터져 나왔고, 몇몇 팬들은 쉴 새 없이 배우들의 모습을 카메라로 담았다.

전형적인 재벌 드라마와 가난에 대한 의미를 찾는 드라마 사이

비교적 조용하게 진행되는 기존 주말 드라마와는 다른 <찬란한 유산>의 제작 발표회의 열기는 이 드라마의 중요한 포인트이기도 하다. 가족 전체의 이야기를 다루는 다른 주말 드라마와 달리, <찬란한 유산>은 젊은 배우들이 드라마의 중심에 있다. 중견 기업을 이끄는 할머니 덕에 재벌 2세로 살아가던 선우환(이승기)이 우연히 할머니를 돕다 자신의 유산을 대신 상속받게 된 고은성(한효주)과 이리 저리 얽히면서 사랑을 만들어나가는 것이 <찬란한 유산>의 스토리. 여기에 모든 것을 갖춘 남자 박준세(배수빈)와 어머니의 재혼으로 고은성과 ‘동갑내기 자매’가 된 유승미(문채원)가 이들과 사각관계를 형성한다. 물론 성격 나쁜 재벌 2세 남자와 가난하지만 씩씩한 여성의 사랑 이야기는 한국 드라마의 가장 전형적인 설정이다. 하지만 진혁 감독은 선우완 대신 고은성이 받게 되는 유산의 의미에 대해 설명하며 “살아가는데 돈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얘기하고 싶다”며 <찬란한 유산>의 기획 의도를 강조했다. <찬란한 유산>이 재벌 2세 드라마의 전형성에서 벗어나 이 작품만의 재미와 의미를 찾을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개과천선하는 망나니 재벌 2세 선우환, 이승기
“무슨 연기를 하든 비교가 될 테니까 신경 쓰이는 건 사실이다” 제작 발표회 현장에서 이승기는 KBS <꽃보다 남자>의 구준표와 자신을 비교하는 질문을 계속 받았다. 이승기가 “구준표 만큼 엄청난 재벌은 아니고, 굳이 표현하자면 준재벌 2세”라고 했지만, 할머니의 재산을 등에 업고 안하무인의 자세로 사람을 대하고, 자신이 폭행한 회사 종업원에게 수표를 뿌리는 모습은 우리가 보아오던 재벌 2세를 연상시키는 것도 사실. 하지만 제작 발표회에서 공개된 하이라이트 영상에서 이승기는 생각 이상으로 망나니 재벌 2세를 자신의 스타일로 소화하고 있었다. 그가 “연예계 생활 5년째인데, 가수 출신이니까 저 정도면 잘 하네란 말은 듣고 싶지 않다”라는 말을 실천에 옮길 수 있을까.

돈이 많으나 적으나 언제나 씩씩한 고은성, 한효주
KBS <봄의 왈츠>, SBS <일지매>등의 작품에서 한효주는 똑똑하고, 참하고, 조용한 이미지의 여성을 연기했다. <찬란한 유산>의 고은성 역시 똑똑하고 당찬 아가씨지만, 무례한 선우환에게 주먹을 날릴 만큼 대찬 성격이기도 하다. 덕분에 “이번 작품에서는 마음대로 소리 지를 거 지른다”고. 반면 이런 고은성의 활달함 뒤에는 발달장애를 앓는 실종된 동생을 찾고, 아버지의 죽음 뒤에 닥쳐온 가난을 감당해야 하는 사연이 숨겨져 있다. 한효주가 고은성의 내면을 얼마나 다채롭게 표현할 수 있는가도 <찬란한 유산>의 중요한 포인트다.

어느 것 하나 쉽게 풀리지 않는 인생의 유승미, 문채원
“<바람의 화원> 제작발표회에서는 제가 프로필에 올릴 수 있는 작품이 없었는데, 이제는 생겼네요.” 제작 발표회에서 문채원은 <바람의 화원>의 의미를 이렇게 설명했다. <바람의 화원>은 무명이었던 그를 순식간에 주목받는 배우로 만들었다. 그리고 <찬란한 유산>의 문승미는 <바람의 화원>의 정향과 사뭇 다르다는 점에서 그에게 또 한 번의 분기점이 될지도 모른다. 문승미는 어머니가 돈을 노리고 고은성의 아버지와 재혼하고, 오래 전부터 사랑했던 선우환마저 고은성에게 뺏길 수도 있다는 사실 때문에 고은성에게 열등감을 느낀다. 이 때문에 고은성 몰래 아버지의 사망 보험금을 독차지한 어머니를 증오하면서도 점점 어머니와 비슷한 악녀로 변신한다. “드라마에는 악인이 한 명쯤은 필요하다. 하지만 여러 아픔이 있는 캐릭터인 만큼 시청자가 이해할 수 있는 인물로 그려내겠다.”

키다리 아저씨가 된 엄친아 박준세, 배수빈
배수빈의 설명에 따르면 박준세는 키다리 아저씨 같은 엄친아. 돈 많고, 성격 좋고, 잘 생겼고, 심지어 싸움까지 잘하면서 고은성을 언제나 든든하게 도와주는 남자다. 배수빈 스스로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캐릭터라고 말할 정도. 자신의 캐스팅에 대해 “<바람의 화원> 종영 파티에서 감독님에게 술 한 잔 따라드린 것 밖에 없다”고 말한 것 치고는 매우 멋진 배역을 받은 셈이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연기가 쉽지 않은 것도 사실. “<바람의 화원>에서도 문무에 모두 능한 정조를 연기하기 위해 많은 고민을 해야 했다. 이번에도 어떻게 이 완벽한 캐릭터에게서 인간적인 아픔 같은 내면을 끌어낼 것인가에 대해 생각해야한다”는 게 배수민의 고민.

관전 포인트
“아내와 연애할 때는 늘 좋은 얘기만 했는데 요즘은 대화의 70%가 돈 얘기다.” 진혁 감독은 <찬란한 유산>이 단지 재벌 2세의 사랑 이야기가 아니라 돈의 의미에 대해 다루는 드라마라는 것을 강조했다. 기존의 이야기 구조에 익숙한 중년 이상의 시청자들이 많이 보는 주말 드라마 시간대에 방영되는 <찬란한 유산>에서 재벌 2세와 사각관계가 시청자들을 끌어들일 익숙한 요소들이라면, 가난과 돈에 대한 접근은 <찬란한 유산>과 기존 트렌디 드라마를 차별화 시킬 수 있는 부분이다. <찬란한 유산>이 익숙함과 차별화된 메시지의 균형을 잘 이룰 수 있을지 궁금하다.

글. 강명석 (two@10asia.co.kr)
사진. 이원우 (four@10asia.co.kr)
편집. 이지혜 (seven@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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