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는 9회까지인 거 아니야? 왜 이번에 우리나라는 일본이랑 중국 경기, 두 번 다 7회 만에 경기가 끝난 거야?
오, 웬일로 WBC를 본 모양이네? 아니, 그것보다 야구가 9회까지인 건 알고 있었어?

쳇, 드라마 제목도 <9회말 2아웃>이잖아. 그리고 예전에 우리나라가 일본 이기고, 미국 이기고 하면서 WBC엔 좀 관심이 있다고.
그래? 장하네. 네가 물어본 건 야구에서의 콜드게임이라는 거야. 보통 아마추어 야구에서 쓰이는 방식인데 5회까지 두 팀 간 점수 차가 15점 이상 나거나 7회까지 10점 차가 나면 거기서 경기를 종료하는 방식이지. 하지만 프로야구에선 아무리 크게 지더라도 콜드게임을 선언하진 않아. 기본적으로 야구는 말 그대로 9회말 2아웃부터 시작인 거니까.

그럼 WBC는 아마추어 야구 경기인 거야?
아니, 그런 건 아니야. 저번 WBC 때도 이종범이랑 이승엽 같은 프로선수들 뛰었던 거 기억나지? 아니, 그 사람들이 프로인 걸 몰랐나… 아무튼 이런 식의 이벤트성 토너먼트는 콜드게임을 비롯한 나름의 규정을 따로 정하게 되고, 그 중 하나가 콜드게임이야. 국제대회인 만큼 아까 말한 점수 차를 적용하는 거고. 이번에 우리나라가 일본에게 7회 만에 지고, 반대로 중국에게 7회 만에 이긴 건 모두 각각 2대 14, 14대 0으로 7회에 10점 차 이상이 벌어졌기 때문이지. 대신 토너먼트의 준결승전과 결승전은 콜드게임을 인정하지 않아. 아무래도 야구는 역전의 묘미가 있는 종목이니까.

그럼 만약 콜드게임이 없었으면 우리나라가 일본을 이기거나, 중국이 우리나라를 이길 수도 있었던 거야?
이론적으로는 가능하지. 야구는 시간제한이 없는 종목이니까 남은 8회나 9회에서 아웃 하나 없이 계속 타자들이 안타와 홈런을 치면. 실제로 1929년 미국 메이저리그에선 시카고 컵스라는 팀이 필라델피아 어슬레틱스라는 팀을 6회까지 8대 0으로 이기고 있다가 7회에서 10대 8로 역전당한 적도 있으니까. 하지만 기본적으로 10점 이상 차이가 나고 있는 걸 뒤집긴 어려운 거고, 그만큼 경기에서 압도했단 뜻이니까 그런 식의 경기 중지가 가능한 거겠지. 복싱으로 치면 상대방이 더 싸울 수 있다고 해도 너무 많이 맞아서 심판이 고유 권한으로 TKO를 선언하는 거랑 비슷하겠다.

그럼 우리나라와 일본은 그렇게 실력 차가 큰 거야? 또 우리나라가 중국이랑 비교도 안 되게 강한 거고?
굳이 따지자면 일본 프로야구 수준이 우리나라보단 좀 더 높은 편이지. 적응의 문제도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한국 최고 수준의 선수였던 선동렬, 이종범, 이승엽 같은 선수들도 상당히 고전했던 무대니까. 우리나라 역시 중국보단 실력이 좋은 편이라고 말할 수 있고. 하지만 한 게임에서 콜드게임이 나왔다고 두 나라 사이 실력에 ‘넘사벽’이 있다고 하긴 어려워. 예를 들어 2007년에 두산과 SK의 경기에서 두산이 11대 1로 10점 차 승리를 거둔 적이 있거든. 그 경기만 보면 두산이 SK보다 무진장 잘 하는 팀으로 보일 수 있겠지만 실제로 2007년에 우승한 건 SK거든. 제일 잘하는 팀이 다른 팀에게 10점 차로 질 수도 있는 게 사실 야구의 재미지. 만약에 점수와 실력이 완전히 비례한다면 우리에게 크게 진 중국은 우릴 이긴 일본에게 거의 20대 0으로 져야 할 거 아냐. 그런데 실제론 4대 0으로 졌단 말이지.

실력 차가 그토록 큰 게 아니라면 어떻게 그런 점수 차로 이기거나 질 수 있는 거야?
야구라는 게 어떻게 보면 가장 분업이 잘 된 게임이잖아. 마치 포드식 생산 공정처럼. 그런데 만약 이 공정에서 하나의 톱니바퀴만 멈춰도 전체 생산 라인에 큰 문제가 생기겠지? 다른 단체 종목 역시 분업이 이뤄지지만 야구에 비하면 수공업에 가까운 편이지. 축구로 예를 들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호날두가 슬럼프에 빠지면 득점력이 많이 줄어들겠지만 상대에게 크게 질 정도로 팀 전력이 떨어지는 건 아닐 거야. 다른 선수들이 옆에서 열심히 뛰어주면 심지어 이길 수도 있고. 그에 반해 야구에서 선발 투수가 컨디션이 안 좋아서 볼을 제대로 못 던지면 한 회에서만 10점도 잃을 수 있어. 빠르기나 제구력이 별로인 공을 프로선수가 놓칠 리가 없으니까. 수비 능력이 아주 떨어지는 소위 ‘구멍’만 있어도 그 쪽으로 타구를 집중시키면 공을 놓치고 상대팀이 득점할 확률이 높아지지. 그러니까 ‘1+1+1+1=4’일 수 있지만 ‘1+1+1-1=-1’일 수 있는 게 야구야. 이번 일본과의 대결에서 선발투수였던 김광현이 컨디션이 안 좋아서 2회 동안 8점을 실점했던 것처럼. 물론 그걸 뒤집을 만큼 타자들이 쳐주지 못한 것도 문제지만.

그럼 그렇게 크게 졌다고 해서 우리나라가 떨어질 걸 걱정할 필요는 없는 거지?
우선 중국을 이기면서 본선 진출은 확정지었고, 일본에게 설욕부터….아앗!

아니, 왜?
너랑 얘기하면서 마감하는 동안 우리나라가 1대 0으로 이겼어. 아악, 결국 경기는 보지도 못하고 이게 무슨 일이야. 이게 다 너 때문이야! 너한테 이런 거 설명하는 거만 아니면 완전 생중계로 경기를…

너 그러다가 코너 잘린다?
…일으켰겠지. 난 너한테 스포츠 상식 설명을 못 하면 아쉬워서 입에 거품을 물고 쓰러질 거 같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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