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마네와 모네, 드가 같은 화가들의 작품을 모사 혹은 복사해서 ‘인상주의 화가’展을 기획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자신 있게 말하건대 관객은 속았다고 격렬하게 항의할 것이고 기획 큐레이터는 구속되거나 정신이상자 취급을 받을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건 전시된 작품의 퀄리티가 아니라 오리지널리티이다. 대부분의 예술작품은 그것의 탁월한 형상과는 별개로, 그것이 유일무이한 것이기에 가치를 인정받는다. 하지만 앞서 말한 복사물을 이용한 전시가 버젓이, 그것도 돈도 받으며 이뤄지고 있다면 믿을 수 있을까? 더 정확히 말하면 원작 개념 자체가 없는 예술품의 전시가 세상엔 있다. 바로 사진전이다.

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진행 중인 ‘인물사진의 거장 카쉬(KARSH)’展은 카쉬의 오리지널 빈티지 프린팅 작품을 전시했다는 점에서 일종의 원작 개념을 가지고 있는 사진전이긴 하다. 하지만 원작을 전시하는 것이 당연한 일반 회화 전시에서 굳이 ‘누구누구의 원작을 전시한다’고 홍보하지 않는 것을 떠올리면 이런 오리지널리티의 강조는 오히려 사진이 본래 ‘유이무일한’ 매체라는 것을 드러낸다. 이번 전시가 오드리 햅번이나 윈스턴 처칠 등의 얼굴을 담은 인물사진이라는 점은 그래서 더 흥미롭다. 세상에서 대체 불가능한 것 중 하나는 바로 한 사람이다. 유명하든 유명하지 않든 한 사람을 다른 사람으로 대체할 수는 없다. 때문에 사진 자체는 복제 가능한 매체지만 그 안에 담긴 대체 불가능한 어떤 사람의 존재는 그 사진이 세상에 하나밖에 존재할 수 없을 것 같다는 느낌을 준다. 어쩌면 인물사진은 복제 가능한 매체를 다루지만 과거의 예술작품처럼 유일무이한 작품을 만들고 싶었던 사진작가의 모순된 감정이 가장 잘 드러난 형식인지도 모르겠다.

<아멜리에>
2001년│감독 장 피에르 주네

외로운 사람일수록 취미가 다양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곡식 자루에 손을 넣거나 갓 구운 파이껍질을 스푼으로 깨뜨리는 걸 좋아하는 아멜리에나 버려진 증명사진을 모으고, 시멘트에 찍힌 발자국 사진을 찍는 니노처럼. 특히 어릴 적 친구들에게 놀림과 괴롭힘을 당해 사람들과의 접촉을 피하는 니노가 즉석 사진기에서 사람들이 버린 증명사진을 모으는 건 흥미로운 일이다. 사람들이 버린 증명사진은 잘 나왔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래서 연출되지 않은 그 사람만의 성격이 드러나기도 한다. 카쉬는 “잠깐 잠깐의 순간에 인간의 영혼과 마음이 그들의 눈에, 그들의 손에, 그들의 태도에 나타난다”고 말했다. 니노는 바로 그 찰나가 우연히 드러난 증명사진들을 통해 그만의 방식으로 사람들과 소통한 건 아닐까.

‘거울신화’展
예술의 전당 V-갤러리│04.03~05.08

현재 ‘카쉬’展이 열리고 있는 예술의 전당에선 또 다른 인물 사진전이 ‘무료’로 진행되고 있다. 심은하와 김혜수 같은 우리시대를 대표하는 스타들의 모습을 찍은 이번 전시는 같은 인물전이지만 ‘카쉬’展과는 묘하게 다른 지점이 있다. 전시 기획의 변을 보면 “인물 위주의 패션, 셀러브리티, 영화포스터 사진을 통해서 우리 시대의 얼굴이 비추어진 거울을 찾고자 한다. (중략) 우리 사회를 대표하는 인물사진들을 통해서 사회 구성원들이 지니는 욕망과 현실의 관계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사진심리학자가 기획한 전시라서인지 관객에게 조금은 현학적인 요구를 하는 것으로 느껴지기도 하지만 분명 사람의 내면에는 카쉬가 말한 영혼과 마음 뿐 아니라 동시대에서 섭취한 지식과 편견과 욕망도 있다. 인물사진을 통해 바로 그 동시대의 욕망을 읽어내자는 것이 ‘거울신화’展의 목적일 것이다.

글. 위근우 (eight@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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