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맥스는 KBS <풀하우스>, KBS <황진이> 같은 지상파의 과거 드라마와 SBS 이나 KBS <해피투게더 시즌3> 등의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의 재방송을 전문으로 하는 케이블 채널이다. 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무엇을 어떻게 만드느냐가 아닌, 무엇을 사서 어떻게 방영하느냐다. 이것은 지상파 프로그램 재방송으로 편성의 많은 부분을 채우고 있는 다른 케이블 채널들에게도 비슷한 고민이다. MBC 드라마넷처럼 지상파와 연계된 것도, 온미디어나 CJ미디어의 채널처럼 자금이 풍부한 것도 아니지만 비교적 안정적인 시청률을 확보하는 드라맥스의 편성전략이 궁금한 건 그 때문이다. 드라맥스의 유병탁 편성기획국 차장을 만나 일반 시청자에겐 생소할 콘텐츠 구매 방식과 편성담당자로서 구매와 편성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지점들에 대해 들어보았다.

드라맥스의 경우 지상파 방송사의 드라마 전문 채널을 제외하면 가장 다양한 최근의 드라마를 방영하는 채널이다.
유병탁
: 사실 드라맥스가 지상파 재방송을 위해 출범한 건 아니었다. 케이블 윈도우를 보호하기 위한 콘텐츠를 축적하기 위해 만든 채널인데 자체 제작하는 경우보다 지상파 드라마를 구매해서 재방송하는 게 수익이 훨씬 잘 나왔다. 제작비, 그것도 지상파 프로그램 제작비보단 훨씬 적은 제작비의 10~15% 정도로 더 괜찮은 수익을 올리는 거다. 원래 첫 해에 적자를 낼 거라 예상했는데 구매 중심으로 운영하니 흑자가 났다. 그래서 현재는 대표적인 드라마 재방송 전문 채널이 되었다.

“시청률을 떠나서 가장 많이 회자된 것은 <마지막 승부>”

구매는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지나.
유병탁
: 우선 홀드백(공중파의 본 방송 이후 다른 케이블 방송이나 다른 방송 플랫폼에서 재방송되기까지 걸리는 기간)이 풀려야 한다. 보통 종영 시점에서 1년 6개월에서 2년 후 즈음에 홀드백이 풀린다. 요즘은 종영이 아닌 시영 기준으로 할 때도 있지만. 그 이후 구매 경쟁이 벌어지는데 드라마의 가격이 정해져 있는 만큼 무슨 공개 입찰 식으로 이뤄지는 건 아니다. 기본적으로 판매사 입장에선 자기네 콘텐츠를 가져가서 가장 많은 시청률을 내길 원한다. 그래야 자기도 잘 팔았다는 얘길 들으니까. 만약 A라는 곳은 나름 편성 기획을 해서 최대한 시청률을 낼 토대가 있고, B는 돈만 있다면 A를 선택하는 거다.

그럼 구매한 쪽에선 계약기간 동안 독점적 권리를 갖는 건가.
유병탁
: 기본적으로 독점권을 주는 계약은 아니다. 보통 2년 4방 혹은, 짧게 1년 2방일 때가 많은데 만약 2년 계약이면 1년이 지났을 때 판매사 쪽에서 1차 구매자에게 양해를 구하고 다른 곳에도 파는 경우가 있다. 또 처음부터 두 개 채널에 비독점으로 파는 경우도 많고. 그리고 케이블과 위성은 다른 플랫폼이기 때문에 판권 시장이 따로 형성된다. 즉 위성 채널에 판권이 팔린 건 케이블에 아무 영향을 주지 않는다.

그런데 모든 드라마를 다 살 수 있는 건 아니지 않나. 무엇을 선택 기준으로 삼나.
유병탁
: 결국 시청률이다. 그런데 이게 그렇게 과학적인 지표인지는 모르겠다. AGB 닐슨 같은 경우 조사 대상이 2350 가구고, TNS 미디어 코리아 역시 2000여 가구인데 그게 100퍼센트 정확할 수는 없다. 게다가 지역별 채널 분포도 다르고. 시청률이 전부가 아니라는 걸 체감할 때도 많다. 가령 어떤 프로그램의 경우 시청률이 안 나와서 편성 시간을 바꾸면 반응이 잠잠하다. 데이터만 따지만 그게 정상인 거다. 그런데 어떤 프로그램은 시청률도 안 나오는데 시간을 바꾼다고 항의 전화를 비롯해 난리 날 때가 있다. 그런 걸 보면 아주 정확한 지표라고 보긴 어렵다.

하지만 시청률 외에 수치화 할 수 있는 지표가 없지 않나.
유병탁
: 그렇긴 하지만 주위에서의 반응이란 게 있다. 예를 들어 최근 방영된 중 가장 시청률이 잘 나온 드라마는 <황진이>다. 그런데 주위에서 ‘드라맥스에서 그걸 방영한다더라’는 말이 가장 많이 회자된 건 <마지막 승부>다.

분명 눈에 띄는 편성이긴 했다. 하지만 그건 좀 의외의 편성이라는 말이기도 하다.
유병탁
: 편성담당자로서 <마지막 승부>를 구매하면 좋겠다고 보고서를 쓰고 경영진을 설득한 이유가 있다면 우리 채널에서 부족했던 20~30대 여성 시청자 때문이었다. 그래서 이 연령대를 잡으려고 과거 시청률 데이터도 찾고 여러 드라마 동호회 반응도 보고 골라 테스트한 게 <마지막 승부>였다. 사실 너무 옛날 드라마라 자칫 채널 이미지가 깎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작년 한 해 동안 우리 채널에서 20~30대 여성 시청자가 가장 많이 본 프로그램이 <마지막 승부>다. 사실 이 드라마의 경우 가격이 싼 것도 아니라 경영진을 설득하기 쉽지 않았다.

“구매하고 편성하는 입장에서 버리는 작품은 없다”

10년도 더 된 드라마인데 가격이 비싼 이유가 있나.
유병탁
: 프로그램의 가격을 결정하는 세 가지 요소가 있다. 하나는 몇 분짜리 프로그램인가, 다른 하나는 방영된 지 얼마나 지났는가, 마지막 하나는 시청률이다. 그런데 <마지막 승부>를 비롯해 그 시기 잘 나가던 드라마는 시청률이 40~50% 정도 나왔다. 그러니 액수가 적지 않다. 경영진에서는 ‘왜 사? 너 이거 자신 있어? 옛날 건데 싸지도 않네?’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거지. 그래서 구매하는데 6개월 정도 걸렸다. 그런데 예상이 딱 맞은 거다.

<마지막 승부> 후속으로 <호텔리어>를 편성하는 것도 같은 연령대를 공략하는 건가.
유병탁
: 사실 다음 편성으로 <호텔리어>와 <사랑을 그대 품 안에> 중 어떤 걸 할지 고민했다. 그런데 <호텔리어>를 편성한 건 <마지막 승부>가 그 연령대 시청자들에게 왜 먹혔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다. 장동건 때문인지, 심은하 때문인지, 클래식 드라마여서인 건지 <마지막 승부> 한 편만으로는 알 수 없으니까. 만약 배용준 주연의 <호텔리어>가 성공하면 장동건의 맨 파워 때문일 거고, 그게 아니라면 90년대 말의 클래식 드라마가 성공한 거라 볼 수 있을 거다. 후자일 경우 <사랑을 그대 품 안에>나 <별은 내 가슴에> 같은 작품을 편성할 계획이다.

그런 식의 편성 전략이 궁금하다. 시기에 따른 편성 기준도 다를 텐데.
유병탁
: <황진이> 이후 편성하려고 구매한 작품이 <외과의사 봉달희>와 <여우야 뭐하니>다. 이 중 <황진이>만큼의 시청률을 올릴 건 <외과의사 봉달희>라고 생각하고, <여우야 뭐하니>가 조금 약하다고 보는데 <여우야 뭐하니>를 먼저 편성했다. 그 이유는 1년 동안 가장 시청률이 안 나올 때가 4월인데 그나마 <외과의사 봉달희>가 그 시기에도 어느 정도 시청률을 내줄 것 같아서다. 반대로 둘 중 약간 약해 보이는 <여우야 뭐하니>가 조금은 더 나은 환경에서 방영되는 걸 바란 거고.

잘 안 나올 거라 생각되는 프로그램을 가장 안 좋은 시기에 편성하고, 잘 나올 걸 좋은 환경에 편성해 시청률을 크게 올리는 방법도 있지 않나.
유병탁
: 구매하고 편성하는 입장에서 버리는 작품은 없다. 시청률이 잘 안 나오는 드라마라도 다 비싼 돈 주고 사 온 거다. 그리고 좋은 드라마를 좋은 환경에 편성하면 평가하는 것도 어렵다. 이게 콘텐츠 자체 힘으로 시청률을 올린 건지, 편성이 좋아서 그런 건지 확인하기 어려우니까. 그에 반해 <거침없이 하이킥>처럼 구매하기 위해 경쟁이 굉장히 치열했던 작품의 경우 사람들은 ‘<거침없이 하이킥>은 당연히 잘 나오는 거 아니야?’라고 생각할 수 있다. 분명 ‘MUST HAVE’의 아이템이지만 편성하는 사람에겐 좋으면서도 시청률이 안 나올 땐 부담스런 아이템이다.

남들이 볼 때 잘 안 될 거 같은 프로그램에서 가능성을 보는 건 데이터 분석의 문제인가.
유병탁
: 기본적으로 AGB닐슨과 TNS 미디어 코리아의 데이터가 오면 지상파에서부터 저기 말단 채널까지 확인하고, 현재 지상파에서 어떤 프로그램이 어떤 연령대에서 인기를 끄는지, 그게 케이블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확인해본다. 매일 보고서를 써야하는데 단순히 보고하는 걸 떠나 그걸 통해 편성담당자들이 공부하는 게 크다. 다른 채널에서 뭘 트는지 보고 구매현황과 편성전략을 확인할 수 있으니까. 그러면서 편성담당자로서의 감도 생기는 거고.

“<아내의 유혹>은 꼭 사야한다, 그런 독한 소재는 무조건 통한다”

매뉴얼화 하기 어려운 감인 건가.
유병탁
: 매뉴얼화 할 수는 있다. 하지만 이게 매뉴얼 1장, 10장 봐서는 모를 일이니까. 변수도 굉장히 많다. 우린 1년 이상 지난 드라마를 구매하는데 시청자들의 성향과 트렌드는 계속 변하지 않나. 2009년 같은 경우 울고, 짜고, 불륜이 벌어지는 신파가 유행하는 것처럼.

그래서 최근 <하늘이시여>의 편성이 절묘해 보이는 것 같다.
유병탁
: <하늘이시여>는 정말 불가사의한 드라마다. 시청률이 안 나와도 편성 시간을 바꾸면 항의 전화가 가장 많이 오는 드라마다. 우리가 구매한 이후 마지막 런을 돌리고 있는데 지금도 0.3~0.4% 나오고 갈등구조 폭발할 때가 되면 0.8%까지 나온다. 전에 봤는데도 다시 보는 거다. 사실 일일드라마나 주말드라마의 경우 아무리 본방에서 시청률이 높았어도 구매해서 틀면 백전백패다. 길고 호흡도 지루하고. 그런데 <하늘이시여>는 장편이지만 갈등이 계속 엮여서 시청자를 끌어당긴다.

그럼 <아내의 유혹>도 욕심나겠다. (웃음)
유병탁
: <아내의 유혹>은 꼭 사야한다. 구매 시장에 나온다면. 그런 독한 소재들은 무조건 통한다.

그렇게 기본적으로 선방하는 프로그램도 있을 것 같다.
유병탁
: 물론 검증된 장르나 소재가 있다. 먼저 훔쳐보기 류. <나는 펫>이나 <스캔들> 같은. 그리고 괴담이나 퇴마 등 혹세무민하는 것들. 대분류로 보면 <순간포착 세상에 이런 일이>나 , <신기한 TV 서프라이즈>도 여기에 속할 거고. 그 다음으로 불륜과 성인물이 있는데 우리는 채널 이미지 때문에 <부부클리닉 사랑과 전쟁> 외에는 편성하지 않는다.

어느 정도 검증된 콘텐츠를 구매하는 것과 확실치 않은 콘텐츠를 구매해 편성의 묘를 살리는 것에 대한 느낌이 다르겠다.
유병탁
: 편성담당자 입장에선 잘 안 될 거 같은 작품을 사와서 타깃을 정확히 공략할 때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다. <마지막 승부>의 경우 시청률이 아주 높진 않았어도 예상 타깃이 확실하게 몰린 것처럼. 이렇게 남들은 안 될 거라 생각하지만 내 예측이 맞아 떨어질 때 편성담당자로서 정말 짜릿하다.

© 텐아시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