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미국은 나랏돈 받아서 CEO에게 보너스 주는 AIG나, 회사는 기울어가는데 새 야구장에 스폰서로 이름을 떡 하니 걸어 놓은 CITI그룹 등을 보며 대기업에 대한 감정이 매우 좋지 않다. ABC의 새로운 시트콤 <베터 오프 테드> (Better Off Ted)는 그런 분위기를 잘 탄 시리즈다. 대기업의 비인간성과 도덕성 결여, 그리고 수익과 생산성 향상을 위해서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 경영 방식을 풍자하기 때문이다. 물론 <베터 오프 테드>가 코미디 센트럴의 <데일리 쇼>나 <콜베르 레포르>에 버금가게 신랄하거나, NBC의 <30 록>처럼 평론가들이 입을 모아 칭찬하는 시리즈는 아니다. 좀 더 신랄하고, 날카롭게 풍자해줬으면 하는 바람도 없지 않다. 하지만 어쩌겠나. <베터 오프 테드>의 제작사는 대기업인 폭스고, 방영하는 방송사 역시 디즈니의 계열사인 ABC인 것을. 황금시간대에 메이저 방송사에서 이 정도나마 볼 수 있는 걸 다행으로 생각해야 할지도 모른다.

황당무계, 대책 없는 상사

<베터 오프 테드>의 배경은 국제적인 주식회사 ‘버리디앤 다이나믹스’ (Veridian Dynamics). 주인공 테드 (제이 해링턴)는 이 회사에서 성공가도를 달리는 연구개발팀의 책임자로, 밤낮 황당한 요구사항을 던지고 나가버리는 ‘얼음여왕’ 보스 베로니카(포샤 드 로시)의 지시를 따르느라 피곤하다. 금발머리를 뒤로 바짝 잡아당겨 동그랗게 묶는 ‘파워헤어’를 사랑하는 베로니카는 전형적인 대기업 고위간부다. 늘 자신을 ‘우리’(We)라고 표현하는 그녀가 테드에게 요구하는 사항은 다음과 같다. 호박을 무기화하기, 쓸모 없어 보이는 섬유 조각으로 무엇이든 돈되는 제품 만들기, 금속은 금속이되 강철처럼 강하고 고무처럼 탄력성 있으며 먹을 수 있는 것 만들기, 화씨 165도에서도 견딜 수 있는 ‘마우스’(아직 진짜 쥐인지 컴퓨터 마우스인지는 결정을 못한 상태) 만들기 등이다.

이런 황당한 지시를 받은 테드는 오래된 부부처럼 늘 티격태격하는 연구원 렘 (말콤 배렛)과 필 (조너선 슬래빈)에게 기본 모델제작을 지시한다. 이후 완성된 모델은 제품 테스팅 매니저인 린다 (안드레아 앤더스)에게 넘어간다. 하지만 린다는 다른 사원에 비해 다소 반항적이다. 베로니카 앞에서 불평이나 반발하는 것은 아니지만, 테드에게 신제품의 “말도 안 되는 홍보전략” 등 부도덕적인 측면을 늘 강조하며 항의한다. 물론 테드가 이런 의견을 보스에게 전할 리는 만무하다. 그래서 린다는 회사에서 받는 스트레스를 1인용 프림 등 회사용품을 슬쩍 가져가는 소심한 반항으로 해소한다. 그녀가 회사 안에서 할 수 있는 나름대로의 조용한 ‘반란’인 셈이다.

그 상사보다 악독한 회사

그러나 테드는 아주 조금, 몇 마이크로 밀리 정도만큼은 다른 고위 관리보다 양심이 있는 편이다. 그는 아프리카로 자원봉사를 하러 간다며 자신과 어린 딸 로즈를 버리고 간 아내 때문에 홀로 딸을 키우고 있다. 회사 일을 로즈에게 늘 얘기하는 테드는, 어린 딸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도덕적인 면을 가끔이나마 보인다. 가장 큰 계기는 베로니카가 직원 중 한 명을 1년 동안 냉동시키는 실험을 하자고 제안한 것에서 비롯되었다. 쥐를 냉동시키는 실험은 성공했는데 사람은 어떨지 궁금하다는 베로니카의 지시로, 테드는 필을 설득시켜 1년간 냉동되는 실험에 ‘자원’하도록 만들어야 했다. “왜 하필 나야!!!!!” 라는 필의 절규에도 불구하고 테드는 설득에 성공하지만, 심한 자책감을 느끼게 된다.

그런데 버리디앤 다이나믹스는 대체 무엇을 하는 회사일까. 한 마디로 돈이 된다면 뭐든지 하는 회사다. 덕분에 직원들은 언제나 교체가 가능한 거대한 기계의 부품 정도로만 취급된다. 회사는 화장실 휴지를 아끼려고 좌변기에서 휴지걸이를 멀리 붙여 놓을 정도로 악랄하다. NBC <오피스>처럼 근무시간에 딴청 하는 ‘슬래커’ 직원은 존재할 수가 없다. 직원들은 야근은 물론 주말과 공휴일도 모조리 반납해야 한다. 심지어 회사는 직원들을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상기시키기 위해 사무실에서 건 개인용무 전화에 대한 청구서를 보내기도 한다. 게다가 여기에 항의를 하려면 인도로 국제전화를 해야 할 판이다. 인사과를 인도 계열사에 하청 줬기 때문이다. 정말이지 지독하다. 당신의 회사는 어떠신지?

글. 양지현 (칼럼니스트)
편집. 이지혜 (seven@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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